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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문화 지형도 - 동시대 문화의 이해를 위한, 개정판 ㅣ 코디 최의 대중을 위한 문화 강의 1
코디 최 지음 / 안그라픽스 / 2010년 9월
평점 :
코디 최는 한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다가 1980년대 초에 미국으로 건너가 예술을 공부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특이한 이력 덕에 우리에게 즉, 미국화가 곧 서양화이며, 서양화가 곧 현대화라는 착각이 보편적으로 통용되어 있는 우리에게 확실한 20세기의 문화 지형도를 제시해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어줍잖게 원서를 번역만 했다면 20세기를 좌우했던 문화 흐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의 이 책은 모던, 포스트모던, 후기 식민지 문화, 미디어, 네트워크 혁명, 사이버리아로 이어지는 20세기의 문화 흐름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에서 기반을 쌓아올려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그 기세를 확장시킨 모더니티와 롤랑 바르트,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로 인해 해체되어진 모더니티까지 정말 한 번 정도는 들어본 유명인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들을 이렇게 한 눈에 조망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어떤 사조를 주도하고 있는지 몰랐는데 이렇게 조망해보니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꽤 이해하기가 쉬웠다. 이렇게 서평을 쓰려고 하니까 막막하긴 해도 읽고 있을 때는 정말 눈 앞에 20세기의 문화 흐름이 확 펼쳐지는 것 같아 눈이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우선 코디 최는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을 구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두 가지 용어가 혼용해서 쓰이기 때문에 그 개념이 혼란해지고 있다면서 생활 양식으로 ‘모더니티’를 말한다면 그것을 가능케하는 원동력이 바로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용어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모더니티와 미국의 모더니티, 그리고 한국의 모더니티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하는데, 유럽의 모더니티는 새로운 기계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삶의 질의 변화이고, 미국의 모더니티는 경제와 자본이 주축이 되어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을 말하는 것이라면, 한국의 모더니티는 미국적 모더니티를 여과없이 수용한 것으로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사조는 그 뿌리부터가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신에 의해 지음받았고, 인간의 삶의 목적이 신의 본질에 앞설 수 없다는 이전의 신본주의를 벗어나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시작되는 ‘이성주의’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임마누엘 칸트로 대변되는 계몽사상과 가장 중요한 칼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뮬론’(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이 어우러져 모더니즘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렇게 촉발된 모더니즘은 새롭고, 예외적이어야 하고, 엘리트 의식이 있어야 하며, 깊고 어려운 내용과, 세련되면서도 복작한 의미를 지녀야 한다.
산업사회로 진입하며 더불어 대량생산으로 시작된 폭발적인 사회 변혁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새롭고 도시 중심의 아방가르드적(혁명적인 예술 경향) 엘리트이기만 하면 일단 사람들에게 환호속에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그랬기에 파블로 피카소나 르 코르뷔지에 같은 명사가 모더니즘 그 자체로 오인되어 그들의 모습이나 행동이 유행처럼 확산되기도 했다. 그렇게 심호흡 크게 하고 숨 돌릴 만한 여유가 없이 빠듯하게 돌아갔던 시대였다. 이런 모더니즘은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도, 냉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많이 이용당해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아갔다. 하지만 흥할 때가 있으면 망할 때도 있는 법. 엄청나게 깊은 내용을 함의하고 있던 모더니즘은 가속화된 미디어의 발달로 값싼 대중문화에 영합하게 되어 그 가치가 변질되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 태동할 때가 도래한 것이었다. 이 때 모던의 근간을 이루었던 구조주의가 무너졌다고 주장하며 포스트모던의 도래를 외친 일련의 학자들이 등장한다. 앞서 이야기 했던, 롤랑 바르트,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소쉬르의 구조주의를 공격하며 모던의 해체를 시도했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을 계승한 예술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비평적 저항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고 또 하나는 상업적 보수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그런데 정신적인 근간이 단단하게 세워져있는 상태에서 사조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진 반짝 스타 만들기에 영합하다 보니까 포스트모더니즘 예술도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미국의 타락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사조를 한국 예술계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상적 기초나 깊은 철학적 사색이 없이 받아들인 사조는 당연히 그 거품이 오래 가지 못했다. 한국의 많은 예술가들이 근본이 없다는 평가를 듣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모던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시기에 포스트모던까지 들어와서 예술계를 휘저으니 그저 유행에만 따라가려는 족속이 생기지 않겠는가. 한국은 경제적인 원조를 미국에서 받아들이면서 문화의 모든 것을 모조리 미국의 것을 따라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반세기만에 뚝딱 무언가를 만드려고 하는데 그런 문제 아니생기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필자의 말처럼, 이런 과거의 모습을 인지하고 앞으로 21세기를 어떻게 일궈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면 이 책의 가치는 톡톡히 해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