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의 한국 단편 소설을 읽었다. 사실은 한국 소설을 어렵게 느끼기에 거의 읽어본 적이 없는 걸 생각한다면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한다. 한국 소설이라는 말만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만 이젠 끌리는가보지....?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글로 옮기나...?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다른 것이 스르르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여기서 주체는 내가 아니다. 나는 그저 그런 착시를 당할 뿐.. 이 단편소설 속의 여성들에게서도 같은 느낌이 든다. 자신이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했다기 보다는 - 그것이 잘한 일이든 잘못된 일이든 - 끌려가고 달려가서 결국은 족쇄에 채워진다. 아니면 내팽겨쳐 지거나... 그런 여성들을 보며 난, 왠인지는 모르게 허무함과 박탈감을 느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는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몰라서일까...? 아니면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있어서 일까...?

 

단편집도 참 오랜만에 읽는다. 올해 160여 권을 읽는 중에서 [사과의 맛]과 [한국환상문학]를 제외하곤 없으니 단편집은 정말 오랜만에 읽는 것이다. 오랜만에 단편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릴과 여운을 느낄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그 여운은 첫 단편을 봤을 때부터 와닿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단편을 하나 둘씩 읽다보니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고나 할까. 사실은 이 소설의 모든 게 해피엔딩이 아니다. 참혹하고 저주스럽고 미련이 남는... 족쇄를 끊어버리고 싶은... 잘못 끼운 단추를 빨리 풀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읽는 내내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만, 읽는 내내 나를 끌어당겼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가을몽정] [어항] [딤섬] [스무개의 담배] [지금 그대로의 당신들] [태엽감는 여자] [현실은 비스킷] [어느 삭제되지 않는 비망록] 을 하나같이 나열해보면 정말 아프다...가슴 시리도록...

 

잠시 한국에 들어온 중년의 남자에게서 집요할 정도로 구애를 받았던 '나'는 그가 가고난 이후에서야 약혼을 연기할 정도로 그를 그리워하고([가을몽정]), 조심성없이 나온 말 한마디로 이웃의 삶을 망치고 병원에 간 남편에게조차 휘둘려살고([어항]), 책임지고 노력하는 것이 싫어 모든 것을 버렸지만 그녀에게 짧은 유희는 자기 목숨과 맞바꿔야할 대가를 요구받는 그녀([태엽감는 여자])와, 계모의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지만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삶을 지속시킬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삶([어느 삭제되지 않은 비망록])은 정말 자신이 스스로 삶을 산다기보다는 이끌리는 대로 끌려가는 게 아닌가 했다. 아파서 스스로 몸을 움직일 기력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주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정립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중년의 남자가 자기에게 엉겨붙는 것 같았으면 일찍감치 떼어버리면 될 일이고, 날이 갈수록 히스테리가 늘어만 가는 남편에겐 따끔하지만 강한 말을 해두면 될 일이고, 자유엔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면 저기 먼 아프리카나 잠시 다녀올 일이지, 아니면 나처럼 텔레비전에 코를 박거나... 그리고 여자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정말 몸 파는 거말고는 없어? 정말? 어떻게 보면 그네들의 삶은 우습지도 않다. 누구나 항상 행복하고 밝고 명랑하게 살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은 하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보기엔 전혀 노력을 하지 않으니.. 아마도 현대인의 병, 우울증에 걸린 것일지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병...

 

미래가 암담한 두 사람의 피상적인 만남([스무개의 담배])이나, 세탁소 경쟁에 도태되어 손님을 잃어가며 아플 땐 오리 피만 주야장천 받아먹으면 된다고 하는 거나([지금 그대로의 당신들]), 일년 동안의 월급을 받지 못해서 인생을 망쳐버리는 사람이나([현실은 비스킷]),  표현을 하는 것을 거의 강박증까지 생각하는 주인공의 모습([딤섬])까지도 무언가가 빠져있다. 그래도 이들은 그 자신이 하려고는 드는 사람들이다. 남편을 대신해 일을 한다든가, 열심히 살며 세탁소를 운영한다든가, 일년 동안 다른 데 한눈 안 팔고 열심히 일하고 나중에는 사장을 찾아가던 일이나 - 나 같으면 그만두고 노동부 찾아갔겠지만 - 표현하지 못해 놀림을 받았던 어린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나름 열심히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능동적인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의 삶은 구원받지 못할까. 글쎄.. '구원'을 어떻게 정의하는 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그네들의 삶이 조금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주변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행동을 한다는 것, 그런 의지가 생긴다는 것, 바로 그게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한국소설을 보았다. 정말 어렵다. 그리고 우울하고... 하지만 우울하고 어렵지만 왜 이리 끌어당길까. 매혹적인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삶의 아귀 하나가 빠진 듯한 삶을 사는 그들의 모습이 아마도 우리네와 같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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