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성이, 언제, 무엇을,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Lakoff, 1975: McLellan, 2010)를 까다롭게 골라주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은 커뮤니케이션 불안에 시달린다. - P69


어제 시사기획 창에서 기획한 '너를 사랑해2 거미줄 그루밍'을 일부 시청했다. 디지털 미디어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는 가상의 공간에서 현실과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 사람들과 교류하고 현실과 같은 사회,문화,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가상현실 플랫폼은 현실의 문제도 그대로 담고 있다. 온라인 그루밍이 그것이다. 어린 10대 여자아이들이 이곳에서 은밀한 성적 농담과 희롱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었다. 그들의 순진함을 악용해 접근하는 남성들은 점점 수위를 높이고 맞팔을 요구하는 등 긴밀하게 접근해온다. 뻔뻔스럽게도 그들은 여자아이들이 그들의 요구에 당황하거나 거절의사를 표현하면 '너희 부모에게 이른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이로인해 피해를 입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충격적인 사실은 가해자들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로 하여금 어린나이에 또래 여자아이들을 희롱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것은 무엇일까?





말 한번 잘못했다가 신상이 털리고, 커리어가 중단된 수많은 사례를 지켜보면서 여성들은 ‘반드시‘, ‘당연히‘와 같이 불안을 일으키는 비합리적, 당위적 사고(Ellis, 1995)를 학습한다. - P69


부르디외는 주어진 상황에서 맥락에 적절한 말을 하는 실천적 능력을언어 아비투스로 지칭했으며, 이를 통해 언어 실천이 단순히 의식적인계산의 산물이 아니라 전성찰적인 차원에서 경험되는 체화된 인지 도식이라고 보았다(심성재, 2016).
언어 아비투스에 대한 부르디외의 설명은 권력 부족에 기인하는 불안과 이를 느낀 감정의 주체가 어떠한 인지적 행위를 하는지에 대한 기존의 연구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인지 측면에서 불안을 느낀 주체는 불확실성의 제거를 위해 주변 상황에 끊임없는 주의를 기울이고(Marcus,Neuman & MacKuen, 2000), 스스로 정보를 더 많이 찾아 나서는 정보추구 성향을 보이며, 기존 신념과 불일치하는 정보를 수용하고, 주어지는 정보에 대한 주목도도 높다(Valentino, Brader, Groenendyk.Gregorowicz & Hutchings, 2011).- P71


 ‘남성들의 거부감이 이렇게 심한데, 수용 가능성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다는 것이 맞는가?‘라는 가상의 질문에 미리 대답을 해두자면, 이 질문은 언어 시장의 수요자를 남성일반으로 한정하는 오류와 더불어 언어시장의 과반을 차지하는 여성청자의 존재를 치워버리는 차별적 시선을 담고 있다는 것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 P71


미러링의 과격한 성격으로 인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부정적 시선은 무얼 말해주는가? 여성의 발화는 그것이 남성들의 혐오에 의한 것이더라도 보다 온유하고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지극히 남성주의적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원본(여성들이 미러링한)인 남성들의 '여성혐오'를 당연한 것 , 거부할 수 없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미러링을 하는 여성들만을 비난한다. 또한 혐오를 막기 위한 미러링보다는 나은 방식으로 남성들이 수용가능하도록, 한명이라도 여성들 편을 들도록 유도해야만 한다는 것 또한 남성줌심적 시각임은 자명하다. 


미러링 전략의 궁극적 목적은 원본이 가진 폭력성을 지적하고, 미러링(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중잣대와 이를 만든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보이는 것을 통해 젠더 권력의 차이를 좁히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얼마나 잡음 없이 받아들여졌느냐‘는 기준은 미러링의 성공적 수용 여부를 판가름하는 주요 기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잡음과 거부감의 유발이 미러링의 목적 달성을 돕는다. - P72


미러링을 향한 이런 비난은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남성주의적 시각과 맥을 같이 한다. 최근 연달아 언론에 오르내리는 스토킹범죄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헤어질때 여성들이 좀더 남성들을 따뜻하게, 친절하게 대해주었어야 했다', '너무 칼같이 거절하니 남자가 분도한 것이다'란 의견을 덧대며 2차 가해를 하곤했다. 야당의 이상훈 의원이 "너무 좋아하는데 안받아주니 폭력적인 대응을 한 것같다'와 같이 망언을 한 사례가 이런 일부의 비뚤어진 시선을 그대로 반증한다. 이런 식의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은 그대로 토양과 씨앗과 물, 햇볕,양분이 되어 무럭무럭 자라 또 다른 폭력의 가능성으로 만발한다. 그리고 그 폭력적인 식물은 아가리를 벌려 또다른 희생양을 삼킨다. 리베카 솔닛이 말한것처럼 그 폭력은 원인인 동시에 결과인 것이다.


미러링의 발화자들은 자신들의 언어 생산물이 ‘절대로 원본(의 폭력성과 현실성)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기에 미러링을 만들 수 있었다. 여성들의 신체적 감각은 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기보다는 누적된 경험의 결과물로, 여성들이 그동안 노출되어왔던 여성혐오적인 게시물의 규모와 거기서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평가 기준에 얼마나 주목해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 작은 유희를 벗어나면 ‘끔찍한 현실‘이라는 원본이 그 그동들을 기다리고 있기에.", "미러링의 유희가 괴로움과 허탈함을 예정하는 ‘쓴웃음‘인 이유는 미러링으로 사회를 고발하는 사람들은 미러링의원본이 처절한 ‘현실‘이고, 자신이 만든 거울상은 ‘현실‘이 아님을 가장 공감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P73


어제 본 방송 '너를 사랑해2 거미줄 그루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이거였다. 온라인 그루밍관련해 아이들을 돕고 있는 한 전문가는 말했다. 온라인 성범죄에 있어 가장 전문가는 가해자들이고 반전문가는 피해자들이다. 그리고 가장 무지한 사람들은 부모와 선생님들이다. 갈수록 발달하는 미디어세계에서 우리는 더욱 현실에 걸맞는 아니 그보다 앞선 공부가 필요하다. 


폭력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영향을 받은 여자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남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P.8-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혐오는 무지의 결과이고 미러링은 혐오의 현실을 이해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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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9-21 11: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는 기쁨을 오늘은 정말 최대치로 느낍니다, 미미 님. 게다가 미미님과 제가 비슷한 타이밍에 같은 부분을 읽고 있었어요. 써내는 글은 다르게 표현되어졌지만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표현해준 것에 대한 동의와 공감에 대해서는 같은 결을 가졌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정말이지, 미러링은 여성혐오 사회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아주 현명한 방법이었어요.

청아 2022-09-21 11:30   좋아요 5 | URL
저도요 다락방님!! 저는 미러링에 동의하면서도 그 기능의 숨은 의미와 파급력,가치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래서 어떤분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며 제가 미러링에 긍정적으로 쓴 점을 지적했을때 정확하게 말 할 수 없어서 답답했거든요.(잘 모르니)그런데 이 부분 읽고 너무 명쾌했고, 남성혐오와 여성들의 미러링이 왜 제게 다르게 느껴졌는지 이유를 알게되었네요.

2022-09-21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1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1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1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1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1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리의화가 2022-09-21 12: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73페이지 인용문에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나요. 개인적으로는 누적된 결과물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와닿더라구요. 여성들의 피해의식, 자신도 모르게 방어 기제들이 쌓이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요.
오늘 다락방님도 그렇고 미미님도 함께 이야기를 전해주셔서 참 좋습니다. 많은 남성 독자분들께서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청아 2022-09-21 13:05   좋아요 3 | URL
네! 특히 미러링에 대해 잘 써주었죠!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예민하고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밖에없다는 전제도 무릎탁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남성들의 혐오는 무지의 결과이고 미러링은 공부의 결과라고 느꼈어요. 뒷부분도 잔뜩 기대됩니다*^^*

단발머리 2022-09-21 16: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부분(특히 72, 73쪽) 인상깊었는데 미미님 글 읽으니 정리가 더 잘 되네요.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부분은 걱정스럽게ㅠㅠㅠ 공감되고요.
앞으로도 글 많이 써주세요, 미미님! 기다리고 있습니다요!

청아 2022-09-21 16:53   좋아요 3 | URL
온라인 그루밍 생각보다 심각하더라구요.ㅠㅠ 악질적인 이른바 ‘우쭈쭈‘들이 온라인에서 활개를 치고있어요. N번방 착취도 계속되고 있구요. 또한번 다락방님의 시의적절한 책선정에 감탄했습니다.
단발머리님도 많이많이 써주세요!*^^*

독서괭 2022-09-21 22: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너를 사랑해 봤는데(보면서 욕나왔어요 ㅜㅜ 가해자들 넘 끔찍해서 ㅠㅠ) 2가 나왔나요? 미미님 덕에 찾아봐야겠어요! 미러링에 대한 내용 흥미롭네요. 저도 어서 따라가야..^^;;

청아 2022-09-21 23:19   좋아요 4 | URL
아! 제가 어제 우연히 방송 중간부터 봤거든요. 검색하니 제목이 이렇게 떴어요. 대화내용 그대로 보여주는데 정말 끔찍하더라구요.ㅠ.ㅠ 마침 이 책 읽던터라 도움이되었어요. 괭님도 이 책 좋아하실것 같아요*^^*

mini74 2022-09-22 12: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미줄 그루밍 ㅠㅠ 교묘하고 끔찍하네요. 미러링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미미님 글 통해 알게되네요.

청아 2022-09-22 12:18   좋아요 3 | URL
네 ㅠ.ㅠ 이 책에 ‘미러링‘이 나올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좀 더 명확히 알고 싶던 주제인데 여기서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어서 좋았어요.*^^*

2022-09-22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2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