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제임스 힐먼 지음, 주민아 옮김 / 도솔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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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저자를 소개하려 한다. 제임스 힐먼은 미국의 심리학자로, 미 해군병원에서 근무했다가 박사학위를 딴 다음 융 연구소에서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받고, 원형심리학을 개척했다. 글도 잘 쓰는지 1975년에 [다시 꿈꾸는 심리학]으로 풀리처 상 후보에까지 올랐고, 1997년에는 [영혼의 코드 : 성격과 소명을 찾아서]로 뉴욕 타임즈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런데 융은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라고 본 프로이트와는 다르게 일반 에너지라고 주장하여 프로이트가 개척한 '정신분석학'에서 갈라져 나왔고, 프로이트가 주장한 억압된 것을 입증하여 그것에다가 '콤플렉스'라고 이름 붙인 사람이다. 그러니까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증명해냈다면 융은 그것의 체계화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다짜고짜 처음부터 프로이트니 융이니 하는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로 머리복잡하게 만든 것은, 융의 심리학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예전에 융의 심리학 책인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를 읽어본 적이 있었다. 누군가가 사달라고 해서 샀던 것인데, 너무 얇길래 주기전에 한번 훑어보았다. 한번 훑어봐도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쉬운 책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책을 주면서 했던 말은 이랬다. "이 책은 비성경적인데요?" 사달랬던 사람이 목사님이시라, 그런 말을 했던 것인데 그 분 왈, 비성경적인 걸 알고 있어야 미리 대비를 한다나...?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라서 그 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런 어투였다. 그러니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그 책을 읽더라도 당혹스러워 말기를...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상일, 가설일 뿐이니까!! 그런데 너무 수긍이 가게 전개했다.

 

책 내용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사람이 성스럽고 고귀한 일을 하게 되면 어딘가에서는 그것에 반대되는 악한 행동을 해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인품이 높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다른 한편으론 그것에 반하는 행동, 아내를 팬다거나, 섹스에 심취하거나, 술을 아주 많이 마신다거나, 마약을 한다거나, 아니면 도박을 한다거나 등등 해야 심리적 균형이 맞춰져 잘 살 수 있다는 것!! 내가 좀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심한 예를 들지는 않았다. 내가 이해하기론 이렇게 이해했지만... 빛이 있다면 그림자가 생기듯이, 좋은 면이 있다면 나쁜 면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자기합리화하는 것 같아서 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이해하면 내 마음은 편할 수 있다. 밖에서 하하 호호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 이름이 알려져도 집에 와서는 엄마나 아빠가 마음에 안 들면 소리지르고, 언니 동생과 싸우는 등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해봤지만 그런 행동을 하고 나면 남는 건 허탈감뿐이다. 절대 이것으로 균형이 맞춰지진 않는다. 그런 어두운 그림자를 많이 키워줘봤자 만족감은커녕 그 그림자에 상처받은 사람만 우후죽순 생겨날 뿐이다. 

 

내가 이렇게 융의 심리학을 주저리주저리 말한 것은, 저자가 융의 심리학의 관점에서 이 책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깊은 심리학적 고찰을 했지만,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수긍가게는 전개했지만 말이다. 총 네 장으로 이루어졌는데, 각 장의 제목이 그 글의 주제이다. [1장 전쟁은 정상적이다] [2장 전장은 비-인간적이다] [3장 전쟁은 숭고하다] [4장 종교는 전쟁이다] 으로 이루어졌는데 마지막 4장이 이 책의 총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은 종교이다'로 몰고 가더니 끝내 '종교는 전쟁이다'라고 마무리짓는다. 어떻게 보면 기성 종교 중 가장 서구화되어있는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많은 전쟁이 자행되었고, 최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이 '성전'이라는 미명 하에 저질러졌던 것을 가지고 따졌다. 물론 나도 기독교를 믿는 신자로서, 그런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절대~ 사실은 종교의 이름으로 - 어떤 종교이든간에, 기독교이든, 이슬람교이든, 유대교든, 수니파힌두교든, 어떤 거든간에 - 저질러지는 전쟁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그런데 일어나는 것은 종교의 대상인 신神이, 저자가 말한대로 전쟁의 신인 마르스이거나 아레스이여서가 아니라, 신神을 신실하게 믿고 있다고 하는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십자군 전쟁도 그렇고, 최근 미국의 이라크 전쟁도 그렇다. 이것은 절대 신神이 지시한 것이 아니다. 왜 그걸 모를까?

 

어떻게 보면 저자의 생각은 사람이 스스로 시행해서 잘못된 결과가 난 일을 가지고 어떻게든 자신의 탓이 아니라며 모면하려고 하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자신은 기독교라는 신앙 공동체에 속해있지 않으니 전쟁을 벌이는 모든 일에 대해서 자기 탓은 아니라는듯이 담담하게 서술할런지는 몰라도 저자도 인간인 이상, 인간의 이름으로 저지른 모든 전쟁에 대해 조금이나마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처럼 신자이기에 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렀던 모든 악행들을 부끄러워하고, 자복하지는 못할지언정 전적으로 기독교에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 생각한다. 기독교 - 그외 다른 종교도 포함된다. -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너무 편협하게 몰아갔던 인간의 행위만을 놓고서 그 책임을 그 종교에게 묻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내 생각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이 책의 논조가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 너무 극단적으로 반응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성도들에게 대해선 경종을 울려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너무 과격하게 쓰여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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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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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출판사의 한국 단편 소설을 읽었다. 사실은 한국 소설을 어렵게 느끼기에 거의 읽어본 적이 없는 걸 생각한다면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한다. 한국 소설이라는 말만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만 이젠 끌리는가보지....?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글로 옮기나...?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다른 것이 스르르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여기서 주체는 내가 아니다. 나는 그저 그런 착시를 당할 뿐.. 이 단편소설 속의 여성들에게서도 같은 느낌이 든다. 자신이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했다기 보다는 - 그것이 잘한 일이든 잘못된 일이든 - 끌려가고 달려가서 결국은 족쇄에 채워진다. 아니면 내팽겨쳐 지거나... 그런 여성들을 보며 난, 왠인지는 모르게 허무함과 박탈감을 느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는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몰라서일까...? 아니면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있어서 일까...?

 

단편집도 참 오랜만에 읽는다. 올해 160여 권을 읽는 중에서 [사과의 맛]과 [한국환상문학]를 제외하곤 없으니 단편집은 정말 오랜만에 읽는 것이다. 오랜만에 단편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릴과 여운을 느낄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그 여운은 첫 단편을 봤을 때부터 와닿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단편을 하나 둘씩 읽다보니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고나 할까. 사실은 이 소설의 모든 게 해피엔딩이 아니다. 참혹하고 저주스럽고 미련이 남는... 족쇄를 끊어버리고 싶은... 잘못 끼운 단추를 빨리 풀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읽는 내내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만, 읽는 내내 나를 끌어당겼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가을몽정] [어항] [딤섬] [스무개의 담배] [지금 그대로의 당신들] [태엽감는 여자] [현실은 비스킷] [어느 삭제되지 않는 비망록] 을 하나같이 나열해보면 정말 아프다...가슴 시리도록...

 

잠시 한국에 들어온 중년의 남자에게서 집요할 정도로 구애를 받았던 '나'는 그가 가고난 이후에서야 약혼을 연기할 정도로 그를 그리워하고([가을몽정]), 조심성없이 나온 말 한마디로 이웃의 삶을 망치고 병원에 간 남편에게조차 휘둘려살고([어항]), 책임지고 노력하는 것이 싫어 모든 것을 버렸지만 그녀에게 짧은 유희는 자기 목숨과 맞바꿔야할 대가를 요구받는 그녀([태엽감는 여자])와, 계모의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지만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삶을 지속시킬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삶([어느 삭제되지 않은 비망록])은 정말 자신이 스스로 삶을 산다기보다는 이끌리는 대로 끌려가는 게 아닌가 했다. 아파서 스스로 몸을 움직일 기력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주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정립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중년의 남자가 자기에게 엉겨붙는 것 같았으면 일찍감치 떼어버리면 될 일이고, 날이 갈수록 히스테리가 늘어만 가는 남편에겐 따끔하지만 강한 말을 해두면 될 일이고, 자유엔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면 저기 먼 아프리카나 잠시 다녀올 일이지, 아니면 나처럼 텔레비전에 코를 박거나... 그리고 여자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정말 몸 파는 거말고는 없어? 정말? 어떻게 보면 그네들의 삶은 우습지도 않다. 누구나 항상 행복하고 밝고 명랑하게 살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은 하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보기엔 전혀 노력을 하지 않으니.. 아마도 현대인의 병, 우울증에 걸린 것일지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병...

 

미래가 암담한 두 사람의 피상적인 만남([스무개의 담배])이나, 세탁소 경쟁에 도태되어 손님을 잃어가며 아플 땐 오리 피만 주야장천 받아먹으면 된다고 하는 거나([지금 그대로의 당신들]), 일년 동안의 월급을 받지 못해서 인생을 망쳐버리는 사람이나([현실은 비스킷]),  표현을 하는 것을 거의 강박증까지 생각하는 주인공의 모습([딤섬])까지도 무언가가 빠져있다. 그래도 이들은 그 자신이 하려고는 드는 사람들이다. 남편을 대신해 일을 한다든가, 열심히 살며 세탁소를 운영한다든가, 일년 동안 다른 데 한눈 안 팔고 열심히 일하고 나중에는 사장을 찾아가던 일이나 - 나 같으면 그만두고 노동부 찾아갔겠지만 - 표현하지 못해 놀림을 받았던 어린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나름 열심히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능동적인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의 삶은 구원받지 못할까. 글쎄.. '구원'을 어떻게 정의하는 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그네들의 삶이 조금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주변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행동을 한다는 것, 그런 의지가 생긴다는 것, 바로 그게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한국소설을 보았다. 정말 어렵다. 그리고 우울하고... 하지만 우울하고 어렵지만 왜 이리 끌어당길까. 매혹적인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삶의 아귀 하나가 빠진 듯한 삶을 사는 그들의 모습이 아마도 우리네와 같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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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바꾸는 5분 혁명
가미오오카 도메 지음, 은미경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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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만 보면 조금 딱딱할 것도 같은 느낌도 들지만 내용을 펼치는 순간 그것과는 전혀 상반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저자가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보니, 네컷 만화로 이루어져있는 데다가 전반적인 구성이 아주 아기자기하게 되어 있어 읽기에도 부담이 없고, 색감도 아주 뛰어나게 구성되어 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표지를 봤을 때 에이~ 뻔한 또는 딱딱한 내용이잖아 하는 그런 느낌이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나도 그렇지만 요즘 이쁘고 아기자기한 거 좋아하는 여성의 취향에 맞게 표지에도 귀여운 일러스트 하나가 들어갔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친근하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내지를 보면 여백이 있는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디자인을 해놓았기에 충분히 그럴 감각이 되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진짜 신경을 많이 쓰는 나로선, 전체적인 디자인도 꼼꼼히 보는데, 타이포그라피나 줄간격, 내지 색깔과 핵심어 색깔 등 신경쓰지 않는 게 없다. 그런 이 책은 나도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부분까지도 이쁜 색감으로 조화를 이루게 했고, 캐릭터를 넣어 상큼한 느낌을 아주 잘 살렸다. 표지만 좀 아기자기했으면 이제까지는 보지 못했던 더 말랑말랑한 자기계발서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이다. 이 책이 도쿄방송에서 드라마로 방영이 되었다는데 이런 단편적인 내용이 어떻게 드라마로 편집되어 나갈 수 있을까 의구심은 들지만 하여튼 너무 재미있고 쉽다.

 

아는 사람에게서 완벽하게 이기적인 인간으로 오해를 받은 저자는 사람이 큰 것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아주 사소한 것은 바꿀 수 있다는 것에 착안을 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힙합 댄스를 배운다거나 유도를 처음 시작한다거나 하는 등으로 뭔가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구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다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다음과 같다. 

[주변부터 바꾸어 보자!] [머릿속을 변신시키자!] [기분을 바꾸어 보자!]

[몸부터, 외모부터 바꾸어 보자!]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바꾸자!]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를 해두긴 했지만 목차가 상당히 길어서 처음엔 언제 다 봐~했었다. 그런데 조금 우스꽝스러운 4컷 만화를 하염없이 읽고 있으면 어느새 책 한 권이 금방 끝나버려서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책 표지를 넘기면 목차가 나오기 전에 어떤 여자 한분이 손을 번쩍 들고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녀가 서기까지의 모습이 그림으로 나와있는데 첫 그림은 누워있는 모습이다. 기분~좋다 하며, 뒹굴뒹굴 거리는 모습을 보노라니까 꼭 겨울철 춥다고 나가기 싫어서 이불에 파묻힌 채 뒹굴거리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으~음, 나랑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군!! 그런 그녀가 발에서부터 힘을 줘서 일어나기까지 우스꽝스럽게 표현이 되는데 정말 그런 그림 하나만 떠올리면 겨울철에 일어나기 싫어도 번쩍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 연속 그림이 표지에 조그맣게 나와있다.

 

첫장의 [주변부터 바꾸어 보자!]라는 내용의 처음이 <벗은 구두는 정리한다!>인데, 한참을 읽다가 그만 입구까지 뛰어나가서 내가 벗었던 부츠를 신발장에 넣고 다른 신발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내 방에 들어왔다. 그런데 내 방에 들어올 때 어질러져 있던 것들이 눈에 밟혀서 싸그리 다 정리하고야 다시 책을 손에 들을 수 있었다. 머릿말부터 꼼꼼히 읽었더니만 할 수 있을 때, 하는 김에 다 해버리자란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닿아서 나도 하는 김에 해보기로 마음이 먹어졌다. 이 책을 읽은지 좀 지났는데 지금까지도 이 습관은 꼭 지키고 있다. 신발 정리하기.. 

 

저자는 주부인데다가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내 상황과 안 맞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꼭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다 알아두어야 할 내용들만 쏙쏙 넣어두었다. 단, [몸부터, 외모부터 바꾸어 보자!] 에서 <눈화장은 정성스럽게 하기>부분은 남자들에겐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다. ㅋㅋㅋ 그런데 이 부분은 내가 꼭 해야할 부분이긴 하다. 화장을 해도 눈화장은 잘 안하는데, 그것이 내게 실수였단 생각이 든다. 눈은 얼굴에서 가장 포인트가 되는 부분이여서 그 부분을 강조하면 생기있어 보인다고 하니까 이젠 꼭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눈이 나쁜 내겐 좀 쉽지 않은 이야기다. 마스카라를 해서 눈썹을 올리려해도 안경 때문에, 원...

 

전반적으로 따라하기에 쉽고 간단한 일상생활의 팁을 알려준 것이라, 마음의 부담은 안된다. 이 많은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그래서 준비했다, 맨 마지막에 나온 체크리스트!! 얼마간 지난 후에 내가 하고 있는지 체크해보는 건데, 참 유용하다. 한 번 훑어보면 내가 무엇을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생각이 나니 말이다. 그리고 체크리스트도 얼마나 웃긴지...ㅋㅋㅋ 정말 웃기다.. 꼭 한 번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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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사랑한 예술
아미르 D. 악젤 지음, 이충호 옮김 / 알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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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 로만 야콥슨, 레비-스트로스, 바르트, 자크 데리다, 자크 라캉, 알튀세르, 미셀 푸코, 피카소... 한 번 쯤 들어봤음직한 이름들이다. 언어학, 인류학, 문학, 정신분석학, 철학, 회화 등 인문 사회학 분야에 한 획을 그은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구조주의>라는 사조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난 말로만 들어봤지,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뜬구름 <구조주의>가 도통 모르겠어서 찾아보았다. <구조주의>란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여, 개인의 행위나 인식 등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총체적인 구조와 체계에 대한 탐구를 지향한 현대 철학 사상의 한 경향이란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하나 알기 위해서는 그 관계성에 기반을 두고 알아간다는 사상 체계라고 할 수 있을 듯 싶은데, 이렇게 보니 뭐 그리 대단한 것 같지 않은 걸 가지고 난리법석을 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난 그것을 논리적으로 증명을 할 필요가 없으니 아주 쉽게 느껴지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주의>라고 하는 사상 체계를 처음 시도한 사람은 언어학자인 소쉬르이지만 그것을 이어받아 다른 분야에서까지 사용할 수 있게 의미의 확장을 일으킨 사람이 하나 있다. 그 이름은 '니콜라 부르바키'!! 그런데 실은 '니콜라 부르바키'가 한 개인이 아니라 프랑스 수학자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단체라고 하니 정말 재미있었다. 강의시간에 한 장난에서 착안한 프랑스 장군의 이름을 따와서 수학교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재미나게 시작했다니 참 묘하다. 그 주축이 되었던 사람은 앙드레 베유.. 자유롭게 학문을 접하고 많은 여행으로 견문을 넓혔던 그는 개방적인 사상 체계를 가지고 부르바키를 주도해 나갔다. 처음엔 독일 수학에 비해 수준도 없고 강의시에 쓸 교재도 제대로 되지 않은 프랑스의 수학을 세우고 교재를 만들자는 목적으로 모였다. 앙리 카르탕, 클로드 슈발레, 장 델사르트, 장 디외도네, 르네 드 포셀, 알드레 베유가 그 첫 번째 회원들이었다. 그 당시 쟁쟁한 프랑스의 뛰어난 수학자들이었기에 아마도 그들은 무서운 것도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폴 뒤 브레유, 장 르레, 숄렘 만델브로이트가 더 가담한 그들의 모임은 착착 진행되어 갔다. 모든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동의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는데, 회의를 진행하면 의장도 따로 없고 발언권은 아무나에게 주어지고 하니 정말 정신 산만할 정도로 시끄럽게 진행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만장일치로 합의가 되는 신기한 희의였다고 한다. 특히, 공동 소유권을 갖기 위해 하나의 저작이 나오면 계속 고치고 고치고 고쳐서 만장일치로 결정이 나야만 교재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하니 정말 그 노력이 대단하다.

 

그 수학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구를 하고싶을 만도 한데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을 포기하고 공동의 연구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친 것을 보면 정말 수학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없어서는 있을 수 없을 듯 싶다. 그리고 그 회의에서 장 델사르트의 의견으로 중요한 원칙을 정하는데, 그것은 가장 추상적이고 공리적인 방식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개의 최초 원리로 시작해 그 기초 위에 수학이라는 전체 학문을 쌓아올리는 엄청난 작업이지만 모든 사람의 뜻에 맞았으므로 그 원칙을 가지고 집합론을 가장 기초로 삼았다. 집합론에는 그 안에 엄청난 논리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부르바키의 아킬레스건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전후 수학 교재의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을 때 그것을 세웠단 점에서는 대단한 의의를 가진다. 이 원칙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서 각 나라의 수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중학교에서 수학을 제일 처음 배울 때 집합을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다. 공집합이란 기호도 앙드레 베유가 이 작업을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니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주의방법은 수학자들에겐 내재되어 있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런 구조주의적인 방법을 부르바키 안에서도 발전해나가고 있지만 그 외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게 된다. 그 사람이 바로 인류학이라고 하는 학문을 하나의 학문 분야로 체계를 세운 레비-스트로스이다. 그가 연구한 원시 부족들의 친족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규칙이 도출되어야 하는데, 개별적인 사례만 있을 뿐 그것을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 감을 못 잡았을 때, 앙드레 베유가 그를 도와준다. 군(群)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던 것인데 개별적인 사례를 나열하지 않고 혼인 관계를 무리로 설명하자, 그것이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부르바키가 추구하는 원칙이 인류학이라는 비수학적인 학문에서도 통용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구조주의>는 수학에서 나타난 사상 체계지만 - 소쉬르가 먼저 언어학에서 시작했어도 발전은 부르바키가 시켰으니까 - 그 외 비수학적인 학문에서도 큰 영향을 받아갔단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나의 분야가 나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참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난 흥미로웠다. 피카소가 입체파를 연 것도 구조주의의 일환이고 몬드리안이 추상화를 시작한 것도 그의 일환이라니 단순히 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분야까지도 구조주의가 1960~70년대에 대세를 이루었다. 물론 지금은 부르바키가 예전만큼 큰 영향력을 주지 못해서 그 영광이 쇠하였지만...그 중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가 부르바키에서 탈퇴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 원래 혼자서 연구하는 것을 즐기긴 하지만 어린 시절 전쟁을 경험한 그에게는 다른 사람과 연구가 필요없을 정도로 인내에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연구에 도움은 주더라도 자기 연구는 혼자서만 하는데 태평한 성격의 베유와 과묵한 그로텐디크가 안 맞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자신이 주도하고 싶었는데 자기보다 더 어린데다가 천재성을 발휘하는 그로텐디크가 맘에 안 들었겠지.. 아마 그가 계속 남아있었다면 부르바키는 더할 나위없이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그로텐디크의 천재성을 더욱 발휘할 수 있게 했으니 불만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매끄러웠다면 그가 수학을 저버리고 산으로 들어간 것을 미리 막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말이다.

 

어쨌거나 인류사에서 전무후무하게도 수학이 거의 모든 다른 영역에 영향을 끼친 사연을 들어보았다. <구조주의>라고 하는 사상 체계가 수학 분야에서 활성화되어 그 힘으로 다른 학문의 영역에서도 해결을 해주었다니 정말 수학자들로서는 의미가 깊은 일이다. 사실 진리는 모든 분야에서 다 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하나의 학문이 다른 영역과 외따로이 떨어진 게 아니란 말씀... 과학에서도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자들이 다 한꺼번에 연구를 하면 더 독보적인 발전이 있을 거라는 어떤 과학자의 의견에 동의를 해보며 또다시 이런 심오한 학문의 세계에 들어가고픈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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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 천연두파티
M. T. 앤더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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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안 낫싱... 옥타비안은 아무 것도 아니다...란 의미의 책 제목과 "나는 고귀하게 길 러 졌 다!" 라고 도발적으로 쓰인 띠지를 보면 어느 정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렇게 내용을 조금은 유추할 수 있었기에 더 의심하며 읽었던 탓에 책의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걸까. 하지만 책의 구성은 상당히 탄탄했고, 그 내용도 의미심장했던 거라 누구나 읽기만 한다면 재미를 느낄 것이다. 이 실험은 지금도 계속된다고 볼 수 있으니...

 

주인공 흑인 소년, 옥타비안은 큰 저택에서 물질적으로 아무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었다. 카시오페이아 공주라 불리는 엄마와 함께 시중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많은 학자와 시인과 화가, 음악가에 둘러싸여 겉으로는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인지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흘러넘치는 감정에 치우치는 대신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주의깊게 확인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습관이 은연중에 두드러지는데 그런 균열 -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볼 수 없는 - 덕택에 옥타비안은 상당히 철학적인 아이로 자라나게 된다. 아마도 사랑이 흘러넘치는 가정이었다면 고요하지만 안정적이고 곧은 아이로 자랐을텐데.. 그가 곧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삶에 대한 의욕은 사랑을 받아야 커갈 수 있지 않나 말이다. 물론 엄마가 그런 역할을 어느 정도 해주었다. 하지만 현재의 삶이 거짓에 기초한 것이라는 일말의 불안감에 의지할 데가 없었던 엄마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 지금에와 생각하니 아마도 옥타비안은 어릴 때부터 그런 불안감을, 그런 깨어지기 쉬운 거짓말을 느꼈던 것은 아닐런지.

 

처음부터 조금은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기 보단 관찰한다는 입장을 가진 옥타비안이라는 소년에게, 그래서 호감을 가질 수 없었다. 아름다운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었던 엄마에게조차 자신이 사랑을 구걸받아야 한다는 환상을 가진 소년에게 말이다. 다 읽은 지금은 마음 놓고 그에게 가련함을 느끼지만...

 

자신의 먹는 음식에서부터 배변까지 무게를 재고, 라틴어, 그리스어 등 여러 언어를 습득하고 아름다운 소설을 읽으며 상상을 하고, 바이올린을 연습하며 음악에 심취하고, 오리나 닭이나 개구리나 배를 쫘악 갈라 실험을 하는 과정을 참관하고 배우는 일련의 과정들이 사실은 어느 실험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 깨닫는다. 들어가지 말라고 한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시중을 들어주는 다른 흑인들처럼 카시오페이아 공주라 불리는 엄마와 엄마의 뱃속에 있었던 옥타비안은 이런 연구회 대장인 기트니 씨에게 팔린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크나큰 충격이 있을 법도 한데 오히려 옥타비안은 아프리카인의 능력을 측정하는 이 연구에 최상의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새로운 포부를 갖게 된다. 이 얼마나 가련한지... 하긴 그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그리고 새롭게 깨달은 자신의 위치가 어떤지도 잘은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긴 한다.

 

그런 자신의 위치를 새롭게 자각하게 된 사건이 일어난다. 이때가 너무 마음이 아팠다. 특히 카시오페이아 공주에게... 지금은 없어진 나라의 공주이지만 기품과 우아함이 흘러넘치고, 세련된 교양을 갖춘 나무랄데없는 여성... 카시오페이아... 그녀는 이 협회를 후원하는 새로운 백작이 되었던 첼소프 백작의 눈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한낱 노예로만 생각하고 있던 그에게 정부가 되라는 제의를 받자, 뿌리치려는 그녀와 백작을 막으려 백작에게 달려든 옥타비안은 이제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다같이 웃고 떠들고 했던 손님들 앞에서 옷이 벗겨지고 채찍으로 등을 맞게 된 것... 원래부터 자신의 신분이 자유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피부로 체감했던 옥타비안은 아마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카시오페이아 공주는 한없는 매력으로 사람들의 꽃이 되었다가 자신의 위치가 노예임을 만천하에 알린 후부터 그녀의 안에 있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아마도 그녀의 나라가 사라졌을 때 이미 잃어버렸어야 했던 긍지와 자존감... 아마 이때부터 카시오페아의 죽음은 내재된 것은 아닐까. 집안에 있던 많은 흑인 노예들도 그 참혹함을 눈으로 마주 보지 못했다. 형 같이, 아버지 같이 옥타비안을 이끌던 보노의 표정은 더 참혹했을수도... 또 한명, 그 모든 연구를 지휘했던 기트니 씨는 옥타비안의 눈을 한번도 마주 보지 못했을 정도다. 물론 냉정하기 이를 데 없이 공부를 강요했던 그이지만 그를 한 명의 인간으로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 명의 인간이긴 한데 자신의 신념을 삼을 만큼 대단한 의지를 가지지는 못했던 가련한 인간이었을 뿐!!

 

그 일이 있은 후, 새로운 후원자를 맞아들인 기트니 씨는 좀 더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샤프 씨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바꾼다. 특히 옥타비안은 샤프 씨의 시중을 들게 되었는데 그것을 보노가 새로이 가르쳐주었다. 다양하고 실용적인 것들을 가르치면서 또한 보노는 가장 중요한 처세술에 대해서 알려준다. 백인들은 흑인들이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을 원한다고,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절대 하면 안된다고 알려주었다. 현명하게 모든 것을 조율하는 그를 옥타비안은 잘도 따랐다. 처음에 고통이 무엇인지 알려주던 보노를 볼 땐 질투가 나서 그런다고 생각했던 내 속좁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보노는 그보단 좀 더 높은 것을 바라보는 사내였을 뿐이다.

 

그러다 상황이 바뀐다. 영국이 세금을 거두려했던 것에 대해 반발한 미국 땅 자체내에서도 왕당파를 몰아내려는 폭동이나 소동이 연일 일어나고 영국에서는 미국 사회에 있는 노예를 포섭하고자 노예 해방론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불안한 가운데 샤프 씨와 기트니 씨는 '천연두 파티'를 연다.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를 시켜 안에서만 지내기 위해 오락같은 파티를 연 이면에는 흑인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잡아둔 흑심이 있었다. 그래서 머리가 좋은 보노도 다른 사람에게 줘버리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사랑하는 보노를 잃게 된 옥타비안은 그에게 가장 두려워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가 남긴 선물을 사용해 도망을 가버렸다. 그러다 미국군에 들어가 영국군과 대항해 싸운다는데...

그는 노예가 있는 사람들이 군대를 안 가는 대신에 노예를 대신 보내고 싸움이 이기면 노예를 자유인으로 풀어준다고 거짓 약속을 해온 것에 대해서도, 실제로 미국이 독립을 하더라도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서서히 깨달아간다. 세상에 나가서 실제로 육체노동을 해보니 오히려 더 성장하고 더 의지가 생겨버린 그에게 또다른 위험이 닥쳐오는데... 그 위험도 나중에 벗어나지만..

 

실제로 이런 실험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흑인들이 지능이 어떤가 보기위해 대학에까지 후원한 사람들이 있었다는데 실제로 훌륭한 시인이자 학자가 되었다고... 그러나 오만한 백인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고... 법률에서도 인종차별을 금지한 조항이 있지만 그런 차별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지 145년 만의 일이다. 과연 끊임없는 인종차별의 고리가 이제 끊어질 것인지 가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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