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같은 인공지능 로봇이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시키고 싶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내가 힘겨워 하고 있는 책 정리를 주기적으로 시키고 나에게 부족한 지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읽을 수 있는 독서계획을 부탁하고 싶다. 철학이나 과학,역사관련 책을 읽을 땐 궁금한 부분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해야지. 원작에 관련된 영화를 볼 땐 원작이 있으니 책을 먼저 읽어보라고 알려주게 하고 무엇보다 내가 독서에 충분히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모든 살림을 맡기는 건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부분이다.(아마 클라라 하나로는 부족할 것도 같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에 관해서는 무섭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직도 일본 호텔에서 도입했다는 사람을 이상하게 닮은 로봇은 절대 밤에 단독으로 만나고 싶진 않다.)'매트릭스'라던지 '에일리언'시리즈의 인공지능의 모습은 인류를 언제든 압도하고 문제꺼리로 전락시킬것만 같은 모습으로 공포로 각인되었으니까.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급속도로 많은 것들이 바뀌면서 미래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성큼 우리앞에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기간 갱신만 거듭중인 장농면허 소유자인 내가 운전대 잡을 필요 없이 차를 타고 이동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도 미래에 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했다.
거기에 더해져 이시구로는 이번 소설에서 인공지능에 관한 위협보다는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그들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것 같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8:15~17)
클라라는 몸이 약한 어린 조시에게 인공지능답지 않은 특별한 애정을 쏟는다. 그가 조시를 위해 하는 생각과 행동들은 마치 성경의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때로 무모하며 어떤 면에서는 신앙에 가깝게 보인다. 그래서 더 결말이 아름답지만 슬프고 복잡한 고민을 일으켰다. 인공지능 하면 나부터도 이런저런 활용방법을 먼저 떠올리고 있는데 클라라 처럼 감정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존재를 만나면 과연 나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
어쩔수 없이 이 소설 직전에 읽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과도 비교되었다.
츠바이크의 소설이 특유의 마음의 갈등과 동요, 불안감을 조성해 음악적 알레그로(allegro)를 추구한다면 이시구로는 잔잔한 느낌의 안단테(andante)나 아다지오(adagio)에 가깝다. 그리고 츠바이크가 현실에서 경험할 만한 주제로 삶에 통찰을 던져준다면 이시구로는 인간의 본질을 소스로 먼 훗날 이로인해 발생 가능한 딜레마를 그린다. 초 중반에 특별한 자극이 없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큰 그림으로 숙제를 떠 안고 별 5개를 줄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