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을 위해 일하신다
맥스 루케이도 지음, 정성묵 옮김 / 가치창조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글을 접하게 된 것은 요 근래의 일이다. 실은 말씀으로 유명한 믿음의 스승들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몇몇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글을 읽어본 적도 없는 게으른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를 꺼내면 항상 받아적기만 하는 편이다. 그런데 요 근래 의도하지 안했든 의도했든 잘 모르겠지만 계속 이 분의 책을 볼 기회가 생겼다. 그는 교회에서 단체로 감상했던 어떤 애니메이션의 저자라고만 인식하고 있었기에 사실 목사님이셨다는 것과 그가 그렇게나 글을 재미나게 쓰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애니메이션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아주 오래 전 내가 대학생 때 본 것인데도, 그 내용이 어찌나 놀랍고 감사한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한 인간이 만드는 인형의 나라에서는 인형들끼리 착한 일을 하면 별점을 붙여주고, 나쁜 일을 하면 흑점을 붙여주면서 공개적으로 수치를 느끼게끔 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러다 흑점을 많이 붙이게 된 한 꼬마 인형이 자신을 만든 인간을 찾아가서 제게 붙었던 흑점을 모두 탕감받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고, 모든 인형들에게 붙은 표까지 싸그리 없어지는 기적도 일어났다. 이 작품이 원래는 책이었는데 너무 감동적이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정말 놀라운 아이들용 작품이라고 생각되지만, 이는 어른에게도 동일한 감동과 감사를 느끼게 해준다.
그랬던 그의 글을 이제는 내가 실제로 보게 되었다. 이번 책이 두 번째 책인데, 처음에 본 책이 얼마나 독특한지 왜 그를 ‘이야기꾼’으로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딱딱해 보이는 성경의 한 장면을 순전히 이야기식으로, 그것도 지지리 궁상 떠는 우리의 모습과 매한가지인 제자들을 등장시켜 우리의 내면을 드러내놓게 한다. 특히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다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러 왔던 베드로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은 은혜가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는 가장 압권이다. 사실 성경으로 이 장면을 봤을 때는 이런 내용인지 잘 몰랐다. 나는 더한 죄인이면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책망하기에 바빴던 나는 그 장면에서 베드로의 감정을 유추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버렸는데, 다시 자기를 찾아와주신 주님을 바라보는 그 감정을 말이다. 그런데 루케이도 목사님의 입을 빌려 바라본 그 장면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루케이도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아침을 준비해주시는 예수님 앞에서 조용히 서있는 베드로를 보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고. 자신의 잘못을 정확하게 아시는 그 분이 다시 자기를 찾아오셨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고. 얼굴 들기도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는데 다시금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예수님께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고. 그 때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이야기가 들어있는 챕터의 제목이 무엇인지 아는가. 【당신이 하나님을 실망시킬 때】이다.
이 책을 보며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장면들을 깨달아지는 기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의 첫 기적 사건인 물이 포도주 되는 사건이었다. 사실 가나의 혼인잔치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사건은 내가 제일 쉽게 생각하고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었는데, 이 챕터를 거의 끝까지 읽었을 때까지 내가 뭘 이해 못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가 막판에 가서 생각해낼 수 있었다. 사람을 살린 것도 아니고,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도 아니고, 복음을 전파하신 것도 아니고, 게다가 하인들외에 아무도 예수님께서 이적을 베푸셨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이적 같지 않은 이적이었는데 이것이 왜 중요할까 싶었다. 예수님께서 포도주 만들 줄 안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라면,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어 성경에 기록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이 책으로 풀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가 부족해졌을 때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에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먼저 거절을 하셨다. 성경으로만 볼 때는 그 장면이 좀 매정하게 보이고 거절 후 기적을 베푸시는 것도 이상하게 보였는데 그것이 아니였다. 실제로 생각을 해보면 단지 3년간만 하는 공생애를 여시는 첫 기적을 대단한 것으로 계획을 하셨을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완곡하게 거절하신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사람들이 죽어가거나 구원을 받지 못하거나 외식하는 것처럼 아주 심각한 일도 아닌 그저 혼인잔치에 포도주를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큰 수치를 당하게 될(생명을 거는 것보다는 단순한 일)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쓰이신 것이었다. 이 기적을 베푼다고 주최측이나 대접받는 마을 사람들이나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도 몰랐으니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사소해보이는 일일지라도 우리가 힘들어하면 언제라도 달려와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이 기적을 통해 알려주셨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 : 15)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의 모든 아픔과 수치까지도 다 동정해주시는, 아파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이것으로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가장 신기했던 장면이 있었다. 【착한 걸로는 부족할 때】라는 챕터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우쭐하지 말 것, 자랑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양 옆에 나란히 매달린 강도 중의 하나가 처음에는 조롱하다가 예수님의 기도 이후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 ‘나는 틀렸고 예수님은 옳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평생을 낭비하여 강도로 사형을 당하고, 예수님께 대놓고 조롱까지 했던 그가 예수님의 자비를 청하는 모습에서 그에게 그런 자격이 있냐고 목사님은 말씀하셧다. 염치 없고 뻔뻔하기까지 한 그의 행동이 바로 우리의 행동와 똑같다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하면서도 아주 사소한 것 하나 내어놓지 않으며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으려 하는 나를 볼 때에 그 강도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자랑하지 말지니... 절대 자랑할 수 없느니...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의 은혜만을 구하며 살 수 밖에 없을 뿐, 내 인생을 내 것이라 주장할 수도, 주님보다 앞설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청하는데 울 수 밖에 없었다.나랑 마음이 똑같아서. 나도 그렇게 못된 짓을 다 하고 마지막에 가서야 나를 구원해달라고 청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주님의 자비에 의지하며, 그의 은혜를 공급받아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딱 맞는 좌우명이겠다. 나를 기억하소서...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