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번 앉아보시겠어요?

결국 내가 의자를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주목을 끌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지만 그즈음에 이르러서는 조심스럽게 우리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의 눈빛이 노골적으로 우리 쪽을 향해 있었다. 여기서 화장실 안이 다 보이거든요. 사람들도 계속 지나다니고요. 제가 이 주 전에 예약했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옮겨주세요. 나는 거듭 요청했다.215



코로나 시기에는 극장에 워낙 빈자리가 많아서 중앙 아무 데나 자리를 잡았지만 보통은 맨 뒷자리를 선호한다. 뒷자리에서 발로 차는 걸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에서랄까. 걷기를 좋아하던 너와 거의 매주 종로의 극장을 찾았었다. 그날도 기분 좋게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뒷자리에서 자꾸만 발로 쿵쿵 내 의자를 찼다. 몇 번은 그냥 넘겼는데 영화에 집중할만하면 또 차고 또 차서 나는 뒤를 돌아보고 조심해달라고 최대한 작게 주의를 줬다. 그런 일이 극장에서 두 번 정도 있었다. 너는 그때마다 나에게 참으라고 말했고 나는 화가 났다기보다 불편한 상황을 멈추고 평온하게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나를 대하는 너의 태도로 인해 오히려 기분이 상했던 걸로 기억한다. 너는 왜 내 입장을 생각해 주지 않고 앞으로 만날 가능성도 거의 없을 그들에게 쩔쩔맸을까? 왜 죄 없는 나는 유난스럽고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그 두 번 중 한번은 네가 그래도 나를 생각해 자리를 바꿔주었는데 그럼에도 뒷자리에서 발로 차는 게 옆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놀라서 돌아보면 악의적으로 그럴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굳이 영화관에서 그런 악취미로 시간 낭비할 사람들이 있기는 할까? 너무 좁은 의자 간격의 문제도 있었을 테고 다리가 의도치 않게 너무 길어 감당이 되질 않았던지, 가만히 앉아 있는 게 그저 답답해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다 보니 그랬을 수 있다. 그래도 앞 자리에서 눈치를 주면 조심해야지. 




좋은 게 좋다니. 누구에게 좋다는 걸까.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그런 걸 따져 묻지는 못했다. 그게 뭐든 네 의도가 선하다는 것을 나 역시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너는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생기는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이고, 그건 네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야..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217




이 책은 작가가 경험한 여러 '너'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너라는 생활'을 지켜보는 나(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야기들 속 '너'는 유독 EP 성향이고 '나'는 IJ 성향이라 불꽃은 어쩜 당연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유독 사람들은 다른 성향을 만나 사서고생을 하는건지...'너라는 생활'을 읽으며 사사롭지만 결코 사사롭지 않았던 일들을 떠올린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자는 사람들, 도대체 그게 왜 누구에게 좋은 거냐고 묻는 사람들. 차별 당하면서 차별하는 사람들. 혼란스러운 얼굴들, 모순적인 표정들. 매일 볼 수 있는, 그러나 대부분 글로 남겨지지 않았던 흘려보냈던 일들을 작가는 잘 포착해냈다. 




분노는 방향을 틀고 너에게로 간다. 나에게도 너만 믿고 너를 의지한 시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걸 당연하게 여겼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만큼은 그런 시간 전부를 잊은 것 같다. 너는 시시때때로 공과 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람이고, 일과 생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사람이고, 모두를 곤란하고 난처한 상황 속에 몰어넣는 사람이고, 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면서 거듭 우리의 생활을 위태롭게 만드는 사람이고. 그 순간엔 그런식으로 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부풀리는 데에 또다시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될 수 있었을까.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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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7-21 15: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만남이라는게 성향이 맞는 사람하고 꼭 만나지는 건 아니잖아요.
성향의 차이는 정말 힘들기는 해요.
그렇다고 그 만남을 안할 수는 없고요.
피곤하지만 서로 배려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것도 안되면 그때는 할수 없이 만남을 포기해야하고요^^

청아 2023-07-21 15:42   좋아요 3 | URL
저와 다른 성향에 끌리곤 했네요.ㅎㅎㅎ
글로 쓰는 건 주로 이런 이야기들이지만
좋은 점들이 많아서 다 오래 만났던 것 같아요.
저에게 많은 변화를 주기도 하면서요.^^

새파랑 2023-07-21 15: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극장에서 자리 발로 차는 사람 정말 싫죠 ㅋ 조금만 신경쓰면 좋을덴데요 ㅎㅎ

그래서 전 극장엘 안간지 몇년 됐습니다 ㅋㅋㅋ

청아 2023-07-21 15:49   좋아요 2 | URL
저런 일 있고 난 뒤에 다른 분들도 많이들 경험하셨는지 영화 시작 전에 앞자리 차지 말라는 멘트가
나오더라고요. 이 얘기도 전에 한 것 같은데ㅋ 책을 읽다가 생각나서 써봤네요.

요즘은 좌석 스타일도 다양하고...그렇지만 저도 잘 안갑니다ㅋㅋㅋㅋ

자목련 2023-07-22 1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혜진의 소설, 애정해요❤️❤️❤️

청아 2023-07-22 13:05   좋아요 0 | URL
저도 좋아하게 됐어요ㅎㅎ♥
김혜진의 다른 소설들도 더 읽어보려고요^^

그레이스 2023-07-23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될 수 있었을까˝
맞아요 맞아!

바빠져서 좋아요만 눌러놓고 북플을 도망치듯 빠져나오곤 하다가, 겨우 여유가 생겨 페이퍼 하나 쓰고 알림받은 내용들 읽어보고 있습니다.
이 책 읽고 싶네요.
딸에 대하여 좋았어요.

청아 2023-07-23 22:28   좋아요 1 | URL
그 대목 때문에 간략하게 나마 글을 꼭 남기고 싶었어요.
그레이스님이 딱 알아봐 주시네요^^*

이 책 좋았습니다.<딸에 대하여>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책읽는나무 2023-08-07 2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혜진 작가의 소설들 좋아합니다.
이제 보았네요^^
정희진 샘이 윤리적인 작가라고 칭찬하셨는데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많이 들곤 합니다.
조용하지만 센....젊은 여성작가들 참 많아요.
김혜진 최은영 백수린 김금희 황정은 등등...
사랑스런 작가들이에요^^
그 중 김혜진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면 왠지 매번 마음이 꽤 힘들어 지기도 했네요.^^;;

청아 2023-08-07 23:38   좋아요 0 | URL
제가 국내 작가들에게 소홀했는데 이번에 이 책 읽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무님은 이미 여럿 읽어오셨군요! 황정은 작가를 제외하곤 다 읽어본적이 없네요. 메모해둡니다^^
저도 마음이 복잡했어요. 그래서 딱히 독후감이라기엔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감상이 되어버림요ㅎㅎ 김혜진 작가의 다른 책들 다 대출중이라 예약걸어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