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도 예뻤고 카르마니 폴리스니 하는 단어들도 좋아하는 단어였는데, 역사와 철학을 직조해낸 현대의 우화 라니 독자들의 지적 한계를 시험하는 소설이라니 이런 엄청난 수식어를 단 작품은 과연 어떤 내용을 풀어낼까 싶어 기대감이 스멀스멀 생기게 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400쪽이 채 안되는 비교적 얇은 이 소설 한권이 한장한장 참 더디게 넘어갔다...
시작은 어느 고서점에서다.
이곳에 기거하는 책벌레들이 유독 뒤룩뒤룩 살진 부르주아지처럼 살아가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철학이란 게 대개 귀족이나 유산 상속자 같은 배부른 이들의 고상한 취미활동이었다는 사실과 묘하게 겹친다는 점이었다. 역시나 온 우주를 관통하는 은밀한 질서가 존재하는 걸까? (p. 11)
살짝 삐딱한듯한 문체에 세밀한 묘사력이 돋보여서 요샌 등단한지 얼마안된 젊은 작가들이 참 잘 쓰는구나 싶기도 했다.
'비뫼시' 라는 도시와 '기적이 사라진 해로부터 1192년 뒤 (p. 14)' 라는 비현실적 시공간의 설정과 수도원, 왕정, 국회의원, 컴퓨터, 자본주의 등의 뒤섞임은 가상의 세계 내지는 판타지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하지만 아니다, 이 소설은 현대 소설이고 현재 시점이다. 과거의 여러시대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차용해와서 상징적으로 사용한 것때문에 이 소설에 '현대의 우화'라는 수식어를 붙인 모양이다.
이 소설엔 문장뒤에 주석번호가 붙은 것이 참 많은데 예를들어
'유사 이전부터 포도줏빛 바다 위에서 수없이 난파되기를 반복하면서도 끈덕지게 이어왔던 그 지난한 서사시를 재현하고 있었다. (p. 34)' 의 주석17을 보면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천병희 옮김, 숲, 2015, 141쪽(219~224행)변용 (p. 370)' 이라던가 '42번이 보기에 불행의 소리는 모두 엇비슷했지만, 행복의 소리는 제각기 달랐다. (p. 124)' 의 주석77에서 '래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1>, 연진희 옮김, 민음사, 2009, 13쪽 변용 (p. 374)' 하는 식의 '변용'이 참 많다. 하지만 굳이 이런 변용이 필요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호메로스의 작품을 좋아한다. <오뒷세이아>도 최근에 읽어서 저 구절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저 '포도주빛 바다' 라는 표현이 저 한문장만으로 얼마나 그 상징성이 전달될 수 있을까?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은 하도 유명하니 비틀어볼수도 있다고 치자, 그렇게 유명한 구절에 대한 변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러나 어김없이, 아침은 다시 찾아왔다. (p. 37)' 라는 누구나 쓸수 있는 평범한 문장들에 대해서도 주석20에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이영의 옮김, 민음사, 1998, 7쪽;9쪽 변용 (p. 370)' 라는 식으로 주석을 다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의 지적 한계를 시험' 하는 것인지 그저 작가가 읽은 책들을 수없이 나열하며 잘난척 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생활은 육중한 몽둥이를 들고서 그들을 쫓아왔는데, 조금이라도 따라잡히게 되면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 언젠가는 생활이 몽둥이를 내려놓거나 쫓아올 수 없는 도착선이 존재하기는 할까? (p. 47)' 에서 느껴지듯이 작가가 쓴 문장만으로도 매력있는 작품으로 서술할수 있지 않았을까? 굳이 165개 라는 주석으로 자신이 읽은 책들을 나열할 필요가 있었을까... 책을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내용 그 자체 보다도 작가가 인용한 구절을 재인용해 작가에게 소감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독자들은 환상적인 사건들의 연쇄에 당황하게 되고, 작가가 의도한 모든 것들에 얼떨떨해진다. 마치 미지의 거대한 포유류가 나뭇잎을 뜯어 먹는 모습을 목격한 동물학자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뿔이 달려 있긴 한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p. 49) 주석33.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 대한 악평이다. 빌 핸더슨·앙드레 버나드, <악평>, 최재봉 옮김, 열린책들, 2011, 115~116쪽. (p. 371)'
이런저런 거슬리는 '변용'들을 제외하고 줄거리를 정리해보자면, 잔혹한 지배자아래 가난하고 핍박받는 처지의 사람들이 신음소리를 내다가 세상이 난장판이 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가시여왕의 책무란, 혁명이나 폭동 같은 극단적인 사태로 치닫지 않도록 위기를 관리해주는 것, 즉 도시를 견딜만한 지옥으로 유지하는 데 있었다. (p. 61)' 가시여왕은 온갖 안좋은 모습을 다 갖춘 절대 권력자의 상징적 인물이다. '여왕이 보기에 댐 높이에 문제가 있다면, 하늘이 이를 고려하여 강수량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었다. (p. 64)' 라는 분명한 캐릭터 설정등으로 서사를 이끌어 갈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책은 교회에 널리고 널린 <성경>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정말이지 놀라운 책이었습니다."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리 읽어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게 뭐, 그럴 수밖에요. 제시된 정보 자체가 너무 생략되어 있기도 했거니와, 심지어는 터무니없을 만큼 앞뒤가 안 맞기도 했으니까요. 적어도 하나님이나 복음 편찬자들이 논리학 강의를 이수하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이더군요. 하지만 그때는 읽을 거리가 그 책뿐이었습니다. 별수 없었죠. 한데, 그러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애당초 논리적으로 어긋났거나 너무 생략된 글이 제대로 이해될리가 만무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읽고 또 읽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이 걸작인 이유는 해석에 저항하기 때문이란 걸 그때 처음 깨달았죠"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어놓으면 이름이 후세에 남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 법이지" (p. 128))' 에서 알수 있듯이 작가의 재기발랄한 표현등으로 보건데 문장력은 충분히 있어 보였다.
하지만 넘쳐나는 다른 책들의 문장'변용'으로 인해 오히려 문장들이 온전히 느껴지지 않고 산만해졌다. 이런 문장'변용'뿐만이 아니라 '악곡 없는 간주곡'이라는 제목을 단 부분에서는 갑자기 그리스비극 적 문체가 차용된다. 좀비도 아닌데 죽은자가 살아나고 이유도 없어보이는데 영혼이 깨어나더니 그리스비극체로 ~도다! ~리니! 하면서 저희들끼리 비극을 읊어대다 뚝 하고 다음 내용과 단절된다. 이렇게 갑자기 내용단절을 시킬거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법은 왜 차용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여하튼, 비뫼시에선 온갖 비리와 폭력이 난무하고 '대홍수'라는 재난까지 겹쳐 점점 삶은 곧 지옥이 되어간다. '예전에 제왕교육을 받길, 노동계급의 경우에 자식들 중 세 명 정도는 굶어 죽지 않게 계속 새끼를 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고, 유한계급의 경우엔 고쳐 쓸 수 없기 때문에, 배반의 싹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곧바로 제거한 뒤, 그 빈자리를 충성스러운 중간 계급 중 하나를 승격시켜 메워줘야 한다고 배웠지. (p. 268)' 를 충실히 수행하던 가시여왕은 '철가면'을 씌운 자신의 아들에게 당하게 되고 세상은 뒤집어지면서 소설은 끝난다. 뚝. 이러한 단절을 현대와 현실을 비판한 우화라고 주장한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지만 굳이...
'진실은 포유류이다.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대문이다. 반면에 거짓은 버섯류이다. 한 번에 수천여 개의 홑씨를 뿌리며 포자번식을 하고, 그늘진 곳이라면 어디서든 자라나기 때문이다. 독버섯은 이따금 떨어져주는 빗물 외엔 그 어떠한 보살핌도 필요치 않다. (p. 275)' 라고 작가가 썼듯이 작품을 포유류처럼 썼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백권이 넘는 책들에서 문장을 뽑아 바꿔가며 번식하려한 이 책을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하며 직조해' 냈다고 수식어를 붙이기엔 그 '변용'되고 '인용'된 문장들이 마치 버섯이 흩뿌린 포자번식처럼 느껴지고 그런 버섯들이 가득한 그늘들을 너무 눈에 띄게하기 때문이다. 최근 읽었던 아모스 오즈의 '유다' 라는 철학적 소설과 무척 비교가 됐다. '데카르트, 벤야민, 셰익스피어, 까뮈, 베케트... 독자들의 지적 한계를 시험하는 매력적인 상징들'이 가득한 철학적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 문장겉핥기가 아니라 그런 문장들을 되씹고되씹어 스스로 성찰하고 숙성시킨 진중한 무게감의 새로운 문장으로 발현시켜보려 더 노력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작가가 알고 있는 역사와 철학과 고전을 고의적으로 혼란스럽게 뒤섞어 독자들을 시험해보려 한 휘브리스가 작가에게 카르마로 되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작가도 아니고 작가적 능력도 없는 그저 일개 평범한 한명의 독자일뿐이지만 작가의 작품을 읽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에 독자로서 충실하게 이 작품을 읽었고 감상해보았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