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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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발굴해 엮고 백수린 소설가가 우리말로 옮긴

바바라 몰리나르 단 한 권의 책 국내 초역

워낙 생소한 작가여서 일단 책의 시작인 (이 책을 발굴했다는) 마그리트 뒤라스의 '서문'을 읽고, 그 서문부터 기이한 느낌적인 느낌이라 소설들을 읽기전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 소설의 문장들을 시작했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 이 정도의 배경지식은 필요할 것 같았다.

바바라는 글을 쓴다. 그리고 찢는다. 계속해서 글을 쓴다. 그리고 다른 사람, 그녀가 (몇 달 전부터) '적'이라고 부르는 이가 그녀가 쓴 것을 찢는다. (p. 8)

지난 8년 동안 그녀의 남편과 나는 삶의 평범함을 내세워 바바라의 '적'에 맞서왔다. 우리는 글과 '거리를 두고' 그것을 적의 손이 닿지 않는 곳, 이를테면 출판사에 맡기라고 그녀에게 거듭해서 요구한 것이 폭력이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녀는 저항하면서도 새로움을 갈구하고 있었다. (p. 10)

몇몇 순진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이 세계를 떠돈다. 사랑하고 섬기고 기다리는 불치병에 걸린 채. (p. 12)

-서문 中-

사실 나는 마그리트 뒤라스 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검색해보니 프랑스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고 혁명의 세대이자 전쟁의 생존자였기에 그런 사람이 이런 서문을 쓴 작품은 어떤 걸까 궁금했다.

지난 몇 해 동안 소설을 쓰는 틈틈이 나는 이 책을 번역했다. 드문드문 작업하면서 어떤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고, 그때마다 나는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 늘 똑같이 대답했다. "바바라 몰리나르라는 프랑스 여성 작가의 작품인데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서둘러 덧붙였다. "하지만 기이하고 고통스러운데 무척 슬프고 묘하게 아름다운 소설들이에요" (p. 229)

뒤라스의 서문에 의하면 이 소설집에 실린 악몽처럼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상상도 꿈도 아닌, 작가가 '실제로 살아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 이 소설들은 작가가 평생에 걸쳐 겪은 고통과 광기에 언어로 맞서 싸운 자전적인 기록이다. (p. 232)

여러 단편에 걸쳐 반복적으로 주인공에게 "와줘"라고 속삭이는 이는 대체 누구인가? (p. 233)

-옮긴이의 말 中-

이 책의 원제 Viens 는 한국어로 '오라' 또는 '와' '와줘'로 번역되는 단어라고 한다. 지금껏 프랑스어권 작가들의 작품을 몇 편 한국어로 번역한 백수린 작가의 문체는 그래서인지 왠지 프랑스적이었다. 그녀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를 읽었었는데 그때 내 감상평을 한줄로 하자면 '한번도 가난해 본 적 없는 관찰자의 독백' 이었다. 고급스러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긴 하는데 진실되게 느껴지지는 않는 이질감...

사람의 호기심이라는 것이 때로는 참 기이해서 나와 맞지 않는 취향의 작가인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작가가 극찬하는 작품은 대체 어떤 걸까 궁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차례대로 읽지 않았다. 서문과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나서도 왠지 순서대로 그냥 다른 소설집처럼 읽으면 제대로 이해를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지하 납골당]이라는 가장 마지막 작품을 가장 먼저 읽었다. 사실 이 글을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부제로 '마그리트 뒤라스가 기록한 작가와의 대화' 라는 표현처럼 이 글은 지하 납골당에서 작가가 느꼈던 경험에 대해 뒤라스와 대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과연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소설이 아니라면 왜 '작가와의 인터뷰'가 아닌 '지하 납골당'이라는 소설명을 지어붙였는가?

D 죽음은 당신의 모든 이야기 속에 있죠.

M 네, 죽음은 이제 남은 유일한 놀라움이에요. 왜냐하면 삶에는 더 이상 놀랄 만한 것이 없거든요. 그래서 죽음이 매혹적이죠. 저는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저는 죽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믿어요. 흥미로울 것 같은 일이요. 신앙심은 전혀 없어요. 그래도 어쨌든 죽음은 삶보다 더 나아야만 해요. 삶 속에서는 붙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는 죽음 속에서 붙잡을지도 모르니까요. (p. 223)

저는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p. 224)

-지하 납골당 中-

소설의 모습을 한 작가와의 인터뷰까지 읽었음에도 감이 잡히지 않아 그다음으로 표제작을 읽었다. 표제를 삼을 만큼 이 소설집의 대표작으로 삼을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그들은 방으로 와서 내게 움직이지 말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간호사인 것 같은 두 사람이 내 몸을 가죽끈으로 침대에 묶어 침대와 하나가 되도록 한 것은. 팔은 묶여 있지 않아서 두 팔을 공중에 뻗어 본다. 이따금. 그게 조금이나마 기분 전환이 된다. (p. 202)

이렇게 많은 보살핌을 받는다는 사실이 가끔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결국 따지고 보면 나는 아무것도 요청한 적이 없고, 다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어떤 호의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건 자기들 판단에 따른 것이고, 나는 그 의도를 알 수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가끔 나는 그들이 모두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p. 203)

여기서는 그들이 모든 것을 준다. 그런 이유에서 (잘 생각해보면) 내가 불평하는 건 잘못인지도 모른다. 가장 우울한 것은 단 한 순간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내 방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든다. (p. 205)

만약 물었다면 나는 싫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묻는 게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은 눈치챘다. 내가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이 고통은 끔찍하다. (p. 209)

내 상태를 고려했을 때 나를 내쫓기에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p. 210)

"나가십시오!" 주인이 침착하지만 단호하게 나를 밖으로 밀쳐내며 말했다. "당신은 이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 이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p. 211)

이 책의 제목이자 '작가와의 대화'를 소설로 치지 않는다면 가장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 곧 제목이 된 셈이다.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그런데 이 상태가 되기까지의 이 짧은 몇 페이지의 장면 묘사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도 분위기는 대동소이하다.

자,

그러니,

이 책을 창작 소설로 읽을지 자전적 일기로 읽을지

환상 소설로 읽을지 조현병환자의 기록으로 읽을지

이야기와 분위기에 매력을 느낄지 왠지 거북함을 느낄지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살고 똑같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독자에게 판단의 몫이 큰 책이다.

사랑하고 섬기고 기다리는 불치병이 곧 '생'이라는 작가의 환상몽이 누군가에게는 현실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슬픔을 느끼게 될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왠지 슬퍼졌다...

Viens(오라)는 말이 결국 오지말라는 말 같아서... 혹은 제발 빨리 좀 와달라는 말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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