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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 - 갇힌 여인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평점 :
<'프루스트 거꾸로 읽기' 9권>
10권을 읽고 9권으로 들어가자 주인공의 이런저런 행동과 선택들에 영향을 주게 된 자세한 상황들이 펼쳐졌다. 10권의 주요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베르뒤랭네 만찬에 가기 전 여자친구인 알베르틴과 나 사이의 미묘한 사랑의 줄다리기가 9권의 핵심 내용이다. 9,10권의 부제가 '갇힌 여인'인데 이는 주인공이 자신의 집착으로 동거중인 알베르틴을 세상과 어느정도 단절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알베르틴은 남자친구에게 능수능란한 거짓말을 하며 비밀스럽게 본인의 쾌락을 추구한다. 하지만 극도로 예민하고 관찰력이 좋은 그는 점점 거짓말의 모순과 그 근거들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읽으면서 이정하의 시가 떠올랐다.
사랑이 깊어질수록-이정하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녀)와는 멀어지도록 노력하라.
좁은 새장으로는 새를 사랑할 수 없다.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당신 안에서
날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은 점점 더 넓어지도록 하라.
사랑이 깊어질수록 대개의 사람들은 소유와 집착에서 비롯되는
의존의 아픔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아닐터
구속하거나 사로잡는 것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어떤 것도 원하지 않으며
모든 애착으로부터도 자유로와 지는 것이다.
참으로 신비하게도 사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야 스스로 가득 찰 수 있다.
만일 지금 당신이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면
더 이상 바라지도 더 이상 가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사랑 하나로만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연애사업에 몰두했을 때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영화 '와호장룡'그리고 이정하 시인의 이 시(詩)였다.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어쩌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린 사랑에 빠짐과 동시에 객관성을 상실하고 스스로 만들어낸 올가미에 갇힌 채로 때로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오래남을 상처를 남긴다.
시가 압축한다면 프루스트는 확장한다. 시인들이 우주적인 관점에서 사랑을 비롯한 모든 것을 압축하고 은유한다면 프루스트는 양자역학처럼 모든 관계와 관념을 확장해 자세히 들여다 본다. 예를들어 그는 사랑에서 비롯되는 여러가지 역학의 비 논리성을 간파하면서도 그 안에서 유영(游泳)하듯 행복만이 아닌 고통도 즐기고 만끽한다.
P.242 그녀는 뭔가 사랑의 상념에 잠길 때면, 또 우리의 존재가그녀를 귀찮게 하고 짜증 나게 할 때면 휘파람을 불지 않았던가? 그녀는 이런저런 사람을 알거나 알지 못한다고 지금 우리에게 단언하는 것과 모순되는 말을 과거에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결코 알지 못한 채, 꿈의 일관성 없는 파편들을 찾으려 애쓰며, 그동안에도 우리 애인과의 삶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알지 못하게 하고 어쩌면중요하지 않은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하며, 그리하여 우리와 실제 연관이 없는 존재들에 대한 악몽만을 꾸게 하는 우리의 방심한 삶, 망각과 균열과 공허한 불안으로 가득한 삶, 꿈과도 흡사한 삶은 계속된다.
p.297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존재, 아니 거의 모든 존재에게는 어느 정도 야누스 같은 면이 있어서, 그 존재가 우리 곁을 떠나려고 할 때는 상쾌한 얼굴을, 그 존재가 영구히 우리 소유 아래 있음을 알 때는 침울한 얼굴을 보여 준다.
야누스의 두 얼굴 <이미지 출처: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