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앳홈 - 홍대, 가로수길 카페 집에서 만나다
이지애 지음 / 미디어윌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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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책의 앞 부분에서는 집에서 카페처럼 커피를 내려 마시고 싶을 때는 갖추어야 할 도구들과 재료를 나열해주고 있다. 그것만 정확하게 숙지하면 별 탈은 나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앞에 나온 기구를 하나하나 꼼꼼히 보는 것이 본격적인 음식 레시피를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정도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런 기구가 없을 때는 만들어 먹을 수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커피 하나 내려마시자고 그런 모든 기구를 갖추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십중팔구 제대로 기구가 갖추고 나서가 아닌 즉흥적으로 아무 밤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것이 아쉽지만 먹고 싶었던 스무디를 만드는 법이 나와있어서 기뻤다. 얼마 전에 얻어 마셨던 키위 스무디가 커피보다 비싼 5,300원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카페에서 시켜먹는 것 중에서 맛있게 잘 선택했다고 자부했던 적이 요 근래에는 전혀 없었던 지라 키위 스무디의 선택도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찬 것을 몸에서는 좋아하지 않는데 입은 그것을 원하니 마음이 안 맞을 수도 있고, 먹었을 때 쓰지 않은 커피가 없는데다가 과일로 만든 것은 너무 달콤해서 밖에서 시켜 먹기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래서 내 입맛에 맞게 응용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이 책이 솔깃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원래 과일은 가리지 않고 어떤 것이든 잘 먹는 편인데 요즘에 나오는 과일은 너무 달아서 이상하게 먹고 싶지가 않다. 바나나도, 참외도, 하다못해 키위도 너무 달았다. 물론 스무디에 무언가를 넣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먹은 스무디에는 떠먹는 요구르트가 더 들어가서 그리 비싼 거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런 식으로 만든다면 집에서 직접 만든 요구르트를 이용하는 것이 딱일 듯 싶었다. 특히 우리 집에서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플레인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기 때문에 얼마나 담백한지 모른다. 식성이 짜게 먹는 터라 단 것을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즘은 달지 않게 먹는 것이 내 목표이기에 내 재량껏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또한 커피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커피를 먹기 시작하면 하루에도 몇 잔씩 들이킬 때가 많다. 물을 먹지 않으면 안될 체질이라서 일하는 중에도 텀블러로 다섯 잔은 기본으로 마시는데 약간 잠이 온다 싶으면 블랙 인스턴트 커피를 마구 마셔대서 이미 각성 효과는 없다. 이는 정말 몇달간 줄기차게 먹어왔던 결과인데, 옛날 같으면 인스턴트 커피 2잔 마셨다고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극도의 각성 상태를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이라 아주 신기하다.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은 어디까지 인스턴스일 뿐 제대로 된 커피는 아니라서 커피맛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남들이 먹으니까, 혹은 커피 먹으면 잠이 깰까 싶어서 먹는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먹자고 하면 줄창 먹고 안 먹자고 하면 전혀 안 먹는 터라 솔직히 몸에도 좋지 않은 것 많이 먹는 습관을 고쳐야 할 것이라 생각은 들지만 그 매혹적인 냄새를 맡고 나면 먹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쨌든 이 책에 나온 커피를 응용한 방법은 에스프레소를 추출해낼 수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기에 제쳐둘 수 밖에 없겠다. 앞서 말했지만 그거 하나 먹자고 고가의 커피 기계를 살 순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응용할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커피를 제외하더라도 충분히 스무디나 주스를 만들어 먹을 수가 있기에 마음껏 이용할 좋은 책인데 찬찬히 보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것도 등장해서 새로운 메뉴인 에이드나 차, 칵테일, 샌드위치를 만나게 되는 기쁨을 더해주었다. 솔직히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땐 한 컷에는 사진, 다른 한 컷에는 레시피를 첨가해서 모든 메뉴에 단 두 쪽만 할애한 구성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꼼꼼히 본 것은 아니여서 더욱 그런 오해가 있었는데 실은 각각의 메뉴마다 저자의 개인적인 코멘트나 몸에 좋은 영양에 대해서 자세한 안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매력적인 레시피가 담겨져 있었다. 중간부터 대충 훑어보면 사진만 하나 넣어서 끼워 맞춰 만든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다. 저자 스스로 맛있고 기발한 메뉴를 먹기 위해 많은 고민이 묻어난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기에 집에서도 쉽게 해볼 만한 것이 많이 있었다. 난 치즈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반면, 아직까지도 치즈를 이용해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 왠지 치즈는 서구화의 최고봉이라 생각해서인지 쉽사리 이것저것 넣으면서 시험해보기엔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에멘탈브리치즈샌드위치나 프리타타샌드위치 같은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의 자세히 나와 있는 레시피는 상당히 만족스러울 따름이다.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블루베리를 넣은 스무디나 에이드를 만들어 손쉽게 먹는다면 여름 한 철을 참 보람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한 컷 한 컷도 선입견을 빼고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사진만 봐도 청량감을 느낄 수 있어 시원한 여름을 나고 싶을 때 눈으로 보고 입으로 느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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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크로싱 - 99명의 거장에게서 발견한 생각의 연금술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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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미술관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던 터라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 관장님의 책도 이번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검색해보니 충분히 재미있을 만한 다양한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좋은 미술 관련 저자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 여겨진다. 이 책은 이제까지의 대가로 인정받을 만한 여러 화가들과 요즘 미술계에 한 획을 긋고 있는 화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화두는 ‘융합’이다. 서로 다른 학문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융합이야말로 21세기 인재상에 부합되는 능력이라며 우리가 알만한 미술계의 거장들을 제시한다. 그중 지겹도록 들어왔던 예술가라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파블로 피카소와 앤디 워홀이 있다. 이들은 특별히 미술가에 대해 관심이 없더라도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을 수밖에 없는 천재들이다. 현재의 직업군에 속한 직업 명칭만 해도 열 가지가 넘는 다 빈치의 경우에는 관련 책들도 숱하게 출간되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몇백 년이 흘렀어도 다 빈치의 능력을 따라잡기란 아직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항상 아쉬웠던 것이 있었다. 그렇게 천재적인 사람은 후대를 위해서라도 그림을 많이 남겼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그림도 별로 남아있지도 않지만 그나마도 미완성이 많았던 것을 보면 정말 아쉬울 뿐인데 그의 그림을 보면 단지 그림만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회화 작품에도 기계의 움직임에 대해 알게 된 것을 그려 넣거나 여자의 머리카락을 그리면서 물결의 소용돌이를 연상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관찰한 것들을 그림 속에 포괄했던 그는 한 가지 관심 있는 주제가 생기면 한 가지를 마무리 짓지도 않고 연쇄적으로 그것들을 섭렵하는 방법으로 연구를 했기에 미완성인 그림도 많고 한 작품도 몇 년에 걸쳐서 그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 즉 화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새롭고 확실한 해답으로 생각된다. 피카소 같은 경우에는 입체파나 큐비즘이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화가인 것은 알지만 그의 그림이 왜 그리 각광을 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몰랐다. 특히나 그가 십대 때 그렸던 그림을 보노라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지 않고 이상하게 그린 그림에 대해서 다들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나온 어린이용 그림책에서 그의 족적을 간단하게 정리된 것을 본 적이 있어 그가 왜 다재다능한 인재인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어떤 분야에서라도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다수가 알다시피 피카소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도자기, 판화, 무대 미술, 삽화, 무대 장식, 그래픽 아트까지 진출했던 진정한 멀티 아티스트였지 않은가. 이런 예술가 정도는 알아두면서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뽑아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쨌든 그도 사람이었으니 사람인 나도 벤치마킹할 수 있는 여지는 있는 것일 테니. 마지막으로 앤디 워홀은 내가 미술사적으로 아는 것이 없어서 이 책에서 처음으로 그가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어느 정도 가늠했다. 예전에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것이 이 책으로 인해 다시금 기억났다고나 할까. 앤디 워홀은 시대적인 흐름을 잘 타고난 예술경영가로 이해하면 좋겠다. 예술작품을 독보적인 한 사람이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림을 사는 사람은 솔직히 이해되지 않지만 돈이 넘쳐날 정도로 많고 내 눈높이에 익숙한 소재로 그림을 그린 것이라면 구매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시대를 앞서 가지도, 뒤처지지도 않았던 그의 시대 감각만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많이 들어왔던 몇몇 예술가를 골라서 이야기했지만 이 책에는 여러 미술계의 대가들을 8가지 인재상으로 나누어서 소개하고 있다. 내 것과 네 것을 섞는 하이브리드형, 기술과 예술을 융합한 얼리 어답터형, 일상과 창조를 하나로 만든 발명가형, 경험과 열정의 체험형, 재능과 노력을 섞는 멀티플레이형, 시간과 몰입의 융합 연구자형, 감각과 감각의 크로스 공감각형, 너와 나를 섞는 협업형 인간이 그것이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런 식으로 남아있지 않아서 내 마음대로 풀어보았다. 결론은 항상 그것이다. 남과 다른 방법과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서는 무언가 얻을 것이 있다는 것. 친숙한 것일지라도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끝까지 파고들려 집중하는 것이 그들을 그렇게 미술계의 대가로 만들지 않았을까.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생활의 달인’도 바로 그렇게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얻어진 것이 아닌가. 그러니 누구나 한 가지쯤은 그 분야에서 ‘달인’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본인이 그렇게 집중하고 다르게 노력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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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꿈꾸게 만드는 경영자 - 캐나다의 작은 모텔에서 세계 최고 호텔 그룹을 만든 이사도어 샤프의 성공 스토리
이사도어 샤프 지음, 양승연 옮김 / 지식노마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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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아버지께서 집을 짓는 것을 보고 자란 샤프는 건축업자에서 호텔 경영자로 완벽하게 변신해 경영학계에서 한 획을 그은 경영자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자신이 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에게 대해주라는 황금률 법칙을 철저하게 가장 말단 직원에게까지 적용해서 종업원들을 가장 아끼는 경영자로 우뚝 섰다. 그가 그런 생각으로 회사를 바꾸기 시작했을 때는 지금과 같이 경영에 관한 여러 이론이 등장할 때가 아닌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었기에 더욱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자신이 주업으로 하던 건설업에서 손을 떼고 호텔 전문 경영인으로 종목을 전환하겠다고 회사에 공표를 해도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당연한 게 그의 주업은 건설업이었을 뿐 호텔은 비즈니스로 건물 몇 채 지어준 것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뼛속까지 잘 알고 있던 건설업이 아니라 호텔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은 앞으로 호텔업이 크게 부상하리라는 그의 예측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위해 큰돈을 쓸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유명한 도시에 포시즌스 호텔을 건설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에 잘 맞아 들어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대단한 명성을 지닌 호텔도 5성급만 있는 것이 아니라 4성급 호텔, 3성급 호텔을 두어서 차별화하여 수익을 내는데 비해 포시즌스 호텔은 5성급 호텔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5성급 호텔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지도 확보되어야 하고 경관도 좋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서비스가 훌륭해야 한다. 다른 이름난 호텔에서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손님 한 사람당 많게는 4명까지 사람을 두었지만,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경영난에 빠질 우려가 있어 샤프는 좀 다른 생각을 했다. 손님은 호텔에 묵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편안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들을 맞는 최전선에 있는 종업원들은 수동적으로 명령에 대해 반응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간부에 못지 않는 결정권을 주어 능동적으로 손님의 요구에 맞추어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은 서비스가 없는 호텔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 당시에는 아예 ‘서비스’라는 개념이 도입되지 않았던 때인지라 그의 생각은 거의 파격일 수 밖에 없었다. 돈이 많은 리젠트 그룹 같은 호텔들은 돈을 많이 끌어올 수 있기 때문에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종업원들을 많이 고용하는 것으로 대응했지만, 캐나다의 작은 모텔에서부터 시작한 샤프에게는 그럴 만한 돈도 여유도 없었다. 단지 그에게 있었던 것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받고 싶은 그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간부들이, 임원들이 가장 적은 급여를 받은 말단 종업원들에게 손님을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존중해주고 자율권을 보장한다면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당연히 손님에게 적극적으로 서비스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일본에서 나온 경영 소설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 말하는 내용과 완전히 흡사하다. 물론 이 책이 좀 더 규모가 무척이나 큰 호텔업을 배경으로 하고, 그 전에 봤던 책은 바가 있는 술집을 배경으로 쓴 것이라서 비교할 범위 대상은 다를지 몰라도 확실히 그 안에 내재된 경영 이념은 같았다. 처음에는 소설형식으로 쓰인 그 책이 훨씬 더 재미있고 분명한 이념을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면 볼수록 점점 발전해가는 그가 어떻게 종업원들에게 책임을 위임하고 그것을 독려하며 사람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시키는지 흥미진진해진다. 아무래도 이 책은 실제 있었던 일이라 더욱 그런 효과가 배가되겠지만 말이다. 모든 종업원들이 손님이 왕이라는 모토 하나만으로 살아간다면 자신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손님에게서 클레임이라도 걸려오면 상사에게 얼마나 쪼임을 당할지 상상만 해도 회사에 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게 근무 사기를 저하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그렇게 왕으로 대접해주고 자유재량권을 준다면, 실수를 해도 만회할 기회를 준다면 충분히 행복한 기분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벨보이에서부터 웨이터까지, 청소부에서 매니저까지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하고 손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기록으로 남겨서 모든 종업원들에게 공유하고 서로 서로 피드백을 해주는 식으로 정보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또한 이런 방법으로 손님이 받았던 불쾌한 대응에 대해서도 빠르게 사과를 할 수 있게 되니 손님에게 큰 신뢰를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다양한 수준의 호텔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 5성급 호텔에만 집중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9. 11 테러와 같은 호텔업이 어려워질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나도 종업원을 해고하는 방법으로 경영 악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업원들에게 사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 경영인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호텔로 날아가서 절대 감원은 없을 것이라고 알려주는 등의 아낌 없는 종업원을 위한 호텔로 거듭났던 것이 그 호텔의 명성을 이어지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는 호텔이지만, 한 번쯤 가보고 싶은 호텔이 되었다. 좋은 호텔은 역시 사람을 소중히 하는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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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 - 영적 능력을 더하는 놀라운 은혜의 언약
찰스 스펄전 지음, 서하나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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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찰스 스펄전의 책은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영국의 대단한 영성가로 이름을 날리는 그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그가 복음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복음을 말했는지는 아는 것은 없었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는 청아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들리는 것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 책은 그다지 깊은 호소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한 마디로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복음을 이해하는 것도, 체득하는 것도 다 사람마다 때가 있다고 하셨던 목사님의 말씀을 참고로 하면 나는 아직 복음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 말씀처럼 복음은 깊은 절망을 경험해봤을 때에게 겨우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아직 나는 절망을 더 경험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사실 ‘어떤’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음은 단지 하나 뿐이지만 그것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고 삶으로 드러나기까지가 항상 어렵다. 생각해보면, 왜 이것이 어려울까 궁금하다. 인간의 삶이 복되길 기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래서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지 않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만 살아가길 기대하시며, 이 땅에서 화목과 화평을 누리고, 부족한 것을 흘러 넘치도록 채우시는 기쁨을 누리길 바라신다. 왜 아니 그러시겠는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미 이루어놓으신 그가 말이다. 이 책에서 가장 기쁜 소식은 이미 우리를 위해 이 땅의 모든 수치와 죄악의 사슬을 끊어놓으셨다는 예수님의 복음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정도까지 거룩해졌으며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

 

그런데 이를 삶으로 살아낸다고 한다면 그 때는 또 문제가 달라진다. 요즘 GBS로 야고보서를 나누고 있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다. 야고보 장로가 복음의 실천적 영역을 많이 강조했던 성경이지만 한때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지푸라기 성경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상당히 오해를 많이 샀던 성경이기도 하다. 믿음이 내 마음에 있고,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드렸다면 그것이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란 것쯤은 이전부터 내 마음에 있었다. 그랬기에 오히려 죄책감도 많이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의 영역이 그냥 한 마디 해버리는 말 한 마디에 해당하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야보고 장로는 말한다, 우리가 제대로 된 믿음을 갖는다고 할 때는 연단과 시련을 경험해서 믿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연단과 시련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모든 것이 지나간다면, 이 모든 것에 승리한다면 일터에서 분을 내거나 험담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과 부함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도, 말과 행동이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차별이 없기에, 마음에서 나온 말은 행동과 같은 것을 말하기에 우리는 차별하지도 말고, 언행일치도 해야 한다.

 

이 책은 언약을 말한다. 우리가 아무 것도 감당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언약을. 우리가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만 이루어지는 불완전하고 미완의 언약이 아니라 인간의 역할이 전혀 들어있지 않기에 완전하고 무결한 하나님의 언약을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그 언약의 특권은 대표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언약을 기록해주신다는 것이 있다. 성경에서 이 구절을 보곤 너무나 감사하고 은혜가 되어서 입에 두고 곱씹은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패역한 마음을 바꿔 우리의 마음에 언약을 기록해주신다면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언약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 때문에 그렇다. 너무나 감사한 말씀이다. 나는 내 스스로의 정욕과 사욕을 끊을 수가 없는데 오로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언약을 기록해주심으로 해서 나는 정욕을 끊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일이므로 인간은 관여할 수가 없다. 어찌나 감사한지. 이제껏 내 스스로 해야 한다고 얼마나 족쇄를 차고 다녔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 다 하실 테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다시 입혀주실 테니까 말이다. 물론 죄악에 대해서 발버둥칠 일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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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7-28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히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을 위해 일하신다
맥스 루케이도 지음, 정성묵 옮김 / 가치창조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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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글을 접하게 된 것은 요 근래의 일이다. 실은 말씀으로 유명한 믿음의 스승들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몇몇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글을 읽어본 적도 없는 게으른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를 꺼내면 항상 받아적기만 하는 편이다. 그런데 요 근래 의도하지 안했든 의도했든 잘 모르겠지만 계속 이 분의 책을 볼 기회가 생겼다. 그는 교회에서 단체로 감상했던 어떤 애니메이션의 저자라고만 인식하고 있었기에 사실 목사님이셨다는 것과 그가 그렇게나 글을 재미나게 쓰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애니메이션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아주 오래 전 내가 대학생 때 본 것인데도, 그 내용이 어찌나 놀랍고 감사한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한 인간이 만드는 인형의 나라에서는 인형들끼리 착한 일을 하면 별점을 붙여주고, 나쁜 일을 하면 흑점을 붙여주면서 공개적으로 수치를 느끼게끔 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러다 흑점을 많이 붙이게 된 한 꼬마 인형이 자신을 만든 인간을 찾아가서 제게 붙었던 흑점을 모두 탕감받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고, 모든 인형들에게 붙은 표까지 싸그리 없어지는 기적도 일어났다. 이 작품이 원래는 책이었는데 너무 감동적이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정말 놀라운 아이들용 작품이라고 생각되지만, 이는 어른에게도 동일한 감동과 감사를 느끼게 해준다.

 

그랬던 그의 글을 이제는 내가 실제로 보게 되었다. 이번 책이 두 번째 책인데, 처음에 본 책이 얼마나 독특한지 왜 그를 ‘이야기꾼’으로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딱딱해 보이는 성경의 한 장면을 순전히 이야기식으로, 그것도 지지리 궁상 떠는 우리의 모습과 매한가지인 제자들을 등장시켜 우리의 내면을 드러내놓게 한다. 특히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다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러 왔던 베드로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은 은혜가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는 가장 압권이다. 사실 성경으로 이 장면을 봤을 때는 이런 내용인지 잘 몰랐다. 나는 더한 죄인이면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책망하기에 바빴던 나는 그 장면에서 베드로의 감정을 유추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버렸는데, 다시 자기를 찾아와주신 주님을 바라보는 그 감정을 말이다. 그런데 루케이도 목사님의 입을 빌려 바라본 그 장면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루케이도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아침을 준비해주시는 예수님 앞에서 조용히 서있는 베드로를 보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고. 자신의 잘못을 정확하게 아시는 그 분이 다시 자기를 찾아오셨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고. 얼굴 들기도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는데 다시금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예수님께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고. 그 때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이야기가 들어있는 챕터의 제목이 무엇인지 아는가. 【당신이 하나님을 실망시킬 때】이다.

 

이 책을 보며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장면들을 깨달아지는 기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의 첫 기적 사건인 물이 포도주 되는 사건이었다. 사실 가나의 혼인잔치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사건은 내가 제일 쉽게 생각하고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었는데, 이 챕터를 거의 끝까지 읽었을 때까지 내가 뭘 이해 못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가 막판에 가서 생각해낼 수 있었다. 사람을 살린 것도 아니고,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도 아니고, 복음을 전파하신 것도 아니고, 게다가 하인들외에 아무도 예수님께서 이적을 베푸셨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이적 같지 않은 이적이었는데 이것이 왜 중요할까 싶었다. 예수님께서 포도주 만들 줄 안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라면,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어 성경에 기록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이 책으로 풀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가 부족해졌을 때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에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먼저 거절을 하셨다. 성경으로만 볼 때는 그 장면이 좀 매정하게 보이고 거절 후 기적을 베푸시는 것도 이상하게 보였는데 그것이 아니였다. 실제로 생각을 해보면 단지 3년간만 하는 공생애를 여시는 첫 기적을 대단한 것으로 계획을 하셨을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완곡하게 거절하신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사람들이 죽어가거나 구원을 받지 못하거나 외식하는 것처럼 아주 심각한 일도 아닌 그저 혼인잔치에 포도주를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큰 수치를 당하게 될(생명을 거는 것보다는 단순한 일)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쓰이신 것이었다. 이 기적을 베푼다고 주최측이나 대접받는 마을 사람들이나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도 몰랐으니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사소해보이는 일일지라도 우리가 힘들어하면 언제라도 달려와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이 기적을 통해 알려주셨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 : 15)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의 모든 아픔과 수치까지도 다 동정해주시는, 아파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이것으로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가장 신기했던 장면이 있었다. 【착한 걸로는 부족할 때】라는 챕터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우쭐하지 말 것, 자랑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양 옆에 나란히 매달린 강도 중의 하나가 처음에는 조롱하다가 예수님의 기도 이후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 ‘나는 틀렸고 예수님은 옳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평생을 낭비하여 강도로 사형을 당하고, 예수님께 대놓고 조롱까지 했던 그가 예수님의 자비를 청하는 모습에서 그에게 그런 자격이 있냐고 목사님은 말씀하셧다. 염치 없고 뻔뻔하기까지 한 그의 행동이 바로 우리의 행동와 똑같다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하면서도 아주 사소한 것 하나 내어놓지 않으며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으려 하는 나를 볼 때에 그 강도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자랑하지 말지니... 절대 자랑할 수 없느니...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의 은혜만을 구하며 살 수 밖에 없을 뿐, 내 인생을 내 것이라 주장할 수도, 주님보다 앞설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청하는데 울 수 밖에 없었다.나랑 마음이 똑같아서. 나도 그렇게 못된 짓을 다 하고 마지막에 가서야 나를 구원해달라고 청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주님의 자비에 의지하며, 그의 은혜를 공급받아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딱 맞는 좌우명이겠다. 나를 기억하소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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