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섬 - 여자 사도바울 문준경 전도사의 고무신행전
임병진.유승준 지음 / 가나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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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독교도들은 가장 큰 시련 둘을 견뎌야 했다. 그 첫 번째는 일제 강점기라고 한다면, 두 번째가 1950년에 일어난 한국 전쟁이다. 전자는 타민족의 강압에 어려움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후자는 우리 민족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더욱 참혹하고 아픈 일이다. 그런데 이런 시련 중에 크나큰 스승이 순교하시게 되었다. 그 분의 이름은 바로 문준경 전도사님!! 사실은 이 책을 보기 전까지 그런 분이 이 땅에 존재하셨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큰 믿음의 거목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그것도 여자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풍어제니, 고사니, 굿이니 하는 것이 성황할 수 밖에 없는 어촌에 교회만 굳건하게 세우고 섬 주민의 90% 이상을 기독교인으로 세우신 분이셨다는 사실도 몰랐다. 기독교가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된다는 진리를 아무리 품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도구가 어떠한지에 따라 그 전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도자에게 복음이 살아숨쉬지 않는다면 아무리 전해도 조롱밖에는 얻지 못할 수 있다. 마치 소돔에서 롯이 사위들에게 전했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랬기에 진리를 전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었던 섬 증도에서 문 전도사님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복음이 풍성하게 전해졌던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열매가 30배, 60배, 100배나 나타나는 것처럼 문준경 전도사님께서는 그렇게 제 생명을 바치셨던 것이다. 이야기로만 들었을 때는 쉽사리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하셨으니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외지 사람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미신에 의존하는 섬에서 그런 복음화가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전도를 어려워하는 내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일임을 알게 되었다.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기근에서 건지도록 하기 위해서 얼마나 광야의 길을 참았을까?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서 진짜로 이삭을 얻기까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지도자가 되도록 얼마나 단련되었어야 했을까?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광야에서 떠돌아야 했을까? 적게는 십수 년이었고 많게는 사십 년을 걸려서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그릇이 되었다, 믿음의 선조들조차!! 그러니 우리도 그 정도의 시간을 인내하고 단련되어야 겨우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준경 전도사님도 그러하셨다. 꽃다운 나이 열일곱 나이에 시집을 와서 생과부로 20년을 지내고 나서 예수님을 만났으니 그런 인고의 시간들이 하나님께서 문 전도사님을 단련시키신 광야의 시간이 아니였을까 싶다.

 

요즘 들어 시련과 연단에 대해 배우는 기회가 있었는데, 인간에게 이런 것들이 있지 않고서는 결단코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워낙 교만한 지라 자신이 붙들을 수 있는 것이 모두 제거된 이후에라야 두손 들어 항복하고 주께 나가는 것이다. 문준경 전도사님께서 증도로 시집와서 남편이 딴집 차리느라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때, 나는 그 생각을 했다. 아, 대단한 분이시라길래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이분께서도 이런 연단의 시기가 있으셨구나! 하고. 그러면서 다짐할 수 있었다. 나도 이런 연단과 시련을 소망해야겠다고. 내가 대단해서 이름을 드높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기만 위해서, 온전히 복음만을 담기 위해 시련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것을 견디자고!! 멋 모르고 한창 은혜 받을 때는 나를 써달라고, 왜 나는 안 써주시느냐고 떼를 쓴 적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기 위한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기껏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런 일로 나를 내세워 하나님께 불순종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큰 죄악이 아닌가. 그렇게해서 나를 드러낼 정도의 그릇밖에 안 된다면 아예 쓰시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 그래서 내 안의 모든 불순물을 다 태워 버리고 나서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런 인고의 시간을 겪으면서 증도를 벗어나 목포에서 삯바느질로 연명할 때, 전도를 받고 이성봉 목사님께서 개척하신 교회를 나가게 된다. 그것이 문 전도사님이 한나님께 쓰임 받는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여자들은 글자를 아는 사람이 1000명 중에 2명 꼴이었을 정도로 문맹률이 높았고, 결혼하면 소나 돼지처럼 모든 가사만 전담하게 되어서 희망 없는 삶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 선교사들이 접근할 수 없는 여자들은 과부들이 따로 복음을 배워 전도부인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성서학원이었다. 문 전도사님도 평생을 복음만 전하고 싶어서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였다. 우선 글자는 항상 문 전도사님을 예뻐하셨던 시아버지께서 가르쳐주셨던 것이고, 결혼한 여자들은 안 받는 학원에서는 생과부임을 증명하는 이성봉 전도사님의 추천서만 가지고 상경하여 겨우 입학하셨단다. 학기 중에는 공부하고 방학 때는 고향인 섬에 내려가 전도를 하셨는데 처음 간 곳이 남편이 첩을 얻어 살고 있는 임자도였다.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면 제일 가기 싫은 곳일 텐데 그곳에 들어가 핍박하는 남편의 위협에도 묵묵히 제 일만 하시고 세운 교회가 진리교회였다. 그 곳은 1950년 문 전도사님과 함께 이판일 장로님 등 48명이 순교하신 곳이 되었다. 그래서 현재 진리교회는 고 김수근 선생이 설계비를 받지 않고 지은 아름다운 예배당이 있단다. 고 김수근 선생은 대한 민국 현대 건축에서 전설적인 존재이셨다고~.

 

진리교회가 안정되자 문 전도사님은 시집와서 20년 동안 사신 증도에 와서 전도하셨는데, 가장 먼저 믿으신 분이 바로 큰 시숙 정영범이셨단다. 항상 제수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던 그 분은 전도한 그 자리에서 바로 믿기로 결심하고 모든 우상들을 다 태우셨다고 한다. 그래서 세워진 교회가 증동리교회인데, 이것도 다 큰 시숙이 텃밭을 내놓고 돈과 건축자재까지 다 마련해놓았단다. 남편도 없이 자식도 없이 모든 주민들을 제 피붙이처럼 여기고 눈물로 섬겨서 이 증도에만도 11개의 교회가 생겼다. 바다, 바위, 나무 할 것없이 다 귀신을 믿었던 사람들이 다 문준경 전도사님의 헌신 때문에 다 믿는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모두 문 전도사님의 사랑에 감동해버린 것이다. 일례를 들자면, 한 번은 증도에 장티부스가 돌아서 사람들이 너나 없이 죽어가는데 시체를 만지면 병에 걸리니까 시체도 치우지 못하자 문 전도사님이 시체를 치워 장례를 치르고 치료도 해주는데 한 번도 장티부스에 걸리지 않으니 사람들이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먹을 것이 없으면 먹을 것으로 전도하고, 아프면 치료하며 전도하고, 아기를 낳을 때가 되면 아기를 받아주고, 봉사하며 심부름 하며 전도하니 마치 예수님 같지 않은가. 복음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이 아니였다.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예수님 같지 않아서 믿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그 다음에 세운 교회가 대초리에 있는 대초리교회였다. 다른 곳보다 더 폐쇄적인 이곳은 전도할 때마다 불량배가 술 먹고 나타나 훼방을 두고 일쑤였는데,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믿게 되니까 이 곳에도 교회가 생겼단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압해도에서 흑산도까지 신안에 있는 섬의 이름을 다 부르면서 기도를 하는 문 전도사님의 사랑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믿기 시작한 이야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한 번은 조그만 나룻배가 풍랑에 뒤집혀질 위기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문 전도사님이 기도를 하시니까 풍랑이 가라앉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믿게 된 때도 있었고, 다른 사람이 믿으라고 했을 때는 안 믿어도 문 전도사님이 오셔서 계시기만 해도 사람들이 다 교회에 갈 정도로 살아있는 복음이셨단다. 그랬던 그 분이 공산당에 의해 순교를 하고 그 이후에 그것을 보복하지 않았던 이인재 원로 목사님의 용서로 인해 문 전도사님과 이인재 원로 목사님의 일가족을 다 죽인 공산당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단다. 만약 이인재 원로 목사님이 보복하길 원했다면 진리교회는 부흥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일이,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기적이 임자도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한 알의 밀알이 죽으니까 그 자리에는 풍성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십자가의 도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를 담은 내가 부족해서 항상 전도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구나! 내가 죽고 예수가 살면 되는 일인데, 그것이 안되어 항상 실패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복음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복음,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내가 다른 것을 더하지 말고, 복음 그 자체에 집중한다면 우리에게 없을 것 같았던 복음의 그 능력이, 그 기적이 나타날 것이라 분명히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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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을 고백하다 백제를 이끌어간 지도자들의 재발견 1
이희진 지음 / 가람기획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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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럴 듯한 표지를 가진 책은, 소설 같아 보이지만 결단코 소설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 중 숨겨진 것을 유추해서 면밀하게 근거를 들어 사실을 밝혀놓은 책이라고나 할까. 그저 역사서라고 하기엔 미진한 설명이지만 어쨌든 역사서이다. 그런데 서문을 보면 이 책은 몇 년 전에 나온 책의 업그레이드 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혀놓고서도 시류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보완을 해버려서 전혀 다른 책이 나왔다고도 말하고 있다. 보통 책을 읽기 전에 꼭 읽게 되는 서문을 보면 작가가 쓴 책의 방향을 알 수 있기도 하고, 책을 쓴 작가의 의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책에 대해 애착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을 보니까 그 전에 나온 책이 도대체 무엇이며, 그 책에서의 미진한 점은 무엇이었고, 작가는 과연 어떤 부분을 더 보강하고 싶었는데, 어떤 출판계의 사정 때문에 어떤 식으로 보완을 했는지가 궁금해졌다. 이거,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 격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근초고왕에 대한 것만 알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책의 내용까지도 바꿔버리는 출판계의 사정까지도 신경쓰게 만드는 놀라운 서문이었다. 책의 내용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서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도, 내겐 책에 대한 흥미를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해주었다. 저자의 고뇌가 물씬 묻어나오는 서문이기에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썼으며, 밝혀지지 않은 혹은 논란이 일고 있는 고대사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책이 나오건 이 저자의 책이라면 꼭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만큼 신뢰감을 주는 서문이랄까.

 

서문이 어찌됐든 이 책은 우리 고대사 중 가장 드러나지 않은 역사인 백제를 알고자 마련한 책이다. 특히 가장 주목받아야 할 근초고왕과 성왕의 개인적인 자질이나 능력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삼국 중 신라가 대세를 이루었으니 신라에게 득이 되지 않는 역사는 굽히기 마련이라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분명히 드러나야 할 관산성 전투만 해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저자의 말로는 백제의 역사를 곡해하지 않은 그 이후의 나라는 조선 뿐이라고 하니까 통일 신라나 고려, 대한제국 때까지도 백제의 역사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풍조는 계속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일본의 식민사관이 들어온 이후부터는 완전히 그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백제의 역사를 조명하기란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저자처럼 일반적인 인간사에 바탕을 두어 고대사를 살펴보고 판별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특히 『일본서기』는 처음부터 거짓 기록이 판치고 있어 그것을 감안하고 보는 눈을 키우지 않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못하고 말아햐 하니,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렇게 고대사부터 왜곡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본을 보면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진실을 가리는 역사관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그런 썩은 마음가짐은 애초부터 틀린 것이다. 하여튼 그런 오류투성이 사료를 가지고 제대로 된 역사를 추출해내려면 상식선에서부터 생각하내는 법을 키워야 할 것이다. 예전부터 나는 삼국의 문화를 보면 고구려는 호방하고 신라는 후에 생겨나는 조선의 문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박함이 있고 백제는 일본의 문화 원류가 되는 세련됨이 있다고 여겼었다. 일본의 세련된 문화가 너무나 아름다워 항상 매혹적으로 생각했던 나로선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던 것이 상당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백제의 문화가 어떻게 일본에게 전해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그 전모가 밝혀지는 내용이 담겨있어 이 책이 술술 잘 읽혔다.

 

전반적으로 책의 구성이 간단하고 어렵지 않게 전달해주고 있어서 읽기에는 부담이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수법을 쓰는 읽지 않고선 못 배기게 하는 책이기도 한다. 또한 이 책은 일반적으로 백제에게 낮은 평가를 내리는 방식을 먼저 설명하고 그 이후에 저자 자신이 밝혀낸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도 충분히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백제의 두 왕을 면밀히 살피기 위해 마련된 책이니, 전반적인 백제의 역사나 흥망성쇠는 다 나타나지 않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근초고왕과 성왕의 능력을 살펴볼 수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는 중앙집권 기틀을 갖춘 왕으로 3세기 고이왕이 등장하고 4세기에 백제의 전성기를 연 근초고왕이 있고 6세기에 중흥기를 연 성왕으로만 간략하게 한,두 줄이 등장하기 때문에 많이 외울 것도 이해할 것도 없었는데 최근들어 발굴되는 여러 유적들도 등장하고 있어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근초고왕이 등장한 시기는 4세기였는데 이 때가 우리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그 전에는 각기 나라마다 중앙집권체제를 만들기 위해 다른 나라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던 시기였다면 4세기부터는 다른 나라의 정세까지도 파악해야 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특히 자타가 공인하는 강자로 고구려가 떠오르기 시작한 시기가 4세기였기에 북쪽에는 고구려가 있고 남쪽에 실세를 잡고 있는 것이 백제란 것이다. 백제-가야-왜로 연결되는 세력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대항 세력이 왜이냐 백제이냐를 생각해볼 때, 당연히 사료상 백제가 맞다. 아무리 허구가 많다지만 실제 있었던 일까지 지울리는 없지 않은가. 『일본서기』에도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으니 둘 사이의 관계는 없다고 봐야 맞으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많이 등장하는 백제와 고구려의 대립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제가 강대국 고구려를 대항하기 위해 가야와 왜, 그리고 신라까지 끌어들인 작전은 상당히 교묘하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가야와 왜, 왜와 신라, 신라와 가야의 국제 정세까지 다 읽을 수 있어야 했다. 우선 왜는 신라에게 호시탐탐 노략질을 일삼았지만 그것이 신라에게 큰 해를 줄 정도가 아니였다는 것, 그리고 신라에서는 왜를 한 나라 취급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고, 왜 입장에서는 신라가 아니더라도 중국과의 교역을 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해서 신라를 끊임없이 약탈했고 가야와는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 가야도 신라와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래서 백제는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가야와 왜를 포섭하기로 했는데, 쓸데 없이 힘을 쓰지 않고 그들을 회유하는 방법으로 동맹체를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신라의 지배권에서 벗어나 가야들의 연맹을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왜에게는 중국과의 교역을 위한 통로를 만들어준다는 이권을 보장해주는 방법으로 임나를 만든 것이다. 왜에게는 일본부를 만들어주고, 가야에게는 임나를 만들어서 백제 통제 하에 그들만의 연합을 형성한 것이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4세기의 남쪽 세력을 장악하기 위한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주면서 자신의 뜻대로 그들을 조종할 수 있는 방법, 4세기밖에 되지 않은 그 때부터 백제는 무력 없이 다른 나라를 움직이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그것의 중심에 근초고왕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에 신라가 고구려와 동맹을 맺게 되었고, 나중에 고구려의 임나가라 정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 다음에는 성왕이 나설 차례인데, 먼저 고구려와 파토가 난 신라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와 대항하고, 예전에 만들어놓은 가야-왜 동맹을 언급하며 신라를 견제하게 된다. 가야나 왜 입장에서는 백제에게 동조하긴 싫지만 그를 무시할 수 없어 따라가는 척했다가 순간적으로 실수해서 완전히 백제에게 꼬리 잡히게 되었다. 그 후에 신라와 관산성 전투를 하게 되었다.

 

고구려와 한강 유역을 다투다가 신라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 성왕은 신중하게 계산했다. 자신이 신라를 쳐들어가면 고구려가 내려올 것을 알고 배신을 당했지만 바로 고구려를 쳐들어갔기 때문인데, 이것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면밀하게 계획을 짠 지도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고구려에게 한 방 먹인 다음, 관산성에 쳐들어가는데 거기서 신라에게 대승해버린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신라가 백제를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아니란다. 김유신의 할아버지가 있는 부대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다 이겨놓은 관산성 터에 가는 성왕을 매복해서 생포해놓고 처형했던 것이라고 하니까 다 잡은 고기를 아깝게 놓친 격이 되었다. 승리에 취해 신중하지 못했던 행동으로 승리를 신라에게 내주어야 했으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그 일 때문에 앞으로의 역사에서 백제의 이름이 없어지게 되었지만, 만약 성왕이 그 때 매복으로 죽지 않았다면 신라에게 큰 피해를 준 관산성 전투에서 크게 이겨 결국 신라를 무너뜨렸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근초고왕의 탁월한 외교 능력과 성왕의 감정을 누르는 치밀한 전략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역사에는 만약이란 없으니 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대단한 지도력까지 잊어버리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일 테니까 말이다. 졌으니까 면밀하게 파악하지 않았던 과거의 실수를 되돌리는 이런 작업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란 그 자체로 배울 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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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어떤 화가일까? 행복한 미술학교 1
브리타 벵케 지음, 이미옥 옮김 / 북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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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서각의 임프린트인 북비 출판사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화가 시리즈를 내놓았다. 〈행복한 미술학교〉라는 시리즈인데, 제일 먼저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를 소개한다. 총 40페이지 분량이여서 부담스럽지 않고 글보다 개성넘치는 여러 그림과 그를 찍은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접하기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겠다. 특히나 미술과 같이 창의적인 영역의 비중이 더 큰 분야에서는 공부하듯이 많은 지식으로 접하기 보다는 이렇게 그림이나 사진으로 상상을 발휘해보듯이 접하는 것이 훨씬 접근이 용이하겠다.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 창의적인 분야에서조차 암기 능력을 평가하는 수업 방식과 시험 방식일 텐데, 그런 부분에서 전면적으로 상반되게 구성된 책이다. 누구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세계적인 화가를 소개하는 첫 장면부터가 뛰어난 것이, 대단한 작품이나 그의 업적 등을 나열해놓지 않고 그가 손자, 손녀로 보이는 아들, 딸과 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진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초등학생보다도 못 그리는데 어떻게 그가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을까 의문을 품는 아이들에게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을 시도한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가 무엇을 했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어떤 것을 고민했는지를... 첫 장의 말미에 이 책에서 어떤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예고를 충분히 해주고 있어서 아이들이 스스로 알게 유도하고 있다.

 

큰 아들 파울로를 그린 고전적으로 잘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서 파울로의 발과 의자의 다리는 색칠이 되어있지 않은 미완성적인 부분을 꼬집어준다. 정말로 피카소가 일부러 그리지 않은 것 같냐고~. 그리고 나서 등장하는 「세 명의 악사」는 정말로 그림 같지 않게 도형 몇 개가 인간의 형상처럼 서 있고 몇 가지 악기처럼 보이는 것을 들고 있는 그림인데, 이것은 종이 조각을 오려 붙여서 만든 것이라고 설명해주면서 이전 그림과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도록 구성해두었다. 누구나 이 두 그림을 보면 왜 이렇게 그렸을지, 그 두 그림이 같은 사람이 그린 것이 맞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의문을 품고 왜 그런 이상한 그림을 그렸을지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의문을 품기도 전에 잘 가르친다고 미리 모든 내용을 알려주면 아이들은 이내 흥미를 잃을 수 밖에 없다. 공부라는 것은 스스로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리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은 어쩌면 아이들에게 공부를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 이후에 나오는 「배를 들고 있는 마야」에서는 마야 근처에 있는 삼각형이 장남감 배의 돛인지, 아니면 마야의 옷인지 스스로 생각해보게 해주고 있고, 「배를 들고 있는 마야」와 「해변에서 해수욕하는 여인들」 속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삼각형이나 숫자를 그림 속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훈수를 놔주는데 엄마랑 같이 읽으면서 찾거나 또래 친구들이나 형제들이랑 같이 찾으면 그 재미가 훨씬 배가 될 것이다.

 

이렇게 피카소의 그림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스스로 찾아볼 수 있도록 충분한 여유를 준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피카소의 인생 여정을 알려준다. 바로 피카소의 1881년부터 1973년까지의 일생을 간략하게 설명해주는데, 엄마랑 같이 보면서 이야기하면서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복잡한 내용이 나오진 않지만 깊게 들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 더러 나와서 적당히 넘어가주는 센스가 필요한 부분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이들의 눈으로 봤을 때, 화가 연표에 나오는 연도에 그 당시 화가의 나이가 같이 표시되어 있으면 훨씬 이해가 빠를 수 있을 것이란 점이다. 예를 들어, 1891년에 여동생이 죽었다는 부분에서 괄호로 ‘10살’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면 훨씬 편했을 것이란 뜻이다. 그렇게 표기해서 아이들이 자신의 삶과 화가의 삶을 비교하고 그런 비극적인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났다면 어떤 기분이었을지를 상상해보고, 화가가 멀리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같이 슬픔과 아픔도 있고, 생각도 하는 존재임을 알게 해주어 화가를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뒤로 가면 그가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 금속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를 좋아했고, 새로 사귄 친구에게 도예를 배워 도자기로 접시나 부엉이도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고 나이가 많아도 새롭게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음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음도 알려주면 좋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좋은 것은 그림이나 사진이 한 면에 빼곡히 들어차지 않아서 한 가지 그림이나 사진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집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특히 다른 책에 비해 피카소의 그림보다 그 개인에 대한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 많이 생각해볼 수 있겠다. 여기에 등장한 사진에는 그의 아들, 딸과 같이 있거나 부엉이나 염소와 함께 찍은 것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가 아이와 동물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분야로 그의 관심 분야가 확장되고 같은 대상을 그릴 때에도 다른 방식으로 그리는 피카소의 철학을 보면서 그가 세계적인 화가로 발돋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표현하려는 창의력 때문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법하다. 꼭 한 명의 위인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자신도 그를 본받아 세계에 이름을 날릴 필요는 없지만, 그는 왜 다른 화가에 비해 이름이 드높아졌는지에 대한 이유를 탐구해보는 것은 필요하다. 스스로 생각해서 머릿속에 집어넣은 지식과 감정은 어른이 되어서도 절대 잊혀지지 않기에 최대한의 충격과 의문을 가지게 해주어야 하겠다.

 

그런데 한 가지 꼬집고 싶은 것은 피카소 연보에 보면, 총 여섯 여성과 사랑을 한 그의 역사가 가감없이 등장하는데 그것에 대해 어떤 비판의 말도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니만큼 그런 도덕적이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꼭 집고 넘어가줘야 아무리 위대한 일을 했던 사람일지라도 도덕적이지 못하다면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겠는가. 책에서는 이혼을 한 다음 결혼을 했다는 말도 없고, 그저 ‘결혼했고, 사랑했고, 새로운 연인이 되었고, 도움을 받았다’는 말밖에는 없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의아하게 여기기 전에 먼저 알려주어야 한다. 혹여라도 이런 예술가들은 그의 자유로운 감성을 어쩌지 못해 여러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이 책을 볼 정도라면 초등학교 5학년 정도가 최고 학년일 텐데 그 정도가 되면 충분히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알게 되는 나이이기에 확실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들이 정확히 맺고 끊음이 분명했든 안 했든간에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 염문을 뿌리고 다닌 것은 옳지 못하고, 확실하게 말해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못 박아 두어야 한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암암리에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이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예술가와 연예인들은 그들의 생활 습성상,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 때문이라도 한 사람과 진득하게 살지 못한다고들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말도 안된다. 그들 개개인이 노력하지 못했거나 도덕관념이 해이해진 탓이지 그런 업종에 종사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업종의 탓을 해서도 안 된다. 어떤 업종에 있든지 스스로 얼마나 뜻을 정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변명은 실패자들에게나 있는 것 뿐이다.

 

아이들을 위한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일반 책을 만드는 사람들보다 더한 꿈과 뜻이 있을 줄 안다. 그렇기에 이런 사소한 하나까지도 다시금 신중하게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어린 아이들은 스폰지 같아서 어떤 지식이나 감성도 그대로 흡수하지 않은가. 혹여 은연 중에라도 잘못된 생각이나 관념이 흡수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할 일이다. 특히 도덕불감증을 앓고 있는 우리에게 도덕을 전수하는 일만큼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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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경제학 - 검색창에 담긴 세상의 모든 경제지식
한겨레 경제부 지음 / 어바웃어북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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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반인들에게 살갑게 다가가는 경제책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일 것이다. 일단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과 발맞춰 검색창에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도록 정리해주는 섬세함도 그렇고, 현재 신문 속에 등장하는 여러 용어들을 아우르며 정리해내는 것도 상당히 좋았다. 물론 이 책이 한 신문사 경제부서에서 쓰여진 것이라서 더욱 그런 찾아가는 서비스가 되어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한꺼번에 많은 경제 시사 용어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먼저, 하나의 경제 용어가 등장하면 검색창이 허용할 수 있는 분량의 길이로 간단하게 정의된 후 신문기사에서 그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살펴보게 기사가 발췌되어 있다. 그 다음에 그 용어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이 등장하면서 주요 인물이나 상황을 사진이나 캐리커처로 묘사해두었다. 마지막으로 트위터에 들어갈 수 있는 100자 분량으로 간략 정리해주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서 여러 경제 용어를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것도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순서에 상관없이 봐도 되겠지만 일단 가장 먼저 봐야 할 부분으로서는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경제 현안 한 줄로 꿰뚫기>와 세 번째로 등장하는 <세계 경제 이슈 한줄로 대비하기>가 아닐까 한다. 일단 자주 거론되는 경제 이슈와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우선적으로 아는 것이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이해의 폭도 깊어지고 흥미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 사회의 약속인 교토의정서를 설명하면서 비준에 반대해왔던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 교토의정서가 2012년이면 효력이 상실되기 때문에 그 전에 다른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으면 전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는 상식도 챙기게 되었으니 얼마나 귀중한지. 그저 경제 용어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상식까지도 챙길 수 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우리나라의 외환 위기에 대한 시선이었다. 국가 파산을 선언하는 디폴트 선언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우리 나라의 외환위기는 디폴트 선언한 것이 아니라 디폴트 위험에 처해 IMF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해준 부분이 있었다. 2010년 6월 4일 헝가리 총리 대변인의 디폴트 발언으로 남유럽의 금융 위기에 적신호가 켜졌는데, 디폴트 선언은 국가 파산을 선언하는 것이라 실제로 이렇게 공표하는 예는 거의 없기 때문에 큰 위험이었던 것이다. 2006년 중남미의 벨리즈란 나라가 디폴트 선언한 유일한 나라이니 엄청 심각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산과 파산 위기는 엄연히 다르다고는 하는데 내 생각에는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외환 위기 당시에 외화 보유액이 파산 위기에 처한 다른 나라만큼 많이 낮지도 않았고 충분히 지불 유예만 신청하면 우리의 힘으로 해결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자유롭게 자본을 투자하려 했던 미국이 한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자, 이런 위기를 기회 삼아 우리를 밥으로 만들려고 했던 그들의 의도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전과 다르게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타고 고용의 자유화로 정년 퇴직이란 말이 무색하게 되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주주들의 배만 불려주려고 노동자들을 줄이거나 임금을 삭감하고 그 돈으로 재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들의 배당금으로 나누어주는 등 발전이 없는 제 살 깎아먹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외국 자본이 많이 들어왔기에 가능한 일이 된 것이다. 물론 파산과 파산 위기는 다르지만, 왠지 우리가 IMF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전달하는 이 책의 시선이 조금 거슬린다. 그 당시에 우리가 모라토리엄을 신청하면 안 되었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아쉽기만 하다.

 

실업율 상승, 고용 불안, 경제 불황, 늦은 혼인, 저 출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에서부터 끊어야 할지 모르겠는 나로서는 그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 이런 문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그 때 미리 내다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치 구한말 때 청나라, 러시아, 일본의 마수 아래서 힘 없어 제대로 지키지도 못했던 대한제국을 다시 본 것 같기도 하니,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겠다. 누군가 서점에서 투자 실용서적이 범람하는 것을 보고는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았다. 나라를 이루는 근간인 국민이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인문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단지 당면한 현안인 재산 불리기에 대해서만 고심하면 그 나라는 미래가 없다. 물질에만 연연해 하며 그 너머를 보지 못하는 시대란 영웅도 없다. 우리가 경제 용어를 이해하려고 하고 시사에 좀 밝아지려고 하는 것은 지금 살아가는 이 세대에서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현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한 목적으로 수단을 삼는 것 뿐이지 않는가. 내 배, 내 가족 배만 불리기 위해서라면 아마도 사는 것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전에 본 『빌당부자들』이란 책만 봐도 100억 넘어가게 잘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수수하게 꾸미고 다니고 인품이 정말 좋다고 한다. 그들이 평생을 남에게 과시하고 싶어서 돈을 벌었던 것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단지 넉넉하게 살아보고 싶어서 돈을 벌기 시작했겠지만 나중에는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부호 가문을 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사서삼경을 읽고 그 의미를 논하는 인품 공부를 하는 그 집안에서는 돈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돈이 아닐 것이다. 그저 그들이 감당해야 할 업보쯤으로 여기고 가꾸고 다듬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요소로 사용하지 않을까.

 

그 뒤에는 <정부 정책 한 줄로 폭로하기>, <금융과 세금 한 줄로 이해하기>, <지수와 통계 한 줄로 풀어내기>가 있는데 꽤 많이 들어봤던 용어들이 등장해서 전보다는 쉽사리 이해할 수가 있다. 인플레이션이나 펀드런 등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많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기회로 가지면 좋겠다. 짧은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옆에 놔두고 신문을 볼 때나 궁금한 용어가 생길 때 바로 찾아볼 수 있으면 활용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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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트인 과학자 - 데이터 조각 따위는 흥미롭지 않아요. 특히 숫자!
랜디 올슨 지음, 윤용아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과학자들은 항상 이성에 호소하며 감정을 배제한 채 자신이 발견해낸 위대한 과학적 사실에 집중해주길 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넘쳐나는 정보의 시대이며, 미디어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이젠 과학도 살아남아 널리 전파되고 싶으면 미디어로 무장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 책은 과학자로 해양생물학교수로 재직까지 했으나 돌연 할리우드로 날라가 영화감독이 되고자 공부를 다시 했던 사람이다. 그 때 그가 배웠던 마귀 할멈이 가르치는 연기 교육에서 얻은 황당함이 나중에는 자신의 표현력에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자신도 그러했을 과학자들의 무미건조한 화법의 오류를 지적해주기 위해서말이다. 현대가 과학의 시대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일반 지식인들도 과학에 대해 어느 정도 조예가 깊어야 하는데, 특히 우리나라는 과학에 대해 모르는 것을 거의 자랑스러워까지 하는 이상한 현상이 산재하고 있다. 이 때 과학자들이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으로 무장해있다면 아마도 일반인들이 과학에 대한 접근성이 좀더 용이해지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바로 그것을 위한 책인 것이다.
 
아마 과학자들의 가장 큰 오류는 정보와 데이터로 무장한 글만 던져주기만 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반응하고 열광할 줄 안다는 것이다. 모르겠다, 과거에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 왔을지도. 하지만 요즘에는 넘쳐나는 정보의 세상이니 관심을 받고 싶으면 미디어를 이용하든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어떤 규모의 위원회라도 로비를 하지 않으면 홍보를 하지 않으면 대중의 관심을 결코 받을 수 없다. 왜 그런 사실을 모를까? 자신들은 그런 딱딱하고 이성적이고 머리로만 인식하기만 하면 모든 오감이 그 쪽으로 옮겨가기 때문일까?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하품을 할지언정 자신들은 할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과학자들의 소임이라는 것은 중요한 과학적 발견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진정 중요한 발견을 세상에게 공표해야 자신의 소임을 다 끝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실격인 것이다. 온갖 부정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오류가 나지 않을 때가 겨우 인정하는 방법으로 모든 것을 검사해야 하는 과학자이기에 열정적인 학생들의 의지도 꺾어놓기 일쑤다.
 
과학자들이 이성적이고 가슴도 없고 섹스어필도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하나의 축복일 수도 있다. 과학자들의 쓰는 글에는 자신 자신의 감정이 깃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어떤 말을 하건 상처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시나리오를 누군가 읽고 거기에다가 빨간 펜으로 죽죽 그어서 평가를 해놓으면 누구라도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감성을 원하고 자극과 충족을 원한다. 요즘은 책을 써도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절묘하게 버물려놓은 좋은 글을 쓰는 과학자들이 많다. 나도 그런 과학자들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세계에서는 그런 글을 쓰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고 하니 역시나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인 듯 싶다. 하긴 전에 봤던 대단한 학자들을 인터뷰한 책을 보니까, 딱히 과학계가 아니더라도 학문의 상아탑에 들어가있는 학자들에게는 대중적인 글쓰기를 진저리나도록 싫어하는 것 같았다. 역시 공부만 했더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인 랜디 올슨은 과학계에서 오래 살다가 유머를 잃어버렸는데, 이젠 영화계로 옮겨가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감각적인 것과 미디어적인 것에 반응이 빨라졌다. 그가 밝힌 이혼의 아픔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매력적인 과학도이자 댄서이자 예술가였던 자신의 아내가 자기더러 항상 했던 말이, “그만 하세요, 미스터 장황!”이었다고 하니까, 참다 참다 못해 갈라섰던 것이다. 그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을 테니,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우리는 글을 쓸 때, 이렇게 배운다. 처음에는 흥미를 유발하라고. 특히 수필은 대부분 처음 부분에 흥미 유발을 하도록 되어 있다. 아주 기본적인 중학교 1학년 수준이 이 정도인데,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과학계에서는 등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이전에 현재 과학자들과 똑같이 등한시했던 전직 과학자의 입에서 나온 소리이기 때문에 더욱 신빙성이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말하려는 과학적인 내용을 짧은 동영상이든 두 시간이 걸리는 영화이든 영상으로 만들어낸다. 물론 그 일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 지적설계론자들과 진화론자들의 논쟁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영상에 담아내자고 생각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그 일이 쉬울 줄 알았다. 과학자들이 처음 가설을 세우는 것 같이 컨셉이나 대본을 짜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냥 동부로 날아가서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따오고, 다시 서부로 날아가서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따온 다음 자신의 엄마를 인터뷰하고 그 옆의 사람도 인터뷰했던 영상들을 이리저리 짜집기해서 시사회를 했더니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더란다. 아무런 영감도 유머도 주지 못한 그 영상 편집물은 실패였다. 이리저리 사람들의 요구만 많지, 해결은 하나도 되지 않자 다시금 편집에 들어갔는데 그 때 생각해냈던 것이 바로 ‘이야기’였다.
 
도입부에 자극과 반응을 주기만 하는 것은 일차적인 것뿐이다. 사람들은 자질구레한 요소들보다는 완성된 형태의 이야기를 원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런 잡다한 요소를 꺼내는 건데요?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은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 소녀를 못된 용으로부터 구하는 남자 이야기를 포맷으로 해서 「얼간이들의 무리」라는 진화론자와 지적 설계론자들의 논쟁을 묶어냈다. 그러고서 시사회를 했더니 다들 웃고 있더란다. 과학자로서 이야기를 전달할 때는 자극과 이야기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말해줘도 못 알아듣는 과학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던 칼 세이건의 이야기는 다 알려져있다. 이야기가 담긴 그의 책 「에덴의 용」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자신의 사상을 담은 소설 「콘텍트」도 발표했고, 그것이 나중에 영화화까지 되었던 것을 볼 때, 그는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함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과학계는 그의 인기있음을 질투해 국립과학원에 그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과학적 발견, 논문, 단행본 발간 등 어떤 업적을 놓고 보더라도 그가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사실인데도 그랬다. 그의 전처인 린 마굴리스가 개인적인 감정은 접고 세이건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그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했음에도 다른 과학자들은 편협한 주장을 펴며 반대를 하더란다. 어딜 가나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기란 참 어려운 법인가 보다.
 
이 책은 이렇게 해서 끝이 난다. 사실 이 책이 어떤 해결을 이루어내지는 못한다. 일단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과학자들이 스스로 변하지 않는 이상, 이 모든 논의는 별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 대중들은 이런 책을 보면서 과학계의 편협함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는 것이 없어서 항상 주눅들어 있었던 과학계에 대해 오만불손하다고 소리쳐줄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한 걸음 나간 것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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