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에 뛰어들려면자기 자신을 충분히 믿어야 하고,모험을 즐기려면자신을 충분히 의심해야 한다. - P8
미치광이가 되기는 쉽다. 이단이 되기도 쉽다. 자신의 것을지키는 게 어렵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현대의 사조에 순응하기는 쉽다. 속물이 되는 건어려울 게 전혀 없다. 기독교가 걸어온 역사의 길목에 늘어선, 온갖 풍조와 종파가 놓아둔 오류와 과장의 덫에 빠지는건 정말 정말 간단한 일이다.넘어지는 건 간단하다.넘어지는 각도는 무한하고,서 있는 각도는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 P9
1907년 생체 해부 실험에 거세게 항의하면서 여성과 노동자의 동맹을 주장한 코럴 랜스베리는 이렇게 주의를 환기시킨다. 도살장을 방문하면 가장신념에 찬 육식인도 채식주의자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Lansbury 1985) - P118
도살 제도는 인간 사회에만 있다. 모든 육식성 동물은 자기가 먹는 먹이를 직접 죽이고 소비한다. 먹기 전에 직접 눈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 먹이들이 내지르는 비명도 듣는다. 여기에서는 죽는 동물 말고는 부재 지시 대상이없다. - P119
한나 아렌트는 폭력에는 언제나 도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P120
아직 다리가 붙은 채인 살아 있는 돼지들이 거꾸로 묶여 꽥꽥 울고, 꿀꿀거리고, 울부짖으면서 자기 몸을 앞으로 운반하는 라인에 매달려 있다. 라인이 앞으로 움직이면서돼지들의 멱을 따고, 그런 다음 돼지들은 "펄펄 물이 끓는 거대한 통 속으로 첨벙 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이곳은 도살장이지만, 모두 "이런 돼지의 운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돼지들은 매우 순진했고, 안심하고 이곳에 들어왔다. 그리고 돼지들의 저항은 매우 인간적이었다. 돼지들에게 부여된 권리로서!" - P121
사실 자동차 산업에 처음 도입된 장치로 알려진 조립 라인은 헨리 포드가시카고의 여러 도살장에 들러 동물 분해 라인을 견학하고 얻은 착상이다. - P123
우리 시대에는 수용소에서도, 그렇게 쓸 수가 없다! (앞으로 쓰려는 소설을 위해 이름 몇 개만 간직하고 있어도 위험을초래한다. 조직의 명단이 아닌가 의심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이름의 어근만 남겨 명사나 형용사로 변형시켜 기입했던 것이다.) 기억이야말로 유일하고 확실한 은신처였다. - P154
수용소에서는 연필과 백지를 가지는 것은 허용되고 있으나, <쓴 것>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그것이 스딸린에게 바치는 서사시가 아니라면). - P154
우리는 괴로울 때 신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행복한 때다. - P16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따르면 시라쿠사를 점령한 로마군이 아르키메데스를 찾아와 마르켈루스 장군에게 끌고 가려 했으나, 수학 문제를 푸는 중이라며 거절하자 이에 격분한 군인이 아르키메데스를 칼로 찔러 죽였다고 한다ㅡ옮긴이 - P162
1956년에, 이미 존재했던 지하 출판물 속에서 바를람 살라모프의 시집을 보았을 때, 나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형제를만난 듯이 기쁨을 느꼈다. 그는 시라쿠사가 점령당했을 때의아르키메데스처럼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나는 알고 있다. 이것은 놀이가 아니라,목숨이 달린 일이다.그러나 펜을 버리고 , 다 쓰지 못한 종이를 구기느니나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그 역시 수용소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모든 사람을 피하여, 어둠을 향하여 대답없는 고독한 소리를 외쳤다. - P163
수용소는 일반 사회와는 다르다. 사회에서는 각자가 거리낌 없이 자기를 강조하여 밖으로 그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무엇을 주장하려고 하는지 쉽게 알 수가 있다.그런데 형무소에서는 반대로, 모두가 획일화되어 있다. 모두똑같이 머리를 깎고, 똑같이 수염을 깎지 않고, 같은 모자를쓰고, 같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의 표정도 바람 맞고, 햇볕에 그을리고, 때 묻고, 중노동에 일그러져 있었다. 그개성을 잃고, 지친 외모를 통해 영혼의 빛을 식별하는 데는오랜 세월이 걸린다. - P169
스딸린 사망 후, 야노시는 명예 회복이 되었을 때, 무엇 때문에 자신이 9년 동안이나 감금되었는가를 알고 싶어서, 헝가리어로 쓰인 판결의 사본을보여 달라고 부탁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웠다. <무엇 때문에? 사실,나는 그 이유를 알 필요도 없다……. >그는 <우리 국민>의 기분을 이해했다 ㅡ지금 그 이유를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 P180
12년이 지나 야노시는 작은 도시 너지커니저에서 경리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 무엇을 써 보냈는가?<그 모든 것을 체험한 후에, 저는 저의 과거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 단언했습니다. 저는 괴로운 경험을 통하여,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석방되었을 때 저는 러시아 민족을 절대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러시아인들이 겪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그 선량한 마음 때문이라고, 남은 사람들에게 약속했습니다..….. 나는 왜 지금도 신문 지상에 저의 옛[조국] 에 대한 기사를 관심을 가지고 읽는 것일까요? 러시아 고전 작가의 작품은 저의 서고 책장에 가득 있고, 러시아어로 쓰인 책은 41권이나 있으며, 우끄라이나어로 쓰인 책도 4권(셰프첸고) 있습니다…. 남들은 러시아인이 쓴 글을 영국인이나 독일인이 쓴 것과 똑같이 취급하고 있지만, 저는 러시아인이 쓴 글을 다르게 읽습니다. 저에게 똘스또이는 토마스 만보다 가까운존재며, 레르몬또프는 괴테보다 훨씬 가깝습니다.제가 러시아의 얼마나 많은 것을 그리워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따금 저는 제가 얼마나 바보인가, 자문해 보기도 합니다. 거기에서 무엇이 좋았는데? 무엇 때문에 러시아인을 그리워하지? 저는 청춘을 거기서 보냈고, 인생이란 지나가 버린 나날과의 이별의 연속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후략ㅡ위 글은 솔제니첸이 수용소시절 만났던 헝가리청년의 편지임.러시아어를 전혀 몰랐을때 죄도없이 잡힌 후 러시아군이 내민 서류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서명. 9년간이나 수용소 생활을 함. 스딸린이 죽은후 헝가리인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후 12년이 다시 지나갔을때 솔체니첸에게 그가 보낸 편지(미미) - P182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바실리 꾸로치낀의 일이지만, [이스끄라]가 폐간되고 9년간 그로서는 <참으로 고통스러웠다>고 쓰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기관지를 빼앗겼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기관지를 생각할 수 없었던우리로서는 전혀 이해하기 어렵다. 그에게는 방도 있었고, 조용하고, 책상도,잉크도, 종이도 있었다. 게다가 가택 수색도 없고 쓴 것을 빼앗는 자도 없었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고통스러웠을까? - P153
<친구분과 통화중> 엄마 : 그 모야 A가 그러던데 ‘알라딘‘이라나? 무릎에 좋대 글쎄.친구분: (아마도 당황중)csfyyjj rfefih?엄마 : 그래. 쑤시는데 그만이라나뭐라나. 7~8알씩 들어있대.인근에서 듣던 미미 : 귀를 의심중...걱정 마세요. 저희 엄마는 저보다 큐브도 잘 맞추신답니다(´⊙o⊙`;) 굿데이~♡(이미지 출처:리딩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