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그린 (1904~1991) 은 소설가이자 희곡과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고 영화비평가로도 활동했으며 그의 소설중 영화화한 작품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 <브라이턴 록>은 영화와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작품뒤에 실린 해제에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 <브라이턴 록>의 결말은 소설과 다르다고 한다. 1948년 영국영화검열위원회가 그린에게 뇌리에 잊히지 않을 만큼 잔인한 소설의 결말을 완화시켜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렇게 바뀐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라는 핑키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판을 보여주는 영화는 스릴러가 아닌 로맨스영화가 되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영국 최고의 필름누아르의 하나로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이 소설이 보여주는 최고의 악은 핑키가 로즈에게 남긴 녹음판이다.
193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갱단의 살인은 지금의 조폭영화속 살인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태어나면서부터 악인인것 같은 소년의 변화과정은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생각나게 하기도 하지만 지옥과 구원을 잊지 않는 핑키는 그래도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전개되는 스토리는 미스터리하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궁금할게 없다. 하지만 오래된 막대사탕이 껍질에 눌러붙어 끈끈해졌어도 막상 빨아먹어보면 달콤하듯이 걸작이라고 불리게 된 이 작품만의 매력은 분명히 있었다. 그 매력덕분에 과한 수식어를 뛰어넘는 가볍고 재기발랄한 소설로 호로록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