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행성 1 - 영원의 숲
스가 히로에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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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부 모은 곳,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에

"다양한 가상 예술 작품들을 독특하고 산뜻한 SF의 렌즈를 통해

살피는 재미가 탁월하다" - 김초엽 -

김초엽 작가의 추천사에 눈길이 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는 작품은 늘 다른 책보다 먼저 손이 간다. 더구나 박물관이라니, 나는 박물관을 정말 좋아한다. 김초엽 작가가 추천하는 SF 장편소설인데 배경이 박물관 행성이기까지 하다니 눈이 돌아가 다른 것들은 미처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선택한 책이었다. 그래서 뒤늦게 이 책이 일본작가의 소설인 것을 알고 멈칫하긴 했다. 게다가 시리즈였다니... 개인적으로 일본작가의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감성이 맞지 않는달까;;; 또한 시리즈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완결이 다 나온 것이라면 모를까... 나와 같은 걱정을 할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몰라서 책 뒤편에 실린 '옮긴이의 말' 부터 몇줄 인용해 놓아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심해도 된다는 소리긴 하다 ^^;;;)

'박물관 행성'시리즈는 지구 밖에 건설된 거대 박물관 아프로디테를 무대로 예술과 과학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아름답고 따뜻한 SF 연작 소설집입니다. 2000년에 발표된 [박물관 행성1:영원의 숲]을 시작으로, 무려 19년 만인 2019년에 [박물관 행성2:보이지 않는 달]이 나왔스비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박물관 행성3:환희의 송가]가 출단되면서 시리즈 3부작이 완성됐습니다. 1편은 국내에 2012년에 한 번 출간됐는데, 이번에는 저자 개정판을 2편과 함께 새롭게 번역해 선보이게 됐습니다. 3편은 현재 열심히 번역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p. 496)

배경과 기법은 분명 SF인데 시선은 오히려 과거를 향해 있지요. 단정하고 절제된 스토리가 고요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저자의 독특한 성장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스가 히로에는 일본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교토에서 나고 자랐으며 어려섭터 일무日舞를 배워 예명까지 얻었고, 어머니는 일본 전통 가면인 노멘을 제작하는 일을 했습니다. 지금도 교토에서 지내며 기모노를 일상복으로 입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일부 단편에는 일본 전통색이 짙게 묻어나지요. 옛것과 SF의 결합, 스가 히로에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p. 498)

꽤 두툼한 책을 보며 장편소설이라 하니 거대한 서사가 펼쳐지려나 싶을수도 있지만 이 책의 구성은 단편집에 가깝다. 주요 화자는 한명이지만 아홉 개의 에피소드마다 각각의 다른 인물과 소재가 등장하면서 스토리가 풀려나가는 방식이라 딱히 연관성도 긴밀하지 않아서 순서대로 읽지않아도 무방할 정도다. 따라서 3편의 시리즈라고 하지만 굳이 시리즈로서의 연속성이 있다기보다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3권의 책으로 나뉘어있는 것으로 봐도 될것 같다.(3편마다 화자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화자의 역할이 큰 편은 아니라서 역시 무관하달까) 옮긴이가 설명해주었듯이 작가 특유의 일본문화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도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 것 같다. 일본적이라기보다는 전통문화적이라고 표현할 법한 분위기였는지라... SF인데 전통적이라고? 좀 더 궁금해졌으려나? ㅎㅎ 이제 본격적으로 소설 속으로~! ^^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 균형점 중 하나인 제3라그랑주점에 두둥실 떠 있는 행성 거대 박물관 아프로디테에는 인류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동식물과 미술품과 음악과 무대예술이 수집돼 있다. 소행성대에서 끌어온,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과 맞먹느 면적의 암석 표면에는 수집물을 위해 과학으로 실현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조성해놨다. (p. 16)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 조직도'가 있다.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의 주축은 학예사들이다. 크게 3개의 부서가 있고 이 부서들을 총괄하는 부서가 아폴론인데 이 아폴론의 학예사가 소설의 화자 다시로 다카히로 이다. 3개의 부서 학예사들이 자신들의 주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데이터에 직접 접속할 수 있다면 다카히로는 이들을 종합한 데이터에 직접 접속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하라고 가장 많은 접속 권한을 가진 다카히로의 주업무는 좋게말하면 중재이고 실상은 따까리다. 그렇다보니 이 책의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거리를 말하자면 다카히로의 불행이 어떻게 행복으로 변해가는가 라고나 할까. ㅎㅎㅎ

자네가 할 일은 임금님이 어쩌면 정말로 입고 있을지도 모르는 투명한 옷을 찾아내는 거야. (p. 28)

<아이를 위한 선율>이라는 그림은 화가가 아니었던 사람이 유작으로 남긴 그림인데 보기엔 추상화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엉터리 그림이었지만 왠일인지 정신병동 사람들이 그림에서 음악이 들린다며 감동해 마지 않고 있었다. 박물관 관장은 이 그림을 다카히로에게 맡긴다. 과연 이 그림은 미사여구가 어울리는 멋진 옷이었을까 순수한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벌거숭이 였을까

저와 달리 직접 접속자라서 많은 도움이 돼주실 겁니다. (p. 81)

자료실 직원이 노부부를 다카히로에게 데려왔다. 인형의 이름을 찾고 있다며. 다카히로 같은 직접 접속자들은 머리에서 컴퓨터와 바로 연결이 되어 검색이 빠르고 데이터가 풍부했기에 수작업으로 자료를 찾아야 했던 자료실 직원은 시샘 반 부러움 반으로 다카히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카히로가 일하는 방식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기에 다카히로는 그 직원과 협업을 하기로 하는데...

뭐죠, 이 묘한 홍보 문구는? (p. 125)

여름에 눈을 내리게 하는 기적을? (p. 126)

유서깊은 일본의 피리 가문에서 독주회를 열기 위해 아프로디테에 왔다. 그런데 연주자는 장자가 아닌 둘째 손자이고 수련을 위해 공연일에야 온다 하고 매니저라는 첫째 손자는 하는 행동이 영 수상쩍다. 여름에 눈을 내리게 하는 기적의 비밀은 기모노에 있었는데...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 이곳 제3라그랑주점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은 대략 두 부류로 나뉜다.

꿈을 보고 싶은 사람과 꿈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

꿈을 보고 싶은 사람은 단순 명쾌하다. 이곳에는 1헥타르의 황야에 펼쳐져 있는 환경예술부터, 화성의 채굴 시설에서 변이한 곰팡이가지 박물관이라는 이름 아래 세상의 온갖 것들이 모여 있으니까.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그저 28시간의 공허한 여행만 견디면 된다.

복잡한 것은 꿈을 보여주려고 찾아오는 사람이다. (p. 179)

꿈을 보여주려는 사람이란 공연이든 전시든 학회발표든 여하튼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사람들이다. 아프로디테에서 이런 발표를 하려는 사람들이 북적일 때마다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같아 다카히로는 마음이 쓰리다. 그럴때 보게 되는 것이 아폴론 청사 로비에 놓여 있는 여신상이다. 손바닥 이라는 제목을 가진 르네상스 양식의 여신상은 젖힌 손바닥을 얼굴앞까지 들어 올려 허공을 향해 내뻗고 있다. 손바닥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있어야 할까? 그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시켜줄 한 사람이 찾아왔다. 나이 삼십 줄의 한물간 댄서라며 자기비하적 냉소를 퍼붓는 시타 였다. 그녀가 바친 것은...

이름 미삼바 오자칸가스. 아프로디테 전 직원, 직접 접속자입니다. 지구 거주자로 현지에 가족은 없습니다. 홀을 관리하는 아레나의 네네 샌더스가 지인을 자처하며 현재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출동 요청은 네네 샌더스에게서 온 것입니다. (p. 254)

어느날 다카히로에게 긴급호출이 온다. 오래전 학예사로 일했던 노인이 쓰러졌다며. 그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최첨단이라고 추대되던 기술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자신은 과도기의 사람이 돼버렸을 때, 그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p. 245) 아프로디테에 최신버전 직접접속자였던 매슈가 여기저기서 분란을 일으키고 다니던 때였다.

분명히 화제가 될 거야. 허수아비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 전시는 허가했을 거야. 정동 기록 방식 공개, 오랜 논쟁에 종지부, 게다가 물건은 극상품, 심지어 한판 승부 (p. 287)

직접 접속의 최신레벨자라며 선배들을 무시하고 다니던 매슈가 사고를 제대로 쳤다. 그가 자랑하는 정동기록방식을 증명하기 위해 기획한 전시는 20년째 표절논란에 재판까지 갔던 두 작품의 동시 전시였다. 그런데 사실 이 두 작품의 배경에는 애절한 로맨스가 얽혀 있었으니...

인간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다.

하나는 아름다움은 아낌없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심미안이 없는 사람도 예술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언젠가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이른바 성선설의 친척뻘 되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예술은 무척 오만해서 희구하는 자에게만 비로소 모습을 보인다는 것. 아름다움을 외면하는 인간은 아름다움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섣부르게 추구해서는 영원히 진가를 알아낼 수 없다. (p. 321)

다카히로는 종종 일기를 쓰곤 하는데 일기의 주내용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거창한 질문에 대한 답변들일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SF라기 보다는 예술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해 그 '진정한'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과 예술의 두가지 사고방식의 대표적인 두 사람, 천진한 어린아이와 최첨단 시대에도 핸드메이드를 고집하는 조각가가 등장한다. 인어만을 만드는 이 예술가에게는 비밀이 있었는데...

인류가 갑자기 아프로디테에 주목한 것은 불과 2주 전부터다. 소행성대에 있는 자원 개발 기지가 미지의 물체를 발견한 것이 일의 발단이었다. 이들은 토성 근처에서 되돌아온 소행성 이달고를 탐사했고, 거기서 지름 1센티미터 정도의 식물 종자 두 개와 한 변이 14밀리미터에 두께가 3밀리미터인 오각형 채색편 수백 개를 찾아냈다. (p. 374)

무엇인지 모를 물체를 아프로디테가 맡아 분석하게 되면서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는데, 난항이 거듭되는 분석의 시간동안 의외의 곳에서 황금비가 발견된다. 이 황금비의 의미는 더욱 의외였는데...

일흔 두 살의 늙은 피아니스트가 그렇게 까탈을 부리는 데는 이쪽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다카히로는 순순히 인정하고 있다. 피아노를 어느 부서에서 담당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뮤즈는 물론이고 아테나와 데메테르까지 나와 삼파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명성이 자자한 '흑천사'는 나스타샤 사후에 아프로디테가 양도받기로 일찍이 이야기가 돼 있었다. 요컨대 이 공연을 담당하는 부서가 언젠가 천사의 수호자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p. 430)

'97건반의 흑천사'라 불리는 그래드 피아노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나스타샤의 피아노였다. 노년의 피아니스트는 어쩌면 마지막 공연이 될지 모를 공연을 아프로디테에서 하게 됐는데 피아노를 둘러싼 박물관 내부의 갈등도 문제였지만 나스타샤의 태도가 바뀐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음은 분명한데 그것이 이달고에서 발견됐던 종자와 연결이 될 줄이야 다카히로는 거듭 혼돈에 빠지고...

학예사로서의 다카히로의 고민은 '아름다움'에 대한것이 대부분 이었지만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자신이 그동안 잊고 있던 '사랑'이었다.

분석은 필요 없다. 그저 느낄 뿐이다. 궁극의 미학, 천계의 음악, 지상의 행복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p. 492)

한 권의 책을 읽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편씩 나오는 연재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이 작품은 SF인데 SF아닌것 같은 SF같은 SF 였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SF이지만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소재들이었기에 박물관에 있는 것들 혹은 있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하기도 한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따듯함 이었다. 무엇을 보든 어떤 시대에 보든 관점에 따라 경험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아름다움도 아름다운 사람이 보아야 아름답게 보인달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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