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에세이 - 과학, 인간과 사회를 말하다
홍성욱 지음 / 동아시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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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과학에 관한 책이 재미있다고 느꼈던 건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읽고 부터다. 그 책은 에세이형식으로 되어있지만 내용면에서 보면 상당히 어려운 책이었다. 분자가 생명에 비해 왜 이리 작은가? 세균과 바이러스의 크나큰 차이는 무엇이고, 왜 바이러스를 생명이라고 부를 수 없는가? 등 내 호기심을 잘 꼬집어 주면서 알기 쉽게 -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해서 보다 보니까 알기 쉬워지더군 - 설명해주어서 평소 과학 중에 생물을 좋아했던 내겐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야말로 과학의 세계의 풍덩 빠져들어갔다. 그래서 두 번째로 도전한 책이 <물리학의 산맥>이었다. 최지범이란 과학 영재가 쓴 책인데 역시 고전물리학만 재밌단 생각과 특수 상대성이론은 너무 개념이 독특하다는 결론만 내린 채 끝났다. 역시 물리는 어려웠어~ 그런데 이번에 만난 책은 과학과 사회, 고학과 인간의 관계를 잘 조명해준 책이었다. 단순히 어려운 과학 공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회에 적용하고 과학자들은 어떤 자세로 과학을 연구해야 하는지 등 문외한인 나에게도 너무나 쉽게 전달해준 책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신기했던 건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과학사라는 과목이 어떤 분야의 과학이 발전될 수 있었던 역사를 보전하고 추적하고 그것으로 미래를 예측해보는 학문이라는 것이였는데 너무 매력적이었다. 나 처럼 과학에 문외한이어도 그런 학문은 참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 만큼.

 

이 책은 총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 현대 사회와 과학 기술], [제2장 과학과 창의성], [제3장 누구를 위한 과학기술인가], [제4장 문화, 사회, 역사에 대한 단상들]이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짧으면서도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이론이나 근거를 설명해준다. 특히 좋았던 것은 광우병 파동에 대한 이야기이다. 광우병이란 게 정확히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외국 소고기는 먹지 말아야겠구나 했던 나는 이것을 보면서 그리 큰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그럼에도 국민들의 반응이 최악인 것은 정부의 대응 방식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더라도 수천만번을 먹어야 확률 1로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데 이것은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인 800만분의 1,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인 100만분의 1보다 훨씬 더 적은 확률이란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지 못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이명박 정부가 애초부터 쇠고기 수입 협상과 관련된 정보를 숨기고, 또 기준에 대해서 수차례 말을 바꿈으로써 불신을 초래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의 위험 인식을 오랫동안 연구한 폴 스로빅은 사람들이 끔찍한 결과, 미지의 정도. 위험에 노출된 사람의 수에 비례하여 위험을 체감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런데 이 때 위험 정책을 관리한다고 전문가들이 나와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잘 홍보하면 주관적인 위험이 소멸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생존 본능이기에 절대 그렇게 잠재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지....

 

이렇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항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도 과학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가 역시 마음이 끌린다. 처음에 나왔던 이야기는 세계 10대 철학자들이 얼마나 과학을 사랑했는지에 관해서이다. 지금 과학도와 철학에 대해 논해보자고 한다면 하나같이 의아해하거나 도망가버릴지 모른다. 그만큼 인문계열과 이공계열이 확실하게 구분지어져 있는데 사실은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도 어린 시절 부터 칸트에 심취해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이 세 시리즈를 다 독파했고 그가 노벨상을 타게한 상대성 이론과 광전효과, 브라운운동의 세 논문을 쓸 때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에 다닐 때도 그리 특출나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은 이론물리학보다는 실험물리학과 과학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고 졸업을 하고도 몇이 모여서 '올림피아 아카데미'라고 하는 독서, 토론 클럽을 했을 정도로 철학에 심취했던 사람이다. 그도 말하길 칸트와 흄에 대한 천착이 없었다면 상대성 이론의 해법에 도달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니 정말 철학적 사고, 철학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런 사례를 들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과학자들이 하는 연구가 나중에 어떤 파급효과를 나타낼 것인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연구한다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말 똑똑하다는 과학자들에게 철학을 연구해야 한다고 하면 하나같이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니..엉뚱한 소리나 늘어놓고 있으니 참... 이런 문제는 꼭 정부와 대학 당국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공계 학생들의 교양필수과목으로 넣었으면 한다. 과학도로서 사회에 책임을 느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한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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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미로
엠마 캠벨 웹스터 지음, 하윤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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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잘생기고 용감한 왕자가 괴물에게 끌려간 공주를 구하는 게임북을 본 적이 있다. 아름다운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미로를 찾아가야 하고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온갖 상식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했다. 이 책도 바로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는 재능, 행운, 두뇌, 인맥, 자신감이라는 다섯 영역에서 점수를 매겨놓고 시작하는데 책을 따라가며 열심히 점수들을 더해봤지만 마지막에서 보니 점수는 별로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독자를 우롱한 처사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거 계산하느라 머리 아팠다구~~- 그래도 구성이나 내용이 나름 괜찮았기에 이번만 용서해주기로 하였다. ㅋㅋ 그런데 정말로 몇 가지만 고치면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책이 될 것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특히나 제인 오스틴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쓰는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나 뭔가를 풀어내고 맞추고 하는 승부욕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 이것도 엄마네? - 누구나 흥미로워할 수 있을 것이다(흠..엄마에게 한번 빌려줘봐야겠군!!). 왜냐하면 이 책의 주된 줄거리는 그 유명한 <오만과 편견>이지만 사이드 줄거리도 또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인 <맨스필드 파크>나 <엠마>, <사랑과 우정>, <이성과 감성>, <노생거 사원>, <설득>, 그리고 클레어 토말린이 쓴 <제인 오스틴의 생애>를 참조해서 썼기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빠져들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선택이 시작된다. 총 5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은 빙리와 다아시가 무도회장에 도착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처음부터 안 좋았던 것은 다아시의 낯가리는 성격과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말을 들어버린 것 - 엘리자베스의 미모가 자신을 끌만한 수준이 못된다는 것.. 으악!! 나 같았어도 도망갔겠당~~ - 때문이었는데 엘리자베스는 이 말을 마을 사람들에게 우스개처럼 바꿔버렸지만 본인은 얼마나 마음이 쓰라렸을까? 그런데도 당당히 그에게 도전하고 재치있게 대응한 것은 정말 칭찬할 만하다. 아마 엘리자베스도 다아시를 본 첫눈에 호감이 생겼을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그 일이 끝나고 빙리 양에게 호감을 산 제인 언니가 말을 타고 그 집을 방문하다가 감기에 걸려 오지 못하고 있을 때 엘리자베스가 걸어서 찾아간다. 그 때 처음으로 퀴즈가 나온다. 얼마나 두렵던지.. 그런데 갈림길에서 아무런 단서를 주지도 않고 - 예를 들어, 영국의 지도나 상식에 의거해서 판단할 만한 걸 주고 나서 - 선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직관적으로 왼쪽 길과 오른쪽 길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 아, 아쉽게도 나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이 시작한지 몇 분만에 아작났다. 이렇게 운으로 인생이 결정짓는 것은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내가 그 길에 걸려들었기 때문에 야속한 마음이 들어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로!! 웃자고 장난쳤는데 죽자고 덤벼든다는 말을 들어는 봤나! 재미있자고 책을 펼쳐들었는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게임 오버라니... 이게 바로 독자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나 상처받았어~~~~뒷 부분에 다른 사이드 줄거리로 잘 진행된 것처럼 왼쪽을 가든 오른쪽을 가든 힘들게 가거나 쉽게 가거나, 운명의 남자를 만나거나 못만나거나, 도움을 받거나 못받거나 등으로 수위를 조절해주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런데 내 못된 버릇 중 하나라 호기심을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A라고 생각한다면 112페이지로 가시오. B라고 생각한다면 178페이지로 가시오. 라고 나와있으면 내가 선택할 번호를 마음에 담고서 양 쪽 다 가보고 다시 돌아오는데 한번으로 사이드 줄거리에 한참을 빠지다가 왔기에 내용이 잘 연결되지 못했다. 나야 물론 오매불망 다아시를 맘에 두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사람과도 연결되지 않길 바랐지만 어떤 결말은 엘리자베스가 다이시의 사랑고백을 무참히 짓밟고 제인 오스틴의 다른 남주인공과 해피앤딩을 이루는 내용도 있었다. 하긴 다아시 정도 되는 가문에서 위컴과 관련된 스캔들이 난 집안과 연결된다는 발상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좀 아쉬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좀더 다양한 결말이 나오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가 있으니 반길 일이지 실망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본 것은 딱 한 사례밖에 없어서 다아시랑 연결되는 것 말고 다른 남자랑 연결되는 게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총 여덟 권의 스토리를 섞어서 하니까 해피앤딩도 여덟 번은 뭐하더라도 네 번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미로 속을 헤매보면 다른 결말도 있는지 찾아볼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딱 두개다.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청혼을 받는데 그 상황이 참 재미있다. 다아시가 눈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말이다. ㅋㅋ 한 가지 더 바라는 점은 실제 제인의 상대였던 톰 르프로이와의 해피엔딩을 그리는 것이다. 내가 본 것은 그의 학업이나 가족 형편 때문에 연결되지 못했지만 행운이나 두뇌가 어느 정도 따라줘서 나중에라도 그녀와 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보고 싶다. 예전에 읽었던 <제인 오스틴>이란 책에서 그녀의 실연이 너무나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나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제격이다. 다아시가 그녀와 산책을 했을 때 다시 한번 고백하는 장면은 역시 내 마음을 울린다. 앙~ 나도 그런 사람 만나고 싶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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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즐거움 -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들려주는 앤솔러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현 외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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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땐 그 두께에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파트 10까지 구성되어 있어 내용도 많은 데다가 한편 한편이 아주 짧긴 하지만 일단 그 두께를 보면 기가 질리는 것은 누구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 두께에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첫 장부터 읽다가 내용도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어이없는 내용을 진지한 투로 전개해나갈 때 정말 힘들었다. 그러다가 해머튼의 출생년도를 보고 나서야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늘어놓느라 힘을 빼놓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글도 훨씬 쉽게 읽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의 출생년도는 1834년이다. 그러니 거의 160년이나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보니까 자신은 대단히 혁명적인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는 것처럼 고루하고 진부하게 - 다르게 말하면, 감정의 개입없이 착실하게 - 지금은 거의 상식적인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저자에 대해 측은함이 들면서 내가 읽다 막힐 때 책을 집어던진 것을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그땐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우와~ 대단하네!! 그것까지 알고 있었어? 그러고나니깐 그의 시대와 우리 시대를 비교해서 이해하게 되고 소위 사교계라는 무대가 있는 그의 나라인 영국의 세계와 그런 것이 없는 한국의 평범한 나의 세계를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 딱딱하게 너무 지적으로 적은 그의 문체가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메모를 놓해 그의 사상을 남겨놓기까지에 이르렀다. 물론 내 기억을 못 믿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러다가 그의 시대에서는 여성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까지 알 수 있었기에 내심 20세기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의 책은 한 마디로 지적 노동자에게 사색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지적 생활을 쉽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육체적 기반, 정신적 기반, 교육, 시간, 금전, 결혼, 교제와 고독, 지적 즐거움, 직업과 천직, 환경, 총 10파트에 아우르는 것을 충고해주는데 그 표현이 독특하다. 편지글이니깐... 처음엔 이것도 엄청 열받은 것 중의 하나였다. 도통 누구에게 편지를 하는지 몰랐으니깐. 그런데 소제목에 씌인 대상에게 편지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자마자 처음보다 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41페이지에 나오는 [운동을 싫어하는 지적 노동자에게..]라고 쓰인 부분에서는 '당신'은 바로 '운동을 싫어하는 지적 노동자'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가리키는 줄 알고 나도 그건 안다고~~~를 연발하며 책을 집어던졌더랬다. 얼마나 열받았을지는 상상도 못할거다. 장장 2주를 이 책을 가지고 씨름을 했으니깐. 뭐, 중간 중간에 다른 책을 읽기도 했지만.

 

지적 생활을 하는 사람은 점차적으로 운동을 해서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연구를 계속하라고 하기도 하고, 결혼을 할 때는 자신과 지적인 활동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을 고르는 것이 좋다는 것, 돈이 없으면 푼돈을 벌기 위해 귀중한 연구를 할 시간이 빼앗긴다는 것을 제시해주면서 풍족한 사람들이 그런 연구자들을 후원해야 한다는 등 다방면에 걸쳐서 조심스레 충고해준다. 이때 이 사람의 문체도 대단하다.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대충 읽어가면 그게 무슨 의도로 전달한 것인지 전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에서 말이다. 가장 독특한 점은 그 시대에서 활동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러셀이나 스콧, 괴테, 셸리, 워즈워스, 바이런 같은 문학가나 앵그르, 터너 같은 화가의 예화를 거침없이 들어주면서 우리에게 충고를 해준다는 점인데 내가 그들의 이름 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생활환경을 모조리 아는 동시대의 사람이었다면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그것이 아니였기에 나는 별천지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뭐, 읽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시간을 두고 한 파트씩 읽어나가면 나도 소위 말하는 지적 노동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니깐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짚어 넘어가야 할 것은, 저자가 바라보는 즉, 그 시대가 바라보는 여성의 지적인 면에 대해서다. 그가 말하길, 아니 그 시대가 말하길 여성은 혼자서는 스스로 지적인 작업에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그것인데 정말 읽으면서 어이없었다. 물론 시대가 시대니만큼 그 시대에서는 그 말을 듣고서도 가만히 있는 여성들이 많았겠지만 너무 차별적인 것이 아닌가.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남성들은 라틴어를 배우고, 여성들은 프랑스어를 배우도록 하는 등 차별적인 교육을 받게 했으면서 여성에게 지적인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무시해버리긴... 더군다나 여성 중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주변에는 그런 여성을 이끌어주었던 남성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에선 완전 돌아버렸다. 그야 당근 지적인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 새로운 발견을 하거나 연구를 할 수 있었겠지만 워낙 받을 수 있었던 교육의 한계로 주변에 있던 사람이 남자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상황이 달라서 여성은 지적인 활동을 하게 하고 남성에겐 집안일을 하게끔 했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세상의 위인은 다 여성이지 않았을까. 저자도 말하길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는 아예 없었다고 하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마는 억울한 건 억울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나에게 어떤 책이든 능히 읽을 수 있는 인내심과 지적 호기심이 있었다는 것과, 세상에는 내가 읽어봐야할 고전이 많이 쌓였다는 것과,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작가와 화가가 많이 있다는 것과, 160년 전의 영국에서도 여성을 하대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일단 다시금 이 책을 들여다보면서 예화로 들려준 많은 작가와 화가를 모아보고 그들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수고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그가 들어주었던 예화 중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예를 들어, 바이런이 부도덕하다는 것이나 셸리가 신심이 없었다고 하는 것 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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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미겔 루이스 몬타녜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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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대륙 발견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바로 그 유명한 콜럼버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콜럼버스라 하면 인도를 발견하러 갔다가 아메리카를 발견해낸 항해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그의 일생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니 정말 금시초문이었다. 그런데 뭐, 그가 발견한 나라가 우리나라도 아니고 저기 멀리 떨어진 적도 부근에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이란 듣도 보도 못한 곳이다 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흠흠.. 그의 미스터리란 무엇인고 하니 일단 서명에 있다. 독특한 그의 서명은 X자 위에 S를 쓰고 M자 위에 A, 그리고 A자 위에 S가 있으며, 사선과 점이 삽입되어 있는데 유언장에 이 서명의 방법을 제시하면서 상속권을 물려받는 사람은 무조건 이 서명을 쓰라고 명시해놓았다고 하니 정말 미스터리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항해술은 정말 남다른 면이 있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남은 기록을 보면 산토도밍고의 해변 앞에서 폭풍우가 몰아칠 것을 미리 알고 그 당시 총독에게 미리 경고했지만 그의 경고를 무시한 총독은 스무 척의 배를 띄웠는데 다 침몰했고 그의 배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하여튼 간에 그는 항해술에 있어서만큼은 거의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그 외에도 그의 미스터리는 더 있다 하니 차차 보면 좋겠다.

 

이 소설은 처음에 콜럼버스 제독의 유해가 도난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것도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토도밍고에 있다는 유해와 스페인 세비야 성당에 있다는 유해 모두 말이다. 여기서도 콜럼버스의 미스터리가 나오는데 그처럼 대단한 발견을 한 콜럼버스의 유해가 정확히 어디에 묻혀있는지조차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미니카 공화국과 스페인은 서로 자기가 보관하고 있는 것이 제독의 유해라고 우긴다니 참... 어쨌거나 제독의 유해를 훔쳐간 사람들은 무덤 앞에 그의 서명을 남기고 가는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미니카 공화국 경찰서의 과학수사 팀장인 에드윈과 문화부 장관인 알타그라시아, 스페인 과학수사 경찰관이자 교수인 안드레스가 모이고 이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타그라시아가 깊이 존경하는 교수님의 의견을 참고하기도 하고, 여러 박물관에 가서 제독에 대해 연구한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하고 비석이나 기념물이란 기념물은 다 섭렵하기 위해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토도밍고에서 스페인의 세비야로, 다시 마드리드로, 이탈리아의 제노바로, 미국의 마이애미로, 파나마로 이동하며 일을 진행시킨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옆에 지도가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조차 어디있는지 모른 상태에서 책을 읽으려니까 참.... 다음 번에는 소설 중간에 지도가 들어가주면 더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기에 나온 문헌이나 비석에 새겨진 문구, 콜럼버스의 서명 등은 모두 실제 자료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것을 강조하고 싶으면 흑백이라도 사진을 넣어줬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 밝혀두기 부분을 읽었는데 소설을 읽기 전에 보는 것과 다 읽고 보는 게 상당히 큰 차이가 있었다.

 

어쨌든 이 사건의 목표는 단순 절도가 아니라 콜럼버스의 보물을 찾는 것이 목표라 할 수 있었다. 나 같으면 이런 사건에서는 딱 감이 왔을 텐데 워낙 고고하신 학자, 교수들이 주인공이다 보니까(에드윈은 빼고...그래서 그가 젤 맘에 들어!!) 그런 쪽으로 생각을 못 했는지 계속 자료만 조사하다가 끝이 난다. 사실 저자가 콜럼버스의 가장 참혹했던 네 번째 여행길을 따라가는 과정 속에 이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그래서 그의 실제 문헌으로 책을 쓰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니 자료가 많이 나와주는 것이 당연지사이지만... 많은 보물 사냥꾼이나 콜럼버스의 보물을 노리는 사람들의 후예조차 찾지 못했던 자료를 찾아내는 과정 속엔 좀 작위적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 그들은 전혀 보물의 존재조차 몰랐으므로...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통하는 끌림이라는 부분.....그 매혹적이고 달콤하고 아린 그 부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아쉽게도... 여기에서 가장 많이 자기 속마음을 보여준 사람은 그나마 에드윈 뿐인데 왜 그가.... 어흐흑... 끝은 보시라~~~ 무미건조한 사람의 표본이 바로 안드레스인데 뭐, 나도 그를 실제로 봤으면 반했을 수도 있겠지만 인간미가 너무 떨어지잖아~~~ 왜 이리 포커페이스인 거야~~~~

 

결론은 어찌 되냐면 당근 보물을 찾는데 그게 컴퓨터에 모든 자료를 다 집어넣어서 콜럼버스가 버린 배를 찾는다. 에이~ 이젠 보물을 찾기 위해서도 컴맹은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재미없단 생각도.... 그런다. 하지만 보물을 찾았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끝까지 봐야할 것이다. 요런 <인디아나존스> 같은 책은 그다지 보진 않는데 요건 맘에 들었다. 다시 한번 사진과 지도와 대조해보며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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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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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펄이 들어간 앙증맞고 예쁜 책을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사르르 녹아버렸는데...너무 녹아버려서 그랬을까...?

그다지 박진감있거나 내가 기대했던 만큼 음모가 치밀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도 뭔가가 더 있어야 한 거 아니야 란 생각에 한동안을 멍하게 있었더랬다.

 

이 이야기는 왕을 전복시키려는 세력 중 고위급 정도되는 반역가 네명이 단두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위해 감옥에 도착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이름은 콜라도 인가푸 남작, 살림베니란 시인, 군인인 아제실라오 델리 인체르티, 나르시스 루치로라라는 학생인데 각기 종사하고 있는 분야나 관심사, 재능은 너무 다르지만 그들이 국왕을 암살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뭉친 것이다.

 

사형수들은 죽기 바로 전날에는 감옥이 아니라 발코니도 있고 탁자도 있고 침대도 있는 콘도 같은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그 감옥을 관리하고 있는 사령관이 와서 그 넷이 모시는 '불멸의 신'에 대해서 자백을 하면 - 누구 한사람만이라도 - 네 사람 모두를 풀어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하루 밤 동안 생각을 하라면서 종이와 펜, 상자를 두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들어온 그 곳에는 그들 말고 다른 사람도 있었다. 치릴로 수도사로 악명 높은 강도였다. 그들도 그를 포섭해서 혁명하는 데 도움을 받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는데 고문을 받고 쓰러졌는지 사람이 들어와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푸짐한 저녁 식사를 하고 -그렇다고 많이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발도 하고 깨끗이 씻고 난 다음에 감옥이 아닌 일반 침실로 들어온 네 명의 동지들은 죽음이 눈 앞에 다가온 것을 느끼자 당혹스러워 했다. 또한 두려워했다. 특히 학생인 나르시스는 감옥에 들어왔을 때 부터 징징댔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치릴로 수도사의 제안으로 네 명의 동지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의 인생 중에서 행복했던 일이나 자기에 대한 변론을 하기로 했다. 여기서가 중요하다. 진짜이든지 가짜이든지 상관없다는 단서가 있었기에....

 

그렇다고 처음부터 거짓이 나오고 그 거짓을 풀어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른 사람이 시작하고... 그저 죽기 전에 떠올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먼저 학생인 나르시스가 집을 나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고 두 번째로 남작이 이 일에 헌신하게 된 동생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세번째로 군인인 아제실라오가 수도원에서 살다가 군인이 된 사연을 풀어내고 마지막으로 살림베니란 시인이 -이 사람의 진짜 직업은 복잡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했는데 표면적으론 시인의 이야기만 거짓이었다. 치릴로 수도사가 그 거짓을 말끔하게 풀어냈다.

 

나는 처음부터 이 네 사람이 구원을 받길 바랐기에 빨리 그 이름을 말하고 살아나길 기대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네 개의 이야기 속에 그 사람이 누군지가 암암리에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단서를 가지고 그가 누구인지를 찾아내면 되는데 처음부터 내겐 불리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거기에 나오는 사람을 내가 전부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네 명의 동지들 중에 하나가 아니라면 내가 무슨 수로 '불멸의 신'을 찾아낸단 말인가. 어쨌든 마지막엔 모든 것이 밝혀진다. 그가 누군지...그는 또 누군지...가장 중요한 것!!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까지....

 

 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멸의 신'이 누구인지보다 네 주인공의 목숨이 더 중요해서 그런지 이 글이 의도하는 바대로 따라가지도 못했고 그것이 밝혀졌어도 어! 정말 그랬어? 예이~ 속았잖아...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가 초점을 놓쳤던지 저자가 어색하게 썼던지 둘 중 하나일 텐데 나로선 잘못이 없단 말을 꼭 밝혀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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