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평점 :
아주 간단한 글귀로도 많은 말을 전하는 언어의 마법사 페터 빅셀이란 작가는 중학생들의 교과서에서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제멋대로 사물을 지칭하는 이름을 바꾸곤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끝내 외롭게 죽었다는 내용을 담은 『책상은 책상이다』를 비롯해서 재미난 이야기가 참 많았다. 그런데 그 재미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조금 재미있다 싶은 거지, 깔깔깔 웃을 정도로 재미있다기보단 그저 뒤틀린 유머를 자아내는 정도일 뿐이다. 사실 난 에세이를 읽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서 현재까지 나온 한국 작가들의 에세이도 제대로 챙겨읽지 못했는데, 우리나라 작가도 아닌 그의 에세이를 읽게 된 것은 그대로 그의 뒤틀린 유머와 허를 찌르는 예리함이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던 탓이다. 이 에세이를 보니, 그의 국적이 스위스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스위스 와 독일 사람의 독특한 말하기 성향을 비교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있어서 전에 그의 책을 볼 땐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을 알기도 했다. 몰랐던 사실 하나 더는 그의 나이가 이제 일흔을 넘었고, 스위스의 교과서에 그의 글이 대대적으로 실릴 정도로 스위스의 국민 작가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마 읽기 전에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 재미가 없다고 매도해버리기에는 ‘재미’의 기준이 다르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잔잔하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의 짧은 이야기 모음을 생각했었는데, 그의 이야기는 평범한 것과는 정말 거리가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러니 평범함의 극치인 나로서는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자폐가 있어서 동네 기차 시간표를 외우는 사람에게서도, 동네 바보에게서도, 이미 죽은 친구에게서도 항상 무언가를 배우려고 드는 그의 자세야 훌륭하지만, 그 내용을 살짝 숨겨놓고 다짜고짜 찾으라고 하는 것 같아서 그다지 구미에 맞지 않았다. 분명 깊은 무언가가 있을 것인데 사색에 잠기지 못해 내가 지나쳐버린 것이 많은 것도 같고, 그 이야기를 담아낼 내 지적 수준의 용량이 터무니없이 적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것은 내겐 지나치게 사색적이고, 지나치게 모호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 중에서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에세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목은 다른 것으로 붙어있지만, 딱 기억나는 소재는 ‘개’와 ‘황소’이야기이다. 개를 무서워하는 작가가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개를 입양하게 되었는데, 하필 그 개는 자신을 사랑해서 자신을 졸졸 따라다녔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 개로 인해 개에 대한 공포심을 좀 줄여보려고 했더니만, 오히려 그 개가 주인을 닮아서 자신이 개인 줄을 모르고 낯선 개를 만나면 같이 무서워했단 이야기와 아주 어릴 적에 어마어마하게 무섭고 힘이 센 황소를 심부름으로 끌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그 황소는 자신만 다룰 수 있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호출당할 때마다 황소가 무서워 등골이 오싹했다는 이야기, 그것이 힘으로만 억누르려고 했던 다른 사람과 달리 처음부터 무력하게 보였던 어린 소년을 황소가 첫눈에 좋아하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제목은 전자가 「사과나무에 올라앉은 재즈 연주자」이고, 후자가 「그저 한 인간에 불과했던 황소」인데 너무나 맘에 드는 이야기였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라 확실히 마음을 끈다.
맹렬하진 않지만 무언가를 비판하는 글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내 주의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아서 미처 파악을 못했다. 뭔지 모르게 마음엔 들어서 그냥 포스트 잇을 붙여놓긴 했지만, 그것을 곰곰히 읽어봐야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말의 간결성을 중시하는 스위스 국민답게 그도 정말 말이 간결한데, 이보다 더 간결하면 글의 존재 가치가 없어질 정도로 상당히 어렵다. 다음 번에는 능동적으로 접근해봐야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