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새로운 탐색
노자 지음, 김상우 엮음 / 부광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작고 아담한 책은 노자의 『도덕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휴대하기 편하게 정리해둔 책이다. 그러니 원문 『도덕경』을 다 실어둔 책이라기보다는 현대인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 그때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실질적인 지침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두면 좋겠다. 총 81장의 목차를 가지고 있는데 짧은 경구를 들어두고 그것의 해의를 달아두는 식으로 편집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거나 방대한 분량이 아니라 쉽게 읽고 적용해볼 수가 있다. 매번 책에 두세 권의 책을 넣어가지고 다니는데, 내용은 좋으나 가지고 다니면서 보기에는 불가능한 무게의 책도 더러 출간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겨우 287페이지 정도밖에는 되지 않고 종이의 질도 무겁지가 않아 훨씬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단순 움직임을 할 때, 즉 무의식적으로 걷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할 때는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한 구절을 곱씹어도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현대인들을 현혹하는 매체가 많다 보니 한 곳에 앉아 무언가를 곱씹을 만큼 생각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다시금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돌아가 제 시간을 찾을 만한 숨통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노자로 말할 것 같으면, 기원전 6세기의 사람으로 그 출신이 분명하지 않아 혹자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을 풀이한 김상우 선생은 그보다 더욱 파격적인 설을 제기한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이 노자, 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때까지 떠도는 여러 다른 성현들의 말을 인용하고 거기에 제 생각을 덧붙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 그것은 『도덕경』에 등장하는 ‘성인은 이러이러하게 한다’라거나 ‘예로부터 전해온~’이란 표현들로 수긍할 수 있는 가설이다. 하지만 더욱 파격적인 설은, 노자가 순수 중국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대 중동 지방은 4대 종교의 하나를 이루는 지금의 기독교의 근간이 되었던 유대교나 이슬람교가 태동했던 사상의 보고였다. 그랬기에 그 시절에도 실크 로드를 건너온 대상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여러 교훈들을 노자가 옮겨 적었을 것이나 아니면 그가 아예 외국인이지만 중국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해주기 위해 그저 중국말로 옮겨 적었을 것이라는 그의 가설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크나큰 가설이었다. 하지만 일면 수긍도 갈 만한 이야기일 수가 있는 것이, 어느 곳에 영웅이 혹은 천재가 뽕~ 하고 태어났다는 말보다는 여러 사상의 복합체로 하나의 진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내 머리로도 훨씬 신빙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노자가 중국인이든 아니든간에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책 중간에 그의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예를 하나 찾자면, 33장에(p. 128) <자신을 바로 알면 뜻을 이룬다>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김상우 선생의 가설도 무시 못하게 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그가 해석하는 『도덕경』도다른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 특별히 내가 노자에 대해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그가 그렇게 풀어 정리 해주어서 알게 되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노자의 글의 해석이 그 시대에 맞게 정리해주었다. 또한 노자가 공자의 사상을 폄하하거나 반박했다는 설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것은 공자가 나온 시대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노자가 등장했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던 것이다. 실은 위계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누구나 똑같다는 사상인 노자의 사상이 군자나 임금들에게 환영을 받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시대쯤이나 되어야 노자의 사상이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 지배체계를 공고히 해야 할 임금 입장에서는 노자의 사상은 아마도 금기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이후에 등장한 질서의 예를 논한 공자의 사상이 중국 전체를 지배하고 더 나아가서 동아시아의 전체 문화를 지배해온 것이 아닐까 한다. 서양에서 왕정이 타파되고 공화정이 생긴 시점에서도 왕정을 끝까지 고수해왔던 동양은 그러니까 공자의 사상에 빚지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노자의 사상이 먼저 각광을 받았다면 어떠했을까. 서양에 의해 침략당했던 동양의 역사는 사라지고 먼저 근대화를 이룩한 동양이 남아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역사 이야기에서 만약이라는 말은 없다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런 노자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야기, 한 번쯤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철학의 뿌리는 내게 있다 - 나는 책을 통해 여행을 한다
윤정은 지음 / 북포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솔직히 말해서 파란 색의 표지가 너무 예뻐서 선택한 책이다. 읽기 전부터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책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은 별로 없었다. 그저 그녀가 이번에는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정도 그녀의 서재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 일었을 뿐. 그녀가 처음 낸 책인 『20대 여자를 위한 자기 발전 노트』을 읽게 된 인연으로 왠지 그녀에 대해서는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좋아하는 것이나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했던 과거의 모습까지도 완전히 비슷했으니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그녀처럼 어릴 적부터 책과 친구 삼지는 못했다는 점이랄까. 아마 그 작지만 큰 차이 때문에 그녀는 ‘작가’란 타이틀을 가지게 된 것이고, 난 그 타이틀을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일게다. 그런데 이번 책에선 그 때 보여주었던 제 모습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해주었다. 별 볼일 없던 나도 이렇게 행복하게 꿈을 쫓으며 살아간다고, 당신도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해주듯이 말이다. 그래서 더 만만하게 느껴지는 ‘작가’다.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다면 박식하고 폭넓은 식견으로 기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평생 못 만나다 죽을 테니 별 걱정 안하고 만만하게 그녀의 책을 난도질해볼 것이다.

 

제일 심하게 난도질 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제일 짜증나게 해주는 그것, 바로 오타 작렬이다. 물론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오타라고 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사리 잡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기에 이렇게 마구 비판을 날리는 것이 왠지 뜨끔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책이란 공공적인 것에서 문맥이 어색해진다거나 오타가 많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 않은가. 물론 이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문맥이 이상하거나 틀린 글자가 있어도 내용을 다 아니까 머리에서 바로 이해가 되어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 책을 처음 보는, 호기심을 가지고 읽는 독자의 눈에 떡~ 하니 잡힐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내심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을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 오타를 그냥 출판했던 것에 대해서는 북포스 출판사의 문제이긴 하겠지만 일단 그녀의 책이니 이것은 분명히 그녀가 고쳐야 할 것이다. 제 이름 석자를 박고 내는 책인데, 그 정도의 책임이 지지 않고서야 낼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조금 독특한 것은 이 책에서는 흔히 살펴 볼 수 있는 오타보다는 문맥상으로 몇 문장이 잘못 끼어들어갔단 느낌이 드는 부분이 여러 군데가 있었다. 아마 편집상에 오류가 난 듯 싶은데, 어찌됐건 문제는 문제다.

 

또한 그녀의 이야기의 주요 골자는 책을 읽자는 내용이다. 제 자신이 책으로 인해 힘을 얻었고, 책으로 인해 돌파구를 찾았으니 책 노래를 부르는 것도 이해한다. 그리고 나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많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논지는 별로 수긍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왜 그런지 나도 의아하다. 내가 그녀에게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란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글은 아무리 잘 말해줘도 ‘잘’  썼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주장에도 그다지 동조해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이번에 출간된 책이 세 번째 책인데(원래는 다섯 번째 책일 게다), 왜 아마추어의 껍질을 못 벗어날까 싶을 정도로 어석어석한 느낌이 들달까. 마치 감자가 설 익혀서 아삭거리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는 그런 느낌이라고 말하면 얼추 맞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 심한 것일까. 혹자는 너무 비판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내가 그녀였다면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너무 글을 못 쓴다고. 그러니까 못 쓴다고 말하기엔 뭣 하지만 제 일기장에 끄적거리는 것이라고 하면 알맞을 만큼 딱 그렇게 쓴다. 우리가 감탄해마지 않을 만큼 문장력이 예술인 소설가가 아니기에 일말의 미안함은 있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내게 없는 능력을 동경하는 평범한 인간일 뿐인 것을. 그러니 그녀가 ‘작가’란 타이틀을 계속 가지고 싶다면 ‘내가 써도 그만큼은 쓰겠다’란 생각이 들 만큼은 안 썼으면 좋겠다. 물론 그녀가 들었던 비유나 기타 등등 만큼도 난 못 쓰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많은 서적들의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책을 읽을 때 인용된 책들을 포스트 잇에다가 써놓고 다음에 읽을 책 목록을 마련해두는데, 그녀는 이제까지 몇 권의 책을 읽었을까 궁금할 정도 그녀의 책에선 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읽어보기는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들의 책을 나열하면서 설명하는 것은 진짜 멋졌다. 또한 처음 출간했던 책에는 그녀의 이력이라곤 900통의 이력서를 냈다는 것 말고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 책에는 더 업그레이드 된 이력 - 한국독서문화연구소에서 소장을 맡고 있고, 동서식품 맥스웰의 향기에 문화칼럼을 기고하고, mbn <라디오, 책을 만나다>에도 출연했고, 한국경제TV에 <Star Books>에도 출연했다고, 책도 다섯 권째 출간했다 - 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녀가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그것은 배울 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맨땅에서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녀의 노력에는 책이 존재하니 이런 책을 위한 책을 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법도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세기 문화 지형도 - 동시대 문화의 이해를 위한, 개정판 코디 최의 대중을 위한 문화 강의 1
코디 최 지음 / 안그라픽스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디 최는 한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다가 1980년대 초에 미국으로 건너가 예술을 공부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특이한 이력 덕에 우리에게 즉, 미국화가 곧 서양화이며, 서양화가 곧 현대화라는 착각이 보편적으로 통용되어 있는 우리에게 확실한 20세기의 문화 지형도를 제시해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어줍잖게 원서를 번역만 했다면 20세기를 좌우했던 문화 흐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의 이 책은 모던, 포스트모던, 후기 식민지 문화, 미디어, 네트워크 혁명, 사이버리아로 이어지는 20세기의 문화 흐름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에서 기반을 쌓아올려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그 기세를 확장시킨 모더니티와 롤랑 바르트,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로 인해 해체되어진 모더니티까지 정말 한 번 정도는 들어본 유명인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들을 이렇게 한 눈에 조망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어떤 사조를 주도하고 있는지 몰랐는데 이렇게 조망해보니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꽤 이해하기가 쉬웠다. 이렇게 서평을 쓰려고 하니까 막막하긴 해도 읽고 있을 때는 정말 눈 앞에 20세기의 문화 흐름이 확 펼쳐지는 것 같아 눈이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우선 코디 최는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을 구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두 가지 용어가 혼용해서 쓰이기 때문에 그 개념이 혼란해지고 있다면서 생활 양식으로 ‘모더니티’를 말한다면 그것을 가능케하는 원동력이 바로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용어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모더니티와 미국의 모더니티, 그리고 한국의 모더니티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하는데, 유럽의 모더니티는 새로운 기계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삶의 질의 변화이고, 미국의 모더니티는 경제와 자본이 주축이 되어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을 말하는 것이라면, 한국의 모더니티는 미국적 모더니티를 여과없이 수용한 것으로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사조는 그 뿌리부터가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신에 의해 지음받았고,  인간의 삶의 목적이 신의 본질에 앞설 수 없다는 이전의 신본주의를 벗어나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시작되는 ‘이성주의’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임마누엘 칸트로 대변되는 계몽사상과 가장 중요한 칼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뮬론’(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이 어우러져 모더니즘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렇게 촉발된 모더니즘은 새롭고, 예외적이어야 하고, 엘리트 의식이 있어야 하며, 깊고 어려운 내용과, 세련되면서도 복작한 의미를 지녀야 한다.

 

산업사회로 진입하며 더불어 대량생산으로 시작된 폭발적인 사회 변혁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새롭고 도시 중심의 아방가르드적(혁명적인 예술 경향) 엘리트이기만 하면 일단 사람들에게 환호속에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그랬기에 파블로 피카소나 르 코르뷔지에 같은 명사가 모더니즘 그 자체로 오인되어 그들의 모습이나 행동이 유행처럼 확산되기도 했다. 그렇게 심호흡 크게 하고 숨 돌릴 만한 여유가 없이 빠듯하게 돌아갔던 시대였다. 이런 모더니즘은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도, 냉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많이 이용당해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아갔다. 하지만 흥할 때가 있으면 망할 때도 있는 법. 엄청나게 깊은 내용을 함의하고 있던 모더니즘은 가속화된 미디어의 발달로 값싼 대중문화에 영합하게 되어 그 가치가 변질되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 태동할 때가 도래한 것이었다. 이 때 모던의 근간을 이루었던 구조주의가 무너졌다고 주장하며 포스트모던의 도래를 외친 일련의 학자들이 등장한다. 앞서 이야기 했던, 롤랑 바르트,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소쉬르의 구조주의를 공격하며 모던의 해체를 시도했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을 계승한 예술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비평적 저항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고 또 하나는 상업적 보수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그런데 정신적인 근간이 단단하게 세워져있는 상태에서 사조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진 반짝 스타 만들기에 영합하다 보니까 포스트모더니즘 예술도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미국의 타락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사조를 한국 예술계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상적 기초나 깊은 철학적 사색이 없이 받아들인 사조는 당연히 그 거품이 오래 가지 못했다. 한국의 많은 예술가들이 근본이 없다는 평가를 듣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모던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시기에 포스트모던까지 들어와서 예술계를 휘저으니 그저 유행에만 따라가려는 족속이 생기지 않겠는가. 한국은 경제적인 원조를 미국에서 받아들이면서 문화의 모든 것을 모조리 미국의 것을 따라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반세기만에 뚝딱 무언가를 만드려고 하는데 그런 문제 아니생기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필자의 말처럼, 이런 과거의 모습을 인지하고 앞으로 21세기를 어떻게 일궈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면 이 책의 가치는 톡톡히 해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논쟁 / 사랑으로 세련되어진 아를르캥
마리보 지음, 유진원 외 옮김 / 꿈꾸는고치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가로 13cm×세로 18cm 정도의 크기의 이 작은 문고본은 18세기 프랑스 문학만을 주로 내는지 알려지지 않아 상당히 신선한 출판사의 책이었다. 익히 알고 있었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혹은 펭귄북 시리즈가 아닌 이런 문고본 형태로 등장한 세계문학은 처음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도 18세기의 잘 알려지지 않은 (혹은 나만 모르는) 프랑스 문학을 소개해준다니, 이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런 이유로도 무척 설레이게 했다. 더불어 저 깊이 묻어두느라 힘들었던 소장 욕구도 불끈 솟아오르게도 했고 말이다. 크기면이나 가격면이나 아주 착한 성격을 띠고 있어서 언제든지 모으려고만 들면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것 같은 아우라를 뽐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보라하는 이는 18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36편의 희곡작품과 7편의 소설을 창작했고 당시 신문에 많은 기사를 집필했을 정도로 대단한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다. 물론 나는 이제껏 몰랐지만. 하기야 영문학도 아니고 프랑스 문학을 전공자도 아닌 내가 알리가 없기는 하다만. 어쨌거나 그의 작품 중 『논쟁』은 국내에서는 2009년에 처음 <극단 서울공장>을 통해 상연되었고 올해 10월 7일부터 다시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란다. 총 68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주 짧은 작품이지만, 그 주제는 21세기에 이르는 현재까지도 통용될 만한 내용이니 연극으로 봐도 확실히 재미있을 것 같다.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어떤 주제이건 그것의 기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했던 시기였다. 그랬기에 “남성과 여성 중에 먼저 변심을 하는 존재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도 그렇게 논리적이고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한 왕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이 주제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자, 19년 전에 왕자의 아버지가 시작한 실험을 보여주면서 자기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주요 줄거리이다. 바깥 세상과 접촉하지 못한 세 쌍의 남녀를 준비해놓고 그들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나면, 그들의 마음이 변하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관찰하면서 서로 생각을 주고 받는데,  돌아가는 상황과 전반적인 분위기가 왠지 여성에게 불리해보였다. 실은 나도 누가 먼저 변심하는지에 대해 딱히 내세울 근거나 주장이 없어 그저 보기만 하고 있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왕자와 논쟁하는 에르미안느는 변심이 뻔뻔스러운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으니 천성적으로 수줍음이 많은 여자들은 절대 변심을 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녀의 주장을 들어보니 그것도 일말의 동의는 되었지만,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능글능글 웃으면서 에르미안느의 분노를 쉽게 가라앉히며 결국은 제 주장을 관철시키는 왕자가 참으로 더 대단해보였기에.

 

더 대단했던 것은 에르미안느에게 사랑한다고 하는 왕자의 마음도 그녀의 주장대로 변심할 수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는 부분이었다. 만약 에르미안느가 왕자의 마음을 받아준다면 나중에 왕자가 그녀에게 싫증이 났을 때 결국 그녀는 곤경에 처하겠다는, 이 글의 주제와는 다른 상상만 들었다. 더불어 아마도 저 왕자는 바람둥이일 거라고, 말을 너무 제 주장에 맞게 잘 갖다 붙인다고까지 확장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확실히 희곡은 줄거리를 알려주는 것보다 각각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을 읽으면서 상상하는 데 그 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연극으로까지 관람하게 되면 더할 나위가 없고 말이다. 정말 기회가 되면 이 작품은 연극으로 보고 싶은 작품이다. 짧은 단편을 어떻게 연극으로 옮겼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두번 째 작품인 『사랑으로 세련되어진 아를르캥』은 18세기 초 극작가 마리보의 이름을 처음 알려준 작품으로 국내에 최초로 번역된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게으르고 우둔하고 멍청했던 남자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민첩하고 영리하고 세련되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별다른 등장인물도 등장하지 않아서 금방 읽히는데,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 외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사랑은 위대한 힘을 품고 있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굴욕의 역사 100년 고려사 5부작 100년 시리즈 1
이수광 지음 / 드림노블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려사 5부작 100년 시리즈’로 기획된 첫 책은 바로 『굴욕의 역사 100년』, 바로 이 책이다. 몽골제국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던 굴욕의 역사 100년을 재조명해주는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을 담고 있다. 충분히 덮어버리고 싶을 만큼 굴욕적이고, 원에게 맹종적이었던 우리 고려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말이 없고, 아무리 수치스러운 역사일지라도 우리에겐 꼭 살펴봐야 할 중요한 사실임을 기억할 때,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빛이 날 것이다.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처럼, 일제 강점기 때에는 불세출의 영웅이 도처에서 독립운동을 지휘하곤 했었는데, 이 때는 눈 씻고 찾아봐도 영웅은커녕 원에게 빌붙어 고려왕까지 모함하는 간신들만 득실거렸단 사실이다. 아마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고려가 원에게 간섭을 받았던 때는 그 유명한 무신집권이 장기간 진행되었을 때였다. 그래서 왕은 있으나 유명무실한 고종(제23대 왕)부터 겨우 몽골의 도움으로 왕권을 찾았던 원종, 그 이후 몽골간섭기를 상징하는 ‘충’자를 붙인 왕들이 여섯 등장한다. 몽골간섭기의 끝을 마무리짓는 공민왕을 끝으로 이 책의 왕이야기가 끝이 나는데, 몽골에게 간섭당하는 와중에도 각기 개성있는 모습의 왕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보통 그렇게 주권을 상실한 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울분에 차서 제 나라의 힘을 되찾을 궁리만 하는 왕이 있을 것만 같은데 실상은 전혀 아니었던 것을 볼 때, 정말 몽골이 머리를 잘 쓴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릴 때 원나라에서 볼모로 잡혀 살다가 왕위에 올라서야 겨우 고려에 온 왕에게 고려가 어떻게 제 나라란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말이다. 자주의식이란 그 나라에서 살고, 그 나라 말을 쓸 때야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일제 강점기 때는 우리의 영웅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고, 고려 원간섭기 때는 우리를 구원할 영웅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선의 역사에 더 익숙하다보니, 이 책에 등장한 여러 왕들의 이름도 상당히 낯설긴 하지만 그보다 더 낯선 것은 그들의 성격과 행동거지였다. 사람은 너무나 바르고 좋으나 왕으로서의 됨됨이가 되먹지 못한 왕이 있는가 하면, 원나라 관리가 봐도 너무 참혹한 악행을 저질러 어딜 가도 망나니란 소리밖에 들을 수 없는 왕도 나타나니, 참으로 천차만별이었다. 어쩜, 왕이라고 저럴 수가 있는 것인지... 처음에는 나라르 위한 마음이 있었지만 후에는 주색에만 빠져 나라 살림을 돌보지 않은 충숙왕이나 처음에는 충성을 바쳐 원나라에 복종했지만 나중에는 제 안위만 보듬은 충렬왕까지 제각각 다양한 모양새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 볼모로 원나라에서 나고 자라 드넓은 평야와 초원을 보고 자란 고려인이 작고 협곡이 많은 좁은 땅에서 정치를 하려니 공감도 되지 않을 뿐더러 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신들이 있기를 하나 하나같이 소인배나 간신배들만 득실거리는 조정에서는 진짜 불가능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뭐, 가만 있어도 자기는 제 배 부르고 등 따시니 힘들게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백성이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원나라가 고려보다 훨씬 풍성하고 강한 나라였을테니 고려에 오지 않고 싶어했던 충선왕이 어쩜 내 마음과도 같던지. 아마 문인의 성향이 컸던 그로서는 바른 글, 바른 뜻을 품은 사람들만 보고 싶었던 것도 과히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다. 만약 왕이란 신분이 아니였더면!!

 

그러니 이렇게 오합지졸 같은 여섯 왕이 나라를 망쳐놓는 동안, 우리 백성들은 어떤 꼴을 당했을지 짐작이나 갈 것인지. 정말 끔찍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원에서 포로로 잡은 송나라 군인들에게 신부감을 구해준다고 과부나 처녀들을 잡아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완전히 남자들이 여자들을 성노예로 파는 경우였던 것이다. 나라가 약하면 국민들이 보호받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 가장 약한 여자들이 그렇게나 끝없는 희생물이 되었다. 고려의 굴욕의 역사는 아마도 여성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살아남은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왜구를 정벌한다고 모아두었다가 폭풍우로 모조리 휩쓸려간 우리 장병도 물론이고. 이래저래 고위간부들만 배부른 꼴이었다. 어딜가나 매국노는 득세하는 법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바였다. 무신정권이 없었으면 이런 일은 애초부터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하고 정말 많이 아쉬웠던 생각이 들었다. 아, 역사에서 만약이란 없다지만, 정말 만약에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