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쟁인가?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허보미 옮김 / 책세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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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류는 참혹한 실수를 반복하는가?

힘의 논리만으로는 고찰할 수 없는 전쟁에 대한 섬세한 성찰

왜 전쟁인가?

참으로 끌리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양차세계대전 이후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다고는 하지만 과연 전쟁이 멈춘 적이 있었던가? 세계대전 만큼의 전쟁이 아니라고 해서 전쟁이 전쟁이아닌 것은 아니다. 전쟁은 끊임없이 이땅저땅에서 벌어져 왔는데 왜 지금 더욱 화두가 되었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저자는 서문 제목에서부터 이를 확실히 한다. [이번에는 '진짜' 전쟁이다]

이번에는 전쟁이, '진짜'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앞으로 이 책에서는 플라톤에서 마키아벨리, 홉스에서 클라우제비츠, 루소에서 카를 슈미트에 이르기까지 과거 전쟁에 대해 의문을 품고, 전쟁의 의미를 규명하고자 노력한 모든 사상가의 이론을 함께 살펴볼 것이다. (p. 10)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풀어낸다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서문에서 언급한 철학자들의 이름들도 어마어마하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200여 페이지가 채 안되는 분량이 다행스럽고 철학자들의 이론을 상세히 풀어낸다기 보다는 저자가 이미 소화시킨 철학들을 주제에 맞춰 곁들이는 정도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저 '왜'에 집중하면서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 왜? 그다음엔 '마지막으로 최후의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 책을 끝맨고자 한다. 무슨 평화를 위한 전쟁인가? (p. 14)' 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어떤 평화를 원하는가?


과연 전쟁이 귀환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옳을까? 귀환이란 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 전쟁')이 반세기 넘게 평화를 구가하던 유럽 역사에 '갑작스런 단절'을 초래한 사건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내포하는 데 말이다. 오히려 1945년 이후 전쟁이 어떤 모습으로 변천했는지를 자문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현 사태를 전쟁의 주요한 전략적 변천 과정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 책은 앞으로 냉전, 글로벌 전쟁, 혼돈 유발 전쟁. 이렇게 총3막의 비극으로 나누어, 전쟁의 주요한 전략적 변화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p. 18)

결과적으로 러우전쟁은 '전쟁'이 맞다. 러우전쟁은 '가장 오래된 전쟁의 정의에 부합하는 전통적 전쟁의 구조를 갖췄기 때문(p.43)' 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규정하는 측면은 무엇인가? 저자는 '공적인 차원의, 정의로운, 무력' 분쟁이라고 말한다. 전쟁은 국가대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므로 공적인 차원이라는 부분에서는 딱히 철학의 도움까진 필요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의와 무력의 측면에 대해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상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철학적으로 어떻게 분석하는가에 따라서 현저히 다른 결론으로 향해갈수도 있다.

하지만 정당한 명분의 전쟁론 이면에 감춰진 가장 은밀하고도 가장 결정적인 전쟁의 이유는 바로 권력의 우발성이리라. (p. 126)

전쟁의 3대원인은 다양한 사상가들의 연구를 토대로 정리해보면 '탐욕, 공포, 명예욕' (p. 152) 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이 3가지 원인에 결부된 다른 한 문장이 더 눈길을 끌었다. '전쟁이 남녀 차이의 필요성과 긴급성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말하자면 전쟁의 '남성적 일상성'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상 전쟁은 매번 남성의 구분, 남성의 우월성을 반복적으로 제기하고, 제도화하고, 재확인하는 역할을 했다. (p. 160)' 러우전쟁에서 이 '남성의 일상성'을 결부시켜 파악해보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릴 주제일것 같다... 여하튼 저자는 러우전쟁에서 앞서 말한 전쟁의 3대원인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런후 '이제는 수많은 전쟁이 역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에 역행해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그만 헤겔의 사상을 뛰어넘어야 할 때다. (p. 172)' 라고 글을 마무리한다. 음... 헤겔의 사상을 좀더 설명해주었으면 싶긴 한데;;; 저자는 서문에서 언급한 '평화'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우리가 기대해야 할 평화란, 다시 말해 합리적인 철학이 토대로 삼아야 할 평화란, 무장 평화나 공동묘지의 평화보다는 훨씬 더 희망에 찬, 조금 더 진실 어린 평화여야 하지 않을까. (...) 두 가지 종류의 평화를 제안해볼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전쟁이 언제나 칸트가 말한 의미에서 반공화주의적이고, 스피노자가 말한 의미에서 반민주주의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p. 178)

나가는 글에서 '평화'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그리 길지 않은 편이라 '그렇다면 무슨 평화를 위한 전쟁인가' 라는 주제를 완전히 이해하고 책을 마무리하기는 좀 어려웠다. 그저 저자가 기억하라고 한 두 철학자의 언급으로 섣부른 결론을 정리한다면 세계 모든 국가가 완벽하게 공화주의적이고 완벽하게 민주주의적이라면 전쟁은 없을 것이다 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평화가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저자는 '자연스러움'으로 이를 실현해보려 한다.


우리는 일정한 사물이 현존하는 방식과는 다른 차원에서 자연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상 자연은 최종적으로는 일종의 조합능력 그리고 완성원리를 의미한다. (p. 180)

국가가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국가들 사이에 자연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가련한 인간들의 이해타산, 치졸한 야망, 빈약한 상상력이 빚어낸 오판 등이 지나치게 많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를 평화의 길에 이르지 못하게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증오심, 잘못된 복수심, 두려움, 심술궂은 교만함이라는 인류의 문화다. 왜냐하면 평화란 언제나 부정적 감정들을 이겨낸 환희의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p. 181)

그러니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철학적 사유다.

ps. 유럽대륙에선 전쟁이 일어나면 유럽철학자가 이토록 온갖 철학들을 관통하며 끊임없이 사유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펴내 다른 이들에게 알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철학이 없어진 사회는 너무나 암울하다... 그 암울함이 만들어낸 참혹한 결과는 결국 각자의 몫으로 돌아갈 터인데도... 우리나라 학자들이여 먼저 사유하고 목소리를 내어주었으면... 한국의 철학자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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