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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모던뽀이들 - 산책자 이상 씨와 그의 명랑한 벗들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내가 이상에 대해 아는 것은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로 시작되는 시 「오감도」 중 시제1호와 소설 「날개」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중고 자습서에 실렸거나 어느 책에서인가 봤거나 했던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라고 시작되는 시의 제목이 「오감도」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 시는 시의 내용처럼 읽는 나도 무섭게 했다. 불안감과 공포로 귀결되는 그 시에서부터 묘하게 매력적인 소설 「날개」에 이르기까지 뭔가 근본적인 매력은 있으나 딱히 그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 작품을 썼던 이상은 진실로 천재가 맞았다. 그가 태어난 지 100년 하고도 1년이 더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바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진실로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얼뜨기의 치기 어린 장난이라고 치부해버리기 어려운 뭔가가 있어, 당대 내노라하는 화가 구본웅이나 모더니스트의 대들보였던 김기림의 총애를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100년이 지나버린 우리의 눈에도 - 나 같은 범인이나 이 책을 쓴 지식인 장석주 씨에게나 - 이상의 작품은 무언가 깊게 내재된 함의가 있음직하다고 여겨지는 것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작년, 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 일간지에 「이상과 1930년대 경성의 ‘모던뽀이’들」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것을 시작으로 기획된 것이다. 거의 세 달 정도 연재된 것을 바탕으로 해서 1년 이상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 끝에 집필된 이상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와 그와 함께 1930년대를 향유했던 ‘모던뽀이’들에 대해서도 면밀히 밝혀보고자 낸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의 식민시기로 얼룩진 1930년대의 경성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이 책을 따라 찾아 떠나는 것도 과거의 모습을 알고, 현재를 알아, 미래를 향해 새로이 만들어가는데 일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상은 태생부터가 완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이방인 신세였다. 젖만 갓 뗀 이상, 즉 김해경은 백부의 양자로 입양되어 태어나자마자 친부를 빼앗긴 채 완전한 백부의 아들도 아니고 친부의 아들도 아닌 존재로 23년간 살아왔고, 조선인으로 태어났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일제의 천한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했으며, 의식은 19세기의 윤리관과 관습으로 뿌리박혔지만 육체는 20세기의 모더니즘으로 도배했던 그는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그것이 그가 19세기에 태어났으나 20세기의 사유를 내뱉는 천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 상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대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태생적 한계로 인해 이상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했던...이상... 그의 인간적인 불행을 두고 우리는 문학계에서 그의 작품들이 가지는 위치를 두고 마냥 기뻐하기만 할 순 없겠다. 천재가 아플 때마다 우리의 문학계가 발전한다면 우리 문학계에서는 당연히 그가 아프도록 유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군중은 또 얼마나 무지하고 위협적인지 모른다. 제 비위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는 비판으로 예술이 빛을 보는 것을 꺽는다. 이상이 김기림의 주선으로 신문 《조선중앙일보》에 시 「오감도」를 연재했을 때 당초 30편의 시를 선보이려고 했는데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결국 연재는 15회로 그쳤다. 물론 그 당시 일개 독자의 심미안으로는 시 「오감도」가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기란 당연히 무리이긴 했다. 우매한 무리가 천재를 몰라본 가장 안타까운 경우라 할 수 있겠는데, 이상의 작품들은 90년이 지난 지금에 일반 독자가 봐도 사실 상당히 난해한 텍스트이니. 이렇게 그 시대의 안에 살아가도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을 썼으니, 그의 시는 처음 읽고 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다.
아주 옛날에 신은경 주연의 영화가 하나 개봉했다. 그 당시에 영화를 보지 못했어도 그 내용은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줄거리조차 다 잊어버린 그 영화는 바로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소재로 했다. 내용도 약간 스릴러나 미스테리 장르였는데 영화를 보지 못해 이렇다할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이상에 대한 호기심은 무한히 안겨준 작품이었다. 21살에 시를 처음 발표하고 27살에 요절한 비운의 천재라는 소개만 봐도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다분한데 호기심을 갖지 않는 것이 희한할 정도다. 그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는 그 당시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백화점을 감상한 후에 건물과 그 상황을 투시하여 쓴 것이라 독특하고 행끼리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해석본을 보고 읽으니까 - 백화점을 투시한 것이라는 - 겨우 백화점에서 나들이 온 사람들을 관찰했다는 간단한 내용을 알 수 있지만 그냥 읽으면 정말 낯설어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시가 아니다. 1930년대 경성에 들어선 백화점은 옛 관습을 증오하고 신문명에 환호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이 소일하는 장소였다. 물건이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자리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사려고 모여든 사람들로 득실거렸다고 한다. 아마도 이상은 기이한 존재인 백화점을 이런 식으로 비껴서 바라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말 그대로 투시, 일본에게 정신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나 하등 다를 것이 없이 쪽 빨려들어가 결국 껍질 밖에는 남은 것이 없는 공허한 상태인 조선을 바라봤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이상과 막역한 사이였던 김유정, 그를 끔찍이도 아꼈던 김기림과 구본웅, 구인회를 지탱했던 이태준 등의 여러 인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 당시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들이 어떻게 구인회를 결성하게 되었고 어떤 사상으로 뭉쳤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후에 월북해 생사조차도 확인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월북으로 말년까지 편안히 살다 간 사람도 있었는데 정말 다들 다채로운 사람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이상과 정말 친했던 김유정이 동경에서 이상이 죽기 바로 몇 달 전에 폐결핵으로 죽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가난해서 제대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서 걸린 병이라 그 놈의 돈이 원수였는데, 마지막까지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했던 그의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다. 구인회 중에서도 유일하게 향토색이 짙은 작품들을 내놓았던 그의 소설로 인해 그들의 색깔이 천편일률적이지 않을 수 있었는데 아주 어린 나이에 죽었던 것이 정말 가슴 아팠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면서 어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었겠냐마는, 정말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폐결핵이었던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의 병명이 뇌막염성 매독이었던 것을 그가 동경에서 죽고 나서야 겨우 알았다. 어쩐지 그와 결혼한 변동림도 그가 각혈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의 인생은 누군가 쳐놓은 덫에 걸린 것처럼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혹자는 그가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며 게으르게 산 것을 누구에게 뒤집어 씌우냐고 한 마디 할지는 모르겠다만, 그의 천재적인 의식이 하필이면 약한 체력과 정신력과 함께 공존해서 자신을 제대로 지킬 만큼 강인함을 얻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정신력까지도 강인했더라면 27살의 어린 나이에 요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약했고 그를 바쳐 줄 그 어떤 사회적 지원도 없었기에 그는 끝내 그렇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만약 그를 사랑했던 김기림의 말처럼 그가 파리에 가서 유학을 했더라면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은 떨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