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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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대신 지옥을 선택한 살인자와

세속의 정의를 믿는 아마추어 탐정

범죄의 소굴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누아르

'악의 본성을 탐구한 걸작 미스터리' 라는 문구를 박은 띠지를 걸친 이 소설책은 꽤 두꺼운 편이다. 하지만 '미국추리작가협회선정 추리소설100선' 이나 '영국추리작가협회선정 추리소설 100선' 이라는 등의 문구에서 확인되는 '추리소설' 이라는 장르가 두께를 괘념치 않게 했다. 1938년작인 이 소설은 아마도 시간이 좀더 흐르면 추리소설고전100선에 들어가 있지 않을까.

헤일은 브라이턴에 온 지 세 시간도 안 되어서 그들이 자기를 죽일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p. 9)

소설에서 첫문장이 아주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 첫문장 외엔 그닥 인상적인 첫문장을 느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 첫문장의 의미를 잘 몰랐었다. 그러다 최근 읽은 고전읽는법에 대한 책을 통해 첫문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리고나서 읽은 첫 소설이 이 작품이었고, 따라서 이 소설의 첫문장은 지금까지 무심코 흘려보낸 첫문장들과 달리 세심하게 살펴보게 됐다. 자신에게 닥친 죽음을 안다는 것, 그것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에 모두 공통되는 사항이었다. 역시 첫문장은 중요한 거였구나!

인생의 행로에서 우리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것은 작고 사소한 것들이다. (p. 53)

첫문장에서 자신의 죽음을 눈치챘던 한 남자는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죽기 전에 스치듯 만났던 한 여자가 그의 죽음에 감춰진 비밀을 캐내게 된다. 그리고 완벽한 살인을 했다고 여겼던 이는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을 하게 된다. 그 시작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난 옳고 그름을 믿어요" 그런 다음 만족과 여유가 묻어나는 한숨을 내쉬며 조금 더 깊은 곳에 있던 얘기를 꺼냈다. "흥미진진할 거예요. 재미있을 거예요. 그리고 인생의 일부가 될 거예요" (p. 90)

브라이턴 이라는 도시에서 신문사의 직원으로 일했던 헤일이라는 남자가 살해당했다. 술집에서 우연히 만났던 여인 아이다는 그의 죽음이 자연사라고 알리는 신문기사에서 이상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주저없이 그 이상함을 캐내기로 마음먹는다.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지만 자신의 눈으로 봤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며 행동에 나선다.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그저 옳고 그름을 믿기 때문이고 그보다는 사실 '재미있을'것 같아서였다.

그는 모욕을 당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리라, 그는 생각했다. 내가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서 놈들이 나를... 그는 자기 부하를 죽인 기억을 떠올리며 좁은 어깨를 으쓱 뒤로 젖혔다. 이 형사 놈들은 자기들이 정말 똑똑한 줄 알지만 실은 그것도 알아내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종자들이지. 그는 자신의 영광과 구름을 직접 끌며 나아가고 있었다. 미성년인 그의 주위에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p. 138)

브라이턴 이라는 도시는 바닷가 휴양도시이지만 경마장이 있어서 갱단들이 활개치는 곳이기도 했다. 두 세력이 있었다. 하지만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의 우두머리를 죽였고 그 우두머리는 자신의 자리를 열일곱살 소년에게 넘겼다. 소년의 무리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부하들이 흔들릴수록 소년은 독기를 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핑키라는 소년이자 갱단두목은 지옥의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열여섯살 (소녀천사) 로즈를 만나게 된다.

선과 악은 같은 나라에서 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오랜 친구처럼 서로 붙어 다닉, 서로가 보완 관계라고 느끼며, 철제 침대 옆에서 서로 손을 어루만진다. (p. 261)

세상은 언제나 천당과 지옥이라는 두 개의 영원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는 피폐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와 로즈는 대조적인 두 영역에서 온 사람처럼 서로 맞서다가 크리스마스 때의 군대처럼 서로 친밀해졌다. (p. 288)

로즈는 자신에게 다가온 첫번째 남자인 핑키를 사랑한다. 핑키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핑키와 로즈는 서로에게서 같은 뿌리를 느꼈다. 그것은 가난한 동네일수도 있고 카톨릭 종교일수도 있지만 상징적으로 보자면 선과 악이다. 처음엔 그러한 대조가 뚜렷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같은 나라에 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선과 악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서로 붙어다니는 오랜 친구같은 두 존재는 서로 어루만지면서 하나의 악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다에 의해서 선과 악은 다시 구분되려 했다.

경마장에서 도망칠 때 그는 두려웠었다. 고통이 두려웠으며, 그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고해성사로 죄를 용서받지도 못한 채 갑작스럽게 죽는것-이었다. 그는 이미 지옥에 떨어졌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p. 376)

핑키가 기억하고 있는 카톨릭은 지옥과 고해성사와 구원이 뒤섞인 이미지였지만 유일하게 아는 카톨릭 라틴어로 '크레도 인 우눔 사타눔('나는 유일한 사탄을 믿노라'라는 뜻의 라틴어' 를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핑키가 믿고 있는 것은 그저 '지옥'이었던 것 같다. 열일곱 인생이 사는 내내 지옥이었으므로 사실 핑키에게 지옥은 그닥 두렵지 않은 곳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변해요" 로즈가 말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사람은 변하지 않아. 나를 봐. 이제껏 조금도 변한 적이 없잖아? 그건 브라이턴 록 막대 사탕 같은 거야. 끝까지 깨물어 먹어도 여전히 브라이턴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막대사탕 말이야. 그게 인간의 본성인 거야" 그녀가 로즈의 얼굴에 대고 구슬픈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숨에서 달콤한 와인 냄새가 났다.

"고해성사... 회개." 로즈가 나직이 말했다.

"그건 종교적인 것일 뿐이야" 여자가 말했다. "내 말 들어. 우리가 상대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이야" (p. 409)

"나는 적어도 네가 모르는 것 하나를 알고 있어. '옳고 그름' 을 분간할 줄 알지. 그건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아" (p. 411)

아이다는 로즈를 구하고 싶다. 로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하고 싶다. 재미로 캐기 시작한 살해사건이 갱단과 얽혀 있음을 알았음에도 두렵지 않다. 아이다. 아이다는 로즈를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런데 이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방법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에서 왜 이렇게 웃기면서 슬픈건지;;; 아마도 백여년 가까이 학교는 변한 것이 없어서인걸까... 이런;;;

"아마 계속해야 할 거야. 선택의 여지가 없어. 어쩌면 늘 그런 식이지 않을까. 일단 시작을 하면, 하고 또 하고 계속할 수 밖에 없는 거지" (p. 418)

핑키는 사건을 수습해갈수록 더 큰 사건을 벌이게 되는 과정을 보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계속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 것은 결국 핑키 뿐이었다.

신부가 조용히 말했다. "코럽시오 옵티미 에스트 페시마('가장 좋은 것이 타락하면(부패하면) 가장 나쁜 것이 된다'는 뜻의 라틴어)"

"네, 신부님?"

"무슨 말이냐면... 가톨릭 신자는 누구보다도 더 사악할 수 있다는 뜻이야. 아마 우린...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악마와 더 많이 접촉하는 것 같아. 하지만 우린 희망을 가져야 해" 신부가 기계적으로 말했다. "희망을 가지고 기도해야 해"

"전 희망을 갖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건 분명 어떤 선한 것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그런 사랑이었는데도요?"

"그래" (p. 508)

그레이엄 그린 (1904~1991) 은 소설가이자 희곡과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고 영화비평가로도 활동했으며 그의 소설중 영화화한 작품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 <브라이턴 록>은 영화와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작품뒤에 실린 해제에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 <브라이턴 록>의 결말은 소설과 다르다고 한다. 1948년 영국영화검열위원회가 그린에게 뇌리에 잊히지 않을 만큼 잔인한 소설의 결말을 완화시켜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렇게 바뀐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라는 핑키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판을 보여주는 영화는 스릴러가 아닌 로맨스영화가 되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영국 최고의 필름누아르의 하나로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이 소설이 보여주는 최고의 악은 핑키가 로즈에게 남긴 녹음판이다.

193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갱단의 살인은 지금의 조폭영화속 살인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태어나면서부터 악인인것 같은 소년의 변화과정은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생각나게 하기도 하지만 지옥과 구원을 잊지 않는 핑키는 그래도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전개되는 스토리는 미스터리하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궁금할게 없다. 하지만 오래된 막대사탕이 껍질에 눌러붙어 끈끈해졌어도 막상 빨아먹어보면 달콤하듯이 걸작이라고 불리게 된 이 작품만의 매력은 분명히 있었다. 그 매력덕분에 과한 수식어를 뛰어넘는 가볍고 재기발랄한 소설로 호로록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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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읽었다 - 각 분야 전문가가 말하는 영역별 책읽기
이권우 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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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독서 체험에서 비롯된

체계적이고 균형 잡힌 '영역별' 책읽기

책을 좀 읽다보면 혹은 대중을 위한 교양강좌를 좀 듣다보면 '고전' 이라고 불리는 책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래서 고전을 좀 읽어보려고 찾다보면 막막해진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분야도 다양해서 역사를 읽어야 할지 문학을 읽어야할지 철학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느 시대부터가 고전인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그냥 무턱대고 옛날 고전을 잡으면 읽어도 이해가 안되고 해설집을 읽자니 고전의 맛이 안느껴지고 난감해지기도 한다. 그럴때 고전에 대한 감을 잡아줄 책이 나왔다. 그것도 영역별로 다 다뤄주는!

<나는 이렇게 읽었다>는 독서를 좋아하는, 직업적인 이유로 책을 읽는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양, 문학, 인문고전,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분야 도서를 읽을 때 주목해야 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도서평론가, 문학평론가, 인문학자, 사회과학자, 자연과학자, 예술학자 등 집필진 모두가 경희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어서 전문적이면서도 대학생들에게 적합한 눈높이를 지닌 글들이다. 글의 내용도 각자의 체험에서 시작하여 특정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 영역의 책을 읽는 방법, 추천 도서 순으로 구성함으로써 개인적 경험과 전문가로서의 조언을 균형 있게 배치했다. 특정 학문 전공자임에도 책읽기가 어렵게 느껴지거나, 전공 이외 영역의 책을 읽고 싶으나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대학생, 다양한 영역의 책읽기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 모두에게 유의미한 길잡이가 디기를 희망하면서 이 책을 묶는다. (p. 9)

이 책의 <머리말>에서 알려주는 책소개가 정말 딱 이 책 이다. 각 분야 전문가가 알려주는 영역별 책읽기에 대한 길라잡이로 아주 알찬 책인데, 책을 잘 안 읽던 사람에게는 모든 내용이 유용할 것이고 책좀 읽었다 하는 사람에게도 읽고 싶은 고전을 수두룩하게 알려주는, 여하튼 정보가 아주 쏠쏠한 책이다. 글은 교양도서, 문학도서, 인문고전, 사회과학도서, 자연과학도서, 예술도서 - 읽는 법 순서인데 어떤 분야의 책을 읽더라도 '교양도서 읽는 법' 이라는 첫 챕터가 가장 기본이 될 듯 하다.

'누가 책을 읽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첫 페이지 이후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내내 '책읽기' 에 대한 그리고 '고전읽기'에 대한 생각을, 생각에 생각을 하게 한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컴퓨터로 거의 모든 것이 다 가능해진 이 시대에 과연 누가 왜 여전히 '종이책'을 읽는가?

누가 책을 읽는가?

아마도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책을 읽게 할 터다. (p. 13)

새로운 앎에 대한 갈망이 강렬한 사람이 책을 읽는 법이다. (p. 17)

지금보다 더 나은 나 자신과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 읽는다. (p. 21)

이 책을 통해 왜 책을 읽어야 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고 무엇을 읽어야할지 알았다면 질문을 바꿔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자. '왜 책을 읽는가?'

저자는 '쓰는 사람, 그러니까 창조적 지성이 되기 위해서다. (p. 48)' 라고 답했지만, 정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었으므로 답은 제각각일 수 있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게 된다. 누가 책을 읽는가? 그리고 왜 책을 읽는가? 그래서 궁극적으로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어떤 책을 읽는가, 책을 읽고나서 무엇을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충분히 생각해보고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읽는 법' 을 살펴보면 좀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교양도서에 이어서 문학도서, 인문고전, 사회과학도서, 자연과학도서, 예술도서 '읽는 법' 들을 읽다보면 내가 그동안 읽어온 방식에 대해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의문을 가져보기도 하고 새롭게 배우게 되기도 했는데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았던 것은 고전을 영역별로 읽고자 할때 어떤 책들을 읽어야 하는지 '리스트'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책이지만 읽으면서 내게 필요한 부분들만 습관처럼 다시 요약하곤 했는데 이러한 '요약' 이 무척 중요하다고 이 책을 통해 확인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개인적으론 책을 그냥 읽으면 되지 책읽는법을 알려주는 책을 책을 굳이 읽어야 하나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제대로 책을 읽으려면 '읽는 법'도 알아야 겠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책을 읽고자 하고 고전을 읽고자 하는데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알게된 고전을 읽고나서 '나는 이렇게 읽었다'라고 정리해본다면 그것을 시작으로 고전을 읽는 것을 넘어 자신의 글을 쓰는데까지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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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게 권하는 수학 - 골치 아픈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 걸까? 10대에게 권하는 시리즈
이동환 지음 / 글담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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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에 꼭 필요한 '수학', 똑똑하게 공부하려면?

공부의 이유를 깨닫는 것이 중요해요.

수학은 우리의 삶과 미래를 바꾸고 있어요.

공부의 이유와 쓸모에 대해 알아보아요.

'수포자' 라는 단어에 공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예전엔 학교다닐때 식은땀을 흐르게 하던 과목이 '영어' 였는데 언제부턴가 식은땀을 넘어서 몸살을 앓게 하는 과목의 자리를 수학이 차지한 것 같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국영수' 의 중요성 이다. 학교에서 이 과목의 비중은 늘 절대적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계속 수학을 포기할 순 없지 않겠는가? 10대가 수학을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주어야 할 텐데, 그 첫번째 단계는 아마도 '수학공부의 이유' 일 것이다.

이 책은 남들보다 수학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아요. 여러분이 '수학'이라는 말을 듣고 떠올리는 문제집과 시험은 수학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수학의 진짜 모습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달라요. 우리가 학교를 졸업해도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하듯이, 수학도 학교에서만 배우는 과목이 아니라 평생 가까이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수학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면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수학을 가까이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이해하게 될 거예요. (p. 8)

저자는 수학교육과를 전공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연구원으로 수학교육과정개발에 참여한 그야말로 '10대가 공부하는 수학'에 관한 전문가이다. 현장에서 '수포자' 학생들을 많이 만났을 터이고 교육과정을 연구하며 그 이유도 수차례 고심했었을 것이다.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수학의 현실적 필요성' 을 깨닫게 하여 수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을수 있도록 하고싶은 마음이 이 책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저자는 차근차근 쉽게 설명한다. 어투만 보면 초등학생용인가 싶지만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고교수학까지 포함하는 전문적인 내용들은 '수포자'로 낙담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권해줄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수학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하여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수학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고 수학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알려줌으로써 저절로 깨닫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학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팁도 살짝 알려준다.

13년이나 17년이라는 소수 주기로 땅속에서 나오는 매미가 왜 이러한 소수 주기를 갖게 됐는지, A4 용지가 어떻게 비율이 동일할 수 있는지 등등 일상에서의 수학을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해력'이 올라가는 기분이다. 저자는 문해력에 상응하는 '수해력'이라는 용어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수해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설명해 준다.

함수가 금융과 비행기 경로 또는 택배나 배달 분야에 얼마나 유용한지, 미분이 움직이는 물체와 변화하는 현상을 분석하는데 얼마나 실용적인지, 애니매이션과 영화컴퓨터그래픽 분야에서 수학자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스포츠 분야에서 어떻게 선수들을 돕고 있는지 등을 읽다보면 수학이 실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깨닫게 되면서 미래사회에서 수학의 중요성까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미래 사회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하는 능력' 입니다. 과거에는 주어진 질문에 빨리 대답하는 사람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아직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질문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제품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p. 202) 수학은 문제, 즉 질문을 만드는 데 적합한 과목입니다. (p. 205)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특징은 '답을 찾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p. 207) 또한 수학은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사용합니다. 수학을 활용하면 인종과 국경에 관계없이 소통할 수 있습니다. (p. 211)

인공지능이라는 낯선 단어가 어느새 자연스러워진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답'을 해줄뿐이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척척 답을 내놓은 것도 대단하긴 하지만 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최적의 답만 찾을뿐 다양한 방법을 통한 답이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할지라도 인간은 인간만이 할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미래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학문은 과학이 아니라 수학인지도 모르겠다. 수학의 중요성이 느껴질수록 수학이 힘든 청소년들이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수학에 도전해볼 마음을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질문하고질문하다 보면 언젠가 3월14일 화이트데이를 파이데이(π-day)로 부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수포자라고 좌절했던 10대 청소년 여러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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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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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박쥐가 날아다니는 세상을 비뫼시라는 카르마폴리스라고 해야 할까... 현대의 폭력과 불평등이 카르마로 되돌아온 폴리스에서 작가가 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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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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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하며 직조해낸 현대의 우화

무게감 있는 서사를 관통하는 젊고 활달한 문장

데크르트, 벤야민, 셰익스피어, 까뮈, 베케트... 독자들의 지적 한계를 시험하는 매력적인 상징들!

표지도 예뻤고 카르마니 폴리스니 하는 단어들도 좋아하는 단어였는데, 역사와 철학을 직조해낸 현대의 우화 라니 독자들의 지적 한계를 시험하는 소설이라니 이런 엄청난 수식어를 단 작품은 과연 어떤 내용을 풀어낼까 싶어 기대감이 스멀스멀 생기게 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400쪽이 채 안되는 비교적 얇은 이 소설 한권이 한장한장 참 더디게 넘어갔다...

시작은 어느 고서점에서다.

이곳에 기거하는 책벌레들이 유독 뒤룩뒤룩 살진 부르주아지처럼 살아가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철학이란 게 대개 귀족이나 유산 상속자 같은 배부른 이들의 고상한 취미활동이었다는 사실과 묘하게 겹친다는 점이었다. 역시나 온 우주를 관통하는 은밀한 질서가 존재하는 걸까? (p. 11)

살짝 삐딱한듯한 문체에 세밀한 묘사력이 돋보여서 요샌 등단한지 얼마안된 젊은 작가들이 참 잘 쓰는구나 싶기도 했다.

'비뫼시' 라는 도시와 '기적이 사라진 해로부터 1192년 뒤 (p. 14)' 라는 비현실적 시공간의 설정과 수도원, 왕정, 국회의원, 컴퓨터, 자본주의 등의 뒤섞임은 가상의 세계 내지는 판타지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하지만 아니다, 이 소설은 현대 소설이고 현재 시점이다. 과거의 여러시대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차용해와서 상징적으로 사용한 것때문에 이 소설에 '현대의 우화'라는 수식어를 붙인 모양이다.

이 소설엔 문장뒤에 주석번호가 붙은 것이 참 많은데 예를들어

'유사 이전부터 포도줏빛 바다 위에서 수없이 난파되기를 반복하면서도 끈덕지게 이어왔던 그 지난한 서사시를 재현하고 있었다. (p. 34)' 의 주석17을 보면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천병희 옮김, 숲, 2015, 141쪽(219~224행)변용 (p. 370)' 이라던가 '42번이 보기에 불행의 소리는 모두 엇비슷했지만, 행복의 소리는 제각기 달랐다. (p. 124)' 의 주석77에서 '래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1>, 연진희 옮김, 민음사, 2009, 13쪽 변용 (p. 374)' 하는 식의 '변용'이 참 많다. 하지만 굳이 이런 변용이 필요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호메로스의 작품을 좋아한다. <오뒷세이아>도 최근에 읽어서 저 구절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저 '포도주빛 바다' 라는 표현이 저 한문장만으로 얼마나 그 상징성이 전달될 수 있을까?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은 하도 유명하니 비틀어볼수도 있다고 치자, 그렇게 유명한 구절에 대한 변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러나 어김없이, 아침은 다시 찾아왔다. (p. 37)' 라는 누구나 쓸수 있는 평범한 문장들에 대해서도 주석20에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이영의 옮김, 민음사, 1998, 7쪽;9쪽 변용 (p. 370)' 라는 식으로 주석을 다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의 지적 한계를 시험' 하는 것인지 그저 작가가 읽은 책들을 수없이 나열하며 잘난척 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생활은 육중한 몽둥이를 들고서 그들을 쫓아왔는데, 조금이라도 따라잡히게 되면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 언젠가는 생활이 몽둥이를 내려놓거나 쫓아올 수 없는 도착선이 존재하기는 할까? (p. 47)' 에서 느껴지듯이 작가가 쓴 문장만으로도 매력있는 작품으로 서술할수 있지 않았을까? 굳이 165개 라는 주석으로 자신이 읽은 책들을 나열할 필요가 있었을까... 책을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내용 그 자체 보다도 작가가 인용한 구절을 재인용해 작가에게 소감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독자들은 환상적인 사건들의 연쇄에 당황하게 되고, 작가가 의도한 모든 것들에 얼떨떨해진다. 마치 미지의 거대한 포유류가 나뭇잎을 뜯어 먹는 모습을 목격한 동물학자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뿔이 달려 있긴 한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p. 49) 주석33.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 대한 악평이다. 빌 핸더슨·앙드레 버나드, <악평>, 최재봉 옮김, 열린책들, 2011, 115~116쪽. (p. 371)'

이런저런 거슬리는 '변용'들을 제외하고 줄거리를 정리해보자면, 잔혹한 지배자아래 가난하고 핍박받는 처지의 사람들이 신음소리를 내다가 세상이 난장판이 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가시여왕의 책무란, 혁명이나 폭동 같은 극단적인 사태로 치닫지 않도록 위기를 관리해주는 것, 즉 도시를 견딜만한 지옥으로 유지하는 데 있었다. (p. 61)' 가시여왕은 온갖 안좋은 모습을 다 갖춘 절대 권력자의 상징적 인물이다. '여왕이 보기에 댐 높이에 문제가 있다면, 하늘이 이를 고려하여 강수량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었다. (p. 64)' 라는 분명한 캐릭터 설정등으로 서사를 이끌어 갈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책은 교회에 널리고 널린 <성경>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정말이지 놀라운 책이었습니다."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리 읽어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게 뭐, 그럴 수밖에요. 제시된 정보 자체가 너무 생략되어 있기도 했거니와, 심지어는 터무니없을 만큼 앞뒤가 안 맞기도 했으니까요. 적어도 하나님이나 복음 편찬자들이 논리학 강의를 이수하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이더군요. 하지만 그때는 읽을 거리가 그 책뿐이었습니다. 별수 없었죠. 한데, 그러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애당초 논리적으로 어긋났거나 너무 생략된 글이 제대로 이해될리가 만무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읽고 또 읽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이 걸작인 이유는 해석에 저항하기 때문이란 걸 그때 처음 깨달았죠"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어놓으면 이름이 후세에 남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 법이지" (p. 128))' 에서 알수 있듯이 작가의 재기발랄한 표현등으로 보건데 문장력은 충분히 있어 보였다.

하지만 넘쳐나는 다른 책들의 문장'변용'으로 인해 오히려 문장들이 온전히 느껴지지 않고 산만해졌다. 이런 문장'변용'뿐만이 아니라 '악곡 없는 간주곡'이라는 제목을 단 부분에서는 갑자기 그리스비극 적 문체가 차용된다. 좀비도 아닌데 죽은자가 살아나고 이유도 없어보이는데 영혼이 깨어나더니 그리스비극체로 ~도다! ~리니! 하면서 저희들끼리 비극을 읊어대다 뚝 하고 다음 내용과 단절된다. 이렇게 갑자기 내용단절을 시킬거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법은 왜 차용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여하튼, 비뫼시에선 온갖 비리와 폭력이 난무하고 '대홍수'라는 재난까지 겹쳐 점점 삶은 곧 지옥이 되어간다. '예전에 제왕교육을 받길, 노동계급의 경우에 자식들 중 세 명 정도는 굶어 죽지 않게 계속 새끼를 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고, 유한계급의 경우엔 고쳐 쓸 수 없기 때문에, 배반의 싹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곧바로 제거한 뒤, 그 빈자리를 충성스러운 중간 계급 중 하나를 승격시켜 메워줘야 한다고 배웠지. (p. 268)' 를 충실히 수행하던 가시여왕은 '철가면'을 씌운 자신의 아들에게 당하게 되고 세상은 뒤집어지면서 소설은 끝난다. 뚝. 이러한 단절을 현대와 현실을 비판한 우화라고 주장한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지만 굳이...

'진실은 포유류이다.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대문이다. 반면에 거짓은 버섯류이다. 한 번에 수천여 개의 홑씨를 뿌리며 포자번식을 하고, 그늘진 곳이라면 어디서든 자라나기 때문이다. 독버섯은 이따금 떨어져주는 빗물 외엔 그 어떠한 보살핌도 필요치 않다. (p. 275)' 라고 작가가 썼듯이 작품을 포유류처럼 썼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백권이 넘는 책들에서 문장을 뽑아 바꿔가며 번식하려한 이 책을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하며 직조해' 냈다고 수식어를 붙이기엔 그 '변용'되고 '인용'된 문장들이 마치 버섯이 흩뿌린 포자번식처럼 느껴지고 그런 버섯들이 가득한 그늘들을 너무 눈에 띄게하기 때문이다. 최근 읽었던 아모스 오즈의 '유다' 라는 철학적 소설과 무척 비교가 됐다. '데카르트, 벤야민, 셰익스피어, 까뮈, 베케트... 독자들의 지적 한계를 시험하는 매력적인 상징들'이 가득한 철학적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 문장겉핥기가 아니라 그런 문장들을 되씹고되씹어 스스로 성찰하고 숙성시킨 진중한 무게감의 새로운 문장으로 발현시켜보려 더 노력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작가가 알고 있는 역사와 철학과 고전을 고의적으로 혼란스럽게 뒤섞어 독자들을 시험해보려 한 휘브리스가 작가에게 카르마로 되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작가도 아니고 작가적 능력도 없는 그저 일개 평범한 한명의 독자일뿐이지만 작가의 작품을 읽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에 독자로서 충실하게 이 작품을 읽었고 감상해보았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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