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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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벗어달라는 제안을 받은 교사,

비밀이 든 가방을 들고 다니는 헌병,

전선에서 도망치다 붙들린 군인 …

이 시대의 가장 재기 넘치는 거장 21세기의 발자크,

피에르 르메트르의 신작

작가에 대해서도 작품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신간안내의 무수한 광고문구들 사이에서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띄었다.1951년에 태어나 55세의 나이에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첫 작품부터 상을 받더니 발표하는 작품마다 호평을 얻고 이내 늦깎이 신예에서 곧장 장인의 반열에 올랐다는 작가에 대한 그 소개가 말이다. 그는 과연 어떤 작품을 썼길래?!

전쟁이 곧 시작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시들해져 있었고, 누구보다도 쥘 씨가 그랬다. 총동원령이 내려지고 나서 여섯 달이 넘어가자, 실망한 라 프티트 보엠의 사장은 더 이상 그 가능성을 믿지 않게 되었다. 서빙을 하던 루이즈는 그가 <이 전쟁이 정말로 일어난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라는 말까지 하는 것을 듣곤 했다. (p. 13)

첫 문장부터 전쟁과는 어울리지 않는 왠지모를 나른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이 두툼한 소설은 실은 두 달여 간의 짧다면 짧은 날들을 담은 작품이라는 것을 1940년 4월6일 - 1949년 6월6일 - 1940년 6월13일 로 이루어진 단촐한 차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세계대전이 벌어지진 않았으나 곧 터질것 같은 전쟁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시절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기막힌 상황들이 펼처지기 시작한다. 총동원령까지 내려졌음에도 전쟁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부터가 기막힌 생각이었지만 그 시절의 파리는 그런 생각들이 자연스러운 그런 곳이었다.

「당신의 벗은 모습을 보고 싶소」 그가 말했다. 「딱 한 번만. 그냥 보기만 하고 다른 것은 안 해요」 깜짝 놀란 루이즈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p. 16)

초등학교 교사인 루이즈는 여가시간에 동네 레스토랑인 라 프티트 보엠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다. 교사가 된 이후로 굳이 서빙일 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해온 쥘 씨의 식당돕는 일을 굳이 그만 둘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이 레스토랑의 단골 손님 중엔 20년 전 부터 토요일마다 와서 전면 유리창 옆의 똑같은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고 가는 의사 선생이 있었다. 그 의사선생이 처음으로 루이즈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루이즈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루이즈는 당황했다가 기분이 나빴다가 호기심이 일었다가 기분이 썩 괜찮았다가 하는 혼란한 와중에 의사가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고 예상되는 '만 프랑'을 대가로 요구했다. 그러나 의사는 그렇게 하자며 호텔방을 예약한 메모지를 건네는 것이었다. -0-

9백명이 넘는 병사들은 수만 세제곱미터의 콘크리트 아래에 묻힌 수 킬러미터의 지하 통로를 쥐새끼처럼 돌아다니며 살고 있었다. (...) 적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으므로 탄약 상자를 쌓고, 열고, 분류하고, 옮기고, 확인하고, 정리하기를 반복했으니, 이 일 외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p. 40) 평소에도 깊게 잠드는 편이 아닌 가브리엘에게 이 지하 요새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기다리다 진이 빠졌다. (...) 기장이 상당히 해이해져 경계 근무 사이사이에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p. 42) 라울 랑드라드 병장이 그의 작업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 휴게실에서였다. (...) 그에게 있어서 삶은 온갖 술책과 부정 거래가 우글거리는 연못이었다. (p. 43)

수학선생이었으나 통신병으로 징집된 가브리엘과 한 내무반에 라울 랑드라드 병장이 있었다. 그는 가브리엘과 극과극의 사람이었다. 가브리엘이 올곧다면 라울은 올곧지 않은 일만 골라 하는 사람이었다. 가브리엘은 라울이 벌이는 일들이 모두 마뜩찮았으나 그의 속임수와 폭력과 사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가브리엘에겐 시간이 흐를수록 절대 얽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라울이었는데 이 둘의 관계는 점점더 밀접해져만 갔다.

루이즈는 사흘 더 병원에 머물렀다. 그녀는 거의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녀가 떠나려 할 때, 한 경찰관이 병실에 들어와 법원의 판결을 알려 주었다. 사인은 자실로 확인되었고, 매춘 시도 혐의는 기각되었다는 거였다. (p. 60)

호텔방에서 루이즈의 벗은 몸을 보던 의사는 돌연 권총자살을 했고 그 장면을 목격한 루이즈는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었는데 겉보기로만 봤을 때 매춘에 가까웠던 상황이었기에 루이즈에 대한 소문은 나빠져만 갔고 그렇게 루이즈의 일상은 무너져내렸다. 그는 왜?

데지레 미고가 처음부터 미고 변호사엿던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이 있기 전 해에, 그는 석 달 동안 리바레탕퓌이제 마을에 단 하나 있는 학급의 초등 교사로 근무(...) 몇 달 후, 그는 에브뢰 항공 클럽의 조종자 데지레 미냐르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p. 82) 비행 클럽 금고를 들고 영원히 사라져 버렸던 (...) 그의 얼마 되지 않은 경력의 하이라이트는 이베르농쉬르손생루이 병원의 외과 의사 데지레 미샤르 박사로 두 달 넘게 활동한 일이었다. (...) 데지레 미고의 진정한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생농라브르테슈에서 태어나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곳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그의 흔적이 발견되지만, 그 후에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를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의 의견은 그의 삶 자체만큼이나 다양했다. (p. 83)

한마디로 '사기꾼'이라 할 수 있지만 그냥 사기꾼이라고 폄하하기엔 뭔가 어떤 인간미와 묘한 신비로움이 있는 청년 데지레 미고가 다시 등장한 곳은 일촉즉발의 전쟁시국에서 혼란에 빠진 파리시내의 정보를 수습하고 검열해야 했던 공보국이었다. '콩티낭탈 호텔에서 데지레의 수직에 가까운 상승은 무수한 논평과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저 친구는 대체 어디서 온 거야?> 라고 사람들은 묻곤 했다. (p. 147)' 데지레는 이번에도 그 화려한 언변으로 주변을 휘어잡고 있었다.

「전시에 정확한 정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감을 주는 정보야. 진실은 우리의 주제가 아니야. 우리에겐 보다 높은 임무가, 보다 야심 찬 임무가 있어. 우리는 프랑스 국민의 사기를 책임지고 있는 거라고!」(p. 149)

자신감을 주고 소식을 알려주면서도 애매하게 말하는 것, 이게 바로 이 일의 어려운 점이었다. (p. 150) 지금 진정한 전쟁부는 바로 공보국이었고, 데지레는 그 대변인이었다. (...) 이것은 전쟁인 동시에 파티였다. (p. 151)

소문으로만 들려오는 독일의 진격, 넘쳐나는 정보 속에 사라진 진실, 어디선가 전쟁중이 확실했지만 파리는 아직 파티 중이었다. 그리고 파티는 곧 끝났다. 독일군이 파리로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파리는 멘붕에 빠졌다.

「그 의사 말이야. 자기 애인을 데리고 올 때마다 우리가 잘해 주지 않았어? 그거, 다른 데 가서 하면 안 됐나? 그래, 어미 하나로 충분치 않아서 딸까지 데려온 거야?」 (p. 203)

일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던 루이즈에게 우연히 눈에 띈 어머니의 유품속엔 그녀가 몰랐던 어머니의 과거가 있었다. 어머니가 왜 일생을 우울증에 빠져 창가에 앉아 있어야만 했는지 알 수 있을 힌트가 있었다. 그리고 의사선생이 왜 루이즈를 그렇게 쳐다보았는지도. '어머니가 의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살아 있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 (p. 239)' 루이즈는 배다른 오빠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 독일군의 진격이 파리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페르낭은 그동안의 망설임에 마침표를 찍었다. 알리스는 파리를 떠나되, 혼자 떠날 거였다. 왜냐하면 지산은 이시레물리노에서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p. 303) 그는 제목을 입고 건물 뒤뜰로 내려가서는, 거기 담겨 있던 감자의 흙이 아직도 밑바닥에 남아 있는 황마 자루 몇 개를 거냈다. 그런 다음, 자전거에 올라탔다. 이제 그의 구원은 어느 환경미화원의 손에 달려 있었다. (p. 308)

헌병대장 페르낭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시 상황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짐작되자 아내를 먼저 피난시키고 자신은 뒤따라가 가기로 했다. 목표한 바는 쉽게 이루었으나 마지막으로 죄수 소송 임무가 주어졌고 이 임무가 그를 상상밖의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되는데...

부유한 이들의 탈출은 이미 며칠 전에 끝났고, 지금은 그렇지 못한 이들이 군복 차림의 병사, 농부, 민간인, 장애인 들이 뒤섞인 잡다한 무리를 이루어 힘겹게 걷고 있었다. 한 시청 차량에 탄 어느 유곽의 매춘부들, 그리고 양 세 마리를 몰고 가는 목동 등 도로 위엔 그야말로 온 백성이 모여 있었다. 갈가리 찢기고 버려진 이 나라의 모습 자체인 이 피란민의 물결 속에서 자동차는 천천히 덜컹거렸다. 어디에나 얼굴들, 얼굴들이 있엇다. 어떤 거대한 장례 행렬 같다고 루이즈는 생각했다.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패배의 가혹한 거울이 된 거대한 장례 행렬이었다. (p. 459)

번역자에 의하면 이 작품의 원제는 <우리 고통들의 거울> 이라고 한다. 고통은 전쟁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듯한 원제라고도 이야기 한다. <우리 슬픔의 거울> 과 고통의 거울이 함께 들어가 있는 문단은 피란민의 행렬을 묘사한 장면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뭐라하든 큰 관계 없었을 장면, 피란민의 행렬 모습은 '장례 행렬' 같았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었다. 예상을 했건 못했건 믿었건 믿지 않았건 벌어졌고 벌어진 이상 어쩔 수 없는. 하지만,

이번에도 상황이 모든 이를 화해시켜 주었다. (p. 611)

이 소설은 고통스럽거나 슬프게 읽혀지는 작품은 아니었다. 묘하게 우스꽝스럽고 묘하게 피식거리게 되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무거워야 할 내용이 가볍게 읽혀지는 묘한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 묘하게 가짜같은 상황들이 1940년대 프랑스의 현실, 진짜 현실 이었다고 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데지레가 전하는 소식들 중에는 아주 기상천외한 것들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너무나 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다... (p. 617)' 거짓말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거짓말 같은 상황이 정말 현실이었다고나 할까.

유럽 근대 소설의 양대 산맥이 영국과 프랑스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낭만주의 감성의 영국에서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환상 소설, 모험 소설, 고딕 소설, 역사 소설이 주를 이뤘다면, 실제의 사회와 역사를 치열한 비판 의식으로 파헤친 리얼리즘 소설은 프랑스 문학의 본령이었다. 19세기 초의 발자크, 스탕달, 플로베르, 빅토르 위고로부터 시작하여, 중반과 후반의 외젠 쉬, 공쿠르 형제, 에밀 졸라를 거쳐 20세기 초반의 마르셀 프루스트와 로제 마르탱 뒤 가르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굵직한 리얼리즘 작가들을 끊임없이 배출해왔다. (p. 623) 21세기 초반에, 가물가물해져 가던 이 영광스러운 횃불을 이어받겠다고 나선 작가가 나타났으니, 바로 피에르 르메트르 이다. -옮긴이의 말 中-

작가는 <오르부아르>, <화재의 색> 에 이어 <우리 슬픔의 거울> 로 세계대전 시대를 3부작 대하소설로 써냈다는데, 마지막 작품을 읽어서 그런가 굳이 그 이전 작품들까지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확인한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을 또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현실이 되기까지 얼마나 무방비한 상태로 있었는지, 전쟁이 현실이 되고나서도 그 전쟁보다 더한 고통과 슬픔이 인생에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하는 이 소설은 분명 명작이긴 한데, 내가 프랑스의 리얼리즘을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인지 묘하게 멀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굵직한 세계사를 소설로 새롭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겐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모든 역사는 우리에게 또다른 거울이 되고 모든 문학은 우리에게 또다른 슬픔을 알게 해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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