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무엇인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조배준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사는 근대 자본주의 문화의 토대를

종교적 근원에서 찾은 현대 사회학의 고전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시리즈로 다양한 철학의 안내를 받아왔다. 이 작고 얇은 책으로 그 두껍고 어려운 철학서들을 얼마나 알았겠느냐마는 그저 제목만 알고 있던 것보단 그래도 조금은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하며 뿌듯한 마음이 들게 하는 나의 애정하는 시리즈! ㅎㅎ

시리스에서 새로 나오는 족족 모두 읽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고... [순자], [대학·중용],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 [모어의 유토피아], [스미스의 국부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헤겔의 정신현상학].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을 거쳐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까지 왔다. 칸트나 헤겔까지는 뭐 그렇다쳐도 베버는 솔직히 좀 낯설었는데...

종교사회학을 창시한 것으로 평가받는 베버는 통합적이고 합리적인 근대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을 정립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주장하기 위해 먼저 주관적인 가치판단으로 제시되는 특정한 '이념형'이라는 틀을 통해 논증을 전개하지만, 그것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때에는 주관성을 배제하고 가치중립적인 논증을 펼쳐야 한다는 방법론을 제시하여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사회학에서 베버의 현재적 영향력은 당시 그도 존경했던 19세기 독일 철학의 거인들인 마르크스와 니체의 무게감에 비견되기도 한다. (p. 4)

모든 사상가들의 사상이 그렇듯이 베버의 '사상적 지평은 그의 출신 배경과 집안 환경, 처음으로 통일된 국가로 발돋움하던 당시 독일의 사회 상황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19세기 후반 여러 유럽 강대국에 비해 낙후된 독일은 근대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하고 제국주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급속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지만, 후진적인 정치구조와 시민사회의 자유주의적 발전에 대한 억압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p. 5)'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고 했던가.. 철학사를 살펴보다보면 혼란한 시대에 특출난 사상가의 등장이 종종 눈에 띄는 것 같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당시까지의 자본주의 사회의 기원에 대한 나름의 관점과 체계적 해명을 정리한 결과물로 우선 이해할 수 있다. (p. 6) 마르크스는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가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라고 설명했지만, 베버는 노동의 합리적 조직 방식이 핵심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베버에게 중요한 물음은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에 대한 경제학적 원리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적 뿌리 즉 '문화적 가치의 근원에 무엇이 놓여져 있는가'라는 것이다. (p. 7)


베버의 논리는 예나 지금이나 주류 종교인 기독교를 분석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니 자칫하면 오독하게 될 여지가 곳곳에 있는 것 같다. 하다못해 자본주의 정신 어쩌고 라고 하니까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실 두 이론은 서로 비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자본주의사회를 주제로 삼고 있지만 파악하고자 하는 본질적 요소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베버는 '종교적 윤리 기획의 내용이 자본주의의 문화적 기원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를 추가적으로 해명하려고 한다. (p. 9)' 베버는 당시의 자본주의 발달의 원인 중 하나를 기독교 중 한 분파인 청교도적 문화에서 찾으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종교가 자본주의 사회를 촉발시켰다는 것은 아니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발달한 이유중에는 청교도적 문화도 한 몫했다 정도 라고나 할까.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사회적 종교의 문화와 연결지어 이해하고자 시도했고 증명해냈다는 점이 베버 철학의 특별함이라고 할까.

베버의 부모 및 가정환경, 인간관계와 경제적 상황 등은 그가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볼 때 왜 물질적 요인보다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요인에 집중했는지 이해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 (p. 20) 베버는 기업 경영으로 자수성가한 시민 계급 정체성을 가진 부계와 신앙의 엄격한 원칙 안에서 자유분방한 기독교 공동체를 추구하는 외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볼 수 있다. (p. 21)

베버는 경제적으로 윤택했고 종교적으로 독실했으며 당시 자본주의 사회에 잘 적응한 기업원리와 문화를 알고 있었다. 또한 여행을 자주 했고 특히나 미국에서 장기간 머물면서 신흥 자본주의 사회의 장단점을 주의깊게 살펴볼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나이부터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고 다양한 지식인들과 자유롭게 교류했으며 당시 혼란스러운 독일 사회의 특권층의 모습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독일 지성계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문화주의적 해석 경향이었다. (p. 41)' 독일 지식인들은 서유럽에 비해 뒤쳐져 보이는 자신들의 조국에 대한 이해를 다른 조건들보다 그저 문화적 특성에서 찾으려 했고 베버 또한 그랬다고나 할까. (다른 조건들은 독일이 하나도 뒤쳐질 것 없는데 그저 마인드의 문제이므로 문화적 이해 프레임만 제대로 파악하면 독일도 서유럽 못지 않게 발전할 수 있다 라는 바람이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개인적 생각... 그러니까... 뭐랄까... 배부른 철학이라고나 할까...ㅋㅎ)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를 전혀 다른 지평에서 조망한다. 그는 자본주의를 경제적 생산양식으로서만 바라보는 관점이 팽배하여, 그것의 형성과 지속에 혁혁한 자본을 갖고 있는 정신사적 원동력에 대한 논의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유물론적 내지 경제학적 경향에 대해 한탄했다. 베버의 관심은 당대 자본주의 일반 체제의 전모를 청교도 윤리로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구 사회의 근대 자본주의가 초기에 발전할 때 '합리적 경제 윤리' 또는 '건전한 노동(직업) 윤리'가 중요한 규범적·종교적·문화적 요인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해명하는 데 있다. (p. 62)

베버가 이 책을 쓸때 대중을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니라 학자 대 학자로 논문으로 쓴 것이라 원저작은 본문 못지않은 방대한 주석에 눈이 핑핑 돌아가는데 본문도 그에 못지 않게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 단순하게 보자면 자본주의가 발달하는데 청교도 문화가 큰 역할을 했었다 가 전부이다. 아무 상관도 없어보이는 종교적 문화가 자본주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증명해 낸 것이 엄청 중요한 학문적 성과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에 와서 간단한 요약으로 읽는 나로서는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 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는;;; 하지만 베버가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기독교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분석했다는 것엔 큰 의의가 있어 보인다. 특히나 루터에 대해서.

종교적 소명으로 인식되어 널리 확산된 개신교 특유의 직업 노동 개념은 베버의 분석을 따르자면, 루터의 독일어 번역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 루터는 원래는 '너의 일에 머물러라'는 의미의 구절을 옮기면서 Arbeit 대신에 'beruf'라는 독일어를 활용했다. 즉 '너의 직업에 계속 머물러라', '네 직업에서 떠나지 말아라'로 번역한 것이 된다. 이것은 '일'에 대한 두 가지 의미 구분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즉 원래 20절에서는 '일work' 또는 '과업'이라는 뜻을 가진 '에르곤ergon'이라 되어 있고, 21절에는 '고통스러운 일' 또는 수고하고 애씀이라는 '노고'의 의미를 가진 '포노스ponos'로 되어 있다. 이처럼 어감이 다른 두 단어를 순차적으로 쓴 것은 '복음을 위한 일'과 '생계를 위한 일'을 각 절에서 강조하여 의미의 차이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루터는 이 두 맥락을 모두 당시에는 '(신의)부르심'이라는 의미가 두드러지는 beruf'로 번역한 것인데, 이를 통해 개신교 성서에서 일에 대한 'calling' 또는 'vocation'의 맥락이 강하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p. 132)

서양 역사관련 책을 읽다보면 성경의 번역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될 때가 있다. 지금도 번역서를 읽을 때는 믿을만한 번역인지 알아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루터의 번역도 루터의 주관적 판단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구나... 종교개혁의 중심이었던 그 성경이... '루터 번역 의도에 대한 의심' 이라고 책속에 있는 내용을 읽으면 더욱 루터와 루터가 번역한 성경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루터에 대한 이 새로운 발견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하겠다.

베버의 주장을 살펴본 독자들은 자본주의의 문화적 원형이라는 그 주장에 대한 타당성이나 정당성에 대해 검증하기 이전에, 그가 탐구하는 자본주의 정신과 독자들이 떠올려볼 수 있는 자본주의 정신의 개념이 너무 달라서 혼란스러운지도 모르겠다. (p. 207) 이 책의 주장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아주 낡고 너무 미시적인 분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p. 2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베버의 이론과 베버의 책이 지금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갖고 있을까? 일단 베버 자신도 '자신의 연구가 근대 자본주의의 출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한 다소 거창한 시도가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휘된 종교의 영향과 그 정도를 소박하게 살펴보려고 했던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p. 214)'는 것을 알아두어야 겠다. 그런데 왜 후학들은 베버의 철학을 그토록 위대하게 설명하고 있을까에 대해서 이 책의 앞부분에 나왔던 내용이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베버는 인류가 이룩한 근대 문명사를 보편적인 견지에서 그리고 독창적인 시각의 사상 체계로 해석하려고 시도했는데, 19세기 특유의 이런 광범위한 지식 지평은 그를 끝으로 사실상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 베버는 넓은 시야의 역사 의식을 통해 자신이 디디고 서 있는 시대의 독특한 성격을 합리적으로 해명하려고 했다. (p. 70) 베버의 연구대상은 근대 서구 사회가 품고 있는 특별하고도 보편적인 힘, 그리고 그것에 내재된 문화적 가치의 정체였다. 그런데 후대의 학자들에게 베버의 연구 내용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매우 주관적으로 포착한 연구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철저히 객관화시켜 선명한 논증으로 정당화하려는 학문 탐구의 '방법'이었다. (p. 71)

미국의 한 저명한 사회학자는 베버의 이 책을 '20세기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만큼 베버의 대담한 가설과 꼼꼼한 분석은 학문적으로 큰 매력을 느끼게 하는 논증과정을 보여준다고 하니 후학들에게는 두고두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학자인가 보다. 하지만 연구자가 아닌 일반 독자로서 베버의 논리에만 포인트를 두고 읽자면 글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다만, '당신의 시대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자본주의 정신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베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p. 211)' 라는 저자의 바람에는 응원의 마음을 보태고 싶긴 하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해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분명 문제가 있으므로.. 고전이 건네는 질문에 한번쯤 진지하게 다가가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