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김성민 글, 이태진.조동성 글 / IWELL(아이웰)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가 뭔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 이토 히로부미야 안중근 장군에게서 처단을 당했는데, 왠 엉뚱한 제목일까 의아해졌다, 처음엔. 그러나 다 보고난 지금은 무슨 의미인지,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적 현실이 어떻게 사람을 개, 돼지로 만들었는지 확연하게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가로 세로가 대략 12cm × 17cm 정도밖에 안 되는 조그만 판형에다가 분량도 117페이지밖에 안 되는 더없이 간단한 단편 역사소설이다. 마음을 먹고 진중하게 읽어내려갈 필요도 없이 여느 수필집을 읽는 것처럼 부담없이 휘리릭 읽어내려가면 될 만한 아주 간단하다. 처음엔 어떤 끔찍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걱정되어 쉽사리 펼치지 못했는데 어느 날 그저 이 책을 옮겨놓으려다가 그 와중에 30분도 안 걸려서 다 읽어버렸다. 그런데 정말 빨리 읽을 수 있는 만큼 그 내용을 만만하게 보기가 쉽지만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해선 안 될 책이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에다가 실날 같이 가느다란 상상력만 덧붙였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겪었던 처절하고도 절절한 고통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한 줄로 "우리가 어떻게 살았을 것 같아요? 상상할 수 있겠어요?" 가 다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절제된 표현 속에서 드러나는 끔찍한 상상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이름인 ‘안중근 의사’의 ‘의사’란 표현은 안중근 독립군 장군의 신분으로 전쟁 중에 적장을 사살한 행위를 단순한 개인의 행위로 끌어내리기 위한 일본측의 만행이었을 뿐, 실제 안중근의 직책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특파독립대장’이었다 한다. 안중근 독립군 대장은 히토 이로부미를 사살하고 전쟁 포로 신분으로 자신을 대우해주길 주장하고, 국제법에 따라 판결하기를 희망했지만, 대외적으로 무력으로 한국을 침범한 사실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일본으로써는 절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그럴 바에야 도망쳐서 다른 더 큰 일을 도모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어쨌거나 ‘군인’ 안중근을 인정하지 않았던 일본 법정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을 받아놓고서도, 항소를 포기하라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를 받고 항소를 포기한 그는 자신이 저술하고 있던 『동양평화론』을 집필할 수 있도록 며칠 간의 말미를 달라고 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끝내 사형을 당하고 만다. 이 소설은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안중근 독립군 대장이 죽고 난 후 개나 소, 돼지 같은 짐승처럼 살아와야 했던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 안중생의 이야기가 말이다.

 

중생의 형은 일곱 살의 나이에 마을 사람들이 준 독 탄 과자를 먹고 어이없이 죽었고, 여기 저기서 숨어다니며 굶주리는 생활을 몇 년 하다가 그제서야 임시 정부가 있던 상해에서 이들을 불러주어 중국으로 건너간다. 영웅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영웅의 아내라고 하지만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하는데 그런 감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오히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서 자신의 기도 한 번 펴고 살지 못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처음에는 좋았다. 하지만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어나고 일본의 강경대응이 이루어지면서 갑작스럽게 상해를 빠져나가야 했던 임시 정부 사람들은 아무도 안중생 가족들을 거두지 않고 갔던 것이 문제였다. 아버지가 목숨을 다 바쳐 영웅일을 하면 무언가. 이렇게 버림 받는 존재인 것을. 사실 처음부터 버림 받았다 생각하지 않으면 좀더 견디기 쉬웠을지 모른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처럼 의연하게 죽음을 맞으라고 처음부터 교육하고 알려주었다면 그렇게 안중근 장군처럼 영웅이 될 수도 있었을지도.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었던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여사는 남편 덕에 모진 고생을 하고 아들까지도 똑같은 고생을 시키는 게 안쓰러워서 절대 그렇게까진 생각할 수 조차 없었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지. 그렇다고 그를 욕할 수나 있나. 우리가? 절대 그럴 순 없다. 아무도. 독립이 무엇인지, 일본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태어나고 나니 모진 생활이 계속되었다면, 만약 그런 생활을 안중근 장군이 했었다면 그도 견디기는 힘들었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 모두도.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경감이 타나타 그를 한국에 있는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에게 데려갔다. 그것은 그에게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를 만나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공개적으로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죄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앞으로 살기 편하게 돈을 줄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지금 여기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협박을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내가 그런 처지에 있었다면, 당연히 “죽이시오.” 할 수 있었을까? 난 사실 자신이 없다. 중국, 일본, 한국이 똘똘 뭉쳐서 호시탐탐 침투해오는 서양 세력들을 막아내고 동양의 평화를 이루어내자고, 그러기 위해 자신은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 모두를 위해 싸운다고 말했던 안중근 장군의 의식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고백한다. 난 범인이니까. 그래서 난 안중생을 욕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를 동정한다. 나는 그런 힘겨웠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그런 고달픈 선택의 기로에 놓여본 적이 없었는데, 그는 후대에 태어날 나를 위해 그런 모진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온통 뒤집어 쓰고 살았어야 하니까. 그래서 고맙다. 그렇게라도 살아줘서. 그가 말하길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지만, 그도 어찌 한국인인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까. 당연히 매일 같이 용서를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있을 아버지께. 하지만 난 안중근 장군이 아들을 쉽게 용서했을 것이다. 그는 평화를 사랑하고 인간애를 아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난 오히려 김구 선생이나 안중생의 할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이 짐승처럼 살 것을 뻔히 알면서 어찌 그 위험한 상해에 버려두고 온 것이며, 그랬으면서도 나중엔 안중생을 암살하려고 했던 것은 정말 말도 안 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 맞고, 그렇기에 우리가 이만큼이나 살아왔지만, 안중생 가족은 결단코 소가 아니였던 것이 문제가 아니였을까. 독립군들이야 그만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무장이 되어 있던 사람들이지만, 중생 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도구로 쓰일지 모르는데, 자기 백성 하나 챙기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지는 않고, 어쩜 그럴수가~. 그리고 전쟁 포로로 대우하지도 않는 일본측의 불의를 항거하기 위해서라도 사형에 대해서 항소를 했어야지, 일본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는 이유만으로 항소를 포기하라고 했던 조마리아 여사도 말도 안 된다. 왜 목숨을 구걸하나. 어떻게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될 수 있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일이 아닐까. 그들이 대단한 인품과 열정과 의지를 지닌 인물임에는 틀림 없고, 또한 존경도 하지만 그 부분에만큼은 잘못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어쨌거나 그런 많은 분들 - 안중근, 윤봉길, 김구, 조마리아, 심지어 안중생까지 - 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오늘날에 내가 살아있다. 오늘의 하루가 더없이 소중함을 느끼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 분들의 후손이라는 자랑스러움을 잊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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