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히브리스 - 인류, 그 거침없고 오만한 존재의 짧은 역사
요하네스 크라우제.토마스 트라페 지음, 강영옥 옮김 / 책과함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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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파괴적 욕망으로 질주하는 오만한 유전자, 인류에게 미래는 있는가?

한 권으로 살펴보는 인류 진화의 천만년사

이 책의 부제는 [인류, 그 거침없고 오만한 존재의 짧은 역사] 이다. 수천년 수만년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를 두고 '짧은 역사' 라니 이상한가? 하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구의 역사에 비해 인간의 역사는 정말이지 아주 짧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46억살이라는 지구의 역사에 견줘보면 고작 몇만년 정도의 인류의 역사는 거의 찰나의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찰나의 존재인 인류가 더할나위 없이 오만해졌다. 휘브리스는 고대그리스어에서 '오만함'을 의미한다. 저자는 오만해진 인간을 '호모 히브리스'라 칭하며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이 책은 끝없이 승승장구해온 인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몰락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숱한 우연의 상호작용을 통해 파괴적인 속도로 진화의 정점을 향해 내달리고, 궁극적으로는 지구의 오지까지 정복해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아주 특별한 동물 종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단 한 번뿐인 성공 가도에 진입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수많은 진화 경로는 인간의 계통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침팬지와 보노보로 분화된 이후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그중 하나는 이미 우리 앞에 있다. 이 책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최초의 인간을 다루고 있다. (p. 12) 이후 이들에게 최대의 적은 가장 위험한 동반자이자 효과적인 무기가 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역사의 흐름에 거듭 영향을 끼쳐왔던 치명적인 병원체였다. 21세기에 인간이 이 재앙을 극복했다는 확신을 얻을 때까지, 더 많은 것들을 깨달을 때까지 말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어떤 것도 주어진 대로 취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다. (p. 13) 지금 우리는 정상에 있지만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 무엇이 우리를 정상까지 인도했을까? 문명 창조의 주인공이 다른 유인원이 아니고 우리 인간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시작부터 특별했던 고고유전학 연구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p. 14) -서문 中-

독일의 고인류 DNA연구자 와 독일의 저널리스트가 공동으로 쓴 이 책은 앞서 이 둘이 펴낸 책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과도 닿아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여행>이란 책을 읽으며 고인류학을 통해 '난민'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신선하고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었더랬다. 그후 코로나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이번엔 '호모 히브리스'라는 메세지로 책을 낸 것이다. 전작과 비슷하게 내용은 과학으로 가득하지만 핵심은 사회적으로 심플하다.

현생인류는 최소 5000년 동안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함께 살다가, 현생 인류가 유럽 대륙을 차지한 것이다. (p. 50)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시신을 눕히거나, 앉히거나, 함께 매장된 다른 사람 쪽을 향하게 하는 등 특정한 방식으로 시신을 매장한 무덤이 없지만, 크로마뇽인에게는 많다. 오늘날 고고유전학자와 고고학자가 연구하고 있는 네안데르탈인의 뼈는 대부분 뼈의 주인이 죽은 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하이에나와 같은 청소부 동물들에게 뜯어 먹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발굴물이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주변 사람들을 매장함으로써 모면하려고 했던 광경이었다. (p. 60)

현생인류는 지금으로부터 4만 년 전에 세계를 정복하고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p. 62)

'인간은 아프리카에서 처음 직립보행을 배우고, 고성능 뇌를 개발하고, 문화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몇 년 전까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생각했던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거대한 대륙 전체에 흩어져 나타났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종의 용광로에서 다양한 인간의 계통이 혼합되어,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된 아프리카인으로 통합되었다. (p. 66)' 고유전학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놀라운 것이 내가 배웠던 과학지식이 잘못 증명된 지식이었었다는 점이다. 수십년 사이에 새로이 밝혀진 사실들이 너무나 많았다. 인류의 발달 관련해서 가장 널리 잘못 알려진 상식이 아마도 직립보행과 연결지은 한 그림일 것 같다. 인류는 단순하게 직선적으로 계단식으로 진화해오지 않았다. 인간의 계통도는 아주 다양한 가지를 갖는 복잡하고도 동시적인 공존의 시대를 알려준다. 진화의 상식적인 그림은 바뀌어야 한다.


약 200만 년 전에 드디어 호모 에렉투스가 나타났다. 그들의 등장은 인간을 처음 유라시아로 이끈 진화적 도약이었다. 이들의 직계 조상은 일반적으로 직립보행을 하지 않았던 반면, 호모 에렉투스는 두 다리로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식단의 대부분이 고기나 짐승의 사체였기 때문에 호모 에렉투스가 뛰어난 사냥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할 필요가 없다. 두 다리로 걷는 것만큼 효율적인 보행법은 없었고, 호모 에렉투스가 장거리 달리기에 적응하도록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몰이사냥 기술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p. 84)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들의 시대도 저물었다. 유라시아에는 현생인류처럼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의 계통에서 분화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만 남았다. 이 시기에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현생인류, '이성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의 존재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p. 85)

인간을 인간이게 한 것으로 '뇌'의 발달이니 '바늘'을 비롯한 도구의 사용이니 '언어'이니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몰이사냥'기술 인 건 아닐까 싶다. 호모종이 '몰이사냥'을 시작하면서 호모종이 출몰한 지역에선 대형동물들이 멸종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호모종은 세력을 불려나갔다.

다양한 인류 종이 공존하던 시대에 왜 우리 조상들은 점점 북쪽으로 밀려났을까? 네안데르탈인들에게 남쪽 지역을 정복하겠다는 야망이 정말 없었을까? 진화의 잣대로 판단할 때 현생인류는 아주 짧은 기간에 힘들이지 않고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유라시아의 스텝 지대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반면 이 수십만 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네안데르탈인들이 자신들이 살던 곳과 다른 생활환경에 적응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p. 128) 현생인류는 더 온화한 기후와 생존 기회가 더 많았던 남쪽에서 더 많은 것을 채워 나갔다. 북쪽으로 이동해 네안데르탈인과 혼형을 했던 현생인류는 자연선택의 이점도 함께 물려받았다. (p. 130) 과거에 보장받았던 생존, 극한 환경적 조건에 대한 유전자 적응 하나만으로는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없었다. 인간의 문화가 생물학적 특성을 이긴 것이다. 현생인류가 유라시아 대륙 구석까지 진출하면서 주로 매머드 스텝 지대에 머물렀던 네안데르탈인에게 남은 선택지는 후퇴였다. (p. 131)

인류의 진화라고 해서 고고유전학적 연구만 들여다봐서는 곤란하다. 지구의 생태환경은 꾸준히 변화해 왔고 기후는 격변을 거듭해 왔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인 진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3만9000년 전에 찾아온 자연 재해는 오랜 방어전에 지친 네안데르탈인에게 결정타를 날린 사건이었다. (p. 131)' 대규모의 화산폭발은 긴 시간 광활한 지역의 기후를 변화시켰다. 환경에서 살아남고 환경을 이용하는 종이 살아남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숨 가쁜 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들은 다른 모든 동물들의 생물학적 특성을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개발된 사냥과 살인 기술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더 이상 수많은 생물 가운데 하나가 아닌,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는 킬러로 등극했다. (p. 133)

하지만 이 때에도 호모종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단일종이었던 것은 아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호모 사피엔스만 남게 된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호모종은 다양하게 공존해왔다. 하지만 '그들이 가는 곳마다 모든 거대 동물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동물권에서 절대 남획을 하지 않는 다른 인류 종들과 우리 조상들의 차이다. 매머드는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하며 수십만 년 후에도 안정적인 개체 수를 꾸준히 유지했고, 네안데르탈인은 하이에나를 보며 한 번도 스스로가 먹이사슬에서 사라질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p. 133)' 호모 사피엔스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네안데르탈인이 멸종됐고 매머드를 비롯한 대형동물들이 하나둘 멸종해갔다. 인류진화의 역사는 어쩌면 킬러본능의 발달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힘든 시기를 버티기 위한 카니발리즘을 금기시했 (p. 136)'던 호모 사피엔스의 문화는 아이러니하다. 전쟁으로 수많은 목숨이 죽어나가는 걸 보면 이젠 뭐 그런 카니발리즘 금기도 사라진 것 같지만..

정글은 수렵·채집인에게 결코 좋은 장소가 아니다. 이것은 호모 에렉투스의 조상들이 우림에서 도망쳐 나와 고개를 쭉 빼고 아프리카 스텝 지대를 기웃거리며, 큰 뇌를 가진 열정적인 육식 동물이 되어야 했던 이유다. 원시림은 제아무리 민첩한 수렵인이라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데다 이동의 자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창·작살·활·화살로 원거리의 짐승을 찔러 죽이기에 이상적인 조건이 아니었다. 반면 원시림에서 잠재적인 먹잇감들은 몸을 숨길 기회가 많았다. 이곳에서 몰이사냥은 먹히지 않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p. 152)

호모 사피엔스는 몰이사냥 말고도 다른 기술을 익혔다. 이또한 다른 호모종이 멸종해 나갈때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였다. '수렵·채집 시대는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p. 179)' 농경의 시대가 열렸다. '인류가 농경생활을 했다는 초기 증거는 주로 약 1만1000년 전 아나톨리아의 괴베클리테페에서 발견되었다. (p. 185)' '아나톨리아에서 시작해 이곳에서 약 8000년 전 신석기인들이 확산되었다. (p. 190)' '이들의 세력이 팽창하면서 수렵·채집인의 어두운 피부색은 점점 이주민들의 밝은 피부색에 자리를 내주고 영원히 사라졌다. (p. 191)' 밝은 피부색은 여러 차례의 돌연변이로 인해 생겼다고 한다. 인류는 어차피 모두 다 호모사피엔종 이다. 단 하나의 유일한 종이면서 DNA로도 큰 차이가 없는 종이 단순히 피부색으로 차별을 한다는게 어찌보면 참 무식한 판단이 아닐까 싶다.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신석기 혁명의 특징은 우월한 농경민에게서 시작된 이주와 축출 움직임이었다. 아나톨리아인들은 이 방식으로 유럽, 근동지방, 남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유전적 특성을 형성했다. 이란의 신석기인들은 동쪽으로, 아마도 멀리는 인도까지, 그리고 아시아의 스텝지대로 전진했다. 오늘날 반투 유전자는 남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농경민들은 거대한 제국의 모든 비옥한 평야로 퍼져나갔다. 빙하기 말부터 세계의 다른 지역과 고립되어 있던 아메리카의 신석기 혁명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곳의 신석기 혁명은 이주한 농경민의 우세를 암시하는 유전자 이동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살아 있는 후손들은 약 1만2000년 전 이곳에 살았던 이들과 유전적으로 동일하다. (p. 204)

유라시아에서 이주와 축출과 살상이 난무하며 횡적으로 퍼져나갈때 아메리카 대륙에선 종적으로 그런 이주와 축줄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좀저 친자연적이고 평등적이고 평화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상식은 참 변해야 할 게 많다. 여하튼 인간은 본격적으로 '욕망'을 분출하기 시작한다. 정복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식민화의 역사는 DNA에도 새겨져 있었다. 원주민 남성은 자식을 낳을 기회를 박탈당하며 사라져갔고 원주민 여성은 정복자들의 혼혈자식을 낳으면서 인류의 DNA풀은 더 줄어들기 시작한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다 다른 것 같지만 DNA적으로 봤을때 인류는 한뿌리다. 그래서 전염병에 취약한 것이다. 다른 종과의 결합으로 더이상 진화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팬데믹은 새삼스레 이것을 알려준 것이다.

지금까지 박테리아가 원인인 거의 모든 감염병은 고고유전학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엇다. 반면 바이러스는 재구성이 거의 불가능하다. 유전물질이 DNA가 아닌, 그보다 훨씬 불안정한 RNA 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p. 280) 현재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에피데믹과 팬데믹의 정점에 대해서만 확실히 알고 있다. 전염병은 덥고 습한 지역에서 많이 발생한다. 이런 곳은 병원체들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지만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고고유전학자들이 흔적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p. 281)

인류를 속절없이 무너뜨린 자연의 위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무지하게도 인간은 죽음을 가져오는 질병과 유행병들을 자신들이 창조하고 상상한 존재들, 즉 신의 형벌로 이해했다. 인간은 죽은 자를 매장하고 저세상으로 부장품을 보내는 인류 최초의 문화에서 이미 다음과 같은 깨달음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했다. 인간도 자연 순환의 일부이자, 환경의 혜택에 의존하는 동물 중 하나이며, 최악의 경우 보이지 않는 적들로 인해 죽을 수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깨달음 말이다. (p. 290)

그래서 저자는 '20세기는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히브리스로 만들었다. (p. 292)' 로 말한다. 하지만 '이제 지구의 한계가 인간의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진화의 특성으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팽창, 영원한 진보는 인간에게 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한 진보는 인간에게 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영리한 종이기 때문에 이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p. 292)' 코로나팬데믹으로 인류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인간의 자연적 진화는 오래전에 끝났다. 인류는 하나의 종이다. 그 하나의 종이 정말 호모 히브리스가 된다면 멸종의 길은 앞당겨질 것이다. 그러니 호모 사피엔스로서 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인간과 자연 나아가 지구와의 공존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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