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문제'는 이미 언제나 '관심의 문제'이다. 247



생리대 유해 물질 논란이 있었다. 발암 물질이 몇몇 회사 제품에서 발견되었다느니 안전한 제품 리스트는 뭐라느니 말이 많았고 언론에서도 주요하게 다뤘었다. 나중에는 특정 회사가 의도적으로 경쟁 제품에 발암 물질이 많은 것처럼 몰아갔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한동안 여성들의 불안감은 가중되었다. 뜬금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각종 소비재의 유해 물질 논란은 그전에도 있었고 그 후에도 줄곧 있었다. 개인이 유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접근성의 문제와 기업의 이익 추구에 밀린 윤리의식의 부재가 여러 사건으로 누적된 결과, 소비자들의 불신이 큰 몫을 차지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다크 워터스]나 [에린 브로코비치]에서처럼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대기업을 향한 피해자들의 싸움이 정의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인과 관계를 밝히려고 해도 정보는 대부분 사측에 있고 변호사라 할지라도 해당 정보에 있어서는 비전문가나 마찬가지다. 비협조적인 구조에 맞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고단할 뿐 아니라 때로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하고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피해자들의 연대조차 수월하지 않다. 스테이시 앨러이모는 [말,살,흙]에서 인간을 둘러싼 물질세계를 우리 몸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몸과 그 밖에 있는 물질들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눈앞에 닥친 환경 위기는 대표적인 그 증거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환경을 이용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는 환경뿐만 아니라 인류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얼마 전에 난소암 수술 후 5년간 전이 없이 생존한 엄마가 집도의였던 담당 선생님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선생님 개인 휴대폰으로. 수술 당시 4기 말이었는데 고무적인 결과였다. 물론 이것이 '완치'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3년 가까이 요양 병원에 계셨는데 마당발인 엄마가 거기서 사귄 친구분들 가운데 여러 사람이 떠났고 그중 어떤 사람은 엄마와 같은 과정을 거친 후 7년 만에 재발했다고 한다. 이제 1년마다 검사를 받으러 간다. 그동안 쌓였던 불안과 고단함에 안도감이 들었는지 그날 종일 엄마는 몸살을 앓았다. 병원에서 초반에 이 암이 유전자 때문인지 검사를 했었다. 결과는 아니었다. 그 때문에 엄마는 운동을 하고 식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셨다. 



나는 작년 즈음에 염색약의 어떤 성분이 난소암을 일으킨다는 뉴스 기사를 읽었다. 난소암뿐만 아니라 유방암, 방광암의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엄마는 40대 후반부터 새치가 늘어났었고 미용실이나 집에서 꾸준히 염색을 했다. 염색약의 유해 성분이 그런 영향을 미친다면 다른 화학 성분이 포함된 제품에서도 얼마든지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스트레스나 수면 문제 같은 개인의 영역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적인 요인들에 대해 개인은 무력하다. 자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누구보다 낯설어 지는 것이다. 무엇이 엄마의 암을 키웠는지 정확한 답을 아직도 알 수 없다. 병원에서는 결과를 찾고 거기에 맞춰 수술을 하거나 항암 치료를 받게 할 뿐이다. 수술을 하는 병원도 약물을 생산하는 제약회사도 원인 보다는 결과에 집중한다. 암이나 기타 질병의 환경적 영향력을 찾기 위해서는 몸과 환경문제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개인이 도맡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과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개인들 또한 엇갈리는 정보들 사이의 균열을 발견하면 능동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방관은 가장 쉬운 선택이지만 정작 자신의 선택지를 줄이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지금의 기후 위기를 인식한다면 환경정의는 선택이 아닌 우리 몸, 삶의 문제다.



'생각하는 능력','이성','언어'가 있다는 이유로 인간은 외부 세계를 도구화했다. 하지만 말 없는 흙조차 우리의 삶과 뗄 수 없는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 몸을 둘러싼 환경문제, 환경정의에 대한 가치판단은 이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말,살,흙]은 어디서 어떻게 그 연결고리를 찾고 도구가 아닌 우리의 일부로 인식해야 할지 질문하게 하는 책이었다.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우리는 그것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에 비판적 거리를 포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경멸이나 냉소, 무관심, 환희의 태도로 피할 수 없는 일을 피하는 것이 허용이 될까? 171




이 과학적 탐구의 인식론이 역사적.정치적 힘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지식의 주체가 선 입장을 강조하는 샌드라 하딩의 '강한 객관성'이나 다나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호크스가 자신을 초연한 관찰자로 상상할 때에도 , 자지막에는 자신이 이 장소에 푹 잠겨 있다고 깨닫는다. 171


  

적은 양의 음주가 위협을 야기한다는 증거가 부족함에도 여성들은 여기저기서 임신 기간에 술을 끊으라는 강력한 권고를 받는다. 하지만 "임신에 대한 환경 위협에 대해서는 어떤 공적인 대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소아마비 구제 모금운동의 발행물은 "용매제, 살충제 또는 유해물 매립지, 미나마타 또는 베트남을 언급하지 않는다". 253



 

화학물질복합과민증은 "근대성modernity을 몸으로 고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280



다나 해러웨이는 오랫동안 비인간의nonhuman 작용능력이 지니는 인식론적.윤리적.정치적 함축을 풀어내려고 노력해 왔다. [영장류 비전]에서 해러웨이는 "자연/문화 이분법주의에 고착되어 있는 지배하라는 전유주의자appropriationist 논리의 함정을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러한 논리는 세계를 "작용물agent이 아닌 사물"로 간주하며, "자연은 문화를 위해 전유되고, 보전되고, 예속되고, 고양되는 원재료일 뿐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자본 식민지주의 논리 속에서 문화가 처분할 수 있도록 유연해져야 하는 원재료일 뿐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349







        



        




  

     





위의 6권은 [말,살,흙]에 나온 책들, 언급된 연구자의 책이고 마지막 2권은 개인적으로 관련지어 담아봤다. [다윈의 라디오][화이트 노이즈]가 특히 궁금하고 마지막 두 권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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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2-15 0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완독하셨군요!
저는 이제 1장 읽고 있어요.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도나 해러웨이가 생각나고 또 얼마전에 함께 읽은 크리스테바가 생각나기도 했어요.
오늘 이 미미 님의 글은 제가 이 글을 읽기 전에 읽으면 좋을 개론서의 느낌을 줍니다.
읽느라 고생하셨고 정리하는 글을 적어주셔서 고마워요.

어머님도 미미 님도 아무쪼록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아 2024-02-15 09:05   좋아요 1 | URL
저는 초반에 읽을땐 마리아로사 달라코스따의<페미니즘의 투쟁>이 떠올랐어요. 난해한 부분도 더러 있는데 지난달에 크리스테바를 읽어서 적응이 되었나봐요.
(이해할 수 있는 내용 위주로 집중)
이 책 읽는동안 신문이나 뉴스에서 접하는 환경문제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다락방님 이번에도 귀한 책을 선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stella.K 2024-02-15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은 정말 다행이네요.
어려운 암중 하나라고 들었는데 잘 이기셨네요.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염색약은 참 그렇긴 해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텀을 길게 두고 하려고 있습니다. 게으르기도 하고. 내 친구는 3주에 한번 한다고 해서 속으로 좀 놀랐어요. 그레이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블랙을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경 생각하면 안하는 게 좋긴한데.ㅠ

청아 2024-02-15 19:3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스텔라님. 이 책에 화장품,향수등 미용용품의 화학성분 유해성 이야기도 나오거든요. 염색약도 그렇고 여성암의 경우 그런 제품들의(종류의 다양함과) 이용률이 기본적으로 높다보니 더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명확히 인과관계를 소비자가 밝힐 수 없으니 불안해하며... 아예 안쓸수는 없고...저 뉴스보고 저는 염색 안하고 있는데 바르는건 가끔 해볼까 고민중이에요. ^^

얄라알라 2024-02-15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미미님, 이 글 읽을 수 있어서 저가 다행입니다. 감사드려요

청아 2024-02-16 09:49   좋아요 0 | URL
얄라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제가 더 감사하죠. 생각꺼리는 물론 이야기할게 아주 많은 책입니다. ^^

그레이스 2024-02-19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회피할수 없는 일에 대해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눈물이 날 정도로 비수가 되어 오는 문장입니다.
편하게 살고픈 욕망과 대면하는 매순간!

청아 2024-02-19 11:45   좋아요 1 | URL
네! 이렇게 꽂히는 문장들이 여럿 있어서 전반적으로 어려운편인데도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그레이스님도 독서때 감동지수가 높으신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4-02-26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네요. 깜놀 중입니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넘 어려워 뭐지? 하면서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일단 감부터 잡아가고 있어요. 어머님의 완치는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병의 원인을 찾아야지 결과에만 치중한다는 미미 님의 문장에 무척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도 아버지의 뇌종양 투병을 간병하면서 병이 생기게 된 환경적 요인이 분명 있을터인데 왜 원인불명이라고만 하는 것일까? 무척 답답하더군요. 그리고 염색약은 정말 무섭게 해악을 끼치는 용품이 아닐까?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염색약이나 독한 샴푸등이 생식기를 파괴한다는 소리를 듣고 참 난감하더군요. 매일 머리를 감고 있고, 흰머리가 많아 3개월에 한 번씩 염색을 하고 있는지라....ㅜㅜ 어휴...암튼 이 책을 더 꼼꼼이 읽어봐야겠어요.^^;;.

청아 2024-02-26 13:37   좋아요 1 | URL
어려운 부분은 훑으시고 잘 이해되는 위주로만 읽으셔도 속도감 있게 읽으시고 맥락을 잡는데 어려움이 덜 하실거예요. ^^
엄만 늘 밝으신데 재발한 친구분들 이야길 들으시면 내색은 안하셔도 밤잠도 설치신다는걸 알고있어요. 나무님 아버님, 뇌종양 투병중이시군요. 환경 요인은 거의 무시되는것 같아요.염색약, 화장품, 향수, 세정제, 각종 청소용품과 공기청정기등 종류도 너무 많지요.신자본주의의 인간소외 현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래서 도브비누로 감고 트리트먼트는 하고 있어요.나무님의 완독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