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떤 미소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가는 어떤 것이다.ㅡ로제 바이앙
법대생 도미니크는 남자친구인 베르트랑을 따라 그의 외삼촌 뤽을 만나러간다. 남자친구의 외삼촌이라면 일반적으로 나이 차이가 상당할텐데 도미니크에게는 그런 점이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사강의 소설을 잃다보면 문제가 되는 것은 삶의 권태, 침잠하는 우울과 무기력이라는 생각도 하게된다. 그래서일까 베르트랑과는 다른 느낌과 분위기에 도미니크는 점점 뤽에게 매력을 느끼고 결국 유부남인 뤽의 제안에 두 사람은 호텔에서 3주간 둘만의 비밀스런 여름휴가를 함께한다.
나는 저 앞의 다리가 잘려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에게 집착하지 않기 위해 적당히 잘해나갈 것이다. 난 그렇게 미치지는 않았으니까.p.82
이 후 도미니크에 의해 거의 의도적으로 남자친구인 베르트랑이 사실을 알게되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소란스러운 과정도 없이. 무척 쿨한 이별이었다. 오히려 도미니크가 신경쓰는 것은 뤽의 아내 프랑수아즈였다. 프랑수아즈는 함께 식사와 쇼핑을 하며 도미니크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있는 남자와의 연애라니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라면 김치싸대기가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상황. 하지만 뤽의 아내 프랑수아즈는 두 사람의 밀회를 알고도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에 초대하고 술을 나누어 마시며 흥분한 도미니크를 달래준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젊은 그녀를 질투하고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놀랐다. 미소 짓는 내가 보였던 것이다. 미소 짓는 나 자신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알고 잇었다. 내가 혼자라는 것.나는 나 자신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p.200
지금까지 읽은 몇편의 사강의 소설들은 연인을 두고도 다른 사랑을 찾아가는 주인공들을 담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놀라지는 않았다. 사강이 이런 극적인 장치, 막다른 골목같은 사랑을 통해 꾸준히 보여주고자 하는 건 뭘까? 눈에 띄는 '배신'이라는 소재보다도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인간의 타오르는 감정과 이카로스처럼 스스로 추락하는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사랑이라는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비행하지만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독. 외로움
집에 돌아가서 새 장편소설을 한 권 읽기로 마음먹었다. 사르트르의 아주 아름다운 책'철들나이'였다.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그 책에 열중했다. 나는 젊었고, 한 남자가 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나는 젊은 여자의 바보 같고 사소한 갈등 하나를 해결해야 했다.(중략) 사인조의 아주 사소한 게임이 파리의 봄 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메마르고 아름다운 방정식, 소원대로 파렴치한 방정식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p.47
실제로 사강은 사르트르를 찬미하며 그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던중 뤽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도미니크가 '구토'감을 느낀것(사르트르의 책 '구토'), 뤽을 묘사하며 그가 잘생기지 않았다고 말한것(누가봐도 사르트르는...), 뤽이 지식인이란 사실, 사르트르가 인용된 부분을 조합해 뤽이 사르트르를 모델로 한 것으로 짐작했다. 사강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소설에서 구현해냈던 것일까? 내 추측이 잘못된 것일수도 있지만 사실이라면, 그리고 사르트르 역시 그런 의견을 듣거나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어떤 반응이었을지 궁금하다. 소설 속 주인공의 불륜적 일탈과는 반대로 작가에게는 적나라한 편지보다 소설이 더 매혹적인 구애의 방식이었을것이다.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이 자신이 추구했던 욕망 위에 정확히 내려앉는 일은 매우 드물다."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