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온 여인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정란의 경제적 도움으로 하루하루 근근하게 살아가는 음대생 신성표는 신문을 읽다가 가정교사 모집 광고에 주목한다. 음대 재학생으로서 피아노, 기타 학습 지도 요망, 단 남학생. 위치는 구곡리 푸른 집. 성표는 푸른 집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성표는 성악을 전공했지만, 피아노 기초를 봐주는 것이니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음대 재학생 구한다는 말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사실 밀린 하숙비 때문에 아침도 못 먹고 나온 그였다. 푸른 저택을 방문한 성표는 굉장히 풍요로워 보이는 저택 모습에 기가 팍 죽고 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푸른 저택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 강명하, 강 사장의 저택이었던 것. 이왕 예까지 왔으니까 한번 부딪쳐보자는 마음으로 신성표는 푸른 저택의 벨을 누른다. 신비스럽기도 하면서 무서운 눈빛을 지닌 안 주인 오 부인에게 간단하게 면접(?)을 보고 난 후 신성표는 푸른 저택에 머물며 찬이라는 아이의 가정교사가 된다. 푸른 저택의 실내는 마치 미궁 같았다. '오늘 밤에도 또?' 성표는 새벽마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의문의 발소리에 의심을 품게 되고 그 발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궁금해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가을에 온 여인> 속의 푸른 저택 외관은 당시 주변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초현대식의 공간으로 화려하고 풍요롭게 꾸며진 집이었다. 그러나 그 풍요로움 속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사랑의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채우려다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욕망 때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지만, 또다시 욕망을 갈구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답답했다. 60년대라는 배경으로 봤을 때 시대상 다소 충격적인 모습도 있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시대를 불문하고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음을 익히 알고 있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물질주의가 팽배해진 사회에 모든 걸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쟁취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지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던 내용이었다.
책 속에 신성표는 푸른 저택의 주인인 강 사장의 정부, 석영희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나중에는 강 사장 부인인 오 부인을 마음에 두게 된다. 이렇게 신성표와 강 사장 사이에는 이중의 삼각관계가 형성되고, 비밀과 금기 그리고 은밀한 불륜의 관계로 뒤엉킨 푸른 공간의 이야기는 느슨함 없이 빠르게 진행된다. 어찌 보면 신성표라는 인물은 푸른 저택이라는 공간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그들만의 리그에 휘말리게 된 피해자 같지만, 나는 이리저리 여자들을 마음에 담아두는 그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를 잘 나타내는 부분이 석영희가 신성표에게 했던 "한 여자는 한 사나이의 세컨드, 한 남자는 한 여자의 젊은 제비, 그리고 한 사나이의 한 여자는 부부, 한 사나이와 한 여자는, 그건 뭘까?" 대목이다.

처음 <가을에 온 여인> 책 제목을 보고 믿고 읽는 박경리 작가의 새로운 연애 소설인가 생각했지만, 책을 읽어 보니 추리 소설에 가까웠다. 인물 간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인물의 과거와 진실을 알아갈수록 긴장감을 주며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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