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상사 - 고대에서 현대까지 북캠퍼스 지식 포디움 시리즈 3
마르쿠스 앙케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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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와 무기고로서의 정치사상사

북캠퍼스 출판사의 지식포디움 시리즈 3권인 이 책은 시리즈의 1권과 2권을 읽고 반해서 읽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 4권이 나온다면 또 찾아읽게 될 듯한 시리즈 다) 200여페이지의 비교적 얇고 사이즈도 작아서 상대적으로 글밥양도 적게 느껴지는 이 시리즈는 작고 얇아 가볍에 시작할 수 있게 하지만 읽다보면 보기보다 깊이 있는 내용에 놀라워하며 읽게 되는 책이다.

시리즈 1권의 제목이 <민주주의>, 2권의 제목이 <20세기 철학 입문>, 3권의 제목이 <정치사상사> 하나같이 직접적으로 어려운 주제임을 제목부터 드러내고 있지만 시집크기의 작은 사이즈로 인해 그럼에도불구하고 일단 시작할 마음을 먹게 해준다. 그리고 그렇게 책장을 펼쳐들면 온갖 생소한 학자들과 그 학자들의 이론이 쏟아져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짧은 요약적 분량으로 인해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이렇듯 노골적으로 나 어려워요 하는 제목을 가진 이 책들에 왜 관심이 가는가? 지금의 시대가 그 필요성을 절절이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민주주의가 있는가? 라고 생각하면 대체 민주주의가 뭐길래? 하는 의문이 들고,

이 시대에 철학이 있는가? 라고 생각하면 대체 시대의 철학은 어떠해왔는가? 라는 의문이 들고,

이 시대에 정치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하면 대체 정치사상이란 무엇이고 어떤 이력을 가져왔길래? 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수천 년이 된 오랜 텍스트에 대한 관심은 해석자와 해석된 텍스트를 연결하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정치에서 정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가 누구를 통치해야 할까? 이처럼 정치사상사는 정치 이론가들의 텍스트와 그 해석자들의 텍스트가 모여 있는 이론 논쟁의 연속체로 구성된다. 텍스트들은 차례로 담론 내에 배열되며 특수한 정치사상의 상황 속에서 움직인다. 그 같은 상황은 (위기나 전쟁 같은) 정치적 사건이나 (평화나 정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통해 결정된다. (p. 5) -서문 中-

저자는 서문에서 '정치사상사는 관련 논쟁을 재구성하고 텍스트를 해당 담론에 착근着根하여 맥락화한다. (p. 6) 착근 과정에는 2가지 측면이 있는데 이를 정치사상사의 아카이브, 즉 기록 보존과 정치사상사의 무기고武器庫라고 부를 수 있다. (p. 7)' 라며 '착근'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붙을 착 에 뿌리 근 이라는 한자를 통해 뿌리에 붙다 라는 근본적 해석은 정치사상의 이해에 있어 그 원론적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래서 현재시대의 정치를 이해하는데 있어 정치사상사의 맥락을 왜 알아야 하는지를 설득시켜주고 있는 용어가 아닐까 싶었다.

고대 그리스의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문제에 몰두했다. 이제 사회구조의 변동으로 인해 현대 민주주의는 더 이상 그리스 민주주의와 비교하기 어렵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이념이 가능한 한 폭넓은 참여에의 요구와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고대의 저자들은 가능한 참여의 조건과 그 장단점을 직접 관찰하고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었다. 그런 한에서 정치 이론 작업의 다양성을 아카이빙, 즉 보존하는 것은 정치사상사 분과의 본질적 기여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망각되었을 '민주주의'같은 이념이나 '권력' 같은 개념의 이론적, 실천적 잠재력이 이렇게 해서 기억에서 소환된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카이빙은 현대와 얼마나 가깝고 시의적이며 현대와 얼마나 관계되는가라는 질문과 무관하게 사상사의 이론적 잠재력을 보존한다. (p. 7)

모든 역사의 시작은 고대그리스일 때가 참 많다. 문학도 철학도 정치도... 고대의 정치는 당연히 지금과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옛날옛적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가? 라고 의문이 들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한 개념의 이해에는 그 개념이 생성되기까지의 역사와 거슬러 올라가 기원을 아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지금의 이 정치가 어쩌다가 이렇게 혼란스럽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정치를 정치사상을 역사적으로 훝어내려오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과정이다. '특정 시대의 지배적 문제가 무엇인가, 이 시대의 저자들이 그들의 이론으로써 담하려 했던 문제는 무엇인가 (p. 11)' 라는 질문을 역사적으로 훝어 내려와야 지금 시대의 정치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얻게될 수 있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는 우선 이론의 형성 과정을 발생기의 맥락에서 기술하고 현대의 이론 형성에 대한 그 관련성을 지적하려 한다. 사상사에 관한 자료는 저자 쌍 들에 따라 편성되었다. 그들은 서로 직접 참조하고 서로 비판하며 서로 엇갈리는 이론들을 내세우지만 한 시대 이론 작업의 범위를 대표한다. 어느 저자도 한 시대의 유일한 대표가 아니었으며 모든 이론에는 대안이 있었다. 오늘날 정치적 사유를 위한 사상사의 가장 큰 소득은 바로 이론들의 끊임없는 경쟁에 대한 통찰로부터 생겨났다. (p. 13)

정치는 항상 논쟁을 통해 발달해왔고 따라서 정치사상사를 살펴보는 것은 한쌍의 세트로 묶어 핑퐁처럼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철학이나 문학 혹은 예술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사조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것 같은데 정치는 정치사상사는 하나의 대표로 설명될 수 없다. 늘 논쟁하는 양방향의 '쌍'으로 존재하며 그렇게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는 경쟁속에 시대를 관통하는 메세지를 남기곤 했다. 따라서 저자가 시대별로 대표적 두 정치사상을 묶어 설명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고대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근현대의 카를 슈미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 까지 대표적 정치사상의 양 측면은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지금의 시대를 반추하게 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챕터 [현대-인권의 시대]에 이르면 세계대전 이후 현대국가들의 국경선이 확정되면서 그 지역적 쪼개짐만큼 각 지역의 정치사상이 얼마나 다변화되었는지 새삼 깨닫게 한다. 사실 문제는 이것이다. 현대시대는 너무 다종다양하다는 것.

이 책에서 다루는 '쌍'으로 설명되는 정치사상은 사실 1948년 까지를 설명한다. 민주주의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국가'들이 자리잡아 가면서의 정치사상사는 더이상 세계를 아우르는 '쌍'으로 설명할 수 없어졌다. (사실 서양사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사상사의 '쌍'으로의 설명도 세계를 아울러 설명한다고 하기는 좀 부족한 부분이 있긴하지만...)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 이 시기 이후에야 민주주의사상이 들어왔다고 할 수 있으므로 더더욱 난감한 심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사상사를 읽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 '정치사상사는 다양한 시대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나타난 정치적 사유들을 관찰하고 정치와 사상의 상호작용을 조명하여 기술함으로써 정치의 지평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 (p. 212)' 시켜주기 때문이다.

독일 아우구스부르크대학의 정치 이론 교수인 앙케는 고전기 그리스에서 20세기 세계인권선언(1948)에 이르는 정치적 사유의 장구한 역사를 간명한 필치로 설명하는 가운데 사상사적 담론들에 대한 통시적, 공시적 분석을 시도한다. (p. 213)

<정치사상사>는 정치철학과 정치 이론의 역사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유용할 것이다. (...) 현대 세계의 복잡한 정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정치사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라는 점을 상기시켜줌으로써 말이다. (p. 215) -옮긴이의 말 中-

본문의 내용은 저자가 이미 압축시켜 설명하고 있는터라 내가 더 압축하여 정리하는 것엔 무리가 있었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얇고 작은 책이니 어렵더라도 시간을 두고 읽어가기를 권한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솔직히 지금 시대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라도 이 학문적인 책이 널리 읽혀지길 바란다.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가 무엇인지 원론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정치가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그렇게 내 삶이 변할 수 있으므로... 아니 그렇게 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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