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rayed 배신 하우스 오브 나이트 2
크리스틴 캐스트, P. C. 캐스트 지음, 이승숙 옮김 / 북에이드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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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책이나 영화 할 것없이 뱀파이어가 대세다. 아마도 영원히 산다는 점, 영원히 젊다는 점 때문에  심찮게 소재화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나 또한 그 늪에 빠져버렸다. 시작은 역시 『트와일라잇』시리즈였다.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사이가 좋을 수 없는 뱀파이어와 인간이 서로 사랑을 한다니...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이기에 더욱 애절하고 안타깝게 다가왔던 것이 아닐까. 순정만화에서나 어울릴 법한 소녀적인 감성을 전면에 내세워서 인기몰이에 성공한 케이스다. 비록 소설은 읽어보지 않았을지라도 감성적인 여자치곤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트와일라잇」시리즈를 안 본 사람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도 내심 끌렸다. 『MARKED 상징』의 두 번째 편인 이 소설은 박진감있게 전개된다. 총 10권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곤 하지만, 대략적인 것은 벌써 다 나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쉽게 파악이 되는  소설이었는데 그만큼 빨리 읽혀 두툼한 소설을 단 몇 시간에 끝내버릴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을 뒤엎어버리는 내용이 많다. 뱀파이어와 인간은 숙적인 사이가 아니라 인간에게 표식이 생기면 뱀파이어 학교에 들어가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인 ‘체인지’를 겪으면서 뱀파이어가 될 준비를 해야 하고, 뱀파이어는 인간에겐 없는 여러 능력을 이용해 인간들을 보호한다는 점이 상당히 독특했다. 그리고 흡혈은 뱀파이어가 인간에게서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뱀파이어끼리도 가능하다는 점도 특이했다. 보통은 뱀파이어들이 인간을 ‘식량’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볼 때, 완전히 파격적이다. 흡혈을 한다고 해서 인간이 뱀파이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서로에게 강렬한 육체적 쾌락만을 전해줄 수 있는 행위일 뿐이라니 말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인간과 뱀파이어가 평화롭게 공존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다. 더구나 자신의 친한 친구나 가족 중에 ‘체인지’를 겪은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그 외 내용은 여느 십대소설과 다르지 않다. 여느 청소년들이 겪는 사춘기처럼 뱀파이어들도 그들만의 기숙학교 ‘나이트 하우스’에서 사랑과 우정에 대해서 고민한다.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표식을 얻은 조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호기심과 선망의 눈길을 받으며 기숙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숨겨진 능력에 대해서 자각해가면서 지극히 평범한 ‘뱀파이어’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던 도중에 전 남자친구가 기숙학교까지 와서 난리를 치고 그를 떼어내려고 동분서주하고 모든 아이들의 선망을 받는 멋진 남자아이에게 관심을 받고 결국 그 아이와 사귀게 되고... 이런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는데, 사실 이런 부분은 청소년 시트콤 같다. 어려움을 이기내며 열심히 노력하는 여주인공이 그 학교의 킹카를 얻지만, 여주인공의 주체하지 못할 죽일 놈의 매력 때문에 삼각관계, 사각관계로 이어져 여럿 남자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그런 뻔한 스토리 말이다. 이런 시트콤은 십대 여자아이를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십대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킹카들이 다수 등장한다. 바로 이 소설에도 전 남자친구 헤스와 현 남자친구 에릭, 그리고 뜨거운 눈길을 어쩌질 못하게 만드는 로렌 교수까지 여자들의 환상을 그래도 옮겨놓는다.
 

사실 소설에서 십대 여자아이의 어쩔 줄 모르는 성적 욕망을 접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주인공 조이의 행동이 다소 어이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철없어 보이기도 하고, 너무 방탕하게 보이기도 했었는데, 요즘 미국 청소년들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했다니까 아마도 미국에서는 공감을 얻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조금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부분이다. 또 그 외에 이 소설의 제목처럼 주인공 조이가 믿었던 누군가에게 심하게 배신당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미리 감지해내며 지혜롭게 해결해나가려고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여러 실수를 해봐야지 성장하는 것처럼 그런 내면의 이야기를 1인칭 화법으로 읽을 수가 있으니 그 부분은 통쾌하게 읽을 수 있다. 아마도 3, 4권에서도 그 음모가 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거대한 악의 세력을 연약한 조이가 다 막아내진 못하겠지만 밤의 여신 닉스의 선택을 받은 조이이기에 그녀가 다 이겨낼 것을 믿는다. 그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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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답하다 - 푸앵카레상을 향한 100년의 도전과 기이한 천재 수학자 이야기
조지 G. 슈피로 지음, 전대호 옮김, 김인강 감수 / 도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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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1904년 푸앵카레가 발표한 논문에서 천재다운 직감으로 이해했던 추측을 질문으로 바꾼 그 유명한 ‘푸앵카레의 추측’을 향한 100년 간의 수학자의 노력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는 것이 ‘푸앵카레의 추측’이 나오기까지의 푸앵카레의 업적과 그것을 향한 다양한 수학자들의 노력과 삶을 다채롭게 정리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수학자가 아닌 저널리스트였기에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군더더기는 빼버린 글솜씨가 깔끔해서 어려운 수학적인 증명이 많이 나오는데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정말로 많은 수학자들이 그 추측을 증명해내는데 도움을 주었고 생각을 보탰다. 결국 그 공로는 은둔하며 8년 동안 그 추측에만 매진한 페렐만에게 돌아갔지만 그의 증명이 있기까지 굵직하게 도움을 준 해밀턴의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고 페렐만이 결국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하는 것을 보니 인간 역사는 여러 사람의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역시 수학자들 중에는 기이한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게 서두 부분에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한 페렐만의 기행이 나타나있기 때문이다. 수학 분야에서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하게 되었지만 페렐만은 시상식에도 나오지 않았고 보내주겠다고 한 상패도 고사했다고 하고 그를 설득하러 러시아까지 날라 온 수학자들에게도 간곡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수학계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 때문에 외부와의 단절을 고수하는 페렐만은 자신이 수학계에서 격리되었다고 느끼기에 수학계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다고 말했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정말 그렇게 명예와 돈을 거부하는 저명한 지성인을 만나는 게 그렇게 싫지는 않다. 아마도 그런 기이한 행적을 보이는 수학자가 있다는 것이 수학에 대한 매력을 더 높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푸앵카레의 추측’이 무엇인지 말해보자. 일단 그런 추측을 제시한 푸앵카레라는 인물은 수학계에 흔히 나타나는 천재였다. 뭐, 신동이라고 불릴 수도 있었을 텐데 어려서부터 수학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그가 두각을 나타냈던 분야는 문학적, 철학적인 분야였고 그가 좋아했던 분야는 역사와 지리였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그는 전과목에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을 정도의 지능과 탁월한 집중력으로 수다를 떨면서 몇 자 적는 식으로 숙제를 하곤 했고 그 버릇을 상급생이 되도록 고치지 못했다. 그가 수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14살 때로 그의 수학적 재능은 선생님 사이에서 회자되곤 했는데 그의 명성에 누를 끼칠 일이 일어났다. 문학 바칼로레아(프랑스의 고등학교 졸업시험)에서 라틴어와 프랑스어 에세이는 탁월했고 다른 과목도 뛰어났으나 그 뒤에 치러진 수학 바칼로레아에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엉뚱한 답을 적어내어 낙제점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평소 실력을 알고 있던 선생님의 배려로 구슬시험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당당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보통 특별한 수학적 재능을 가진 프랑스 남성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그랑제콜 입학을 위한 혹독한 2년 수업을 받는데 그 첫 해가 끝날 무렵 푸앵카레는 1등을 한다. 그리고 2년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전체 수석을 차지했고 이젠 그랑제콜이 속한 대학교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곳이 파리공과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이 남아있었다. 원래 구술 입학 시험을 치르는 장소는 휑하니 비어있는 것이 정석이지만, 그 때 이미 그의 명성이 자자했기에 그의 시험장에는 구경하려는 사람들도 부적였다고. 질문을 받으면 푸앵카레는 눈을 감거나 깊은 생각에 잠겨 천천히 대답했는데 그의 답변을 들은 시험관들은 경악했단다. 그를 위한 기학학 문제를 낼 때 교묘하게 다시 만들기 위해 45분이나 시험을 중단했을 정도라니 정말 대단한 천재가 아닌가 싶다. 학교에 다닐 때도 거의 필기를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다 입력이 되는 특별한 그의 집중력은 너무 부러울 정도고, 그의 빠른 두뇌 회전을 따라가지 못해서 그의 표현력이 엄정성이 떨어진다니, 나도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

 

파리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광산대학에 들어가 최고 성적(18에서 20등급은 이 세상 사람이 결코 받을 수 없으며 16에서 18등급은 교수 정도나 되어야 받을 수 있는 등급이며 14이상의 등급은 탁월한 수준에서, 그는 17.17등급을 받음)으로 졸업한 그는 훌륭하고 인정 넘치는 기술자가 되었다. 광산에서 폭발 사건이 일어나면 2차 폭발을 각오하고 들어가 폭발 원인을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는 그런 일을 아주 훌륭히 수행해냈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수학에 연결되어 있었다. 광산대학을 다니던 중에도 혼자서 고급수학문제에 매달렸고 파리공과대학 1학년 때도 이미 편미분방정식(여러 개의 독립 변수로 구성된 함수와 그 함수의 편미분으로 연관된 방정식)에 대한 논문을 완성한 상태였던 것!! 하지만 탁월한 수학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항상 문제가 되었던 표현력이 걸리기는 했다. 후에도 그런 표현력 때문에, 혹은 엄정성이 떨어지는 것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는 번뜩이는 직관에 의존하여 문제를 풀어가는 편이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를 마주쳤을 때 왜 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맞는지, 틀렸는지 감이 온다. 그래서 약간의 단계를 건너뛰고 증명을 하는 바람에 오스카상을 받고도 논문 출간에 앞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뻔했던 것!! 그의 아이디어가 엄청나게 독창적이기 때문에 그의 논문을 심사하는 수학자들도 그의 오류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도 문제였고, 그가 논문을 썼을 때 너무 직관에만 의존했던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원고를 정리하는 임무가 주어진 에드바르 프라그멘 덕분에 미리 오류를 알 수 있었고, 푸앵카레는 다시 논문을 써야 했다. 새 논문은 어마어마하게 독창적이여야 했는데, 성공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해냈다. 1세기 후에는 엄청 유명해질 카오스 이론의 기초를 놓았던 데다가 그 유명한 ‘재귀정리’도 들어가 있었던 것!!! 전화위복이란 말을 여기에 써야 할까. 사소한 오류하고 생각했던 것이 어마어마하게 불거져 나오는 것을 완전 역전 홈런을 쳐서 날려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랬던 그는 논문을 쓸 때 이제 앞서 한 실수를 교훈삼아 좀 더 여유롭게 질문을 한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중요한 화두 하나, 구면은 자명한 기본군을 가졌으므로 기본군이 보편적인 분류 체계로서는 불충분할지라도, 최소한 자명한 기본군을 가진 모든 물체는 위상수학적으로 구면과 동치가 아닐까 하는 질문!! 하지만 이것을 증명도 안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정리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페르마의 독단적인 성격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크~ 그의 독단적이고 약올리는 듯한 어투가 얼마나 많은 수학자들을 괴롭게 했던가. 난 천재들은 다 오만하고 독단적인 줄만 알았더니 푸앵카레는 그의 생각의 속도를 글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했던 뿐이지, 사람 자세는 거들먹거리지도 나대지도 않고 수학적인 지식이 낮은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마음 속이 편해졌다. 자신이 천재라 범인을 이해하지 못해 오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었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푸앵카레는 4년 전의 실수를 거울 삼아 다섯 번째 보충 논문에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한다. 「다루어야 할 질문이 하나 남았다. 어떤 다양체의 기본군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체가 구면과 위상동형이 아닐 수 있을까?」 이것이 그 유명하다는 ‘푸앵카레의 추측’이다. 사실 유명하다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들어봤지만, ‘푸앵카레의 추측’은 사실상 처음 들어본다. 하긴 300년이 넘도록 수학자들의 애만 태운 정리와 어디 비교할 수 있겠냐마는, ‘푸앵카레의 추측’은 사실 내가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수학의 분야였던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위상수학이라니, 4차원의 세계에서 사는 것도 힘든 나에게 더 이상 고차원적인 생각은 거의 허용이 되지 않는다. 그런 차원을 넘나드는 문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모습을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된다지만 차라리 나는 지구 위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사람이니 역시 내 길은 아닌 게 확실하다.

 

어쨌거나 그의 그 추측은 다양체에 난방을 한다면 열의 흐름이 이동하는 경로를 연상시키는 해밀턴의 ‘리치 흐름’을 도입해 풀어냈다. 페렐만이 해밀턴의 ‘리치 흐름’을 접하고 나서 ‘푸앵카레의 추측’에 매달렸던 것은 해밀턴의 도구를 이용해 푸앵카레의 것을 풀 수 있다는 착안을 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도 수학자의 예리한 직감이 아니였을까. 정말 신기했던 것은 페렐만은 다 풀어놓고서 논문을 출판할 생각보다는 누구나 볼 수 있게 아카이브에 올렸던 것이다. 아카이브는 학술지에 아직 출판되지 않았거나 제출되지도 않은 논문들의 저장소이다. 그것도 ‘푸앵카레의 추측’이란 제목을 달지도 않고서 말이다. 그는 ‘푸앵카레의 추측’을 해결하고서 영예를 안을 생각이 없었고, 그저 자신의 생각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논문은 총 세 개였는데, 처음 논문에서 발견된 오류를 두 번째 논문에서 수정하는 방식을 쓰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푸앵카레의 추측’이 해결되지 않을 만한 오류가 있지는 않았다. 그의 논문들이 인터넷 상에 공개되고 나서 몇몇 수학자들이 주목했다. 그래서 그에게 강의를 부탁했고 그것을 흔쾌히 수락한 페렐만은 미국에 가서 겸손한 태도로 강연을 하고 질문을 받고 열심히 자신의 아이디어를 퍼트려나갔다. 그가 평정심을 잃었던 것은 딱 한 번, 수준 이하의 질문을 받았을 때(그것을 받아들었으면 강연해야 하는 일주일 내내 그것만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말고는 시종일관 겸손했고 유쾌했다. 하지만 기자에게는 화를 냈고 사진을 찍히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 후 많은 미국 학교에서 그를 잡았지만 그를 미국에 붙들어두진 못했다. 그의 은둔처인 러시아로 돌아가서 그의 아이디어를 더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질문한 메일에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답장만 해주었다.

 

논문으로 출판할 생각도, 그의 논문을 좀 더 쉽게 정리할 생각도 안 하는 그를 위해, 아니 수학의 발전을 위해 다른 세 팀이 등장한다. 존 모건과 치안강은 전문가용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알게 쉽도록 그의 아이디어를 연구해서 책으로 냈고, 브루스 클라이너와 존 로트은 그들 나름의 해설서를 썼는데, 차오화이둥과 주시핑은 페렐만의 논문을 연구했으면서 페렐만과는 다른 방법으로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어냈다는 오만함을 드러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나중에 클라이너와 로트의 주석서 앞 장과 똑같은 문구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끝까지 우겨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푸앵카레의 추측’을 해결한 공이 페렐만에게 정당하게 돌아가서 다행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뻔뻔한 중국인이라는 생각을 안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남의 나라 역사를 가져다가 제 역사라고 우기는 그들이니 수학적인 정리 하나 가로채는 사소한 일쯤이야 쉬웠을 것이란 생각도 해보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 자체가 서구인들의 눈에 비춰진 시각으로 보는 것이라 그것도 편견에 휩싸인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푸앵카레가 살았던 당시만 해도 수학자들은 모두 독일어를 배웠어야 한다니,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저자에게 얼마 만큼의 우월감이 있을 게 알게 뭐냐. 물론 페렐만은 러시아인이었기에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 문제는 덮어두고 페렐만은 ‘푸앵카레의 추측’을 해결함에 따라서 필즈상을 받았고(물론 그는 거부했으나) 앞으로 밀레니엄상으로 100만 달러를 손에 넣을 수도 있게 된다(물론 이 상도 거부할 거라 의심치는 않지만). 하지만 수학에 매진하는 것이 어디 상 때문이겠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신나게 맘껏 노는 것이 흥미로울 뿐이지. 물론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다는 의미로 상을 주시는 거야 고맙고 감사한 일이겠지만 상이나 명예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로채고도 제대로 된 인정 하나 하지 않는 지식인들을 보면 좀 씁쓸할 뿐이다. DNA 이중 나선 구조의 발견으로 196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받은 제임스 왓슨, 모리스 윌킨스, 프랜시스 크릭도 사실은 X선으로 찍어가며 연구를 했던 로잘린드 프랭클린에게 빚을 진 것인데 말이다. 하여튼 여러 사건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주신 저자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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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나는?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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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기욤 뮈소다. 읽는 내내 박진감 넘치고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했던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로 처음 그를 만난 2008년의 기쁨을 잊지 못했다는 듯이 이번에도 2009년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책이 되었다. 이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익히 알고 있어서 그런지 책장을 넘기는 내내 가슴이 살짝 떨리곤 했다. 가브리엘과 마르탱... 그 수줍은 사랑이야기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도 이어지는 사랑의 의미는 어떨까? 여느 사랑과는 다른 무슨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 십삼 년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난다고 해도 그 때 그 마음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면 그 때까지 기다린 시간이 다 무엇이지...?

 

우리는 사랑을 꿈꾼다. 그저 덧없이 한 순간에 머무고 말 그런 짧은 사랑이 아니라 찬란하고도 영원할 그 아름다운 사랑을 말이다. 아마 우리가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것은 그것이 그것의 존재가 희귀하다는 반증이 아닐런지... 여기에 가브리엘과 마르탱의 사랑과, 발랑틴과 아키볼드의 사랑이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죽어버려서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한 커플과, 철없는 오만과 상대에 대한 서투른 배려로 사랑을 가두어둔 한 커플... 이 커플들 중에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추억만 남은 커플? 아니면 후회로 점철되었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커플? 둘다 아닐 것이다. 사랑은.... 어디에 갇힌 존재도 아니고 아스라이 사라지고 말 추억만으로도 존재할 순 없는 것이니까.

 

십삼 년 전에 가브리엘은 평생의 사랑을 버렸다. 그리곤 그렇게 평화없는 삶을 살아나갔다. 가브리엘에게 버림 받은 마르탱은 세상을 버렸다. 세상에게서 취할 수 있는 것을 취하려하지 않고 그저 세상을 떠돈다는 느낌, 바로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자신에게는 소중한 것도, 중요한 것도 없으니까. 그러던 두 사람이 운명의 장난으로 다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우한다. 다시 사랑을 찾겠다고 달려드는 가브리엘과 그런 사랑에게 상처를 주고픈 마르탱의 철없은 객기는 결국 .... 온전한 사랑으로 이해하는가 싶었지만.... 사랑에 배신당한 사람의 광끼를 무시할 순 없었다. 그래서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마르탱은 모든 것을 이해한다. 사랑, 그것은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저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린 시절 다른 사람의 사정을 돌아볼 여유가 요만큼도 없었던 그 때와는 다르게 사랑하기에, 사랑하기 때문에 인내하고 참고 기다려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자고 말이다. 평생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험난한 과정을 지나와야 한다. 평생의 사랑이라고 선택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라 밝혀질 수도 있고, 눈이 가려져 제대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 순간적인 이끌림과 화학작용으로 인해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을 만큼 사랑의 길에는 온갖 유혹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 두려움의 껍질을 깨고 나와 사랑에게로 손을 내밀었다면, 그 이후에는 어떤 험난한 일이 닥쳐와도 조금은 더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가브리엘과 마르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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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 스도쿠 프리미어 - 이뉴 버전 스도쿠 고급
컨셉티스 지음 / 보누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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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 모 일간지에 특정한 요일에만 되면 스도쿠를 비롯한 여러 퍼즐이 나오는 간지가 있었다. 워낙에 그런 퍼즐 종류를 좋아하는지라 원본을 남기기 위해 복사해놓고 따로 철을 해서 모아둔 기억이 난다. 그 때 처음 알게 된 ‘스도쿠’는 일어로 된 이름조차 앙증맞게 느껴지면서 나를 집중력의 달인으로 만들어두곤 하였다. 그러나 이게 왠걸~ 그렇게 철해 놓았던 여러 스도쿠는 장시간을 매달려야 겨우 하나를 풀 정도로 너무 어려웠고, 동생과 같이 머리를 싸매고 풀어도 쉽사리 해결이 되지 않는 X파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얗게 빈 공간을 남겨둔 스도쿠 퍼즐 덕분에 어떻게든 퍼즐을 쉽게 풀 수 있는 비법을 찾아내겠다고 벼르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님께서 드디어 그런 비법을 찾아내 주셨다. 그러니까 일반 스도쿠는 가로, 세로 3×3 박스 안의 9개의 칸에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채워 넣는 게임이니까 중복없이 넣는 것이 관건인데, 지엽적으로 하나의 셀에 대해서만 볼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그 비법이었다. ‘로우’(가로줄)와 ‘컬럼’(세로줄)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하나의 숫자가 들어가면 안 되는 곳과 그곳말고는 들어갈 데가 없는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그 비법이다. 이렇게 말로 풀이하면 정말 간단해 보이지만 스도쿠를 푸는데는 절대 중요한 비법이었는데, 나는 여지껏 그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나중에 이런 책이 보누스에서 나왔다고 해서 본 것이 『멘사 스도쿠 프리미어』였는데, 역시나 여기에서도 이런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뒤늦게 깨달은 방법대로 신나게 풀었던 차였다.

 

그런데 보누스에서 또 다른 역작을 준비해주셨다. 스도쿠를 풀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단순한 규칙에 매몰되어 풀어내기에는 우리의 뇌가 너무 쉽게 싫증을 낸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바로 『체인 스도쿠 프리미어』다!!! 이 규칙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러니 내가 처음엔들 제대로 풀었을까보냐. 어쨌든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기존의 규칙인 같은 ‘로우’나 ‘컬럼’에 각 숫자가 한 번씩만 나와야 한다는 규칙에, 같은 ‘체인’ 안에서도 각 숫자가 한 번씩만 나와야 한다는 규칙을 추가한 것이다. 또한 서로 연결된 체인은 일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꼬여 있어 자칫 방심하다가는 전체 추론 과정에서 누락시킬 수 있다. 으이그~ 처음에 스도쿠를 접했을 때도 뻔해 보이는 숫자를 중복으로 써놓는다거나 한 숫자를 누락시키는 경우가 종종, 아니 왕왕 있었는데 체인 스도쿠는 이를 더 심화시키는 작용을 열심히 해냈다. 역시나 가장 처음에 있는 스도쿠부터 길이 막혔다!!! 체인 스도쿠를 처음 접하는 주제에 무슨 배짱으로 ‘프리미어’를 본 거얏~~! 하지만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밟아올라가는 것보다는 어려운 것을 아주 천천히 올라가는 방법을 즐기는 나로선 아마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퍼즐을 잘 풀지는 못해도 말이다. 단계별 전략을 보면 역시나 전체적인 개괄을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알려준다. 처음 풀어내는 선택이 중요한데 어느 곳을 먼저 공략하느냐에 따라서 빨리 해결하느냐, 늦게 해결하느냐, 심지어 (나 같이) 아예 포기하느냐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여기밖에는 할 수 없는 곳을 ‘로우’와 ‘컬럼’을 훑어서 미리 예상해놓고, 거기에다가 ‘체인’을 덧붙이면....! 드디어 하나를 해결해냈다!!!! 이렇게 하나를 해결해냈을 때의 성취감 때문에 끝까지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퍼즐 때문에 몇 밤을 샜는지... 앞으로는 더 재미있게 공략해볼 것이다. 재미있는 연휴가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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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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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한 글귀로도 많은 말을 전하는 언어의 마법사 페터 빅셀이란 작가는 중학생들의 교과서에서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제멋대로 사물을 지칭하는 이름을 바꾸곤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끝내 외롭게 죽었다는 내용을 담은 『책상은 책상이다』를 비롯해서 재미난 이야기가 참 많았다. 그런데 그 재미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조금 재미있다 싶은 거지, 깔깔깔 웃을 정도로 재미있다기보단 그저 뒤틀린 유머를 자아내는 정도일 뿐이다. 사실 난 에세이를 읽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서 현재까지 나온 한국 작가들의 에세이도 제대로 챙겨읽지 못했는데, 우리나라 작가도 아닌 그의 에세이를 읽게 된 것은 그대로 그의 뒤틀린 유머와 허를 찌르는 예리함이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던 탓이다. 이 에세이를 보니, 그의 국적이 스위스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스위스 와 독일 사람의 독특한 말하기 성향을 비교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있어서 전에 그의 책을 볼 땐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을 알기도 했다. 몰랐던 사실 하나 더는 그의 나이가 이제 일흔을 넘었고, 스위스의 교과서에 그의 글이 대대적으로 실릴 정도로 스위스의 국민 작가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마 읽기 전에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 재미가 없다고 매도해버리기에는 ‘재미’의 기준이 다르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잔잔하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의 짧은 이야기 모음을 생각했었는데, 그의 이야기는 평범한 것과는 정말 거리가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러니 평범함의 극치인 나로서는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자폐가 있어서 동네 기차 시간표를 외우는 사람에게서도, 동네 바보에게서도, 이미 죽은 친구에게서도 항상 무언가를 배우려고 드는 그의 자세야 훌륭하지만, 그 내용을 살짝 숨겨놓고 다짜고짜 찾으라고 하는 것 같아서 그다지 구미에 맞지 않았다. 분명 깊은 무언가가 있을 것인데 사색에 잠기지 못해 내가 지나쳐버린 것이 많은 것도 같고, 그 이야기를 담아낼 내 지적 수준의 용량이 터무니없이 적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것은 내겐 지나치게 사색적이고, 지나치게 모호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 중에서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에세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목은 다른 것으로 붙어있지만, 딱 기억나는 소재는 ‘개’와 ‘황소’이야기이다. 개를 무서워하는 작가가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개를 입양하게 되었는데, 하필 그 개는 자신을 사랑해서 자신을 졸졸 따라다녔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 개로 인해 개에 대한 공포심을 좀 줄여보려고 했더니만, 오히려 그 개가 주인을 닮아서 자신이 개인 줄을 모르고 낯선 개를 만나면 같이 무서워했단 이야기와 아주 어릴 적에 어마어마하게 무섭고 힘이 센 황소를 심부름으로 끌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그 황소는 자신만 다룰 수 있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호출당할 때마다 황소가 무서워 등골이 오싹했다는 이야기, 그것이 힘으로만 억누르려고 했던 다른 사람과 달리 처음부터 무력하게 보였던 어린 소년을 황소가 첫눈에 좋아하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제목은 전자가 「사과나무에 올라앉은 재즈 연주자」이고, 후자가 「그저 한 인간에 불과했던 황소」인데 너무나 맘에 드는 이야기였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라 확실히 마음을 끈다.

 

맹렬하진 않지만 무언가를 비판하는 글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내 주의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아서 미처 파악을 못했다. 뭔지 모르게 마음엔 들어서 그냥 포스트 잇을 붙여놓긴 했지만, 그것을 곰곰히 읽어봐야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말의 간결성을 중시하는 스위스 국민답게 그도 정말 말이 간결한데, 이보다 더 간결하면 글의 존재 가치가 없어질 정도로 상당히 어렵다. 다음 번에는 능동적으로 접근해봐야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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