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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을 고백하다 ㅣ 백제를 이끌어간 지도자들의 재발견 1
이희진 지음 / 가람기획 / 2011년 4월
평점 :
이 그럴 듯한 표지를 가진 책은, 소설 같아 보이지만 결단코 소설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 중 숨겨진 것을 유추해서 면밀하게 근거를 들어 사실을 밝혀놓은 책이라고나 할까. 그저 역사서라고 하기엔 미진한 설명이지만 어쨌든 역사서이다. 그런데 서문을 보면 이 책은 몇 년 전에 나온 책의 업그레이드 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혀놓고서도 시류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보완을 해버려서 전혀 다른 책이 나왔다고도 말하고 있다. 보통 책을 읽기 전에 꼭 읽게 되는 서문을 보면 작가가 쓴 책의 방향을 알 수 있기도 하고, 책을 쓴 작가의 의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책에 대해 애착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을 보니까 그 전에 나온 책이 도대체 무엇이며, 그 책에서의 미진한 점은 무엇이었고, 작가는 과연 어떤 부분을 더 보강하고 싶었는데, 어떤 출판계의 사정 때문에 어떤 식으로 보완을 했는지가 궁금해졌다. 이거,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 격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근초고왕에 대한 것만 알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책의 내용까지도 바꿔버리는 출판계의 사정까지도 신경쓰게 만드는 놀라운 서문이었다. 책의 내용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서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도, 내겐 책에 대한 흥미를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해주었다. 저자의 고뇌가 물씬 묻어나오는 서문이기에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썼으며, 밝혀지지 않은 혹은 논란이 일고 있는 고대사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책이 나오건 이 저자의 책이라면 꼭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만큼 신뢰감을 주는 서문이랄까.
서문이 어찌됐든 이 책은 우리 고대사 중 가장 드러나지 않은 역사인 백제를 알고자 마련한 책이다. 특히 가장 주목받아야 할 근초고왕과 성왕의 개인적인 자질이나 능력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삼국 중 신라가 대세를 이루었으니 신라에게 득이 되지 않는 역사는 굽히기 마련이라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분명히 드러나야 할 관산성 전투만 해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저자의 말로는 백제의 역사를 곡해하지 않은 그 이후의 나라는 조선 뿐이라고 하니까 통일 신라나 고려, 대한제국 때까지도 백제의 역사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풍조는 계속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일본의 식민사관이 들어온 이후부터는 완전히 그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백제의 역사를 조명하기란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저자처럼 일반적인 인간사에 바탕을 두어 고대사를 살펴보고 판별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특히 『일본서기』는 처음부터 거짓 기록이 판치고 있어 그것을 감안하고 보는 눈을 키우지 않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못하고 말아햐 하니,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렇게 고대사부터 왜곡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본을 보면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진실을 가리는 역사관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그런 썩은 마음가짐은 애초부터 틀린 것이다. 하여튼 그런 오류투성이 사료를 가지고 제대로 된 역사를 추출해내려면 상식선에서부터 생각하내는 법을 키워야 할 것이다. 예전부터 나는 삼국의 문화를 보면 고구려는 호방하고 신라는 후에 생겨나는 조선의 문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박함이 있고 백제는 일본의 문화 원류가 되는 세련됨이 있다고 여겼었다. 일본의 세련된 문화가 너무나 아름다워 항상 매혹적으로 생각했던 나로선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던 것이 상당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백제의 문화가 어떻게 일본에게 전해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그 전모가 밝혀지는 내용이 담겨있어 이 책이 술술 잘 읽혔다.
전반적으로 책의 구성이 간단하고 어렵지 않게 전달해주고 있어서 읽기에는 부담이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수법을 쓰는 읽지 않고선 못 배기게 하는 책이기도 한다. 또한 이 책은 일반적으로 백제에게 낮은 평가를 내리는 방식을 먼저 설명하고 그 이후에 저자 자신이 밝혀낸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도 충분히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백제의 두 왕을 면밀히 살피기 위해 마련된 책이니, 전반적인 백제의 역사나 흥망성쇠는 다 나타나지 않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근초고왕과 성왕의 능력을 살펴볼 수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는 중앙집권 기틀을 갖춘 왕으로 3세기 고이왕이 등장하고 4세기에 백제의 전성기를 연 근초고왕이 있고 6세기에 중흥기를 연 성왕으로만 간략하게 한,두 줄이 등장하기 때문에 많이 외울 것도 이해할 것도 없었는데 최근들어 발굴되는 여러 유적들도 등장하고 있어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근초고왕이 등장한 시기는 4세기였는데 이 때가 우리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그 전에는 각기 나라마다 중앙집권체제를 만들기 위해 다른 나라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던 시기였다면 4세기부터는 다른 나라의 정세까지도 파악해야 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특히 자타가 공인하는 강자로 고구려가 떠오르기 시작한 시기가 4세기였기에 북쪽에는 고구려가 있고 남쪽에 실세를 잡고 있는 것이 백제란 것이다. 백제-가야-왜로 연결되는 세력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대항 세력이 왜이냐 백제이냐를 생각해볼 때, 당연히 사료상 백제가 맞다. 아무리 허구가 많다지만 실제 있었던 일까지 지울리는 없지 않은가. 『일본서기』에도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으니 둘 사이의 관계는 없다고 봐야 맞으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많이 등장하는 백제와 고구려의 대립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제가 강대국 고구려를 대항하기 위해 가야와 왜, 그리고 신라까지 끌어들인 작전은 상당히 교묘하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가야와 왜, 왜와 신라, 신라와 가야의 국제 정세까지 다 읽을 수 있어야 했다. 우선 왜는 신라에게 호시탐탐 노략질을 일삼았지만 그것이 신라에게 큰 해를 줄 정도가 아니였다는 것, 그리고 신라에서는 왜를 한 나라 취급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고, 왜 입장에서는 신라가 아니더라도 중국과의 교역을 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해서 신라를 끊임없이 약탈했고 가야와는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 가야도 신라와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래서 백제는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가야와 왜를 포섭하기로 했는데, 쓸데 없이 힘을 쓰지 않고 그들을 회유하는 방법으로 동맹체를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신라의 지배권에서 벗어나 가야들의 연맹을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왜에게는 중국과의 교역을 위한 통로를 만들어준다는 이권을 보장해주는 방법으로 임나를 만든 것이다. 왜에게는 일본부를 만들어주고, 가야에게는 임나를 만들어서 백제 통제 하에 그들만의 연합을 형성한 것이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4세기의 남쪽 세력을 장악하기 위한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주면서 자신의 뜻대로 그들을 조종할 수 있는 방법, 4세기밖에 되지 않은 그 때부터 백제는 무력 없이 다른 나라를 움직이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그것의 중심에 근초고왕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에 신라가 고구려와 동맹을 맺게 되었고, 나중에 고구려의 임나가라 정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 다음에는 성왕이 나설 차례인데, 먼저 고구려와 파토가 난 신라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와 대항하고, 예전에 만들어놓은 가야-왜 동맹을 언급하며 신라를 견제하게 된다. 가야나 왜 입장에서는 백제에게 동조하긴 싫지만 그를 무시할 수 없어 따라가는 척했다가 순간적으로 실수해서 완전히 백제에게 꼬리 잡히게 되었다. 그 후에 신라와 관산성 전투를 하게 되었다.
고구려와 한강 유역을 다투다가 신라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 성왕은 신중하게 계산했다. 자신이 신라를 쳐들어가면 고구려가 내려올 것을 알고 배신을 당했지만 바로 고구려를 쳐들어갔기 때문인데, 이것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면밀하게 계획을 짠 지도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고구려에게 한 방 먹인 다음, 관산성에 쳐들어가는데 거기서 신라에게 대승해버린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신라가 백제를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아니란다. 김유신의 할아버지가 있는 부대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다 이겨놓은 관산성 터에 가는 성왕을 매복해서 생포해놓고 처형했던 것이라고 하니까 다 잡은 고기를 아깝게 놓친 격이 되었다. 승리에 취해 신중하지 못했던 행동으로 승리를 신라에게 내주어야 했으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그 일 때문에 앞으로의 역사에서 백제의 이름이 없어지게 되었지만, 만약 성왕이 그 때 매복으로 죽지 않았다면 신라에게 큰 피해를 준 관산성 전투에서 크게 이겨 결국 신라를 무너뜨렸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근초고왕의 탁월한 외교 능력과 성왕의 감정을 누르는 치밀한 전략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역사에는 만약이란 없으니 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대단한 지도력까지 잊어버리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일 테니까 말이다. 졌으니까 면밀하게 파악하지 않았던 과거의 실수를 되돌리는 이런 작업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란 그 자체로 배울 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