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매스 - 세상을 바꾼 천재 지식인의 역사
피터 버크 지음, 최이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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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융합형 인재, 폴리매스

한계를 넘어 지식의 최전선에서 역사를 새로 쓴 천재들의 연대기

다빈치, 수전 손택, 천재, 지식인 ... 새롭지 않은 명사들이다. 그런데 폴리매스? 시대를 앞서간 융합형 인재라... 천재와 다른 말인가? '폴리매스'라는 생소한 단어에 흥미를 느꼈다. 사전상의 의미로는 '박식가, 박식한 사람' 이다. 이러한 폴리매스들에 대한 책이라... '세상을 바꾼 천재 지식인의 역사' 라는 부제에도 끌렸다. 나는 연대기적 역사읽기를 참 좋아하므로. ㅎ

저자는 역사학을 전공하고 미술사·사회학·영문학·불문학 협동과정을 가르쳐온 교수이다. 교수시절 강의를 하면서 학문의 큰 그림과 세부 사항을 비롯해 한 학문에서 익힌 사상과 경험을 해석하거나 다른 학문으로 전달하는 데 관심이 있는 개인과 집단에 관한 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바로 이 책이 그 결과물이라고 한다. 저자는 또한 '들어가는 글'에서 '폴리매스는 그들이 이룬 많은 업적 중 단 한가지 혹은 몇 가지 성과로만 기억된다. 이제는 오해를 바로잡을 때다. (p. 20)' 라고 말한다. 대체 폴리매스가 어떤 사람들이고 무슨 일을 했기에 저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미국 폴리매스 연구회라는 독립 연구자 모임에서는 폴리매스를 '많은 주제에 관심을 갖고 배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과거에 학식으로 알려진 학문적 지식에 집중할 것이다. 즉, 지적 '과정'이나 '교육과정' 전체 또는 적어도 주요 범위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백과사전적' 관심을 가진 학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p. 21) 이 책은 주로 인물 연구에 기반을 두었다. 15세기부터 21세기까지 서구 사회에서 활약했던 500명을 선정해 그 명단은 뒤에 따로 정리했다. (p. 24)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이 대단히 매력적이기는 하나, 나는 이 책이 단지 초상화 전시장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 이 책의 한 가지 주된 목표는 지적·사회적인 경향을 파악해 박학다식해지려는 노력에 호의적이거나 비우호적인 사회 조직의 형태와 여론이 무엇인지 일반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p. 25)

그러니까 폴리매스는 단순하게는 박학다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저자는 역사 속에서 뚜렷한 학문적 성과를 남긴 사람들 중에서 다방면에 걸친 사람들을 추렸고 그 사람들이 어떤 사회분위기 속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나를 살펴보면서 지금 이 시대에 폴리매스라 불릴 만한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봐야 할지를 시대흐름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이 책의 주된 관심은 전문화가 확대되는 문화 속에서 폴리매스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다. (p. 26)'라는 말처럼 현대적 폴리매스 존재를 새삼스레 강조하고 싶어한달까. 왜냐하면 시대적 천재라고 하면 항상 존경받았던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의외로 많았었기 때문에...

다빈치는 회화·물·해부학·광학·비행·역학 등에서 저술 계획을 세웠지만 그중 어느 것도 완성하지 못했으며 어떤 글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역대 최고는 아니라도 당대 위대한 예술가 중 하나였던 다빈치는 40대 후반에 '붓놀림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수많은 폴리매스가 분산된 관심과 에너지 때문에 작업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레오나르도 증후군 이라는 용어를 만들게 된 이유다. (p. 81)

'천재'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가장 흔하게 떠올려지는 사람 중 하나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일 것이다. 하지만 따져들어가 보면 다빈치의 완성작은 회화를 비롯해서 그닥 많지 않다. 다방면에 관심을 가졌던 만큼 이거하다저거하다 하느라 뭐하나 제대로 완결짓지는 못했다. 그래서 저자는 벌려놓은 일은 많은데 마무리는 못하는 모습에 '레오나르도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붙였다. 그리고 폴리매스들의 특징 중 하나로 이 레오나르도 증후군 적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만능인' 처럼 보였는데 실상은 '박학다식한 괴물' 일수도 있었달까.

17세기를 폴리매스의 황금기로 부르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그 자신도 학문에 정통했던 헤르만 부르하버가 '박학다식한 괴물들'로 표현한 사람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많은 책을 썼다. (p. 102) 17세기는 광범위한 지식과 독창적 기여라는 상반된 요구가 비교적 힘의 균형을 이룬 시기였다. 출판되는 책이 늘어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짐에 따라, 1700년 이후에는 폴리매스가 되기 점점 어려워졌다. 이미 몇몇은 힘의 균형이 조금씩 깨지면서 지식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p. 128)

사실 폴리매스들의 연대기를 읽어가는 과정은 지식의 분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대시절 학문별 이름도 없고 철학이자 수학이자 과학이자 역사학이자 수사학이었던 그 모든 과정을 그저 뭉뜽그려 하나로 배울 수 있던 시절에서 지식이 쌓이고 발견이 늘어나면서 모두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는 시대가 되어갔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넘쳐났고 각각의 분야로 전문성을 띠어갈 수밖에 없었다. 즉 전문가의 시대는 다른 말로 지식의 파편화를 가중시키는 시대였던 것이다. 따라서 한 분야에 정통하지 못하고 잡다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폴리매스 들에 대한 평가는 점점 더 야박해졌다.

지식 폭발에 대한 주요 대책은 지식을 전문화해서 필수 정보의 양을 줄이는 것이었다. 전문화는 정보의 홍수를 막는 제방으로 일종의 방어책으로 간주되었다. (p. 205)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들기 어려워지면서 학문에 파벌과 영역이 생겨났다. 이것은 지식이 영역화되고 있다는 신호이며 '내 분야' 혹은 역사가의 경우 '내 시대' 같은 포현들의 사용이 증가했다. 일부 학계는 경쟁자들로부터 자신의 분야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p. 209)

하지만 지식이 점점 더 전문화되었다고 해서 폴리매스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문화 시대에 폴리매스에게 주어진 역할은 임시적이거나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학문을 창시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당연히 다른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영역성의 시대에 새로운 학문은 순차적 폴리매스, 즉 유목민형 학자가 필요하다. (p. 231)' 폴리매스들은 늘 있어왔다.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고 나면 그 분야는 전문화가 진행되고 그러고 나면 또다른 폴리매스들이 새로운 학문을 창안해 왔달까. 이러한 과정은 물론 폴리매스라 부를 만한 한 개인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시대적 집단적 대중적 다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했다.

오늘날은 집단과 개인 모두에게 상황이 복잡해졌다. 지금 우리는 분과 학문간 학제간 융합이 공존하는 시대, 혹은 단순한 실존보다 상호작용의 의미를 강조한 스페인어 단어를 사용해서 좀 더 정확히 표현해서 그 두가지가 공동 생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구획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학과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캠퍼스에서는 학과 옆에 수많은 학제간 융합 연구소가 세워졌다. (p. 351)

얼마전부터 가장 핫한 단어 중 하나가 '융합'이 아닐까 싶다. 대학학과만 보더라도 전통적인 학과들이 사라지고 생전 처음 보는 듣보잡 학과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 중심에 '융합'이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과잉의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은 뒤쳐지기 십상이다. 지식이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시대이지만 이런 시대에 다시한번 폴리매스 존재들을 상기해야 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연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열 명 이상의 몫을 할 수 있다. (p. 360)' 라는 저자의 말에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만 제대로 알기도 힘든데 만능이 되야 살 수 있는 시대라니 참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뭐 모두 다 천재일 수 없는 것처럼 모두 다 박학다식할 수도 없다. 다만 노력형 천재라 할 수 있는 폴리매스에 좀더 긍정적인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라는 식으로 마무리하면 될 것 같다.

ps. 저자가 앞서 밝혔듯이 이 책에 등장하는 500명의 폴리매스는 모두 서양인이고 특히나 영프를 중심으로 한 유럽인들이다. 하지만 천재가 어디 유럽에만 있었으랴. 폴리매스가 어디 서양인만 있겠는가. 우리가 얻어야 할 메시지는 그저 융합형 인재, 박학다식형 인재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라는 걸 인지하는 정도이면 될 터이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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