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
박영봉 지음, 신한균 감수 / 진명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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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투박해보이는 종류를 좋아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지칭하면 계룡산 사발같은 것..

내 취향은 그보다 좀 더 진한 갈색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물론 청자든 백자든 안 예쁜 게 없다.

흙으로 만드는 도예의 과정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드는데...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실생활에서 많이 못 봐서 안타깝다. 우리집에서도 사기 그릇은 깨진다고 잘 안 쓰니, 원~~

중국에서 전해왔다는 도예기술이 중국도, 일본도 아니고 우리 조선의 것을 가장 쳐준다는데

우리의 미적감각이 남달랐던 걸까, 아님 자연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던 걸까.

어쨌든 그렇게 다른 나라에서 우러러 봤던 우리의 기술이 지금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임진왜란을 다른 말로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를 정도로 일본이 조선의 도자기를 그렇게 탐을 냈지만, 과연 그렇게 나쁜 것일까.

다른 나라를 침략한 것은 정말 나쁜 일이지만 그들의 심미안만큼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곤 거기서 자기 나름의 도예 기술을 만들어 지금은 세계적인 도자기 국가로 위상을 떨치고 있는 것도 말이다.

다른 나라의 기술을 더욱 연구하고 개발해서 자기네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배워야 할 것이다.

 

이 책에는 일본의 도예 기술을 이만큼의 경지로 끌어올린 "로산진"이란 천재를 알려준다.

천재적인 도예가, 요리사, 서예가, 전각가이었지만 이렇다 할 스승이 없었던 그는 진정한 천재가 맞다.

학교 겨우 4년 다녀서 간판을 보고 서체와 글자를 익혀가며, 어린 나이부터 고된 일을 했지만

천부적인 미각과 손재주로 인해 처음엔 간판을 파다가 나중엔 서예가로 유명해지다가 천재적인 요리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자신의 요리에 맞게 그릇을 준비하다 보니까 창의적인 실력으로 도자기까지 만들게 된 그의 인생 역정은 정말 드라마틱하다.

전세계적으로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라 여러 번 했던 전시회가 호황을 이루고 미국 록펠러와 피카소와도 알게 되었다.

그랬던 로산진도 아픔이 있었다. 유복자로 태어나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다른 집으로 양자로 보내졌으나,

양자 생활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녀야 했던 로산진은 그 때의 기억으로 가끔은 서글프게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얼마나 불안했을까. 로산진이 유명해졌을 때 괴팍하고 독단적인 성격이라고 비난을 많이 받았지만,

아마 남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여린 성격이었다면 로산진이라는 천재는 이 땅에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가난해서 서예의 기본책조차 알지 못했지만, 배우고 싶어 찾아간 대가들마다 기본부터 연구하라며 박대하길 일쑤였으니,

남의 말에만 의존했더라면 그의 창의력이 크게 발휘될 수 있겠느냐 말이다.

비난을 받았어도 그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그가 바로 로산진이니까.

 

여러 분야에 아울러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던 그였기에 "위대한 아마추어"라고도 불리는 로산진은,

호시가오카 요정을 열어 최고의 미각을 선보인다. 나카무라 다케시로와 공동경영으로 만든 이 요정은 경영은 그가 맡고,

요리 쪽은 로산진이 맡아서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처음엔 20명이 들어가면 꽉찰 작은 방에서 시작했지만,

지진으로 무너지고 나서 도쿄 아카사카를 빌려 완전 호화롭게 단장했다. 요리에 알맞게 사용해야 할 도자기도 만들기 위해

주문하지 않고 아예 자신의 가마를 박아서 자신이 디자인한 그릇으로만 썼고, 그날 나간 요리는 다시는 올리지 않을 정도로 철저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그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 많아졌다. 요리 실력이 조금만 못해도 형편없다고 타박을 주고,

다른 분야의 대가들에게도 글씨가 안 좋다든지, 도자기가 별로라든지,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결국 해고되에 이른다. 그래서 그는 전문 도예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런 그가 남긴 말이 아주 유명하다.

 

내 삶의 방식은 나밖에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자들에게 동정도 받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의 삶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1백년 후의 사람들이다.

 

로산진을 잘 알았던 도예가 천재, 구로다 료지도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죽고 나서 30년, 즉 로산진이 죽고나서 50년이 지나게 되면

지독한 인간 로산진은 사라지고,

위대한 로산진의 작품만 남을 것이다.

 

정확하게 예언을 한 셈이다. 지금이 로산진이 죽은 지 50년이 지난 시점이니까.

먹는다는 것을 단순히 끼니를 때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아하고 아름다운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예술가 로산진은, 

현재의 일본 요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단순히 전시를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쓰기 위해 도자기를 만들었다.

그의 예술관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 그렇게나 가치를 인정받을 수가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의 사발 하나가 1억이나 나간다니... 우와~ 정말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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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대논쟁 3 - 민주주의 & 시민 불복종 ㅣ 히스토리아 대논쟁 3
박홍순 지음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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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문집에서 히스토리아 대논쟁 시리즈가 나왔다. 아직까지는 3권까지만 나왔는데 1권은 [도덕과 지식인]에 대한 논쟁이고, 2권은 [정의론과 제도]에 대한 논쟁, 마지막 3권은 [민주주의와 시민 불복종]에 대한 논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만 보아하니 내가 완전히 소화하긴 어려운 내용이겠으나, 그래도 내 흥미를 끄는 요소들로만 이루어져 있어 내심 반갑다. 역시 서해문집의 책은 수준이 있다니까~ 학원에서 책을 구매할 때가 있어서 책을 분야별로 찾아보았는데 서해문집의 책은 초등학생용이어도 다른 책과는 수준이 확실히 달랐다. 그래서 서해문집에서 신간이 나왔다고 했을 때 너무 반가웠다.

 

이번에 내가 본 것은 3권 [민주주의와 시민 불복종]에 대한 논쟁이었는데, 내가 이것을 제일 처음으로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다른 책들도 다 사보겠지만, 가장 먼저 볼 책은 왠지 현실감이 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철학책을 좋아해서 많이 모으고 있는데 철학책을 보면서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아마도 철학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만, 일단 난 철학이 현실에 적용되는 것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철학책을 들여다보면 많이 등장해주시는 형이상학적인 개념과 그런 논리를 이해하려고 머리를 부여잡고 애쓰고 있으면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체제가 민주주의이고, ‘촛불시위’로 표현할 수 있는 시민 불복종이 나오기에 냉큼 집어 들게 된 것이다. 물론 내 취향은 완소남 소크라테스가 등장해주시는 1권 [도덕과 지식인]이었지만 말이다.

 

여기서 논쟁할 거리를 크게 나누면 [민주주의]와 [시민 불복종]인데, 거기서도 각각 둘로 나뉜다. [민주주의]에선 보비오와 잉그라오가 맞붙는 <대의민주주의인가, 직접민주주의인가>와, 보비오와 카터가 맞붙는 <직접행동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가>로 나뉜다. [시민 불복종]에선 롤스와 켈젠이 맞붙는 <시민 불복종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와 롤스와 피터 싱어가 맞붙는 <시민 불복종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가 있다.

 

사실은 학창시절에 배웠던 대의민주주의니, 직접민주주의니 하는 개념은 너무도 쉽지만 그것으로 논쟁하는 건 정말 어려웠다.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려고 하니 아무래도 많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배경지식도 여기 나온 개념도 어느 하나 쉽지 않은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실제로 여기 나온 인물들이 많은 논쟁을 일으켰던 인물이지만, 실제 그 인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저자인 박홍순이 그들의 주장에 근거하여 나름 정리했던 논쟁이다 보니까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논쟁이 끊임없이 계속되면 안 되니까 어느 정도 일단락을 지으려고 그랬던 것이지만, 어느 한 편이 논리적 허점을 드러낸 것 같아 어색했다. [민주주의]편의 보비오 vs 잉그라오에선 보비오가 그랬고, 보비오 vs 카터에서도 보비오가 그랬다. [시민 불복종]에선 사실 그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아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롤스 vs 켈젠에서는 법을 바꾸기 위해선 시민 불복종을 하지 말고 법을 바꾸라는 켈젠의 논리가 밀렸고(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왜 법이 정의감과 별개인지 전혀 모르겠다. ^^;), 롤스 vs 피터 싱어에선 도덕의 범위가 너무 협소한 롤스가 밀렸다.

 

밀려서 나름 결론이 난 것 같긴 한데 끝맺음을 한 것 같지가 않아 약간 마음이 불편하다. 드라마를 보다가 마지막 편을 안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여기서 하는 논쟁은 하나의 합의점이 찾아지질 않는데 그럼 어떻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문제를 일으키기만 하고 해결책을 찾지는 않은 것 같아서 혼란스러운 게... 하지만 논쟁을 통해 쉽게 지나쳤던 개념들이 제자리는 아니더라도 얼추 자리를 잡은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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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비둘기 집 이야기 - 세상의 빛
이창 지음 / 대장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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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로 목사님의 이야기를 담았다. 모태신앙으로 초등 5년 때부터 한 교회에 있다보니 목사님, 전도사님들은 정말 많이도 봤을거다.
정들만 하면 가시고, 또 새로운 분에게 적응할 만하면 또 사라지시는 상황에서
사역자님께 너무 정 주지 말란 귀중한(?) 어머니의 충고도 받아 보았다.
평신도의 입장에서는 조금 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 꼭 당면하게 되는 문제일 텐데,
그것을 사역자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이 책은 큰 교회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나이 사십에 목회의 길로 들어서서 생면부지의 땅, 부산에서 개척하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기록해놓은 일기 같은 책이다.
서문에 보면, 한국이 많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땅이긴 해도 현재 한국 기독교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해 두셨다.
그래서 아프더라도 메스를 들이대서라도 고쳐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신다.
그런 전제가 있다는 건 이 책 내용이 그리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지는 않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목사님이신 저자를 핍박한 건 다름 아닌 같은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니까 말이다.
또한 서문에서는 요즘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싸잡아 욕하는 이유에 대해서 묻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느냐고.
솔직히 기독교인인 나도차도 눈살을 찌푸릴 일이 많이 보이는데(그렇다고 나는 또 떳떳한가? 사실 알지도 못하고 저지르는 잘못이 더 많지만...) 비기독교인들은 오죽 할까 싶다.
 
이번 2월호 QTzine을 보니까 어떤 목사님이신지 교수님이신지 하는 분이 쓰신 칼럼이 눈에 띄였다.
사역자들 중에서 "온 학교에서 성경이 읽혀지고 ...(중략)... 온 나라가 기독교인인 그 날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그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라의 종교가 기독교가 된다면 그것부터가 파멸로 치달을 수 있다고~
사실 하나님께서도 아담을 보호하시기 위해 선악과를 아예 공개하지 않으실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아담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아담이 스스로 선택하시기 바라셨기에 알려주신 것 아닐까?
그래서 아예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 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가 없어진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 불순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기득권의 자리에 있다보면 아무리 안 그럴려고 해도 부패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정결하게 만들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종교가 권력을 갖는 것은 나도 반대이다.
중세시대만 봐도 알 수가 있지 않나? 마녀 재판은 왜 생겼으며, 종교개혁은 왜 생겼겠느냔 말이다.
가만 보면 그런 것을 바라시는 분들이 나보단 더 똑똑하고 더 믿음이 있으실 텐데 엉뚱한 길로 가시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까 나는 하나님의 종을 무시하거나 험담을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게 했다.
아마도 남의 험담을 하길 좋아하는 나인지라 분명 하긴 했을 건인데~ 이걸 어쩐다~~ 으메~ 기억은 안나는구마~
알고서 했던 모르고서 했던간에 무서운 일을 저지른 것만은 분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내게 있는 금기 중 하나는, 주의 종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못난던 잘났던 간에,
잘못하던 간에 잘하던 간에 그에게 상을 주실 이도, 벌을 내리실 이도 바로 하나님 뿐이 아닐까 한다.
물론 하나님이 상을 내실 것이기에 돕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했다고 타박할 필욘 없지 않을까?
무서웠다. 혹여라도 그런 죄를 지었다면 나부터 회개로 씻어내려야겠다. 다시는 짓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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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나의 10가지 약속
가와구치 하레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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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인공 아키라는 간호사였던 엄마와 종합병원 의사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스물두 살까지 한 번도 울지 않고 살았다.

그 이유는 바로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 엄마 덕분에~~~`

울려고 찡그리고 있으면 엄마는,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하고 호들갑을 떨어버리는 바람에 마음이 풀어져서 울지 않아도 됐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고 췌장암 말기로 돌아가시고도 울지 못했던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

중학생이 되어 음악소리에 이끌려 만나게 된 호시를 엄마에게 소개하려던 날, 엄마는 입원을 하셨다.

너무 바빠 일주일에 한 두번 볼까 말까하는 아빠 대신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살았던 아카리에게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듯이 갑자기 강아지가 나타났다.

한 쪽 발에 하얀색 얼룩이 있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로 갓 태어난 아기 강아지가~~

아빠에게 허락을, 엄마에게 "삭스"란 이름을 받고 드디어 아카리의 아기가 될 수 있었다.

단, 삭스와의 10가지 약속을 지킨단 조건 하에~~~~



그런데, 울지 않는다는 게 과연 정상일까. 사랑하는 엄마를 잃었는데도?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인데도?

운다는 것은 어떤 것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은 엄마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절대 엄마의 마음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아마 그래서 아카리가 울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은 그 소중함이 가슴에 와닿지가 않아서...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울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삭스 때문이기도 했다.

잘 들어오시지 않는 아빠 대신에, 엄마 대신에 그렇게 우정을 나누었던 삭스랑 헤어져야 할 시련이 닥쳤다.

바로 아버지가 전근가시게 된 것!! 기타를 연주하는 호시 스스무랑도 헤어져야 하다니~~

어쩔 수 없이 새로 집을 구할 때까지 호시가 삭스를 맡아주기로 했다.

아카리를 제외하곤 삭스가 애착을 갖는 대상이 호시였기에 삭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임엔 분명하나,

그 떨어져 있는 사연은 안타깝다.

그러나 새집을 구한다는 아빠는 일에 치여서 정신이 없고, 결국 일이 터진다.

프랑스로 기타를 배우러 가는 호시랑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날, 아빠의 일이 터져서 만나지 못했던 것!!!

공항에서 넘겨주기로 한 삭스도 행방불명이 되어 버리고~~~ 아카리는 아빠에 대해 미운 감정을 잔뜩 가지게 된다.

그러던 아빠 왈, "나 병원 그만 두기로 했어!!"

개업을 하기로 하신 아빠의 결정에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삭스랑도 행복하게 지냈으나,

다만 프랑스에 간 호시랑은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은 호시랑도 만나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으나 점점 삭스와 놀아주는 시간이 줄어 버렸다.

엄마의 유품인 기모노에 얼룩을 만들어놓았다고, 시간이 없다고, 호시랑 만나야 한다고....

여러 이유로 그녀를 혼자 두었던 아키라는 삭스가 자기를 만나지 못한 건만으로도 털의 윤기가 없고 말라간다는 걸 알고,

후회의 눈문을 흘린다. 그제서야~ 소중한 것이 무언지 알게 된 것일까? 엄마 대신으로, 친구 대신으로 옆에 있어주었던 삭스인데...

삭스에게는 자신밖에 없다는 걸, 그에게는 10년이 전부라는 걸,

나중 아주 나중에야 깨닫고 같이 있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흘린다.


꼭 소중한 것은 잃어버린 후에야 알게 된다는 말이 너무나 잘 들어맞는 한 편의 사랑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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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감사 - 내 인생을 형통하게 만드는 지혜
김병태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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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정말 잘 읽혀지지 않았다. 어딜 나갈 땐 꼭 책을 들고 가야 하기 때문에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데

그 네 권의 책 중에선 가장 읽히지 않았던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절대 감사]!!

사실은 내가 감사를 잘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할 때도 내게 필요한 약을 처방해주고 싶기도 했던 마음 반과

아직은 더 불평에 찌들어 살고 싶다는 마음 반이 있었다. 결국 이 책을 선택하긴 했지만, 역시나 본성을 버리는 건 쉽지 않았다.

내가 빨리 읽을 수 없는 책은 딱 두 경우다. 그 책이 형이상학적으로 어렵거나 아니면 그 책이 내 못된 부분을 지적해주거나.

식당에 가서 음식이 나올 때나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줄 때, 혹은 물어볼 때는 곧잘 입버릇처럼

"감사합니다~"하고 잘도 말하지만(그래서 처음 본 사람은 내가 되게 상냥한 줄 안다. ^^;)

난 뼛속 깊이 불평불만에 길이 든 사람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 ㅋㅋ

 

바쁜 와중에 버스 안이나 움직이는 도중에 읽었을 땐,

"에이, 이게 뭐야~ 그저 여러 이야기가 짜집기 된 거잖아. 그러니까 '감사'만 하라구?"

라고 오만방자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몸살로 힘이 없을 때 잘못 쳐서 일어난 오른쪽 팔꿈치에 입은 타박상으로 한의원에서 침을 맞을 때,

그제서야 천천히 곰곰히 이 글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침을 맞고 있는 5분 동안은 손을 쓰면 안된다는 한의사의 주의도 받기도 했지만 한의원에서 찜질이나 물리치료를 받을 때,

누워서 읽으니 처음으로 이 책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아마도 내 여유없는 마음을 바꿔주시려고 팔을 다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실은 이런 사고가 일어나도 병원 문턱도 안 가는 나인데, 이번따라 정말 가고 싶을 정도로 아팠으니까....

그럼, 내겐 팔이 아픈 사고가 일어난 것도 감사할 이유가 되는 건가.

 

이 글을 쓰신 김병태 목사님은 많은 감사할 거리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모든 형제가 막노동에서 일을 해야 했을 때 형들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 대학교, 석박사까지

갔으니 정말 감사할 이유가 많다. 그리고 사모되신 분께도 전도사 시절 달동네에서 갓난아기 셋을 데리고 왔다갔다 하면서

겪었던 힘겨움과 알게 모르게 느꼈던 마음 고생까지도 감수해주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나는 감사를 몰랐던 거 같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그래도 이것정도는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부귀영화와 온갖 유혹을 당연한 목표라고 생각했던 잘못된 가치관을 이제야 깨달았으니...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 자체를 완전히 왜곡했던 것을 가지고 누구 뭐라고 타박한다면, 난 정말 할 말이 없다.

나도 내 깊은 욕망의 바다 속에서 숨겨진 추악한 일면을 몰랐으니 말이다.

 

종교적으로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를 따지기 전에 이것 하나만 생각해보자.

세상에는 얼마나 기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말이다. 얼마나 어이없는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는지...

그러니 내가 오늘도 눈을 뜨고 오늘도 숨을 쉬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감사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 않을까.

오프라 윈프리는 매일 감사 일기를 적는단다. 그 첫번 째가 오늘 내가 가뿐히 눈을 뜰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하다며~

난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오늘 눈을 뜬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

사실은 그런 당연해 보이는 일들이 정말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멀쩡하다가 갑자기 암 말기 환자로 판명되는 일이 얼마나 허다한지. 부딪쳤을 뿐인데 크게 다친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것이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땅을 딛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한다.

 

감사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두 가지!! (p. 35)

첫째, 감사는 우리에게 기쁨과 복을 주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의미이게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에 고마워하실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면 마땅히 그분의 복을 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감사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둘째, 감사에 대한 아이러니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에 고마워하시지는 않으시지만, 결코 잊지도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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