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 사랑으로 세련되어진 아를르캥
마리보 지음, 유진원 외 옮김 / 꿈꾸는고치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가로 13cm×세로 18cm 정도의 크기의 이 작은 문고본은 18세기 프랑스 문학만을 주로 내는지 알려지지 않아 상당히 신선한 출판사의 책이었다. 익히 알고 있었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혹은 펭귄북 시리즈가 아닌 이런 문고본 형태로 등장한 세계문학은 처음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도 18세기의 잘 알려지지 않은 (혹은 나만 모르는) 프랑스 문학을 소개해준다니, 이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런 이유로도 무척 설레이게 했다. 더불어 저 깊이 묻어두느라 힘들었던 소장 욕구도 불끈 솟아오르게도 했고 말이다. 크기면이나 가격면이나 아주 착한 성격을 띠고 있어서 언제든지 모으려고만 들면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것 같은 아우라를 뽐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보라하는 이는 18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36편의 희곡작품과 7편의 소설을 창작했고 당시 신문에 많은 기사를 집필했을 정도로 대단한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다. 물론 나는 이제껏 몰랐지만. 하기야 영문학도 아니고 프랑스 문학을 전공자도 아닌 내가 알리가 없기는 하다만. 어쨌거나 그의 작품 중 『논쟁』은 국내에서는 2009년에 처음 <극단 서울공장>을 통해 상연되었고 올해 10월 7일부터 다시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란다. 총 68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주 짧은 작품이지만, 그 주제는 21세기에 이르는 현재까지도 통용될 만한 내용이니 연극으로 봐도 확실히 재미있을 것 같다.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어떤 주제이건 그것의 기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했던 시기였다. 그랬기에 “남성과 여성 중에 먼저 변심을 하는 존재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도 그렇게 논리적이고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한 왕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이 주제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자, 19년 전에 왕자의 아버지가 시작한 실험을 보여주면서 자기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주요 줄거리이다. 바깥 세상과 접촉하지 못한 세 쌍의 남녀를 준비해놓고 그들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나면, 그들의 마음이 변하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관찰하면서 서로 생각을 주고 받는데,  돌아가는 상황과 전반적인 분위기가 왠지 여성에게 불리해보였다. 실은 나도 누가 먼저 변심하는지에 대해 딱히 내세울 근거나 주장이 없어 그저 보기만 하고 있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왕자와 논쟁하는 에르미안느는 변심이 뻔뻔스러운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으니 천성적으로 수줍음이 많은 여자들은 절대 변심을 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녀의 주장을 들어보니 그것도 일말의 동의는 되었지만,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능글능글 웃으면서 에르미안느의 분노를 쉽게 가라앉히며 결국은 제 주장을 관철시키는 왕자가 참으로 더 대단해보였기에.

 

더 대단했던 것은 에르미안느에게 사랑한다고 하는 왕자의 마음도 그녀의 주장대로 변심할 수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는 부분이었다. 만약 에르미안느가 왕자의 마음을 받아준다면 나중에 왕자가 그녀에게 싫증이 났을 때 결국 그녀는 곤경에 처하겠다는, 이 글의 주제와는 다른 상상만 들었다. 더불어 아마도 저 왕자는 바람둥이일 거라고, 말을 너무 제 주장에 맞게 잘 갖다 붙인다고까지 확장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확실히 희곡은 줄거리를 알려주는 것보다 각각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을 읽으면서 상상하는 데 그 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연극으로까지 관람하게 되면 더할 나위가 없고 말이다. 정말 기회가 되면 이 작품은 연극으로 보고 싶은 작품이다. 짧은 단편을 어떻게 연극으로 옮겼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두번 째 작품인 『사랑으로 세련되어진 아를르캥』은 18세기 초 극작가 마리보의 이름을 처음 알려준 작품으로 국내에 최초로 번역된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게으르고 우둔하고 멍청했던 남자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민첩하고 영리하고 세련되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별다른 등장인물도 등장하지 않아서 금방 읽히는데,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 외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사랑은 위대한 힘을 품고 있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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