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스트로벨의 부활의 증거 - 5가지 부활의 증거와 확신
리 스트로벨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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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옛날에 리 스트로벨의 <창조 설계의 비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그가 유명한 변증자인 줄도 모르고, 그저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를 얻을 수 있겠거니 하고 무턱대고 읽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무척 재미있고 놀라운 과학적 증거가 많이 나왔음에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는 "잘 읽었다, 꽤 재미있었어~"만 말할 수 있었고, 무슨 내용인지, 어떤 과학적 증거가 있는 줄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을 정도로 내 머리로는 지식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때는 서평을 쓸 때가 아니였기에 그렇게 체계적으로 읽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읽었기에 머릿속에서 다 까먹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읽기가 엄두가 안날 만큼 상당히 심오하다. 그래서 어려운 책을 쓰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던 차에, 부활절을 앞두고 그가 <부활의 증거>란 책을 썼다는 사실이 놀라워 호기심에 읽게 되었다. 물론 호되게 당할 각오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전에 읽던 책과는 다르게, 한 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면 그 전의 책은 3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작은 판형으로 100쪽이 안 되는 분량이기에 훨씬 책이 얇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적은 분량은 책을 보기 전에 내심 '부활' 사건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서 책으로 낸다고 해도 그리 많이 쓸 분량이 없을 것이란 내 예상이 맞아 떨어졌던 것이라 훨씬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부활의 증거는 총 2,200편 중에서 다섯 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것이다. 1)예수는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으셨다, 2)제자들은 그분이 부활하여 자기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믿었다, 3)교회를 박해하던 바울의 회심, 4)예수의 동생인 회의론자 야고보의 회심, 5)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둘 일은, 미국 사람의 사고 방식과 한국 사람의 사고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 사람이, 미국 사람의 사고 방식대로, 미국식으로 썼던 것이라 이 책을 그대로 한국 사람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성 싶다. 또한 내가 모태신앙인이라, 믿지 않는 사람의 사고 방식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인데, 그것은 아무래도 내 입장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파악한다는 것은 화폐를 알지 못하는 부족들에게서 화폐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그네들에겐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필요함을 역설해야 하는 상황이니. 내가 보기엔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신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신은 있으나 자신은 믿지 않으려는 사람, 혹은 다신론적으로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 같다며 좋은 것이 좋다고 두루두루 믿는 사람들로 분류될 수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신의 유무에 대해서 특별히 토론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에서처럼, 유명한 외설 잡지인 <플레이보이>지를 창간한 사람조차 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기독교에 대해서 '부활'만 사실로 확인이 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을 만큼 기독교가 가까운데(물론 너무 가까워서 쉬이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우리나라에선 그 늬앙스가 다른 듯 싶다.

 

그러나 어차피 '부활'은 믿음의 문제이지, 사실 여부를 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시작했으니, 이 책으로 굳이 부활을 증명해서 전도를 할 생각은 없다. 아마도 이것은 한국, 미국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인간의 힘으론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구할 뿐이다.

 

처음 이 책을 보고 놀라웠던 점은 미국 사람들은 성경을 신화로 보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방법인, 고대 역사서를 연구하는 방법까지 파악하면서 연구하고 믿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한국 기독교인들은 무턱대고 믿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성경은 완전무결한 사실로 생각하지만, 벌써 자유주의 신학이 많이 점거한 미국에서는 신화나 도덕 쯤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쳬계적으로 성경의 기록 시기부터 그것이 기록된 내용의 출처까지 파악해서 증거로 들이대는데, 이 방법은 성경을 신화로 보는 이들, 즉 자유주의자들도 빼도박도 못할 진실로 여기는 증거라고 한다. p. 60에 보면 2)제자들은 그분이 부활하여 자기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믿었다. 에 대한 증거가 세 가지로 나오는데, ①제자들에 관한 바울의 증언 ②초대교회에 전해진 구전 ③초대교회의 기록 문서이다. 그 중 ③초대교회의 기록 문서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같은 기록 문서들은 1세기 즉, 예수의 생애로부터 70년 이내에 기록되었고, 이는 자유주의 학자들도 인정하는 증거이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고대의 많은 역사 문헌들은 가장 훌륭하다는 알렉산더 대제의 기록만 봐도 그가 죽은 후 400년이 지나서야 기록되었고, 그것이 사실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죽은 지 70년 밖에 안 된 시점에서 기록된 사복음서의 신빙성은 얼마나 더 사실로 인정받아야 되겠는가. 그렇게 사실임에 틀림 없는 사복음서에는 모두 예수의 부활을 확실하게 증언하고 있으니, 이것만 봐도 예수의 부활은 사실이다 하겠다.

 

이 책에 나온 방법들이 모두 변증적이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어른들이 머리 아프게 이 글을 읽고 전도용으로 사용한다던지 감동을 받는다든지할까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는 조선에 발을 디딛자마자 죽은 선교사가 던진 성경책으로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어떤 이가 그 책을 찢어 벽지로 바르고 나서 그 벽지를 읽다가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믿게 되었다고. 아무도 전도하지 않고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 믿은 민족이라서 약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부분은 약한 듯 싶다. 하지만 청년이라면 한 번쯤 논리적으로도 사실인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와 논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부활의 역사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해당 서평은 두란노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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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박병철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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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크리스 임피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이거나 찬성할 수 없는 분야의 대가이지만 그가 정말 글을 재미나게 쓴다는 사실만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스타 학자이자 위트 있고 통찰력 넘치는 글 솜씨로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2년에는 국립 과학 재단에서 '과학 대중화에 가장 공이 큰 학자'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우수 교육자상을 11번이나 수상하였고 카네기 위원회에서 '올해의 교수'로 선정되고 2009년에는 미국 과학 진흥회의 펠로우로 선출되었을 만큼 입담과 학식 양쪽면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학자이다. 그런 그가 종사하고 있는 분야는 정말 놀랍게도 지구를 비롯한 우주의 생명을 연구하는 신생 학문인 우주생물학이다. 우주생물학이 놀랍다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이 있다는 사람이, 이런 말도 안되는 즉 논리적인 결론이 뒷받침되지 않는 '진화'를 인정하고 그것을 전제로 모든 상황을 연구하는 우주생물학이란 학문을 파고든다는 점이 놀랍다. 종이라고 함은 그 개체가 스스로 생식하여 자손을 남길 수 있는 것만을 일컫는데, 하나의 종에서 점프해서 다른 종으로 변신이 가능하다는 점은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납득할 수 없는 말이다. 


흔히들 진화론자들이 하는 말이, 생명체는 바다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여러 가지 물질이 섞여서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그 단백질 세포 하나에서 여러 가지가 생겨서 스스로 먹이를 먹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생명체'가 되었고, 수억 만년이 지난 후에 그런 수중 생명체 중 하나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육지로 걸어나오다가 지느러미가 발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그저 환경이 옮겨졌다고 해서 그 자손이 예전의 모습이 아닌 바뀐 모습을 가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봤는가. 진화론을 대항해서 나온 이론 중에 창조론이니 지적설계설이니 하는 것이 있지만 이것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기에 "믿는" 학설이고 나도 그렇게 "믿는다". 그렇다면 진화론도 어느 누구 하나 "본" 사람이 없으니, 그 이론도 "믿는" 것이라고 바꿔 말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 임피 교수님도 재간이 넘치는 글 솜씨로 날 즐겁게 해주었으나 완벽할 수는 없었다. 역시 인간은 스스로 똑똑할 수는 있어도 명철할 수는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말은 사담이지만,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한동안 안철수 선생님이 유망한 후보로 등장했던 이유가 자신 스스로가 제 능력을 이용해서 사적 이익을 챙기지 않고 공적으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성공에 눈이 멀지 않고 또한 바르고 쓴 소리를 해서 사람들의 대리만족을 채워주었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장 막강했던 영향력은 주식 판 돈을 기부했다는 점이다. 이제껏 우리나라의 지도자 중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 존재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지도자도 아닌 사람이 그저 제 개인의 재산을 희생한 것이 놀랍고 기이했으니, 어찌 그에게 열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그런 바르고 깨끗한 그에게 모든 유권자들의 기대가 쏠린 마당에 나오기만 하면 바로 당선될 것같은 이 시점에,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과연 그의 천재적인 기질이 정치권에서도 발휘될 수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구조를 몰랐기에 나도 그런 영웅이 하나만 있다면 해결될 줄로 믿었다. 그러나 정치 구조나 권력 구조 자체가 모든 인간들이 바른 정치가 아닌 눈치보고 제 밥그릇 챙기는 정치권으로 편승해버렸기에 영웅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 개인이 정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못하는 영역이 분명 있을 거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도 사람이니. 그러니 사람이라면 많은 기대를 하지도 말 것이며, 그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 책의 저자 크리스 임피처럼.


어쨌든 이 재미난 책은 내게 시시때때로 낄낄낄거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죽을 수 있는 위험이 그다지 많이 않다는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그렇지만 분명히 통계학적으로 표현해주었는데, 그 중 하나가 물이 적을수록 위험다는 명제이다. 욕조가 수영장보다 위험하고, 수영장이 바다보다 위험하다. 그래서 "우리는 찻잔에 담긴 물을 조심해야 한다"와 같이 누가 봐도 재미있어 할, 유머가 뛰어나다. 내가 유머가 없다 보니까 이런 책에 나온 작은 것 하나에도 정말 유쾌하게 낄낄거릴 수 있어 좋다. '세상의 끝'을 말하고 있는 책이지만, 역설적으로 정말 재미있고 놀랍고 신기하다. 세상에 많은 동물의 놀라운 이야기를 알 수 있고, 죽음에 대해서 정색하고 심사숙고해볼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주에 대한 미래를 생각해볼 수도 있는데 아주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누구나 알다 시피, 태양도 앞으로 몇 억년만 있으면 다 타고 없어져버린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처럼 미약한 존재는 태양 하나만 없어지면 무조건 멸망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미 죽어 없어질 분명한 미래에 세상이 멸망하든 말든 별로 상관이 없으니 별로 심각해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놀라운 동물로는 해파리 중 하나는 성적으로 정점에 달했을 때 다시 어려지기 때문에 영원히 사는 것으로 봐도 된다고 하고, 200년된 거북이나 갓 어른이 된 거북이나 기능에 있어서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하니까 진짜 신기했다. 그것으로 보면 죽음은 어떻게 오는지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처럼, 병에 걸리거나 노화가 되었다고 해서 어떻게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약해지고 힘들어질 뿐, 그것이 바로 죽음과 직접적인 연결이 되지는 않는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진실로 죽음에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노화가 직접적으로 죽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이제껏 사고나 병이 아니라 노환으로 죽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을까 궁금하다. 여기에 죽음의 매커니즘이 있을 것이다.

문득 노화가 죽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성경 속의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모세!!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 성경에 나온 인물 중 유일하게 나이가 많으나 노쇠하거나 노화되지 않은 인물이자, 그럼에도 죽은 인물이다. 이는 사람의 살고 죽음의 원인은 노화나 다른 것에 있는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성경 속의 인물은 실존 인물이었으니 반드시 고려해볼 만한 내용이다. 


아직 과학자들은 노화가 일어나는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노화의 비밀을 풀면 반드시 노화되지 않는, 영원한 젊음의 비밀을 연구하겠지만, 나는 인간은 순리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인간은 아프고 노화되어 쇠퇴는 약함을 가져야 할 존재이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생명체 중 유일하게 생각하며 이성과 자유 의지가 있는 존재인 인간은 약해지지 않으면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다. 평소에는 그저 격언과도 같은 구절이었지만, 지금은 가슴에 사무치는 하나님의 명령이 되었다. 멸망하고 싶다면, 싸그리 망해버리고 싶다면 교만하기만 하면 된다. 다른 이들을 내 밑으로 여기고 자신이 제일 잘난 줄 아는 이에게 헤롯 대왕에게 했던 것처럼 벌레에게 먹혀 죽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몇몇 강장동물에게는 없으나 인간에게는 반드시 존재하는 늙음과 약함과 쇠약함은 반드시 필요한 하나님의 선물이기 아닐까 싶다. 인간이 천 살 가까이 살았던 때도 있었지만, 그런 삶 속에서 인간은 죄밖에 더 짓지 않을까. 죄밖에 안 짓는 인간을 보시고 아예 수명을 줄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무한히 살거나 많이 살면, 인간은 허랑방탕하게 살아갈 것이다. 아무도 심판이 없다고 하니까 혹은 심판이 너무 멀리 있으니까 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유한함은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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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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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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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인 민족끼리 문화 유산을 파괴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탈레반이 바미안 석불을 파괴한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탈레반이라고 하면 아프가니스탄의 집권 정당으로 지독한 강경파 무슬림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마 그런 무리들이었기 때문에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일 것이다. 샘물 교회 사람들을 납치해다가 돈을 요구했던 것이나 멀쩡히 축구장이 있는데도 국민들에게 축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거나 여자를 동물보다 못하게 취급하기도 했던 것을 볼 때, 상식 이하의 인간들이라고 생각되었기에 국제 여론이 아무리 반대를 했어도 그들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면 무작정 했을 것임에 틀림 없다. 결국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고 우리는 그 장면을 생생히 영상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일명 문화 청소라고 불리는 이 일은,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서 꾸준히 진행되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상식적으로 허용될 수 없고 인간이라는 종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일들 뿐이다. 2002 월드컵 알게 되어 우리가 어려웠던 한국전쟁 때 지원군을 보내주었던 '형제의 나라'라고 좋은 인상만을 가지고 있었던 터키부터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인종 청소, 문화 청소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만 봐도 정말 끔찍하다. 과연 우리에게 사람을 향한 긍휼과 생명에 대한 애정이 있는가 묻고 싶다. 서유럽 측이 터키를 유럽연합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무척 공들이고 있는 터라, 터키 정부의 아르메니아에 대한 인종 청소와 문화 청소는 아마도 은근슬쩍 넘어가버리고 말 가능성이 크다. 


1914~1918년 사이에 터키는 아르메니아들을 고문, 집단 학살하고 강간, 성노예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회를 폭격해 그들이 살았던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조처했다. 그렇게 희생당한 숫자가 대략 30만 명에 달하는데 그렇게 희생당한 아르메니아들을 두고 이렇다할 해명을 하지 않는다. 과거에 그런 사건이 있음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도 음흉하게 뭉게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1974년에는 겨우 조사하게 된 건축상의 피해를 보니 900여 곳의 교회 중에서 197군데의 교회만 살아남아 겨우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내가 크게 충격을 받았던 것은, 그 사건이 과거 어느 한 순간에 했던 잘못을 인정하고 지금은 그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기꺼이 보상을 해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아르메니아인들을 증오하고 그들이 터키 땅에서 살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말살해버리기 위해 인종 청소해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 때문이다. 민족 간에 미움이 생긱고 왠지 모를 편견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을 일본에게 당한 것이 있는 한국이 왜 모르겠냐마는, 그렇다고 그들이 그들만의 영토에서 잘 먹고 잘 살길 인정하고 선대하는 것이 아니라 증오에 가득찬 감정으로 대한다는 것이 정말 모를 일이다. 인간이 이렇게나 악했다니,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느낄 때마다 충격적이다. 민족의 99.8%가 이슬람인인 터키인들이 아르메니아인들을 싫어했던 이유 중에는 4세기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사실에 근거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탈을 쓰고 악마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슬람교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짧은 소견으로는, 한 종교의 이름으로 다른 종교를 핍박하고 탄압하는 것은 그 종교가 잘못되었거나 그 종교의 지도자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현재까지도 터키 땅에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의 건축물들이 방치되어 버려지고 있고 어느 누구도 그들의 문화 유산에 신경쓰지 않는다. 국제적인 여론에 못 이겨 아르메니아 나라의 돈으로 반 호수의 악타마르 섬에 있는 유명한 아르메니아 교회 한 곳만 겨우 복구되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사람들이 인종 청소를 할 때, 단지 사람들만 강제 이주시키거나 죽이거나 하지 않고 건축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아마도 그 건축물이 갖는 상징성이나 건물이 갖는 영원성에 있을 것이다. 제대로 보수, 유지만 해주면 인간의 유한한 생명보다 훨씬 무한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물체'이자 '지표'이기 때문에 어떤 민족이 그 곳에서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보스니아인들이 오래 전부터 살아왔던 사라예보에서는 오직 세르비아인들만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국립도서관이나 국립박물관을 폭파해서 보스니아인들의 수많은 장서와 역사를 파괴해버리기까지 했다. 문화 청소가 아주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 땅에서의 보스니아인들의 집단 기억을 말살하려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미리 세르비아의 장서와 유물들을 미리 빼돌린 정황이 포착되었기에 주저 없이 이렇게 증언할 수가 있다. 인간으로 저질러서는 안될 가장 최후의 보루가 바로 살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란 종족만이 같은 종족을 죽이기 바쁘다. 이렇게 평탄케 살고 있는 현재의 내 상태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일 같이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봤을 때, 어쩌면 이런 건축물이나 장서를 파괴하는 문화 청소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낄 수도 있지만 실은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박해는 그만 죽으면 끝이지만, 문화가 청소되고 책이 파괴되면 그 나라가, 그 민족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리니, 그 영향력이 무척이나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최초로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위을 집중 조명한 책이 나온 만큼 우리는 세계시민으로서 어떤 곳에 분쟁이 일어났는지를 보고 그 박해받는 문화를 위하는 마음으로 국제시민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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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민의 개념사회 - 바른 언론인의 눈으로 본 불편한 대한민국
신경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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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은 뒤 정치 현안을 피해가지 않은 개념 있는 앵커로 주목 받은 후, 만 1년만에 교체되어 전국적으로 그 이름을 알린 신경민 앵커가 책을 냈다. 이 책은 읽으면 부제인 「바른 언론인의 눈으로 본 불편한 대한민국」이란 제목이 눈에 번쩍 뜨이게 된다. 정말 불~편한 대한민국을 볼 수 있다. 딱딱한 조직 사회에 속해본 적이 없어서 특별히 권력에 편승하거나 편가르치기에 희생을 당하거나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이 책에 등장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이야기들이 과연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만큼 권력에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무능력하고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군상들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신경민 선생님이 직접 빗질당한 사례를 이야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까지 언론 탄압이나 검열이 있겠나 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 틀림 없다. 하지만 21세기의 한국에 권력의 최상층부의 입김이 작용해서 많은 언론인들이 축출되고 거세당하고 심지어는 쫓겨나기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당면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어디 가서 부끄러워 말도 못하겠다지만, 이것이 우리의 수뇌부이고 우리네 머리라는 것을 어쩌겠나. 그리고 우리의 선택이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4대 강만 해도 사업을 벌이려는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납득하기 어려운데 그것의 정당성을 확인받자고 독일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를 예방해서 그에게 4대 강 사업이 무척이나 환경에 안 좋고 다시 복구하는 것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정반대로 언론 보도를 내보내는 행태는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실제로 머리가 비상하고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MB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인간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접하면 도저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속에는 이런 비열함이 보이지도 않았었는데 말이다. 더구나 개탄할 일은,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내가 온라인 상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서평을 시작한 지 4~5년이 되었는데 작년부터나 겨우 밝히기 시작했으니 이제껏 내 스스로도 내 자신에게 꺼림직한 것이 있었다는 말이 되겠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 말하고 다녔으나 실제로 복음이 내 안에서 움직이고 살아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내 모든 행동을 가리켜 옳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말하기 꺼려했다. 하지만 이제는 감사하게도 아니다. 제대로 복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상황 속에서 인간 됨이 선하다 말할 순 없을지라도 어떤 행동이 제 욕심인지,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항상 겸손하게 구하게 된다. 이것을 멈추는 순간, 교만에 넘어지게 되기 때문에, 정말 생사를 걸고 간구한다. 이것 아니면 죽을 것 같이.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모든 권력의 핵심일 텐데, 신경민 앵커가 교체된 것도 많은 언론인이 떠나게 된 것도 모두 그가 직접 한 일은 아닐지라도 그의 입김이 작용한 일일 텐데, 그가 다른 종교로 개종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오히려 소망교회 출신들을 대거 기용한다는 소리만 흘러 나오더라. 이것이 권력을 가진 자의 말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없이 살다 보니까 가진 자들에게 대해 거지 근성이 생겨나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그들이 한,두 푼 보태주면 참 수월하게 살게 될 텐데... 했던 적을 되돌아 생각해보니까  나도 그리 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니였고, 그저 내 안에 누군가에게 받고 싶어하는 그릇된 욕심이 가득차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히려 조금 가지고 있으니까 더욱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보고 대통령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권력을 가지니까 그 권력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지키는데 빨리 가는 방법이 있고, 늦게 가는 방법이 있다면 성과가 빨리 나와야 하는 기업인의 특성상 아마도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방법이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 그래서 어떤 좋은 상황이 오면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제 힘을 의지해서 살기가 쉽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인간이니, 그런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신에게 감사하게도 허락된 권력을 제 입맛대로 행하기 시작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범죄를 자행했더라도 그것이 그를 용서해줘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부끄러운 역사 중 하나인,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꼭 검찰의 수사를 받는 것을 거쳐야 할 것이고 그것으로 제 값을 치르기를 바란다. 또한 그러기 전에 제 욕심을 내려놓고 이 나라를 위한 길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허락하신 것에도 뜻은 있을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이런 난세를 만들어준 덕분에 의식있고 개념있는 언론인들이 대거 추려진 상태이고 시민들도 촛불시위라는 평화적인 시위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의 책임은 시민에게 있다. 그를 뽑아준 우리가 문제였던 것이다. 약간 더러워도 경제 대통령이라는 공약에 눈이 멀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덜컥 뽑아준 우리에게 그 책임이 무겁지 않은가. 그를 뽑으라는 엄마의 말씀을 안 들었던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이다. 엄만 믿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니까 무턱대고 뽑아줬지만, 나는 BBK 사건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꺼림직함 무엇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당선 소식이 마음을 무겁게 했던 기억이 있다. 도덕이 없는 자에게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경제가 회복되길 꿈꾸었지만, 재벌들이나 배 불려주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경제 성장인데,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에 뿌리 깊이 내린 편 가르기나 학연, 지연 등의 권력 싸움은 더욱 심화시켰으니 뒷수습은 그를 뽑아준 우리 국민이 하는 수 밖에.


지금 대한민국을 보면, 올바른 정치인이나 올바른 언론이 나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우선 막대한 정치 자금을 만들어낼 올바른 정치인이 없다. 집안 대대로 부자였을지라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드는 정치 비용을 충당할 수 없고, 그것을 기업들에게서 충당하는 순간 기업의 꼭두각시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 또한 올바른 언론이 나오려면 인사권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여당에서 충당이 되니 어떻게 언론이 청와대의 비서 역할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눈 앞의 잿밥에 정신이 팔리면 바른 언론, 바른 정치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의 작은 기부로 정치인들을 후원하고 가판대 신문을 사보는 일부터 시작하자고 말한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성경의 말처럼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겨레 신문부터 사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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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쉬운 강의 120
이승훈 지음 / 터치아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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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과대학 출신으로 미국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이승훈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명강사였을지는 몰라도 글 쓰는 것만큼은 탁월한 능력을 자랑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산경제학상이나 전경련 시장경제대상 출판부분 우수상을 수상한 경력이 때문이 아니라 이번에 나온 <경제학 멘토링>이란 책만 봐도 한 번에 알 수가 있는 사실이다. 경제적인 용어나 내용을 일반인이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 분야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 문외한의 입장에서 글을 서술하고 전달해준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글이 참으로 놀랍다. 글을 편안하게 쓰고 읽을 때 무리만 없게 쓰려고 노력하는 서평자의 입장에서도 그의 글솜씨는 부러울 따름이다. 유려한 글솜씨는 아마도 경제학이란 어려운 분야에 대해서니까 그 빛을 찬란하게 발하는 것도 같지만, 아마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독보적으로 빛을 발하게 될 능력이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에세이는 죽어라고 쓰니까 그런 능력이 갖추어졌는지 어쩐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지만, 그의 글 문체 등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정도로 누군가에게 새로운 개념이든 알고 있는 개념이든 쉽게 알려주는 사람은 처음이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이미 다 아는 것 같은 기분도 느껴지고, 모르는 용어가 한 두가지 나왔을지라도 나중에 부연 설명으로 제대로 이해시켜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까지도 생긴다. 그런 문체는 원체 착실함이 몸에 배어 있어서 경제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려고 무척 노력했던 사람에게서만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책이다.

 

여러 경제책을 봤는데, 보다가 깨달은 것이 하나가 있다. 경제와 같이 현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추는 분야에 대해서는 번역된 책을 보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 금융 상황이 우리 나라의 현실과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우리 나라의 경제 역사를 알지 못하고 단지 현재의 비슷해보이는 경제 환경만 가지고 예측해봤자 그 경제 전망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그릴 수 있고 그런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법!! 처음에는 경제 체계가 그럴싸하게 갖추어져 있고 자본주의 역사 200년을 자랑해온 미국의 경제책이 좋아보여서 그것을 많이 선택해 봤는데, 이론적인 면을 무장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선택도 나쁘지 않다. 경제학, 경제심리학, 국제경제 등에 대해서는 그렇게 읽어도 개념이 쉽게 이해되는 장점은 있는 반면 미국측의 입장만 강요하는 단점이 있다. 가장 최악은 경제학에 대해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미국의 입장을 대변해주기만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기본적인 경제원리를 먼저 접한 다음에,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외국 경제책에서 소리 높여 주장했던 것들이 사실 우리나라와 같은 개발도상국을 말아먹기 위한 방법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경제학 분야는 외국 책보다는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으로만 골라 보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런 이유로 이번에 만난 책은 다시 없을 기회였다. 

 

저자가 교수라는 이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인들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해서 기초 개념부터 착실히 밟아나가는 방법으로 글을 정리해주는데 그 부분은 정말 세심하다. 글에는 그 사람의 개성이 묻어난다는데, 이 글로만 보면 이승훈 교수님은 더할 나위없이 지적이고 이성적인데다가 섬세하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보인다. 하여튼 경제 이해력 검증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둔 책이라고 하는 만큼 미시 경제든 거시 경제든 제대로 설명이 되어 있다. 시장경제, 기업, 재산권 보호, 소득 분배, 국내총생산, 금융, 세게화까지 총 7번의 꼭지를 두고 경제 용어를 풀어주는데 각각 두 페이지밖에 안 되는 분량에 중복해서 어려운 혹은 생소한 개념을 풀어주니 아주 상세하다. 게다가 각각의 주제 안에서는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설명이 진행되는데 전의 글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들이 바로 한 장만 넘기면 해결되어 나오니, 그리 손쉬울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 나라가 가야할 경제 정책의 방향까지도 조금씩 들어준 것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진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 보일만큼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이니, 적당한 장미빛 환상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기초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꼭 봐야할 책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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