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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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이라는 책 제목은 처음부터 내 시선을 끌었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제목이란 말인가. 얼마나 대단한 ‘스캔들’ 이길래 ‘읽기가 두렵고’ 얼마나 의학에 비리가 있길래 ‘젊은 의사가 고백’ 하냔 말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지금, 그렇게 심각한 ‘스캔들’ 로 느껴지진 않았다. 물론 작가가 독일 사람이다 보니까 독일 의학계와 우리 의학계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 수 있겠지만 이 책에는 내가 예상했던 ‘실수’ 에 대해서만 소개되어 있기에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단 느낌만 든다. 마치 예전에 읽었던 <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 처럼 말이다. 그 책도 학부모 입장에서 독일 교사를 비판한다고 쓴 글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 가르치는 입장인 ‘내’ 가 보기에도 - 정말 말도 안되는 ‘선생’ 들만 모아놔서 몇 장 펼쳐보다가 덮었던 기억이 있다. 그 작가도 독일인이던데 독일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이 너무 맞지 않는 건가.


<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 에서는 위생개념조차 없는 ‘선생’ (나도 ‘선생’ 이지만 돼먹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부른다 ^^; - 아이들 이야기 들어보면 학교 선생 중에 그런 사람이 많더라...물론 아닌 사람이 훨씬 많지만 말이다.) 이 나와서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바로 난리가 난다고 속으로 조소하면서...(누구를? ^^;) 하지만 이 책에는 그와 비슷하게 기본조차 없는 의사가 나온다.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환자’ 를 진심으로 미워하는 의사 양반처럼 말이다. 환자가 있기에 의사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을 그들은 모르는 걸까. 어쨌든 이런 왕 ***없는 (이런 표현을 용서해주시길 ^^;) 의사들이 판을 치지만 - 정상인 아기에게 머리가 너무 작다고 겁을 준 의사, 따스한 관심의 말을 구하는 환자에게 무뚝뚝하게 그리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의사, 수녀에게조차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의사 등등-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너무 일상적으로 보인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사실 의사들이 환자들을 귀찮은 짐짝 취급을 하는 것을 두고 뭐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의견이다. 물론 도의적으로 환자에게 친절하게 진료해주길 바라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 힘들다. 10년간 의학을 살인적인 스케줄로 죽어라고 공부‘만’-막노동판에서 돈이라도 벌어보든지 방문판매라도 해본다면 또 모를까. 사람은 돈을 벌어봐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한 사람에게 여유로운 마음이나 남을 배려하는 자비를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도 응급실에 있으면 거의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업무를 하는 사람에게 실수를 기대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실수’ 하는 것은 용인하면서도 유독 의사에게는 ‘신(神)’ 이 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 이 견해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까봐 미리 기대를 안 하는 내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 책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은 의사 ‘개인’ 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의료 시스템’ 전반의 문제점이 많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시간이 없어서 오진을 내리는 것을 두고 누구의 문제라고 할 것인가. 물론 진료하는데 천부적인 능력이 있거나 남들보다 더 연구를 많이 해서 오진을 거의 내리지 않는 의사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의사들도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인정’ 하는 것과 실수를 하고도 목이 뻣뻣한 의사를 보는 것은 다르지만^^;)


내 생각으로는 의사들을 양성하는데 조금 인성적인 부분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목이 뻣뻣한 인간 중에 하나이지만 5년차 가르치는 일을 하다보니까 아이들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정말 아이를 예뻐하면 예뻐할수록 더 예뻐보이더라. 나도 이렇게 나이들면서 더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워가는데 의사라는 인종은 뭐가 특별해서 다를까. 그들에게도 기회를 준다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대학병원같이 위계질서가 확실히 잡힌 곳에서 좋은 멘토를 중간 중간에 심어두어서 스승과 제자처럼 동고동락한다면 의사들도 친절을, 그것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환자의 안타까운 마음을 진심으로 동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가 부족한 현실을 어느 정도 개선해야겠지만.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선 괜한 치기나 자존심은 접고 두루뭉실하게 어디에서나 어울리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나도 그것을 배우는데 오래 걸렸다.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의사는 10년간 공부만 하다 갑자기 전문적인 의술을 가진 반 신(神)이 되어버리니 조금만 재능있거나 머리가 좋으면 목이 뻣뻣해져도 바꿀 수 없어진다. 그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 자기만의 성에 갇혀버렸기에 특별한 노력이 없는 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불안에 떨고 있는 환자의 마음을 말이다. 그 마음을 안다면 괜히 유식한 척 병명을 어렵게 늘어놓거나 통보만 하고 나가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의사’ 가 ‘인간’ 이 될 기회를 부여한다면 이런 문제는 점차적으로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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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 빠진 수법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6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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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 빠진 수법’ 이란 단어는 어딘가 식상하고 고루한 느낌이 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매력적인 단어이다. ‘수법’ 이란 단어를 말할 때 나는 다소 음흉한 느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해 빠졌기에’ 누구에게나 뻔할 수 있는 것, 그것들은 우릴 편하게 해준다. 왠지 어설프게 우릴 속이려하는 호객꾼을 만난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이 책의 제목인 <흔해빠진 수법>을 처음 보았을 때 머릿 속을 스쳐간 그림은 아주 평화롭고 행복해보이는 동화같은 모습이었다. 플라시보 시리즈를 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었는데 다른 이야기는 좋았지만(<변덕쟁이 로봇> 이란 작품은 너무 재미있었다. 허를 찌르는 예리한 통찰력!! ) 그 중 몇몇 이야기는 섬뜩하고 오싹해서 (그런 이야기는 머릿 속에서 잘 나가지도 않는다 ^^; - 특히, 나는 가족들이 다 잔 후에 책을 읽는다 --a)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느낌이 나는 이 책에 끌렸다.

 


내가 기대했던 <흔해 빠진 수법> 이란 단편은 맨 마지막에 나왔기에 읽은 걸 잘 마무리하고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이 내용은 정말 ‘흔해 빠진 수법’ 으로 돈을 줘서 고용한 건달이 오면 싸우는 척을 해서 이기고 그래서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건달이 진짜 건달이었다는 걸 알게 된 남자는 평상시에도 자기의 능력을 과신하게 되어 나중에는 회사 사장까지 된다는 이야기... 그런데 실은 그 진짜 건달들이 좀 거세게 연기한 고용인이었다는 것!! 이런 ‘흔해 빠진 수법’ 으로 정말 자신감이 생기고 인생이 술술 풀려간다는 것은 믿을 순 없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수긍할 수도 있을 것도 같다. 실제로 살다보면 ‘마음먹기’ 에 따라 일이 잘 풀리기도, 더 나빠지기 하지 않은가. 물론 그 ‘마음먹기’ 가 너무 어려워서 그렇지만. ^^;

 


이 소설집 중에는 현실을 비꼬는 내용도 많은데 곰곰이 읽으면 정말 실소가 터져나온다. <버리는 신(神)> 이란 소설에서 무슨 일을 해도 실패를 하고 마는 한 청년이 나온다. 그는 대학을 나와서 입사시험을 치르면 어떤 회사라도 족족 떨어져서 백수로 지내고 있는데 한 경영컨설턴트가 와서 그에게 일자리를 주었다. 그게 어떤 일이냐 하면 회사운영상황에 대해 체크를 하는 회사에서 그 체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판가름해주는 것이다. 그는 완벽히 ‘쓸모없는 사람’ 이기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부적격’ 으로 나오면 두둑하게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가끔 ‘부적격’ 이 아니게 나올 때도 있는데 그때는 꼭 살펴보면 중요한 부품이 고장났기에 더욱 그의 가치가 높아져갔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그를 아주 존경한다며 양성소를 세워 더 많은 사람들을 키워내자고 한 말로 이야기로 끝이 난다. 무엇을 비꼬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도 일단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 만큼 현실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든 소설이었다. 반전의 재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씁쓸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

 


짧은 소설이라서 읽는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고 그 감동도 길게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짧은 소설 하나 하나가 어떤 현상의 이면을 보여주기에 이 소설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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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인 마플이 죽었다
수잔 캔들 지음, 이문희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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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렬한 추리소설 애독자가 아니다. 그저 추리하는 것을 좋아할 뿐. 내가 마지막으로 추리소설을 읽었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얼룩 끈>이란 소설은 정말 내 흥미를 끌었지만 내가 추리소설을 읽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너무 유능한 홈즈의 능력 앞에서 내 추리능력은 너무나 보잘 것 없었고 미리 범인을 예상해보고자 머리를 굴리는 나에게는 좌절감에 빠지는 경험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바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내가 선택한 것은 책을 “보지 않는 것” 이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 선택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제 성인이 되어 추리소설을 갓 잡은 나는 주인공보다 먼저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그저 행간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복선’을 찾아보고자 애썼을 뿐이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범인을 먼저 추리하긴 어려웠다. 셜록 홈즈 때와는 달리 모든 실마리가 중간에 다 나왔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우리의 탐정 쎄쎄가 자신의 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추리소설에 입문한 나로서는 ‘애거서 크리스티’ 라는 여류 추리소설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녀에게 일어난 11일간의 실종사건은 전혀 몰랐다. 이 소설에는 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진행되는데 애거서의 남편인 아처가 이혼을 제시한 순간, 그녀는 사라지고 11일 이후에 발견된 그녀는 그 동안의 기억을 상실해 버렸다. 그 이야기의 실마리를 상상력으로 풀어가면서 또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제목은 애거서의 유명한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라는 제목을 따와서 <그리고 제인 마플이 죽었다> 로 지어졌다. 추리소설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나조차도 너무 흥미가 이는 제목이 아닌가.

 


그런데 처음에 이해하기에는 정말 어려웠다. 산만한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산만해서 처음에는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줄거리의 가닥을 잡아가는 중반부에 이르니 어느 정도 주인공에게 애착을 가지게 되어 그녀의 활약이 기대되었다. 일이 일어나는 장소는 ‘크리스티타운’ 이라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먼 조카뻘 되는 이안이라고 하는 사람이 만든 테마도시였다. 이 도시에서 추리소설가 쎄씨는 이벤트 기획자로 고용되어 애거서의 소설의 한 장면을 연기하기로 했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제인 마플’ 역을 맡은 리즈가 독살당한 것!!! 그런데 그녀의 남편 루는 그녀를 끔찍하게도 사랑했기에 더 큰 비극이었다. 그런데 루와 내연관계에 있었던 린이 용의자가 되어 감옥에 가게 된 것이었다.

 


이 살인사건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11일간 실종사건이 같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퍼즐이 맞춰질 수 있는 실마리를 나에게 던져주었는데 그것은 범인을 잡으려고 사방팔방 쑤시고 다니는 쎄씨와 그녀의 전남편과의 관계에서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자 그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질 수 있었다.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신비롭고 오묘해서 자기 스스로 기억을 조작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왜 눈치채지 못했지? 쎄씨가 스스로 묻어버렸던 기억, 애거서가 스스로 자신을 묻어버렸을 거라 추정되는 사건,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즈가 자신이 계획했던 각본을 본다면 아마 어떤 이는 이 소설의 결말을 아주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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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패러독스 - 기발한 상상력과 통쾌한 해법으로 완성한 경제학 사용설명서!
타일러 코웬 지음, 김정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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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이란 학문은 우리 생활에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만 해도 엄마의 잔소리를 견딜지, 내 방 옷장정리를 하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할지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하니 말이다. (이건 딴 이야기이지만, 웬일로 내 방 옷장정리에 관심을 갖으시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지난 9년간 그런 ‘관심’ 은 보여주시지 않으셨으면서^^;) 이런 문제만 보아도 고려할 일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엄마의 잔소릴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명백한 ‘명분’ 만 있으면 옷장정리를 하는 수고스러움을 조금 뒤로 미루어두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아니면, 엄마에게 잘 보여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 수고스러움을 조금 앞당기는 것도 좋을 것이고. 나로서는 야근이 밥 먹듯 계속된다는 ‘명분’ 이 있기에 엄마의 잔소리 폭격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ㅋㅋㅋ 물론 어느 정도는 내가 타협안을 마련했지만 말이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서의 ‘경제’ 문제는 굳이 ‘돈’ 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내가 소비하게 될 관심, 주의, 노동, 심리적인 안정 등 이런 감정적인 부분까지도 모두 관련이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내가 ‘써’ 버려야 할 것이 아닌가. 특히 우리가 ‘돈’ 을 쓰는 이유도 이런 것들을 만족시키기 위함이기에 당연히 이런 미묘한 부분을 더 신경써야 할 것이다. <경제학 패러독스> 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 재미있는 현상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여기에 나와있는 것들은 읽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우리네 인생을 조명해주고 있다. ‘경제학’ 이라는 포장을 가지고 있기에 조금 어렵다고 느낄 수는 있어도 사실 그리 어렵거나 한 책은 아니다. 특히 경제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다섯 개정도나 될까.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말 하나같이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그 중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제 5장 [위험하면서도 필수적인 자기기만의 기술]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평균보다 더 똑똑하고, 평균보다 더 안전하게 운전하며, 진정 평균보다 ‘나은 사람’ 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쟁자나 적의 도덕성이 더 월등하다든가 삶의 방식이 더 월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것을 보니 나도 기억이 난다. 나도 내가 나이를 먹고 조금 더 현명해지기 전에는 내가 아주 특별한 사람임을 굳게 믿었었다. 회사에서 능력있다는 칭찬을 받아도 (그게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일지라도 - 대부분 그런 경우가 많지만 ^^;)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였다. 남과 다른 독특한 부분은 나만의 개성이며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나의 개성을 무조건 받아들여줘야 한다는 아집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자기기만의 기술이 모든 사람들에게 - 특히, 나에게는 - 어느 정도 작용할 거라는 것은 깊이 이해한다.


이런 자기기만의 폐해는 분명히 있다. 사람들은 매일 다니면 분명 많은 절약을 할 거라는 자기기만 속에서 체육관의 비싼 월정액권을 산다. 하지만 통계상으로 보았을 때(분명 미국 통계다^^) 한 달에 4.3회 정도 들렀다고 하니 상당히 비싼 값을 주고 체육관을 다니 것이다. 만약 10회 이용권을 구매했다면 그만큼 더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또한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고수한다는 점도 들 수 있다. 분명 혼자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보다 시간을 훨씬 많이 소비하는 데도 그런 회의를 계속 하는 이유는 혼자 있을 때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면 스스로가 한심해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브레인스토밍 회의 때 아무런 발언이나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더라도 그저 그 발언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뭔가 성과를 낸 것처럼 생각할 수 있기에 자신이 유능하다고 자기기만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쓴다.


그러나 이런 자기기만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술이기는 하다. 극단적인 예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세상에서의 자기 입지에 대해 보다 정확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여러 면에서 자신이 평균 이하임을 금세 깨닫는다. 그러니 약간의 자기기만은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이전보다 더 멋지고 성공한 삶을 만들어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자신의 일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일을 더 열심히 하려고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자기기만을 통제할 수 있을 때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저지르는 자기기만에는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하나는 더 중요한 일을 외면하기 위해 소일거리로 채우는 것과 다른 하나는 아예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중요한 전화를 하거나 지붕을 고치는 등의 아주 중요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사소한 일들을 하고 그것을 다 끝내 뿌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전자의 경우라면 아이들이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성적을 낮게 받아오면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거리를 만드는 것이 후자의 경우이다.


나는 전자의 경우처럼, 대부분 제안서를 쓰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다른 소일거리로 내 일상을 채운다. 강박적일 정도로 소일거리를 진지하게 수행하는데 대부분 가벼운 소설을 읽는다. 로맨스나 칙릿같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소설에 몰두하면서 있지도 않는 사유를 끄집어내어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내가 즐겨하는 자기기만 행동이다. 어떻게든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될 거라고 자기최면을 걸어 내가 다른 생각은 절대로 못하게 한다. 지나고 보면 정말 한심한 순간이지만 그 때에는 그것이 정말 달콤한 걸 어쩌겠는가. ^^; 그리고 학창시절에는 후자의 경우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변명거리를 열심히 만들었던 것도 바로 자기기만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음, 아무래도 그 때 자기기만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를 만들어내야겠어...


너무 없어서도 너무 지나쳐서도 안 되는 자기기만의 기술을 알고 나니 내 삶이 좀 더 다르게 보인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그냥 한 행동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 의해서 하게 된 행동이라는 것이 참 새롭다. 어찌되었든 ‘나’ 는 ‘나’ 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걸 알고 나니 ‘내’ 가 대견스럽고 기분이 은근히 좋아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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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말을 걸다 - 밥상에서 건져 올린 맛있는 인생찬가
권순이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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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좋아하는 한문 선생님인 그녀는 내가 부러워할 만큼 요리를 잘 하지만 글도 너무나 맛깔스럽게 쓴다. 반짝이는 표지의 이 책을 열어보았을 때부터 감탄사가 떠나지 않았다. 너무나 예쁜 표지에 한 번 놀라고 너무나 맛나게 쓰는 우리말 표현에 놀라고 (서평을 쓰는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부러운 일 수 밖에^^;) 그리고 너무나 정성들여 만드는 그녀의 요리 방식에 놀랐다. 여기에 그녀의 놀라운 글솜씨를 한 번 인용해보았다.

 


가끔씩 배가 출출하고 입이 궁금할 때, 햇살이 투명하고 초록이 눈부실 때,

마음이 헛헛하고 쓸쓸할 때, 엄마의 김밥이 생각납니다.

그 김밥을 입에 넣으면 고슬하고 야드레한 밥의 느낌이 혀에 전해졌습니다.

속에 넣은 재료들과 알맞게 간이 밴 밥이

조화를 이뤄 쫀득쫀득 탄력이 느껴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너무 좋았어요. - p. 32

 


정말 날이 맑으면 햇살이 투명하고 초록이 눈부시지만 그렇게 표현할 글재주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나에게 이 책은 너무 신선하게 다가왔다. 맛의 형용은 또 어떤가. 고슬하고 야드레한 밥의 느낌이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내 입안에서 느껴지는 듯 황홀하다. 역시 글쓰기는 하늘에서 내려준 능력이 틀림없는 것 같다.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나로서는 그런 황홀한 표현은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못할 테니. ^^;

 


작가는 이 책에서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음식이야기과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음식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인생과 사랑, 추억, 아픔, 고통에 대해 말한다. 그 중 “무” 예찬이 가장 인상깊었다. 평소 무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특히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나는, 무가 깍두기일 때, 각종 찌개에 넣었을 때가 가장 맛있다는 것쯤은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생존은 본능이니까. ㅋㅋㅋ 그런데 그는 그런 맛있는 “무”에 대해서 좀더 깊게 생각했다.

 


이 무라는 것이 된장찌개에 들어가면 된장찌개 맛이 배고

고기찜에 들어가면 고기 찜 맛이 배고 생선찜에 들어가면 생선찜 맛이 배서

그럴 수 없이 맛있는 음식이 되더군요.

그렇게 자기 색이 없는 듯하면서 다른 어떤 것과도 잘 어울리는 무의 성질이 참 배울 만하지 싶습니다.

 


가끔 직장에서 이런 무 같은 벗들을 만납니다.

처음엔 곁에 있는지조차 느껴지지 않지만 안개비처럼 소리 없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더니

어느새 마음속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한 벗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천천히 아름답게 할 테지요. - p.106

 


정말 인생은 오래도록 살아야 맛이 나는 것 같다. 이런 멋들어진 글을, 생각을 할 줄 아는 작가도 이런 생각을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낸 것은 아닐 테니까. 평범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그 안에서 있었던 작은 기쁨, 작은 소망, 작은 깨달음을 오랜 시간 갈무리한 다음에야 이렇게 주옥같은 명구절들을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일 테니까 말이다.

 


나도 작년 어느 순간에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작은 내 행동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것이 두려워서 ^^; - 하루하루 사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자다가 말고 울다가 머리를 쥐어박다가 했던 적이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그렇게 하고 나니까 나 자신에 대한 모든 포장이 벗겨지고 그 안에 있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자기는 그리 뛰어나지도 완벽하지도 않으면서도 남은 뛰어나고 완벽하길 바라는 오만덩어리에, 기분에 따라 사람들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하는 괴팍한 성격에, 툭툭 내뱉는 말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내는 것은 예사이면서도 자기는 솔직하다고 음흉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뻔뻔함까지!!! 그 모든 것을 두루 갖춘 나는 모든 위선이 모두 벗겨진 날, 도저히 구제받을 길이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능력없다고 무시했던 사람들, 너무 조용해서 존재감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들, 자기 의견조차 똑바로 말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이, 사실은 오히려 더 능력있고 더 존재감 있고 더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았다. 뛰어나고 대단한 인물이 되는 것만이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 자기 일에 성실하게 하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성공한 인생이라고.

 


이 책의 제목인 <음식이 말을 걸다>는 정말 철학적인 제목이다. 음식이 작가에게 말을 걸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음식과 동고동락을 했었을까. 그것을 생각해보면 인생은 살아간 만큼 얻고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내가 깨달았던 인생의 의미도 사실은 내가 열심히 살아왔기에 그나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런지. 그럴 거라고 믿고 그렇게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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