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 철학자의 삶에서 배우는 유쾌한 철학 이야기
김헌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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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고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답을 찾아가는

철학자들의 흥미롭고 유쾌한 이야기!

이제, 철학은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론이다.

서양 역사 읽기에 빠져서 한창 그리스·로마사를 읽어대던 시기에 김헌 교수님의 <천년의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쉽게 풀어쓰는 그 글솜씨에 반했었다. 하지만 뒤이어 읽은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에선 너무 쉽게만 쓰려던 나머지 깊이가 너무 없는 것은 아닌가 라는 애매한 실망을 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로마사를 일상어로 친근하게 풀어주는 그 이야기솜씨를 잊지 못해 다시한번 그의 책을 집어들었다.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책은 여러모로 아주 흡족한 책이었다.

인문(人文)은 원래 '사람의 무늬'라는 뜻이었습니다. 위 글자들을 보면 '사람의 몸에 새겨진 무늬' 즉 '문신(文身)'을 뜻했지요. 그렇다면 인문학은 문신을 잘 새기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일까요? 그렇지는 않겠지만, 잘 생각하면 통할 것도 같습니다. 이제 인문의 뜻을 조금씩 넓혀 볼까요. 사람의 몸에 문신을 새기는 주체도 결국 사람일 테니 인문은 이제 '사람이 새겨 넣은 무늬'라는 뜻도 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새겨 넣은 무늬, 즉 문신만을 뜻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이 사람의 몸 아닌 다른 것에다 새겨 넣은 무늬도 모두 인문이 됩니다. (p. 6)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무엇을 사랑하며 살 것인가?' 라는 제목으로 질문을 던지며 인문학이란 무엇인지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한다. 인문이란 한자는 글자그대로 하자면 '사람의 글자' '사람의 문장'으로 풀이되겠지만 그 의미가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느낌적인 느낌만 생각하더라도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할때의 '인문'은 굉장히 폭넓고 왠지 깊이감 있는 심오한 무언가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자그대로의 단순한 말도 왠지모를 느낌적인 느낌의 어려운 무엇도 아닌 '인문' 그리고 '인문학'에 대해 저자는 특유의 그 다정한 말투로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제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이 질문에 답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 10) 그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인간이기에 인문학의 질문은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 그렇게 인간에게는 철학이 자연스레 발전하고 그 철학을 세상이 아닌 인간의 문제로 인간의 삶으로 다룬 철학자가 소크라테스 이다. '인문학으로서의 철학을 하며 삶의 방식에 관해 진지한 탐구(p. 15)' 를 본격적으로 한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 이기에 그의 철학은 세월이 흘러도 자꾸자꾸 되새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목에도 소크라테스가 있고 프롤로그에서도 소크라테스 철학의 의미를 강조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 소크라테스냐 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해야 할 것 같다. 차례만 살펴봐도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는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구성 중 일부일 뿐이고, 내용을 읽다보면 소크라테스 외의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훨씬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라고 알려진 것에 대해 과연 그 내용들이 정말 소크라테스가 말한 철학일까 라는 의문까지 품게 된다. 핵심은 부제에 있다. '철학자의 삶에서 배우는 ㅡㅡㅡ 유쾌한 철학 이야기'.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고 ㅡㅡㅡ 에 무슨 말을 집어 넣어야 좋을지 모를 수도 있지만, '철학자의 삶에서 배우는 철학 이야기' 라는 점에서 이 책속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삶은 흥미롭게 읽혀진다. 그렇게 그들의 철학 속으로 자연스레 빠져들게 된다.

철학의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면, 철학이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프랑스의 피에르 아도 입니다. 그는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이 '삶의 독특한 양식'이었다고 정의합니다. 철학이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놓고, 마치 개구리를 해부하듯이 파헤치며 탐구하느 행위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활동 자체가 하나의 삶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이 삶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철학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p. 31)

서양사 관련 책들을 읽어댈 때 서양 철학사 관련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때 큰 도움을 받은 책 중 하나가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 이다. 서양사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강추하고 싶다. 철학을 학문적으로 따로 생각하지 않고 삶을 사는 방식의 하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책이었다. 물론 철학적 내용들에 대해서도 쉽게 풀어준 유용한 책이다.

여하튼, 철학자 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피타고라스 라고 한다. 그래서 철학자들의 삶을 다룬 이 책에 등장하는 첫번째 철학자는 피타고라스 이다. 그러나 철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피타고라스보다 한두 세대 앞서 살았던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두번째 등장하는 철학자는 탈레스 이다. 그뒤로도 왕족으로 태어나 불꽃처럼 한세상 살다간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가 스무살 청년이었을 때 만났다고 하는 (당시 예순다섯)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의 제자이자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공부를 많이 했다는 엠페도클레스, 페르시아 군대의 군인으로 아테네에 왔다가 눌러앉아 페리클레스의 스승이 된 아낙사고라스, 철학자이지만 근대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모크리토스 등 1부에 등장하는 철학자들부터 이미 엄청나게 쟁쟁하다. 그중에서도 핵심적으로 기억해둘 문장 몇개를 추려보았다.

서양철학은 크게 두 갈래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헤라클레이토스에 뿌리를 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변한다는 '변화의 철학'이고, 또 하나는 파르메니데스에 뿌리를 둔, 어떤 것도 변하지 않으며 존재와 본질은 영원하다는 '본질의 철학'입니다. 그 후 그리스 사람들은 이 두 주장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고민하면서 철학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p. 67)

엠페도클레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세상을 물이나 불, 공기 등 하나의 원소로만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 그들을 모두 묶어서 '단일론자'라고 합니다. 그에 반해 4원소론을 주장한 엠페도클레스를 '다원론자'라고 부릅니다. 엠페도클레스 이후의 철학자들은 대부분 다원론적인 특징을 보여 줍니다. (p. 77)

철학사가들은 아낙사고라스에 의해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이 본격적으로 아테네에 유입되었다고 평가합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도 젊은 시절에 아낙사고라스의 이론엘 접하고 기대감을 가지고 공부했다고 하지요. (p. 85)

데모크리토스는 세상을 여행하면서 최고의 지식인과 현자를 만났고, 좋은 책과 자료를 모으는 데에 큰돈을 썼습니다. 그는 박학다식함으로 그리스 전역에 명성이 높았습니다. (p. 93) 아낙사고라스에게 반기를 들었던 데모크리토스는 아테네에서는 찬밥 신세였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모든 것을 물질로만 설명하려고 했던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을 저급한 것으로 여겨 그의 책을 모두 모아 불태우려고 했답니다. (...) 하지만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 깊은 관심을 표했고, 자신의 저술에서도 진지하게 다루었습니다. (p. 96)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을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에 대한 팁이라면, 서양철학의 주류 철학이라 불리는 플라톤 철학이 짓눌렀던 철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이 무시했다거나 플라톤 철학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던 철학자와 철학이 나오면 읽었더라도 한번쯤 다시 되짚어 보라,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도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본내용이 2부에서 다룬 일명 소피스트라 불리던 철학자들에 대한 것이다.

사실 우리가 소피스트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대개 플라톤의 작품을 통해서 입니다. 그런데 플라톤은 소피스트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기록에만 의존해서는 소피스트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긴 어렵습니다. 20세기 말에 많은 학자들이 소피스트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 손을 댔는데,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도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여러 소피스트를 소개하면서 그들을 어떻게 재평가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p. 107)

그 첫번째 주인공은 프로타고라스이다. 소크라테스가 쫓아다니던 미소년 알키비아데스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노년의 프로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프로타고라스와 함께 최고의 소피스트로 꼽히는 철학자는 고르기아스 이다. 고르기아스는 상대주의 철학을 논했던 프로타고라스보다 한발 더 나아가 회의주의에 가까운 철학을 설파했다. 고르기아스는 사실 철학자라고 혹은 소피스트로라고 하기보다는 명성높은 외교관 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아는 그 소피스트에 가까운 철학자는 수사학계의 일타강사라 불리던 트라쉬마코스 이다. 이들은 모두 플라톤의 대화편에 소피스트로 등장하는데, 그 참모습에 대해선 플라톤이 하는 말 말고 그 이면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어머니 이름이 '파이나레테'인데, 의미심장합니다. '파이노'는 '나타나다, 분명해지다'라는 뜻이고, '빛'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레테'는 '덕, 탁월함, 훌륭함'이라는 뜻이고요. 그러니까 파이나레테는 '덕을 드러내다, 탁월함이 빛을 보게 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어머니 파이나레테가 태중의 아이들이 밖으로 나와 세상의 밝은 빛을 보게 돕는 산파였다면,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 깃든 덕과 지식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혼의 산파'로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교육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p. 154)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석공이자 조각가였습니다. 몸을 써서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이었죠.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한 그의 이름은 '소프로니코스'였습니다. 그리스어에서 '소프로노'는 '절제하다, 지혜롭게 행동하다'라는 뜻이고 '소프로니코스'는 '절제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p. 155)

'소'가 '몸 성히 안전한' 이라는 뜻이고 '크라테스'는 '튼튼하고 힘이 세다'는 뜻이죠. 일단 신체가 건강해서 돌과 쇠처럼 단단하다는 의미인데, 그야말로 '돌쇠'같은 느낌입니다.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에 거창한 의미를 담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부모는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고 그저 '몸 건강히 씩씩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소박한 소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p. 157)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름에는 그 인물에 걸맞은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가족 이름 풀이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돌쇠'라는 우리말 식으로 친근하게 별명붙이기도 한다. 비슷하게 플라톤에게는 '떡대'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그 이름의 의미는 책에서 확인하기를. ㅎ . 참고로 플라톤은 이름이 아니라 별명이었는데 본이름보다 마음에 들었는지 별명으로 활동하다가 우리에게 플라톤 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게 되었다고...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전부터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유명한 격언입니다. (p. 168)

우리나라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는 법에 따라 난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제멋대로 거부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던 것입니다. 뭔가 비슷한 것 같지만, 핵심이 다른 이야기지요. (p. 177)


3부의 주인공은 확실히 소크라테스 이다. 아니, 소크라테스 학파라고 해야 하나... 소크라테스와 그의 철학을 이어받은 제자들의 삶과 철학을 다루고 있다.

중요?!한 건 '플라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기원전 4세기에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전체 지성사에서 플라톤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p. 183)' 라는 점이다. 더구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스무 살이라는 약관의 나이에 마난, 불과 9년 동안 제자로 지냈습니다. (...) 소크라테스가 죽고 50년이 넘더록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추억하며 살았습니다. (p. 191)' 수십년을 제자와 스승으로 동고동락하던 사이도 못되는데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전해진 플라톤의 철학은 과연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서양철학사를 가장 요령 있게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플라톤의 철학에 대한 일련의 각주라고 할 수 있다' 라고 말한 화이트헤드의 말이 정석처럼 통하는 시대가 되었고 그 플라톤의 철학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라고 당연시 되고 있으니... 누가 왜 플라톤의 철학만 전승되도록 했는가에 대해선 각자 숙고해볼 일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이소크라테스 다.

그가 주야장천 '나야말로 진짜 철학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쳤는데, 막상 서양철학사에서 그가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웬만한 서양철학사 책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었는데 극 다 플라톤 때문입니다.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는 최대의 경쟁 관계였는데, 플라톤이 이소크라테스를 철학자로 취급하지 않았던 거죠. (p. 216)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알렉산드로 대왕하면 스승으로 아리스토텔레스 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 전에 이소크라테스가 있었다는 점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립포스 2세에게 헬라스통일의 이상을 심어준 사람, 알렉산드로스에게도 편지를 보내 그 이상을 이상적으로 실현할 것을 제안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이소크라테스였다.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는데, 서양철학사에서도 확실히 그 말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도 이소크라테스와 비슷한 길을 걷다가 철학사의 계보에서 밀려났고, 근대의 많은 인문주의자들이 철학자로 불리지 못하는 것은 모두 승자였던 플라톤의 개념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p. 221)' 여하튼,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에 그리스 전 지역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사람은 이소크라테스 였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소크라테스의 학교에 먼저 가서 배운 후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갔다. 플라톤의 후학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후학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뤼케이온에서 프랑스의 고등학교 이름 '리세'가 유래된 것처럼 뤼케이온도 꽤 오래 존속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뤼케이온이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테오프라스토스 라는 한 인물 덕이었다.

국가 주도의 연구기관과 도서관이 건립되고 국가의 공적인 재정이 투입될 때, 학문과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져 나가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전의 학문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이후의 학문은 관이 주도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p. 278)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 가 기획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 건립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저자가 언급한 저 짧은 문장이 지금 쓰디쓰게 읽히면서도 반갑다. 공적 연구재정이 줄어들고 공적 도서관 지원이 삭감되는 이 시대에 이렇게라도 꿈틀해보는 문장에 반가워해야 하는 현실이 더욱 쓰디쓰면서도...

4부는 이 책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소크라테스의 후예들?!의 철학을 마무리하는 장이다. 고대그리스 철학을 넘어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이라고 할까... 알렉산더대왕, 퓌론, 제논, 에피쿠로스 의 철학은 그리스 철학계보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188p에 있는 표를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이후의 철학은 점점, 삶의 하나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에서 점점 멀어짐으로써 그리스 철학에서 멀어져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철학이 삶에서 동떨어진 너무나 멀고먼 그저 하나의 학문으로만 생각하게 된 것일까... 하지만 철학의 중요성은 삶과 뗄 수 없다는 점인데...

아직도 저는 더 살아야 하고, 더 읽고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더 깨닫는 것이 있다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소중한 것이 생긴다면, 좀 더 잘 벼리고 다듬어 내겠습니다. (p. 334)

에필로그에서의 저자의 문장에 그나마 기대를 걸어본다. 이렇게 나누어주는 사람이 계속 생긴다면, 언젠가 우리의 삶에도 철학이 조금은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모두가 철학자들처럼 세상에 대해 사는 방법에 대해 인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삶의 한 방식으로 익숙해진다면 세상은 좀더 살만해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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