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서재 - 최재천 교수와 함께 떠나는 꿈과 지식의 탐험 우리 시대 아이콘의 서재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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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석학이라 할 수 있는 최재천 교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를 알긴 하지만 그리 자세히는 알지 못해 이 책을 보게 되었다. 특히 그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아주 큰 일이 날 것처럼 구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볼 때, 그에 대한 호기심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이전까지는 그는 내게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개미와 말한다」의 저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동대학에서 강의를 한 세계적인 샹물학자이고, 최교수가 전공한 동물행동학과 진화생물학 분야에서는 최정상급 대학 중에서 1,2위를 다투는 미시간대학에서 교수로 부임했고 또한 명예교우회 특별연구원으로 선임되어 3년간 원없이 연구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겨우 알게 되었다. 이 책의 표지에 쓰여있는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자연과학자’란 소개가 정말 무색하지가 않는 분이셨던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기 전에는 표지에 쓰인 그 문구가 보이지도 않았었는데 말이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가보다. 본인이 말씀하셨듯이, 강의과 관련된 곳이 아니면 대중 매체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어서 그런지 사실 한 번도 TV속에서 본 적이 없기에 안철수 소장님이나 박경철 선생님처럼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이 아니라 많이 무지했다. 역시 바보상자는 바보상자일 뿐인데, 보이기만 기다렸던 것이었나보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아쉬움은 그 분을 「무릎팍도사」같은 토크쇼에서 뵙기는 무리여도 좀 더 권위있는 SBS나 MBC의 스페셜 같은 방송 매체를 통해 뵙고 싶다는 것이었다. 최교수님처럼 많은 개구쟁이 아이들, 그 중 심각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방송에서 롤모델로서 소개가 되신다면 좀 더 많은 아이들이 꿈을 더 잘 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들, 영상 매체에 휩싸여 사는 아이들에게 먼저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주지 못한다면 열이면 열이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폭격에 살아남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들에게 책과 함께 하는 꿈이 어디에 있겠는가. 생태학, 진화생물학 등의 큰 생물학 분야가 취약한 우리 나라 자연과학 현실에서 그런 분야가 더욱 활발히 연구되기 위해서라도 최재천 교수님은 후대를 양성하시는 데 더 힘을 쏟으셔야 한다. 대학생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그저 꿈을 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초등학생들에게 접근하시는 것이 더욱 큰 성과가 있으리라 본다. 최교수님이 열광하셨던 분야는 딱, 말 그대로 딱 동네 개구쟁이들의 염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한 가지 바람은 좀 더 대중매체에 많이 등장하시는 것도 그리 나쁘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보통의 사람들은 책보다는 TV와 같은 영상매체가 접근하기가 쉽지 않겠는가 말이다.

 

일단 이 책을 흥미롭게 보기 위해서는 현재 최재천 생물학자에 대해서 조금 알아야 한다. 서울대 동물학과 학사,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생태학부 석사, 하버드대학교 생물학과 박사로 이어지는 완전히 이과적인 이력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성적이 보거나 성향 테스트를 해봐도 수학에 비상한 머리를 지녔음에도 영혼만은 완전히 시인에 버금가는 문과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사람이다. 언변이나 지도력이나 글을 쓰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음악을 하는 것까지 이과적인 성향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문학적 · 예술적 소양을 갖춘 그가 어떻게 생물학과 교수가 되었을까. 어릴 적부터 시인을 꿈꾸며 고향인 강릉에서 자연과 벗삼아 살아왔던 촌놈이 한국문학전집과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내면화된 감수성으로 무장하곤 서울 명문중고등학교를 거쳐오면서 목적 없이 방황하다가 서울대 의예과에 두 번이나 낙방하여 가까스로 동물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릴 적 꿈과는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된 행보에 정처없이 방황만 하며 대학생활을 다른 의미로 알차게 보내다가 4학년이 되어서야 동물학과에서 제 능력을 펼쳐보이리라 마음을 먹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자크 모노란 생물학자가 쓴 철학책 같은 「우연과 필연」이란 수필을 만난 것이었다. 평생을 연구실에서 썩으면서 살아갈 미래가 자신없이 온몸을 던지지 못했던 생물학 분야에서 이런 철학적인 사색을 담은 글을 써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지금이야 통섭이니 통합이나 상반된 것을 연결하는 것이 화두가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였지 않은가. 나도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란 수필 같은 생물학책을 보고 엄청난 감동과 지식을 얻은 적이 있었는데 최 교수님께는 인생을 바꾼 하나의 계기가 바로 책이었다!! 

 

그 이후 여러 만남이 거듭되면서 미국에서 자연과 벗삼아 연구할 수 있는 큰 생물학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무리한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고 미친듯이 연구할 수 있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그 중의 압권은 3년 만에 박사학위를 딸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내던지고 올곧은 최씨 고집으로 석사 학위만 받고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하버드 학위가 그에게 쏟아지는 여러 스포트라이트의 이유이기도 하니까 그의 고집이 나쁘지만은 않았겠지만 좀 더 지혜롭게 처신했으면 여러 관계에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었다. 어쨌거나 유학 온 지 10년이 넘어서 박사 학위도 받고 전임강사로 일하게 되는 등 다른 세계, 즉 배우기만 하는 차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차원으로 성큼 성장해버릴 수 있었다. 그가 그런 식으로 제가 가야 할 목표를 설정한 다음에는 쉬지 않고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내면화된 장남의 책임감과 대학 때 발휘되었던 추진력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바로 책이 아닐까.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 꾸게 해준 것도 책이요, 그의 인생을 바칠 전공을 정한 것도 바로 책이니까!! 그러고 보면 최 교수님을 키운 8할은 바로 책이라고 말해도 무방하겠다. 

 

정말 책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이것을 아는 나도 어릴 때는 책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아서 정말 후회스럽다. 어른이 되고 난 후에 책을 좀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경험은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이다.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어릴 때 책을 좀 더 읽었다면 지금에 알고 있던 많은 지혜가 활용될 수 있었을 거라고, 현재와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아쉬워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청소년들, 아니면 초등학생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몇몇 부모님들은 이 책을 사다 좋은 의미에서 아이들에게 권하시겠지만, 난 그 방법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런 친구들을 몇몇 봤는데 먹기 싫은 약을 억지로 먹는 듯한 표정에서 이미 난 알아버렸다. 꿀도 약이라고 하면 쓰듯이, 가장 좋은 책 읽히는 방법은 책 밖에 놀 것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부모님들이 항상 책만 보고 있는 것도 더할 나위가 없겠다. 이는 최재천 교수님도 쓰시는 방법인데, 4형제 중 한 명 빼고 다 교수님이시고 아내도 교수인 그 집안에서 할 것이라곤 책 보는 것말고는 없겠지만 하여간 제일 안 좋은 교육 방법이 나는 바담 풍 할 테니, 너는 바람 풍 해라가 아닐까 한다. 나도 학창 시절에 좋지 않은 기억을 가졌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내일이 시험이라고 공부하라고 방에 들여놓고선 밖에선 낄낄 웃으며 드라마를 본다면 할 마음이 안 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그런 환경에서도 악착같이 공부하는 몇몇 노력 영재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환경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으니, 부모님들이 좋은 역할 모델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면 공부하란 소리, 책 보란 소리를 하지 말고 같이 TV를 시청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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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서 빈둥거리다 길을 찾다 - 명문가 고택 편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 3
이용재.이화영 지음 / 도미노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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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용재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진 건축학도이다. 건축평론을 하다가 돈이 안돼 건축현장으로 돌아가지만 외환위기 때 전 재산 날리고 감옥도 다녀오고 건축잡지사 편집장으로 일을 하다가 박봉으로 그만 두고 건축현장 감리(난 감리도 모르지만 대충 때려맞쳐서)로 일하지만 부실공사 유혹에 맞서다 잘리고 결국 택시 운전사로 소일하면서 건축답사하는 것으로 삶의 낙을 누린다. 처음에 문과로 가고 싶다던 그를 아버지의 강권으로 이과를 간 것부터가 어쩌면 잘못된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건축과 어울리는 그의 글을 보니 또 그건 아니겠다. 그렇다면 건축을 공부했어도 건축을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개탄해봐야 하는 것일까. 어쨌거나 한국 건축학계가 척박하고 부정으로 얼룩졌든 그가 마지막으로 낸 책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이 대박나면서 그는 건축 글쟁이로 낙찰을 받았으니 어쩌면 그의 운명은 글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그의 「궁극의 문화기행」시리즈는 그 전의 1편과 2편도 출간된 것을 알고는 있지만 딱히 건축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고 하여, 또한 나보다 건축에 대한 지식의 끈이 긴 분들이 어련히 알아서 읽으실까 하여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의 책은 고택이라는 점도 흥미가 생겼고 계속 그의 이름이 눈 앞에서 맴돌아 호기심에 읽었는데, 우와!! 대박이었다.

 

일단 그의 글은 글밥이 적어 좋다. 물론 코끼리 다리 하나 만진 것을 가지고 코끼리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책도 이런 식으로 글밥이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그의 책이 다 이런 식이라면 다 모으고 싶을 정도로 나랑 코드가 맞다. 건축에 문외한이 학자 수준으로 깨알 같이 정리된 책을 가지고 있으면 읽으려고 용 쓰다가 눈만 버리지 무엇 하겠느뇨. 그저 몇 가지 상식 수준의 정보만 던져주고 가타부타 주저리주저리 정리해놓지 말고 그처럼 깔끔하게 한 마디 던져놓으면 그것만큼 깔끔한 것이 어디있을까 싶다. 글밥이 적다고 글의 수준끼지 낮은 것은 아니다. 고택이 중심이다 보니, 우리 역사 이야기가 한가득 풀어져있는데 할 말은 다 하면서 설명을 하니 읽다가 킬킬대며 웃고 만다. 물론 그 말 한 마디 가지고 속이 후련해지지도, 현실이 바뀌지도 않지만 일반 대중이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니, 이 책이야말로 교양서로 등극해야 하겠다. 우리 역사 고적 중에 고택이 있다는 것은 사실 잘 몰랐다. 문화재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궁궐이나 사찰 정도만 생각했지, 일개 명승이나 절개가 높은 선비 정도가 살았던 집을 가지고 문화재로 여길 수 있겠나 싶었는데, 그 집의 구조나 공사된 방법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고택을 기리고 지켜야 할 이유는 그 안에 품은 선비 정신에서 찾아야 할 듯 싶었다. 선비들이 제 집에 이름을 붙일 때 품었던 마음과 사상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하고 되지도 않는 머리를 굴려 한 번 떠올려보았다.

 

그런 고택이 관리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것은 참으로 아쉬울 뿐이다. 진짜 사람이 살아 그 주인의 사상과 절개의 명목을 잇는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그 중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주거지로 마땅치 않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고택들은 찾는 이가 적어 살림집으로 손색이 없다. 다만 서울과 거리가 멀어 직장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귀농하시는 분들이 그런 고택의 유지로 남으면 안되는 것일까. 물론 종가의 명맥을 잇는 종손들이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손이 귀해 양자로 들인 집안이 한둘이 아닌데 이제와서 꼭 종손이 남아있으리란 법은 없다고 본다. 실은 그 가문의 가풍과 가훈을 철저히 지킬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그가 바로 진정한 가문의 후예가 아닐런지. 어쨌든 황손인 이구의 낙선재에서부터 아계 송희규의 백세각, 만산 강용의 만산고택, 은농재라 불린 사계 김장생의 사계고택, 전주의 부호 백낙중의 학인당, 실제로 살았던 것은 아니고 그의 제자들이 인품에 감동해 바친 윤증의 명재고택까지 총 21개의 고택을 유람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묘미는 자신이 얼마만큼의 역사적 지식이 있는지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역사의 주류뿐만 아니라 비주류까지 골고루 등장하여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이 전무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글밥이 적은데도 품고 있는 지식은 어찌나 방대한지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글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마도 생각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줄 한 줄 생각하고 읽어야 내용을 따라갈 수 있으니, 역사를 좋아하고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분들은 자만하지 말고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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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10-04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 서양과 나머지 세계
니얼 퍼거슨 지음, 구세희.김정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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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 퍼거슨은 참으로 놀랄만한 저작물을 완성해냈다. 과거 1400년대에 융성했던 명나라를 본다면 600년이 지난 오늘날 서양 세계가 동양 세계를 완벽히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는 서양화되지 않은 동양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의복이나 식생활에서까지, 음악이나 미술까지 인류의 전 영역에 걸쳐서 서양화되지 않은 분야가 없다는 그 사실, 그 놀라운 이유에 대해서 밝혀보는 저작물을 완성해냈기 때문이다. 1420년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는 50만에서 100만 사이의 인구를 자랑하는 난징이었을 것이며 이에 만족하지 않은 명나라 영락제가 새로이 구성한 수도, 베이징에 자금성을 완성했을 때는 그 어떤 누구도 동양이 서양보다 훨씬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리장성과 같이 어마어마한 구조물은 물론이거니와 양쯔 강에 건설된 대운하를 지나는 수하물들은 연간 1만 2,000척의 곡물이었고, 과학분야에서도 종이, 폭탄, 화학 살충제, 낚시 릴, 성냥, 자석 나침반, 칫솔, 일륜차 등의 다양한 발명품뿐만 아니라 기계적인 시계나 활판 인쇄기, 파종용 조파기와 같은 실생활과 직결되는 기술들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같은 시기 즉 15세기의 영국에서는 흑사병으로 런던의 인구가 4만여 명으로, 난징 인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로 급감했으며 발진티푸스, 이질, 천연두 등 여러 전염병의 온상이었고, 살인 사건도 높은 비율로 일어났고 사방에 전쟁이 발발해 1540년부터 1800년까지 영국인의 평균 수명은 37세에 불과했다. 중국에서는 백신이 발달하지 않은 대신 사람의 배설물을 위생적으로 모아 텃발의 퇴비로 썼던 위생적인 환경인 것에 비해 유럽인들의 삶은 훨씬 더럽고 열악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300년후 18세기에는 명나라가 무너지며 서양이 훨씬 더 발달된 양상을 띠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품고 여러 사회학자들이 몇 가지 가설을 제시했지만 21세기에 접어들어 높은 문화를 향유했던 서양 문명들이 바싹 추격해오는 동양 문명에 의해 무너질 것을 경고하는 입장에서 니얼 퍼거슨이 이 책에서 그 원인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즉, 1) 경쟁 2) 과학 3) 재산권 4) 의학 5) 소비 사회 6) 직업윤리 가 그것인데, 어쩐지 많이 미진해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살펴보면 각각의 항목들은 많은 부분의 함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2) 과학 분야에서는 학문이 기독교라는 종교와 분리되어 별개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져 자연을 연구하고,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서양 사회를 변화시킨 방식을 연구하는 분야로, 다른 무엇보다도 서양에 군사적 강점을 제공하였던 분야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 여섯 분야만 독파하고 나면 좀 더 쉽게 서양 세계가 지난 600년 동안 어떠한 방식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지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생각해본다. 동양 세계에서도 소수민족인 한반도에서 서양식 의복을 입고 물론 김치와 된장찌개를 식탁에서 밀어내진 않았어도 서양의 식습관을 가지고 서양식 침대에서 생활하는 이러한 행태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말이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물음만큼 미련한 것은 없다지만 만약 우리 민족이 과학 분야와 경제 분야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면 전 세계적으로 대다수의 인간들이 한식을 먹고 한복을 입고 황토와 온돌로 만든 집에서 한지를 발라 살고 있었을까. 더불어 국제적인 공용어는 한글이고 자연과 공생하는 방식대로 세계가 돌아가고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을 보면 그런 상상이 허망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재 중국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우위에 오를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서구화로 대표되는 서양 문명이 어떻게 동양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파악해본 이 책을 집필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역으로 이 책에서 나온 힌트로 다시금 동양 세계가 서양 세계를 재패할 수 있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예나 지금이나 아는 것이 바로 힘으로 연결되는 세상이다. 1부 경쟁 편에서는 15세기 명나라와 유럽의 신항로 개척을 비교해,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던 명나라에서는 대외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필요를 못 느꼈지만 척박한 지형에 작은 나라들이 복닥복닥 붙어있던 유럽에서는 서로 경쟁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신항로 개척이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경쟁이 새로운 나라를 찾게 되고 그로 인해 새로운 무역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바로 이런 경쟁심이 서양 세력에 우위를 선점해주었다. 또한 명나라로 대표되는 강력한 정치적 세력도 무시할 수 없는데, 유럽에서는 분권적으로 세력이 존재했지, 강력한 세력은 없었기에 강력하게 신항로 개척을 금했던 중국의 전제권력과 같은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명나라의 건륭제 때만 해도 영국의 대공이 다양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발명품을 가져가 선물로 바치면서 무역을 할 것을 바랐지만 건륭제와 그의 신하들은 그런 물품에 대해 시기심만 나타낼 뿐 그것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큰 문제였다. 역시 강력한 전제 정권이 많은 발전 가능성을 저해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현재 중국에서는 경쟁적으로 무역을 하고 발전을 꾀하고 있지 않은가. 역시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런 여섯 가지 이이갸를 통해 다양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영국이 북아메리카가 아닌 은이 많은 남아메리카를 점령했다면 민주주의 제도는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희한한 사실도 알 수 있어, 이 시대의 역사가 지나온 길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주저없이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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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모던뽀이들 - 산책자 이상 씨와 그의 명랑한 벗들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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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내가 이상에 대해 아는 것은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로 시작되는 시 「오감도」 중 시제1호와 소설 「날개」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중고 자습서에 실렸거나 어느 책에서인가 봤거나 했던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라고 시작되는 시의 제목이 「오감도」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 시는 시의 내용처럼 읽는 나도 무섭게 했다. 불안감과 공포로 귀결되는 그 시에서부터 묘하게 매력적인 소설 「날개」에 이르기까지 뭔가 근본적인 매력은 있으나 딱히 그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 작품을 썼던 이상은 진실로 천재가 맞았다. 그가 태어난 지 100년 하고도 1년이 더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바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진실로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얼뜨기의 치기 어린 장난이라고 치부해버리기 어려운 뭔가가 있어, 당대 내노라하는 화가 구본웅이나 모더니스트의 대들보였던 김기림의 총애를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100년이 지나버린 우리의 눈에도 - 나 같은 범인이나 이 책을 쓴 지식인 장석주 씨에게나 - 이상의 작품은 무언가 깊게 내재된 함의가 있음직하다고 여겨지는 것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작년, 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 일간지에 「이상과 1930년대 경성의 ‘모던뽀이’들」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것을 시작으로 기획된 것이다. 거의 세 달 정도 연재된 것을 바탕으로 해서 1년 이상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 끝에 집필된 이상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와 그와 함께 1930년대를 향유했던 ‘모던뽀이’들에 대해서도 면밀히 밝혀보고자 낸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의 식민시기로 얼룩진 1930년대의 경성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이 책을 따라 찾아 떠나는 것도 과거의 모습을 알고, 현재를 알아, 미래를 향해 새로이 만들어가는데 일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상은 태생부터가 완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이방인 신세였다. 젖만 갓 뗀 이상, 즉 김해경은 백부의 양자로 입양되어 태어나자마자 친부를 빼앗긴 채 완전한 백부의 아들도 아니고 친부의 아들도 아닌 존재로 23년간 살아왔고, 조선인으로 태어났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일제의 천한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했으며, 의식은 19세기의 윤리관과 관습으로 뿌리박혔지만 육체는 20세기의 모더니즘으로 도배했던 그는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그것이 그가 19세기에 태어났으나 20세기의 사유를 내뱉는 천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 상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대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태생적 한계로 인해 이상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했던...이상... 그의 인간적인 불행을 두고 우리는 문학계에서 그의 작품들이 가지는 위치를 두고 마냥 기뻐하기만 할 순 없겠다. 천재가 아플 때마다 우리의 문학계가 발전한다면 우리 문학계에서는 당연히 그가 아프도록 유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군중은 또 얼마나 무지하고 위협적인지 모른다. 제 비위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는 비판으로 예술이 빛을 보는 것을 꺽는다. 이상이 김기림의 주선으로 신문 《조선중앙일보》에 시 「오감도」를 연재했을 때 당초 30편의 시를 선보이려고 했는데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결국 연재는 15회로 그쳤다. 물론 그 당시 일개 독자의 심미안으로는 시 「오감도」가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기란 당연히 무리이긴 했다. 우매한 무리가 천재를 몰라본 가장 안타까운 경우라 할 수 있겠는데, 이상의 작품들은 90년이 지난 지금에 일반 독자가 봐도 사실 상당히 난해한 텍스트이니. 이렇게 그 시대의 안에 살아가도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을 썼으니, 그의 시는 처음 읽고 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다.

 

아주 옛날에 신은경 주연의 영화가 하나 개봉했다. 그 당시에 영화를 보지 못했어도 그 내용은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줄거리조차 다 잊어버린 그 영화는 바로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소재로 했다. 내용도 약간 스릴러나 미스테리 장르였는데 영화를 보지 못해 이렇다할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이상에 대한 호기심은 무한히 안겨준 작품이었다. 21살에 시를 처음 발표하고 27살에 요절한 비운의 천재라는 소개만 봐도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다분한데 호기심을 갖지 않는 것이 희한할 정도다. 그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는 그 당시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백화점을 감상한 후에 건물과 그 상황을 투시하여 쓴 것이라 독특하고 행끼리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해석본을 보고 읽으니까 - 백화점을 투시한 것이라는 - 겨우 백화점에서 나들이 온 사람들을 관찰했다는 간단한 내용을 알 수 있지만 그냥 읽으면 정말 낯설어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시가 아니다. 1930년대 경성에 들어선 백화점은 옛 관습을 증오하고 신문명에 환호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이 소일하는 장소였다. 물건이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자리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사려고 모여든 사람들로 득실거렸다고 한다. 아마도 이상은 기이한 존재인 백화점을 이런 식으로 비껴서 바라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말 그대로 투시, 일본에게 정신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나 하등 다를 것이 없이 쪽 빨려들어가 결국 껍질 밖에는 남은 것이 없는 공허한 상태인 조선을 바라봤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이상과 막역한 사이였던 김유정, 그를 끔찍이도 아꼈던 김기림과 구본웅, 구인회를 지탱했던 이태준 등의 여러 인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 당시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들이 어떻게 구인회를 결성하게 되었고 어떤 사상으로 뭉쳤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후에 월북해 생사조차도 확인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월북으로 말년까지 편안히 살다 간 사람도 있었는데 정말 다들 다채로운 사람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이상과 정말 친했던 김유정이 동경에서 이상이 죽기 바로 몇 달 전에 폐결핵으로 죽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가난해서 제대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서 걸린 병이라 그 놈의 돈이 원수였는데, 마지막까지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했던 그의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다. 구인회 중에서도 유일하게 향토색이 짙은 작품들을 내놓았던 그의 소설로 인해 그들의 색깔이 천편일률적이지 않을 수 있었는데 아주 어린 나이에 죽었던 것이 정말 가슴 아팠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면서 어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었겠냐마는, 정말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폐결핵이었던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의 병명이 뇌막염성 매독이었던 것을 그가 동경에서 죽고 나서야 겨우 알았다. 어쩐지 그와 결혼한 변동림도 그가 각혈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의 인생은 누군가 쳐놓은 덫에 걸린 것처럼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혹자는 그가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며 게으르게 산 것을 누구에게 뒤집어 씌우냐고 한 마디 할지는 모르겠다만, 그의 천재적인 의식이 하필이면 약한 체력과 정신력과 함께 공존해서 자신을 제대로 지킬 만큼 강인함을 얻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정신력까지도 강인했더라면 27살의 어린 나이에 요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약했고 그를 바쳐 줄 그 어떤 사회적 지원도 없었기에 그는 끝내 그렇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만약 그를 사랑했던 김기림의 말처럼 그가 파리에 가서 유학을 했더라면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은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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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
로저 스크루턴 지음, 류점석 옮김 / 아우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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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철학자이자 와인애호가인 로저 스크루턴의 이 책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할 책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와인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단지 맛봐 보는 수준이 아니라 와인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봐야 할 정도로 와인에 대해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영국 태생이지만 스스로 마음의 고향이 프랑스라고 생각할 정도로 프랑스 와인에 대해 깊은 사랑에 빠져있는데 그가 말하는 와인 한 두 가지만이라도 구비해놓는다면 충분히 와인애호가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어느 정도로 와인에 대해 조예가 깊냐면 와인 시음회에 초대를 받거나 와인 신상품이 나올 때 감식을 부탁받을 정도이니, 이 책은 필독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단지 그런 와인에 대한 정보만 있다고 한다면 읽는 '맛'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그럴 걱정은 전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필 같은 어조로 진행되어 정보만 가득 받아들일 필요없이 재미있게 읽기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되며, 친절하게도 새로운 와인을 이야기할 때면 그 와인의 사진까지도 수록해두어서 와인에 대해 문외한이어도 손쉽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철학자라고 하면 왠지 어려운 내용만 이야기할 것 같아서 손이 쉽게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책만큼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스러운 어조를 잃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예전엔 정보만 가득 담겨진 실용서 위주로 책을 봤는데 이제는 정보도 있지만 일단 읽기에 부담이 없는 수필체의 글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실용서는 소장하기에도 별로 추천해주고 싶지 않기에 이 책이 딱이다.
 
그가 처음 접한 술은 어릴 때 엄마가 담그시던 엘더베리 과실주였다. 영국에서 자라 포도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과거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연상되는 그 과실주가 그에겐 최초의 술이자 모든 것이었다. 항아리에서 부글거리던 거품이 잦아들면서 휘파람 소리를 내고 진홍빛 액체가 되면 그것을 병에 담았다가 색이 충분히 빠졌다고 생각되면 다시 항아리를 담아서 2년 동안 숙성시키는 과정을 보내고 나면 엘더베리 과실주는 고향으로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실주와 연관되지 않았던 날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그에겐 술이란 고향이나 집과 동일어가 아닐까 싶다. 그 이후에 장학금으로 입학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만난 친구 하나와 교수 한 분께 와인으로의 세계에 초대를 받고 열렬한 바쿠스 교의 신자가 되었고 그것이 프랑스 와인 뿐 아니라 그 밖의 와인에 대해서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전문가로의 발돋움의 시작이었다. 총 1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 [프랑스 와인 기행]과 [프랑스 바깥의 와인들]이 소개가 되어 와인 애호가들이 특히 중점적으로 봐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술을 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수필임을 적나라하게 익힐 수 있는 부분인 1부의 [나의 와인 입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는 와인 애호가이기도 하지만 철학자이다. 그가 철학자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은 2부의 [의식과 존재]와 같은 '철학'적인 내용보다는 오히려 1부 앞에 위치한 [권두부록 : 철학자와 와인]이 더 '철학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철학자 흄에 대해 읽을 때는 백포도주 샤토 쿠테나 샤토 셉티 몽바지약을 마시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여러 유명 철학자들과 와인을 그 특성대로 연결시켜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철학자다운 것이 아닌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와인에 대한 조예가 깊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와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와인이 알코올이라는 범주로 묶는 것을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와인은 술이 아니라 문화이자 기술이자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철학과도 같이 이야기해볼 수 있었는데, 충분히 만족스럽다. 요즘 들어 상아탑에만 갇혀 있는 철학이 현실 세계로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놀랍다. 전에 본 책은 철학과 축구를 연결시켜 여러 주제에 대해 아주 심오하게 분석하는데 구성 자체가 전반전, 휴식, 후반전, 연장전 그리고 승부차기까지 나열되어 있어서 읽기에 참 유쾌했다. 소소한 겉테두리에서부터 속알맹이까지 다 신경을 썼던 책이었는데 이렇게 현실 세계 속으로 들어간 철학으로 우리도 철학적 사고방식을 구사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현실 세계에 나온 철학을 더 기다려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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