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행자를 위한 노르망디×역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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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의 핵심 고리이자 찬란한 예술가들을 품은

아름다운 지방 노르망디로 떠나는 여행

역사와 예술이 짙게 밴 노르망디의 시공간을 만나다

중세역사책들을 읽다가 주경철 교수의 책도 읽게 된 적이 있었는데 역사를 삶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솜씨가 무척 훌륭했다.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일상적 이야기처럼 읽어지는 저자의 책들을 시간되는데로 좀더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신간이 나왔다. 게대가 여행과 역사의 조합이라니, 왠만하면 재미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이 조합에 저자의 글솜씨까지 더해졌다면!!!

이 책에서 노르망디 지방을 소개할 때는 단순히 멋진 관광지를 따라간다기보다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간다는 의미를 더하고자 했다. 말하자면 노르망디라는 '공간'을 이동해 간다기보다는 지난날 사람들의 삶의 자취가 녹아 있는 '시공간'으로 들어가 본다는 의미다. 그런 여행이 훨씬 더 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p. 6) 한 권의 책에 담기 위해 일종의 문화·역사 여행 내러티브를 만들어 보는 일 자체가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다. 기억을 재구성하는 일은 우리의 느낌을 더 강화하는 모양이다. (p. 8) -프롤로그 中-

역사나 여행관련 책 중에서 가끔 지도가 없는 책이 없다. 그러면 안된다. 역사이야기와 여행이야기에서 지도는 필수다. 저자가 역사가이니만큼 지도에 대한 센스가 좋았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책 앞부분에 접혀있는 지도를 펼치면 노르망디의 지도가 크게 펼쳐지고 매 글마다 그 장소가 어디인지 꼬박꼬박 지도에 표시해 놓았다. 이 정도 지도가 있어야 역사와 여행을 즐기는 기분이 제대로 난다. 역시 주경철 저자의 책은 믿고볼만하다.

책의 구성은 크게 6부로 이루어져 있다. 주제구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수도원 기행으로 노르망디의 역사와 여행의 맛을 한번에 알려주는 것을 시작으로 중세의 노르망디 역사 기행을 거쳐 노르망디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통해 근현대로 넘어온 후 노르망디 해안 도시 기행부터는 본격적인 도시탐방기이다. 노르망디는 세계대전 당시 격전지였던 만큼 5부를 통틀어 전쟁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마지막 6부에서의 미식 기행으로 이 책은 맛있게 마무리된다. 부록에서 각 기행별로 추천코스 정리해놓은 것을 보니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이 책은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구나 싶었다.

1500년 전 몽생미셸은 그런 곳이었으리라. 오늘날의 화려한 건물은 찾을 수 없고 단지 버려진 바닷가, 밀물 때는 섬이 되었다가 썰물이 되면 다시 육지와 연결되는 세상 긑, 날것 그대로의 고독 속에 고립된 섬. 그곳에 거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주 작은 교회 한 채에 불과했으리라. 그렇지만 세상은 변하는 법, 수 세기를 거치며 수도원 건물과 부속 건물, 성벽, 마을이 들어서면서 섬은 점차 웅장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p. 20) 신통하게도 설화보다 실제 사실이 더 오래되었다. (p. 23)

책의 표지사진에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고 이 책의 첫 장소이기도 한 몽생미셸 수도원 이야기부터 단번에 빠져들었다.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변화되어온 과정 무엇보다 그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의 배경을 읽다보면 역사이건 여행이건 무엇이되었건 결국 그 모두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때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인생샷 포인트까지 미리 알게되는 덤까지. ㅎㅎ. 예를 들어, 몽생미셸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 평원에서 까만 머리의 양들을 찾을 것! 같은 것들?! ㅎㅎㅎ.


5~6세기경 프랑스 북서부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새 종교를 수용한 곳은 우선 도시였다. 몇몇 도시에 전도사들이 먼저 들어오고 주교들이 자리 잡은 후 성당을 지었다. 이후 도시 외곽 지역과 시골로 기독교 신자는 도시 주민인 반면, 농민 대부분은 기독교 이전의 이교 신앙을 고수했다. 케르눈노스 같은 옛 켈트 신 숭배, 늑대인간 류의 민간 신앙, 혹은 샘이나 큰 나무에 살고 있는 정령들에 복을 비는 기복 신앙 등이 그런 종류다. 기독교를 수용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시골 사람들은 '이교도 pagani'다. '파가니pagani'는 라틴어 '파구스pagus'에서 나왔는데, 이 말은 '농민paysan'을 가리키는 동시에 '이교도paien'을 가리킨다. (영어 단어로는 peasant와 pagan이다) 말하자면 도시에서는 문명화와 기독교화가 이루어지는데, 시골에서는 예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의 촌스러운 이교 신앙을 지키고 있다는 식이다. 초기 기독교 성인의 놀라운 이적을 이야기하는 성인전에서 이전 종교는 흔히 용 같은 괴물로 등장하고, 성인이 이런 괴물을 처치하곤 한다. (p.48)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노르망디의 역사가 궁금해서였고 저자의 본업이 역사가인만큼 이 책에서 내게 재밌는 부분들은 당연히 역사 이야기들이었다. 역사관련한 깨알상식들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달까. 노르망디의 시작은 바이킹 시대부터다. 2부에서 펼쳐지는 본격적인 노르망디 역사 기행이야기들은 내게 이 책의 하일라이트였다.

노르만 정복 이후 잉글랜드의 주요 건물들은 윌리엄이 가지고 간 캉 지역 석회암으로 지었다. 대표적으로 런던탑은 윌리엄이 1070년대 지시하여 캉의 석재를 들여와 지었다. 그 외에 캔터베리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도 부분적으로 캉의 석재를 써서 건축했다. (p. 112, 115)

노르망디의 역사 이야기들은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역사는 결국 전쟁이야기인건가 싶어지기도...

'19세기 민족주의가 불타오르면서 프랑스 교회가 잔 다르크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신앙심과 애국주의가 연결되었다. 이런 노력이 20세기에 결실을 거두어 1920년 5월9일 교황 베네딕토 15세가 잔 다르크를 성인으로 축성했다. (p. 138) 이 신비의 소녀는 매 시대 모든 정파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했다. (p. 143)'

만들어진 신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역사도 결국 만들어진 이야기인건가 싶어지기도 하고...

가장 중심이 되는 성당은 흔히 루앙 성당이라고 칭하는 노트르담 성당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에만 있는 게 아니다. 노트르담이라는 말은 성모를 뜻하며, 따라서 성모를 모시는 성당이야 전국 곳곳에 있다. 다만 파리의 노트르담이 그중 제일 유명한 것은 사실이다. (p. 144)

애트르airte라는 말은 라틴어 아트리움atrium에서 나온 말이다. '아트리움'은 뜻과 어감이 좋아서인지 우리나라에서 카페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 원래 고대로마 건축물 중 안뜰을 가리키는데, 중세 교회의 안뜰은 다름 아닌 묘지였다. (p. 146)

신화가 되었건 정치가 되었건 여하튼 역사이야기는 재밌다. ㅎ

외젠 부댕, 라울 뒤피, 마르셀 뒤상처럼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예술가들뿐 아니라 외지인 중에도 노르망디의 따스한 풍경에 이끌려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한 사람이 많다. 윌리엄 터너, 카미유 피사로, 알프레드 시슬레,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부터 최근 노르망디에 정착한 데이비드 호크니까지 많은 작가들을 헤아리게 된다. (p. 149)

밀레는 (...) 노르망디 출신이고 그가 그린 농민들은 쉽게 말해 노르망디 농민들이다. (p. 193) 유명한 <만종>의 주인공은 그의 할머니로 알려져 있다. (...) 사실 이 그림에는 숨은 수수께끼가 있다. 현재 우리가 보는 그림에는 기도를 드리는 남녀 사이에 감자바구니가 있지만, 원래 밑그림에는 관으로 추정되는 작은 나무 상자가 있었다. 1932년 한 정신이상자가 칼로 이 그림을 찢는 사고가 일어난 것을 계기로 이런 사실이 알려졌다. (p. 194) 흥미로운 것은 에스파냐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이 그림을 좋아하여 패러디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그림의 감자바구니 아래 아기의 관이 느껴진다는 글을 썼다. (p. 196)

노르망디 기행에서 이렇듯 많은 예술가들을 이렇게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알게 될지 미처 몰랐다.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이 책을 통해 '루앙 미술관'에 대해 알게 됐는데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루브르 보다도 루앙에 꼭 가봐야 겠구나 싶어졌다. 이곳 출신 예술가들은 화가들 뿐만이 아니었다.

옹플뢰르는 에릭 사티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가 태어난 집은 현재 메종 사티라는 이름의 기념관이 되었다. (p. 268) 그는 몽마르트 언덕의 카바레 '검은 고양이'에서 일자리를 얻어 연주하며 생활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사라방드>, <짐노페디>,<그노시엔>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세기말 몽마르트는 낭만적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 예컨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세운 발레 뤼스가 발표한 발레 작품의 경우, 대본은 장 콕토가 쓰고 무대와 의상은 피카소가 맡았으며, 음악 담당은 에릭 사티였다. 그야말로 별들의 모임이다. (p. 269)

'짐노페디'는 사전에 없는 단어다. 문학을 즐겼던 사티는 플로베르의 소설 <살람보>와 고대 그리스 춤에서 영감을 얻어 <짐노페디>를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토기 암포라에 그리스 소년들이 나체로 춤을 추면서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을 보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p. 272)

에릭 사티 관련 해서 수잔 발라동과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많은 화가들의 뮤즈였던 수잔 발라동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지만 피아노맨 에릭 사티와의 사랑 이야기는 또 새로운 것이었다.

19세기 사람들은 어떻게 해수욕을 했을까? 특히 여성들은...? 1865년 부댕이 그린 <도빌에서 해수욕 하는 시간>이라는 작품을 보자. 바닷가에 하얀 천막이 보인다. 일명 '해수욕 기계'다. 여성들이 이 안에 들어가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벗고 해수욕 복장으로 갈아입으면 말이 이 '기계'를 끌고 바다로 들어간다. 그러면 여성이 바다로 들어가 남자들 눈을 피해 해수욕을 즐긴다. 그후 다시 '기계'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은 후 바깥에 깃발을 꽂으면 말이 해안으로 끌고 온다. (p. 277, 279)

이 책의 재미 중 하나는 이렇듯 번외편 이야기들도 풍부하다는 점이다. 저자의 역량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휴양지 도빌 해안가를 설명하며 그림이야기와 승마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그 이야기들 속에 빠져들다보면 어느새 정말 여행하는 기분이 된다. 이 책 한권으로 얼마나 다양한 여행경험을 하게 되던지. good~!

영화는 당시 상륙작전 상황을 나름 긴장감 넘치게 재연했다. 그렇지만 미군과 연합군을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십자군인 양 그렸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인간적인 미군과 악마 같은 독일군을 대비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사정은 비슷하다. 군인들은 영웅이기 이전에 그냥 인간이었다. 이들을 사악한 나치에 맞서 유럽을 해방시키겠다는 신념 가득한 용사로 그리면 안 된다. 군인들로서는 그런 신념은 거의 없고 단지 자신들의 임무를 끝마치고 빨리 귀국하고 싶어했다. 특히 6월10일부터 7월 25일까지 지속된 보카주 전투에서 지극히 힘든 상황을 겪을 때 자해, 탈영 사건이 많이 벌어졌고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탈진해서 입원한 군인들도 많았다. 절도, 약탈, 강간 사건들이 빈발했으나, 헌병들은 용인하곤 했다. 신화는 이런 것들을 숨기려 하지만. (p. 336)

'군인들은 새벽5시부터 밤10시까지 전투를 벌였고 스트레스는 알코올과 섹스(강간)으로 풀었다. 미군과 시민 사이의 갈등이 커진 것도 불문가지다. (p. 328)' 신화는 옛날에만 있던 것이 아니다. 전쟁은 현대에만 참혹했던 것도 아니다. 인간들의 이야기 속엔 언제나 만들어진 신화와 참혹한 전쟁이 있다.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 역사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를 읽고 여행한다. 사는 동안.

가장 멋진 여행은 길을 잃어버리는 것, 내가 그 고장의 풍경 속에 녹아 들어가는 것... (p. 394)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마련이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느끼는 것은 다 다르다. 누군가는 에트르타의 해안 절벽이 인생 최고의 멋진 명소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그저 그런 해변 휴양지로 느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느끼는 여행지는 아마 없을 터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 역시 필자의 여행 보고서일 뿐이지만 노르망디를 여행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신만의 멋진 여행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경험을 참고하면 좋지 않겠는가? 더욱 멋지게 길을 잃기 위해 오히려 약간의 사전 지식이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p. 395) -에필로그 中-

내가 먹는 것에 큰 흥미가 없는 편이라 마지막 이야기인 미식 기행에서 그리 큰 감흥을 얻진 못했지만 자세한 요리설명과 식당이름까지 알려주고 있으니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찌되었든 여행도 하고 이렇게 책도 쓰고 저자가 참으로 부러울 따름이다. 부러운건 부러운거고 여하튼, 저자가 안내해주는 노르망디 여행은 참으로 훌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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