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는 말을 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27년동안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성평등과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헌신했다. 미국에서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며 우리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최종심의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요한 쟁점들까지 다루게되는 자리다. 대법원이 보수적인 결정을 내릴 때마다 (나는 반대한다 "I Dissent”) 라고 외쳤고, 이 말은 긴즈버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이 책은 법률가로서 평생 여성과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헌신해온 긴즈버그가 법정, 언론 매체, 강연, 포럼 등에서 했던 말 중 인상적인 구절들을 담았다.
여성 차별은 일상적인 일이라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1962년과 63년 여름에 스웨덴에 있으면서였다. 생각이 바뀌는 데에는 스톡홀름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에바모베리 Eva Moberg라는 여성이 큰 몫을 했다. 칼럼의 요지는 이러했다. 왜 여자들은 두 가지 직업을 갖는데 남자들은 한 가지 직업만 갖는가? 당시 스웨덴은 미국보다 선진국이었고 맞벌이의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치과에 데리고 가고 정기검진을 받게 하고, 새 신발을 사서 신기고, 7시에 저녁상을 차리는 것은 여자들 몫이었다. 여자들은 그런 현실에 대해 활발히 토론했다. 남자들이 쓰레기를 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않았다.
ㅡ2005년1월 31일,듀크대학교 로스쿨 P86
여성은 남편과 맞벌이를 하는 경우에도 가사와 육아를 홀로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가사와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오래된 인식때문이다. 아이가 아닌 반려견을 키우는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노견이된 우리집 츄츄를 병원에 데려가거나 씻기는 일,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것도 내가 다 해야하는 일이었다.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점들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하나 고쳐나갔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었는데 예를들면 내가 츄츄 기저귀를 갈아주는건 혼자 하는데 남편이 할때는 항상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유는 자신은 익숙하지 않고 내가 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익숙한건 혼자 여러번 해봐서지 타고난게 아니야. 자꾸 하다보면 누구나 숙달되지 않아?"고 되물었다. 이제는 남편도 나만큼 익숙해졌다. 누구에게나 이런 과정이 수월하진 않겠지만 다툼없이 인식이 바뀐 경험을 하면서 사회.문화적 변화도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할꺼라는 가능성을 보았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그들은 법과 여성에 대한 강좌를 원했다. 학생들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나는 도서관으로 갔다. 한 달에 걸쳐 젠더와 관련된 연방법원의 모든 판결문과 모든 법률 잡지 기사를 찾아 읽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ㅡ 2005년 1월 31일, 듀크대학교 로스쿨 P.87
아직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많지만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느낀것중 하나는 역사상 위대한 여성 인물들이 없는게 아니라 지워지고 사라지고 누락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화가들은 물론이고 사상가들이 있지만 남자들만큼 다루어지지도 않고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쉽게 배제되며 그러므로 결국 없던 사람이 되어버린다. 여성학을 공부해야 비로소 드러나는 이름들은 과연 내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긴즈버그의 딸은 "어머니가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한번씩 받는다고 한다. 거기에 대해 그녀의 딸은 "좋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법원 곳곳에 여성 법관이 더 많이 생겨서 숫자를 세지 않게 된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문제로 논란이 많았을 때, 어떤 분이 내게 물었다. "꼭 국회 남녀 비율이 능력에 상관없이, 억지스럽게 50대 50이여야 할 필요가 있냐고" 여성 의원의 수가 조금씩 늘어 현재 남성의원80%, 여성의원 20%에 불과하지만 인구비율대로 반석씩 차지하는건 물론이고 여성의원 60%,남성의원 40%는 상상도 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물론 정확히 항상 50대 50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남자가 조금 과반을 넘기기도 하고 때로는 여성이 과반을 좀 넘겨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 오길 바란다. 지금은 상상만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도 한국 여성들이 가야 할 길이 참 멀다.
때로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자, 이제 여성 대법관이 세 명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몇 명 있어야 충분하다고보십니까?" 그러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홉 명이 될 때라고. 이 발언 뒤에 긴즈버그는 "이렇게 대답하면 사람들이 의아해 하지만, 대법원이 대법관 9인체제가 된 이후로 오랫동안 대법관 아홉 명이 모두 남성이었다. 여성 대법관이 아홉 명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라고 덧붙인다.ㅡ2016년 9월 7일, 조지타운대학교 법률센터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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