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시간을 쓰느냐는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요즘은 남자들도 피부관리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하나 아직까지도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외모에 들이는 수고가 덜하다.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은 특히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를들면 기본적으로 펌이라는걸 하는 남자는 흔하지 않다. 여성들은 머리길이도 천차만별이며 펌의 종류도 다양하고 염색과  탈색, 영양까지 수많은 옵션 중 자신이 원하고 스스로에게 걸맞는 스타일을 찾아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피부와 옷 입는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백화점은 여성 앞에 놓인 수많은 고민거리의 결정체다.
남성들은 헤어스타일, 피부, 옷에 여성들만큼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다. 화장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정기적으로 변화를 주어야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일정한 자기 스타일대로 꾸준히 깔끔하게‘이발‘을 할 뿐이다. 여성들은 기분이나 유행에 따라 변화를 주기도하고 계절에 따라 갖추어야 할것들, 신경써야 할것들이 때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예전에는 이런 다양한 ‘선택권‘이 여자들에게 좋은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들은 ‘선택‘의 폭이 참 좁구나 왜그렇지?라고 믿었다. 하지만 단순하게 바꿔 생각해보면 이런 다양한 ‘선택‘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선택‘과 ‘집중‘이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외모를 치장하고 가꾸고 신경쓰느라 정작 중요한 권력에의 ‘필요‘를 놓친다. 몇 차례의 페미니즘 물결을 거치면서 여성들은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화장을 거부하고 ‘실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의식‘은 자본주의의 강력한 ‘일상‘앞에서 매일,매순간 보이지 않는 전투를 치른다.


여성들이 빼앗기는 이 시간들은 대체되는 미적 선택사항들로 인해 스스로에게 작은 권력으로 여겨져 일시적이긴 해도 각 과정에서 소소한 또는 일정수준이상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거기에는 궁극적이거나 본질적이고, 영구적인 권력은 없다. 그리고 너무 많은 ‘선택‘들로 쉽게 피로해지고 ‘다른‘것에 신경쓸 여력이 없어진다는 치명타가 있다.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무가치한 것들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역시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기 쉽고 이로인해 불안과 낙담, 낮은 자존감, 의존성이 커진다. 결과적으로 남성주의사회에 최적화된 노예가 된다.


이런 것들을 과연 여성스스로, 의도적으로 만들었을까? 이 책은 자본주의가, 아름다움이라는 조작된 신화가  여성의 사회적 배제와 거기서 비롯된 욕구를 이용해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탐욕 구조는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억눌린 여성의 필요를 끝없이 만들어내고 재생산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끝없이 창출한다.


여성의 미의추구는 여성에 의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나오미 울프의 글을 읽어보면 사실 여성에 의한것이 아니다. 사회적요구와 남성중심주의의 결실,반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여유가 없고 따라서 분노할 수 없고 행동할 수 없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아주 자연스럽게 상실한다. 따라서 자신만의 언어를 얻지못해 묵묵히 남성중심사회의 말단으로 계속 복무하고 길들여진다.

여성들을 세뇌해 아름다움의 의식을 따르도록 한 결과, 여성은 전세계에서 정치적으로 조용해졌다

아름다움의 의식이 사용하는 세 가지 요소인 굶주림과 혼란스러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부채 의식은 전세계에서 분노한 사람들이 조용히 엎드려 있게 하고 싶을 때 정치 지도자들이 썼던 수단이다.
아름다움의 의식은 날마다 영원한 유예라는 전제를 통해 여성이 조용히 있게 한다.

이 종교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여성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옛 종교가 여성의 성이 남의 것이라고 가르쳤듯이 말이다.  - P209

유예의 종교가 줄곧 여성의 영역이었던 것은그것이 여성에게 이승의 삶이 아닌 삶에 집착하도록 하고 권력의 축소판을 제공함으로써 진짜 권력을 건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여성이주축이 된 고대 로마의 엘레우시스 제전과 중세의 성모마리아 숭배에서 오늘날 아름다움의 의식에 이르기까지 국가도 여성에게 이런 활동을 장려했다.
- P210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래시Christopher Lasch는 《나르시시즘의 문화The Culture of Narcissism》에서 미래에 대한 절망이 어떻게 젊음에 집착하게 만드는지 이야기한다.

이 아름다움의 의식은 여성에게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친다. 자기 몸과 자기 삶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결코 사는 게 아니다.  - P211

중국의 문화혁명은 "재교육" 지도자들에게 세뇌하기 가장 좋은 사람은 죄의식과 죄책감이 가장 발달한 사람, 자아비판에 가장 취약한 사람이라고 가르쳤다. 이런 것을 보면, 마음을 바꾸는 메시지에 가장 취약한 사람은 요동치는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려고 발버둥 치는 오늘날의 일하는 여성 같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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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19 13: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는 책들에 나오미 울프의 글들이 인용이 많이되더라고요ㅠ 꾸미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여성의 이력서엔 여전히 외모가 한 자리 차지하죠 ㅠㅠ 미미님 좋은 글들 맘에 담아갑니다 *^^*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

청아 2022-02-19 13:08   좋아요 4 | URL
계속 각성하면서 읽고 있어요. ㅠㅠ 나오미 울프 굉장히 똑똑해요 미니님!
여성들은 스스로 가꾸기와 육아,가사까지...뭔가 만들어내고 변화시킬 여력이 없네요. 그럼에도 이렇게 깨어있는 여성들을 보면 참 강하구나 자유롭게되면 얼마나 더 능력발휘를 할까 안타깝기도, 기대가 되기도합니다.^^* 미니님도 주말 재밌게 보내세요~♡

새파랑 2022-02-19 13: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백화점을 언급하시니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읽어야 겠군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전 사람들이 외모에 대한 평가 같은 이야기를 하면 듣기가 불편하더라구요. 그래서 화제를 돌립니다 ㅎㅎ

청아 2022-02-19 13: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현명하신 새파랑님 ^^*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백화점 인테리어, 상품묘사가 느낌상 30~40프로 정도되는데 그 부분만 좀 힘들었어요ㅎㅎ새파랑님은 어떠실지 궁금해요!

페넬로페 2022-02-19 14: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번씩 책과 현실의 괴리감이 참 암담하더라고요. 분명 맞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고 아무리 각성해도 현실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게 문제인 것 같아요 ㅠㅠ
남자들에 비해 이 세상은 여자들에게 너무한 것 같아요.
고등학생이 학교 가기전에(지인의 딸아이) 1시간 화장하게 만드는 사회가 참 문제인 것 같아요. 그 많은 것들을 언론이 조장하고요~~
첩첩산중 입니다~~

청아 2022-02-19 14:31   좋아요 3 | URL
네 첩첩산중입니다ㅠㅠ
알면 알수록 기이하게 느끼던 모순들의 실체가 분명해서 뜨악하게 되네요. 지난번에는 제가 주저했는데 이 책 강추예요 페넬로페님~♡
매번 느끼지만 진작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생생하게 보여 신기해요!!화장,악세서리, 여러가지 장식품들, 육아와 가사노동,...언론과 특히 광고가 이런 권력관계를 더 굳게다지고 영속하게 하네요😭

얄라알라 2022-02-19 16: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직 초반부 머물러 있어서. 선택의 자유가 음모(?)일 수 있다는 미미님 지적까지 생각이 이르지 못했네요.
최근 읽은 <임신중단>에서도 ‘선택의 자유˝ 수사가 실은 규범적 여성성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다는 비판을 했던데...

미미님 글 읽고 보니, 제가 ‘선택‘을 떠올릴 때의 선택도 고작 ˝소비자로서˝ 선택에 머물러 있었다는 걸 알겠어요....

청아 2022-02-19 17:42   좋아요 2 | URL
네! 얄라알라님~♡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감탄했어요. 나오미 울프가 이것이 특정인의 음모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요건들을 너무나 잘 짚어주어서요.

여성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들이 놓여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것들은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것 같아요....
읽고 계시다니 함께하고있어 기쁘네요*^^*

책읽는나무 2022-02-19 2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많이 읽으셨군요? 이미 다 읽으신 분들도 계시고..^^
백화점은 정말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큰일이 일어날 듯한 현기증이 일어나는 곳 같아요. 예전엔 백화점엔 먹으러 가는 곳, 간식거리 구경하는 곳이다!! 하면서 막 들어갔었는데..그러다 옷이며, 장시구며, 화장품이며..거기다 향수 냄새까지 진동하니 속이 울렁울렁~~멀미할 뻔 했네요ㅋㅋㅋ
아...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뭘까요????

청아 2022-02-19 21:15   좋아요 2 | URL
나무님 저 많이 읽은건가요?!! 요즘 읽는 속도가 나지않아 자꾸 페이지를 확인해요. 그러다보니 더 느린것같고요ㅠ 같이 읽는 책들이 많아서 의욕만 앞서고 있어요. 나무님이 주신 댓글을 보니 에밀졸라의 <여인들의 행복백화점 >생각납니다. 화려한 백화점 묘사의 압박에 어질어질 울렁울렁 ㅋㅋㅋㅋㅋ너무나 디테일합니다. 이 책(나오미 울프) 너무 좋네요! 어디서 읽었는데 이런 물질들이 여성의 몸에 채워진 족쇄의 장식,보석일 뿐이라고 하더라구요. 립스틱 잔뜩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