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수집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거실에는 이미 폴 세잔의 <부채를 든 세잔 부인>과 앙리 마티스가 그린 <모자 쓴 여인>이 걸려있었다. 20대의 피카소는 거트루드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그 거실에 함께 걸렸을때 두 화가의 작품에 밀리지 않는 자신만의 분위기를 담아야만 했다.
그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피카소의 작품이 제일 나은것 같다.
*그림은 순서대로 피카소,폴 세잔, 앙리 마티스
피카소는 왜 거트루드 스타인을 그리는 데그토록 공을 들였을까? 당시 거트루드의 거실에는 이미 세잔이 그린 <부채를 든 세잔 부인>, 마티스의 <모자 쓴 여인>이 걸려 있었다. 회화의 왕좌는 내 것이라고 웅변하는 작품들 사이에 걸릴 그림. 피카소에게 그 초상화는 서바이벌 경연장에 낼 자기소개서요 출사표였던 것이다. 그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그림이어야 했다. 피카소는 야심이 있었고,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에 걸맞은 결과물을 원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가 선물로 준 자기 초상화에 만족했다. - P41
헤밍웨이와 피카소가 드나들던 거트루드의 거실에서도 이 초상화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려 있다. 이 그림은 그녀 뒤에서 그녀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준다. 사람들은 거트루드 스타인 하면 피카소가 그린 그 초상화를 떠올리게 됐다. 피카소의 말처럼, 그림이 그녀가 된 것이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이 그림을 분신처럼 특별하게 여겼다. 이 그림은 그녀가 유언장에서 언급한 유일한 작품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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