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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패러독스 - 기발한 상상력과 통쾌한 해법으로 완성한 경제학 사용설명서!
타일러 코웬 지음, 김정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경제학’ 이란 학문은 우리 생활에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만 해도 엄마의 잔소리를 견딜지, 내 방 옷장정리를 하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할지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하니 말이다. (이건 딴 이야기이지만, 웬일로 내 방 옷장정리에 관심을 갖으시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지난 9년간 그런 ‘관심’ 은 보여주시지 않으셨으면서^^;) 이런 문제만 보아도 고려할 일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엄마의 잔소릴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명백한 ‘명분’ 만 있으면 옷장정리를 하는 수고스러움을 조금 뒤로 미루어두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아니면, 엄마에게 잘 보여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 수고스러움을 조금 앞당기는 것도 좋을 것이고. 나로서는 야근이 밥 먹듯 계속된다는 ‘명분’ 이 있기에 엄마의 잔소리 폭격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ㅋㅋㅋ 물론 어느 정도는 내가 타협안을 마련했지만 말이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서의 ‘경제’ 문제는 굳이 ‘돈’ 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내가 소비하게 될 관심, 주의, 노동, 심리적인 안정 등 이런 감정적인 부분까지도 모두 관련이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내가 ‘써’ 버려야 할 것이 아닌가. 특히 우리가 ‘돈’ 을 쓰는 이유도 이런 것들을 만족시키기 위함이기에 당연히 이런 미묘한 부분을 더 신경써야 할 것이다. <경제학 패러독스> 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 재미있는 현상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여기에 나와있는 것들은 읽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우리네 인생을 조명해주고 있다. ‘경제학’ 이라는 포장을 가지고 있기에 조금 어렵다고 느낄 수는 있어도 사실 그리 어렵거나 한 책은 아니다. 특히 경제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다섯 개정도나 될까.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말 하나같이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그 중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제 5장 [위험하면서도 필수적인 자기기만의 기술]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평균보다 더 똑똑하고, 평균보다 더 안전하게 운전하며, 진정 평균보다 ‘나은 사람’ 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쟁자나 적의 도덕성이 더 월등하다든가 삶의 방식이 더 월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것을 보니 나도 기억이 난다. 나도 내가 나이를 먹고 조금 더 현명해지기 전에는 내가 아주 특별한 사람임을 굳게 믿었었다. 회사에서 능력있다는 칭찬을 받아도 (그게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일지라도 - 대부분 그런 경우가 많지만 ^^;)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였다. 남과 다른 독특한 부분은 나만의 개성이며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나의 개성을 무조건 받아들여줘야 한다는 아집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자기기만의 기술이 모든 사람들에게 - 특히, 나에게는 - 어느 정도 작용할 거라는 것은 깊이 이해한다.
이런 자기기만의 폐해는 분명히 있다. 사람들은 매일 다니면 분명 많은 절약을 할 거라는 자기기만 속에서 체육관의 비싼 월정액권을 산다. 하지만 통계상으로 보았을 때(분명 미국 통계다^^) 한 달에 4.3회 정도 들렀다고 하니 상당히 비싼 값을 주고 체육관을 다니 것이다. 만약 10회 이용권을 구매했다면 그만큼 더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또한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고수한다는 점도 들 수 있다. 분명 혼자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보다 시간을 훨씬 많이 소비하는 데도 그런 회의를 계속 하는 이유는 혼자 있을 때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면 스스로가 한심해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브레인스토밍 회의 때 아무런 발언이나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더라도 그저 그 발언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뭔가 성과를 낸 것처럼 생각할 수 있기에 자신이 유능하다고 자기기만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쓴다.
그러나 이런 자기기만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술이기는 하다. 극단적인 예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세상에서의 자기 입지에 대해 보다 정확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여러 면에서 자신이 평균 이하임을 금세 깨닫는다. 그러니 약간의 자기기만은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이전보다 더 멋지고 성공한 삶을 만들어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자신의 일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일을 더 열심히 하려고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자기기만을 통제할 수 있을 때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저지르는 자기기만에는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하나는 더 중요한 일을 외면하기 위해 소일거리로 채우는 것과 다른 하나는 아예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중요한 전화를 하거나 지붕을 고치는 등의 아주 중요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사소한 일들을 하고 그것을 다 끝내 뿌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전자의 경우라면 아이들이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성적을 낮게 받아오면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거리를 만드는 것이 후자의 경우이다.
나는 전자의 경우처럼, 대부분 제안서를 쓰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다른 소일거리로 내 일상을 채운다. 강박적일 정도로 소일거리를 진지하게 수행하는데 대부분 가벼운 소설을 읽는다. 로맨스나 칙릿같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소설에 몰두하면서 있지도 않는 사유를 끄집어내어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내가 즐겨하는 자기기만 행동이다. 어떻게든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될 거라고 자기최면을 걸어 내가 다른 생각은 절대로 못하게 한다. 지나고 보면 정말 한심한 순간이지만 그 때에는 그것이 정말 달콤한 걸 어쩌겠는가. ^^; 그리고 학창시절에는 후자의 경우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변명거리를 열심히 만들었던 것도 바로 자기기만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음, 아무래도 그 때 자기기만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를 만들어내야겠어...
너무 없어서도 너무 지나쳐서도 안 되는 자기기만의 기술을 알고 나니 내 삶이 좀 더 다르게 보인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그냥 한 행동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 의해서 하게 된 행동이라는 것이 참 새롭다. 어찌되었든 ‘나’ 는 ‘나’ 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걸 알고 나니 ‘내’ 가 대견스럽고 기분이 은근히 좋아지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