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
로저 스크루턴 지음, 류점석 옮김 / 아우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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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철학자이자 와인애호가인 로저 스크루턴의 이 책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할 책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와인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단지 맛봐 보는 수준이 아니라 와인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봐야 할 정도로 와인에 대해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영국 태생이지만 스스로 마음의 고향이 프랑스라고 생각할 정도로 프랑스 와인에 대해 깊은 사랑에 빠져있는데 그가 말하는 와인 한 두 가지만이라도 구비해놓는다면 충분히 와인애호가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어느 정도로 와인에 대해 조예가 깊냐면 와인 시음회에 초대를 받거나 와인 신상품이 나올 때 감식을 부탁받을 정도이니, 이 책은 필독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단지 그런 와인에 대한 정보만 있다고 한다면 읽는 '맛'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그럴 걱정은 전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필 같은 어조로 진행되어 정보만 가득 받아들일 필요없이 재미있게 읽기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되며, 친절하게도 새로운 와인을 이야기할 때면 그 와인의 사진까지도 수록해두어서 와인에 대해 문외한이어도 손쉽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철학자라고 하면 왠지 어려운 내용만 이야기할 것 같아서 손이 쉽게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책만큼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스러운 어조를 잃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예전엔 정보만 가득 담겨진 실용서 위주로 책을 봤는데 이제는 정보도 있지만 일단 읽기에 부담이 없는 수필체의 글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실용서는 소장하기에도 별로 추천해주고 싶지 않기에 이 책이 딱이다.
 
그가 처음 접한 술은 어릴 때 엄마가 담그시던 엘더베리 과실주였다. 영국에서 자라 포도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과거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연상되는 그 과실주가 그에겐 최초의 술이자 모든 것이었다. 항아리에서 부글거리던 거품이 잦아들면서 휘파람 소리를 내고 진홍빛 액체가 되면 그것을 병에 담았다가 색이 충분히 빠졌다고 생각되면 다시 항아리를 담아서 2년 동안 숙성시키는 과정을 보내고 나면 엘더베리 과실주는 고향으로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실주와 연관되지 않았던 날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그에겐 술이란 고향이나 집과 동일어가 아닐까 싶다. 그 이후에 장학금으로 입학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만난 친구 하나와 교수 한 분께 와인으로의 세계에 초대를 받고 열렬한 바쿠스 교의 신자가 되었고 그것이 프랑스 와인 뿐 아니라 그 밖의 와인에 대해서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전문가로의 발돋움의 시작이었다. 총 1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 [프랑스 와인 기행]과 [프랑스 바깥의 와인들]이 소개가 되어 와인 애호가들이 특히 중점적으로 봐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술을 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수필임을 적나라하게 익힐 수 있는 부분인 1부의 [나의 와인 입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는 와인 애호가이기도 하지만 철학자이다. 그가 철학자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은 2부의 [의식과 존재]와 같은 '철학'적인 내용보다는 오히려 1부 앞에 위치한 [권두부록 : 철학자와 와인]이 더 '철학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철학자 흄에 대해 읽을 때는 백포도주 샤토 쿠테나 샤토 셉티 몽바지약을 마시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여러 유명 철학자들과 와인을 그 특성대로 연결시켜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철학자다운 것이 아닌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와인에 대한 조예가 깊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와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와인이 알코올이라는 범주로 묶는 것을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와인은 술이 아니라 문화이자 기술이자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철학과도 같이 이야기해볼 수 있었는데, 충분히 만족스럽다. 요즘 들어 상아탑에만 갇혀 있는 철학이 현실 세계로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놀랍다. 전에 본 책은 철학과 축구를 연결시켜 여러 주제에 대해 아주 심오하게 분석하는데 구성 자체가 전반전, 휴식, 후반전, 연장전 그리고 승부차기까지 나열되어 있어서 읽기에 참 유쾌했다. 소소한 겉테두리에서부터 속알맹이까지 다 신경을 썼던 책이었는데 이렇게 현실 세계 속으로 들어간 철학으로 우리도 철학적 사고방식을 구사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현실 세계에 나온 철학을 더 기다려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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