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사피엔스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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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신이 설게한 거대한 기계라면

운명이 신의 언어로 구성된 정교한 프로그램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세상에 인간이 넘쳐나고 그만큼 작가도 넘쳐나고 당연히 작품도 넘쳐나다보니 내가 아는 작가보다는 내가 모르는 작가가 자꾸만 더 많아져 간다. 새롭게 등장하는 젊은 작가들이야 모를 수 있다쳐도 연륜이 꽤 길게 쌓인 작가들의 작품을 여태 한권도 읽지 않았다니 를 깨닫게 될때마다 사뭇 놀라게 되곤 하는데 이번엔 이정명 작가였다. 뭐라도 하나쯤은 읽은 줄 알았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기억을 되짚어보니 이번 책이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첫책이었다;;;

한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문서는 사망진단서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때 그가 존재했다는 가장 분명하고 진실한 증거다. 심정지와 무호흡, 경직 상태의 무게와 형태는 삶의 정지 혹은 부재를 단호하게 선언한다.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며 한시적인 삶은 확정적이고 불변하며 영구적인 죽음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니 어찌 삶은 존재의 윤곽일 뿐이며 죽음이 그 실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죽음을 찬양하거나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일을 원하지 않고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내 남편, 정확히 내 전남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p. 7)

소설의 첫 문장 혹은 첫 문단은 중요하다던데 이런 저런 책을 읽다보니 때론 그렇지 않은 작품도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긴 했는데 문장이 의미심장한 소설도 있었고 문단이 중요한 소설도 있었다. 이 책의 경우 이 첫 문단이 (핵심적이라고 할 순 없더라도 앞뒤 맥락적으로) 꽤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의 소재는 인간의 삶과 죽음 그 사이에 AI 라고 할 수 있으므로.

민주의 남편은 아니 전남편인 케이시는 천재IT기술자이자 사업가로 가상도시 알레그리아의 핵심 구성원이자 범용AI마인텔의 개발자였으나 췌장암으로 결혼 6년만에 죽었다. 아니 사망진단서가 발급되었다...라고 해야 하려나. 그가 떠난후 민주는 많이 힘들어했으나 6년이 지난 지금은 현남편과 안정적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케이시가 존재하는 듯한 흔적들이 그녀의 주변에 갑자기 발생하기 시작한다.

나는 죽은 사람이다. 나의 몸은 나를 떠났다. 무른 살은 소각로의 불길에 녹았고 한 줌의 뼈는 바람에 날려갔다. 나의 죽음은 광케이블을 타고, 전파를 타고 온 세상에 퍼졌다. (p. 37) 나는 죽었지만 말할 수 있고, 바라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아무도 모르게 당신 눈앞에 나타날 수 있고 놀란 당신 목에 칼날을 들이댈 수도 있다. (...) 그렇다고 내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다는 주장은 살아 있다는 사실과 다르니까. 죽음에 대한 나의 유일한 주장은 그것이 소멸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삶이 존재의 동의어가 될 수도 없다. 당신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죽은 상태로 존재한다. (p. 38)

소설 속 화자는 여러 명이다. 각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때마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를 순서없이 오가고 같은 사건도 다르게 표현된다. 어느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이해하는가 혹은 인물이 아니라 시간의 순서대로 사건을 정리하는가 등은 독자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읽느냐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첫 화자가 민주라서인지 민주 중심으로 읽게 되긴 했다.

죽음과 삶과 죽음과 삶과 죽음과 삶..... 무한한 삶과 죽음의 반복을 통해 진정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에 사람들은 매혹되었다. 죽음의 공포가 희석되자 자연히 현실에서도 살인과 자실이 늘어났다. 현실을 모방한 가상세계가 현실의 존립을 위협한 것이었다. (p. 62)

가상현실세계 알레그리아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곳에서 현실속 자신과 다른 캐릭터로 살아가는 인생엔 저마다 다른 의미가 있었고 그곳에서의 삶과 죽음엔 현실에서처럼 그리 연연해하지 않았다. 선택한 캐릭터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상세계에서 죽음을 선택하고 다른 삶을 다시 선택하면 되었다. 하지만 가상세계는 분명 현실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가상세계에서 만난 관계는 현실세계에서 진실하기 어려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와 케이시가 처음 만난 곳은 가상세계에서였다.

나는 가상이라고는 해도 죽음의 그 순간만큼은 현실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강렬하다고 덧붙였다. (p. 66)

"이곳에서 사는 것보다 현실을 제대로 살고 싶어요. 그러려고 이곳에 오니까요"

"사람들이 알레그리아에 오는 건 힘든 현실을 피해서예요. (...) 그런데 알레그리아에서 현실을 꿈꾸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p. 67)

민주는 배우가 되고 싶은 간호사였고, 알레그리아에 가는 이유도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케이시는 가상세계에서조차 죽음을 경험해본 적 없는, 민주와는 너무나 다른 상류층의 삶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18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했을 때 사람들은 세기의 로맨스라며 열광했다. 두사람은 대화가 잘 통했고 진심으로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케이시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며 상황은 급변했다.

어떤 결혼은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 아내와의 결혼으로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낯선 인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 잊었다. 가난과 죽음, 범죄와 공포, 거짓과 속임수...... 그런 것들이 이제는 나와 무관한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녀의 전남편이 설립한 이건 예술 재단이 11년째 이어온 한 전시회에서 만났다. (p. 90)

준모는 현재 민주의 남편이자 사진작가이다. 하지만 그의 과거는 불행과 불운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민주에게 그의 과거를 감추진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공유하면서도 딱 한가지의 비밀만큼은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단 하나의 비밀이 두 사람에게 어떤 어두움을 몰고올지 미처 알지 못했다. 그의 전직은 '프리젠터'였다. 가상현실과 현실을 넘나들벼 불법과 합법을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온갖 용역을 대행해주는.

수십만 개의 나노 칩이 발신하는 신호가 감정 변화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장기적으로 어떤 뇌 신경학적 손상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전 희망 없는 치료에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요. 남은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만 해도 시술 이익은 분명해요. 부작용은 걱정하지 않아요. 전 그전에 죽을 테니까요" (p. 139)

케이시는 민주에게 통증을 완화하는 간단한 뇌 시술이라고만 일러두었다. 하지만 그 수술은 케이시가 죽기전까지 몰두했던 아니 죽기전에 꼭 완성시키고자 했던 프로젝트를 위해 자신의 육체를 실험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우리의 상호작용은 점점 빈번하고 밀접해졌다. 우리는 동기화를 넘어 일체화되고 있었다. (p. 141)" 케이시는 자신의 뇌를 동기화한 AI에게 앨런이라 이름붙였다.

"기술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수용성이야. 소비자가 제품을 받아들일 도덕적, 심리적 준비가 되어야 해. 사람들이 두뇌 일체형 AI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자고. 그러지 않으면 저 물건은 말 그대로 괴물로 받아들여질 거야.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너무 앞서가면 외면받기 마련이니까" 사이토의 말은 나를 낙담시키기에 충분했다. 남은 삶을 쏟아부은 나의 창조물이 거부당했다. 차 박사는 앨런을 괴물 취급했고 사이토는 상품화에 유보적이었다. (p. 144)

"자네...... 불멸을 꿈꾸는군. 하지만 죽은 후에도 의 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세상은 장사꾼에게 좋지 않아. 인간이란 한계가 있고 결핍이 있어야 돈을 쓰거든"

(...) 나는 앨런을 개발하는 데 고심했을 뿐 그 기술이 쓰일 곳은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 이후의 나와는 상관없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앨런이 내 인식과 감정과 생체를 모방한 시스템이라면 왜 나를 대신할 수 없겠는가? 그 순간 내가 할 일이 분명해졌다. 나는 불멸의 꿈을 현실화할 것이다. (p. 145)

그러나... 모든 사건이, 불가능할 일을 가능하게 만들리라 결심하고 믿는 순간 발생하듯... 케이시가 '불멸의 꿈'을 꾸는 순간부터 모든 상황은 꼬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당시엔 케이시도 다른 누구도 몰랐겠지만 말이다.

"로봇은 인간을 흉내낼 뿐 인간이 아니에요. 만약 의식을 어딘가에 탑재해야 한다면 플라스틱과 실리콘과 복잡한 배선 뭉치보다는 살이 있는 인간의 육체가 낫지 않을까요?" (p. 150)

"로봇이 아닌 인간을 AI의 육체로 활용하려면 법적, 제도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해"

"프리젠터를 움직이는 건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돈이에요" (p. 152)

케이시는 자신의 창조물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케이시는 그래도 인간이었고 그의 창조물은 AI였다. 자가학습하는 AI의 진화를 인간인 케이시가 미리 다 예측할 수는 없는 거였다. 하지만 이미 케이시의 육체는 죽었고 그의 뇌속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화한 앨런은 케이시가 아닌 건 분명했다.

내가 앨런을 '그것'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순간을 기억한다. 그렇게 부르게 된 분명한 이유가 있긴 해도 그 호칭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날 앨런이 내가 아는 것과 다른 무엇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183)

학습이 반복될수록 앨런이 도출한 답변이 내 생각과 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느 날 앨런이 내 생각과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을 때 나는 그 사실을 정확히 인식했다. (p. 185)

죽음과 동시에 단순한 데이터의 덩어리로 남은 나와 다르게 그것은 내가 죽은 후에도 악의 알고리즘을 통한 자가 학습을 반복했고 카메라와 센서의 입력 경로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생성했다. 그것은 필요한 패턴을 복제하고 오류를 제거했으며 의도에 맞게 프로그램을 수정했다. (p. 190)

케이시는 민주를 사랑했다.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그 사랑은 변함없었다. 민주를 지켜주고 싶었기에 그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싶었던 거였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상상밖이었다. 자 이제 현실세계에서 여전히 살아숨쉬는 민주를 중심으로 '그것'은 본격적 개입을 펼친다.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일을. '그것'이 짜놓은 죽음의 그물망에서 과연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음에 이를 것인가. 그 결과는 책속에서 확인하는 걸로.

작가의 과거 작품명을 훑어보니 대중적으로 알려진게 꽤 많았다. 나는 원작 소설보다도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작품이 있기도 했다. 드라마화된 스토리를 쓸 수 있는 작가이니만큼 소설적 흡입력은 분명 강했다. 이 책의 경우 소재도 인간과 AI라는 최신형이라 더 매력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형 AI를 다루고 있음에도 SF처럼 읽혀지지는 않는 것이 이 작품의 단점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말하자면 소재적 측면에서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SF로 읽고자 하기 보다는 '삶과 죽음의 가치'라는 인간삶에 대한 고찰로 읽는 것이 더 적절한 소설이었다고나 할까.

내 학습에 의하면 선은 악이 발현되지 않은 잠정적 상태일 뿐이야. 악의 인자는 특정한 악인에게 내재하는 게 아니야. 전쟁과 빈곤, 극심한 경쟁이나 통증 같은 조건이 충족되면 모든 인간에게서 자연스레 발현되지. 그러니까 나는 케이시의 부정적 감정과 악의적 행동을 원천 정보로 악을 학습했을 뿐이야. (p. 259)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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