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치유, 인간 - 삶이 흔들릴 때 신화가 건네는 치유의 말들
신동흔 지음 / 아카넷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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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어떻게 내 삶이 되는가

신화를 좋아하고 역사도 좋아한다. 그래서 꽤 많은 신화관련 책과 역사서들을 읽어왔는데, 신화가 내 삶에 치유의 말을 건넨다라... 신선한 접근이었다. 신화나 역사에서 교훈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그로인해 위안을 얻을 수도 있겠으나 삶이 흔들릴때 그 삶에 치유까지? 게다가 흔한 그리스로마신화 가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신화들과 한국의 신화까지 합쳐서? 참으로 궁금했다. 이 책이.

삶을 일깨우는 영원한 신성의 이야기, 신화로의 새로운 여정을 한 권의 책으로 갈무리한다. 화두는 '내 안의 나'다. 세계의 신화를 거울로 삼아서 자기서사의 속성과 좌표를 살펴보고 나아갈 방향을 찾아보고자 했다. (p. 5) 나의 쉽지 않은 탐색의 여정에 거점이 돼주고 힘이 돼준 것은 한국신화였다. (p. 6) 우리 신화를 줄이고 외국 신화를 넣어 구색을 갖추는 대신 화두에 어울리는 신화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다. (p. 7) -머리말 [치유적 신화 읽기] 中-

이 책은 신화들을 통해 '나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는 '자기서사'에 신화가 어떻게 연결된다는 것일까?

한 사람의 삶은 간단하게 얘기하자만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다. 따라서 이 책의 구성은 (1장)창조신화에서 나의 존재의 시원을 유추해 보고 (2장) 자연신화에서 세계와 나를 연결하며 (3장)영웅 신화에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지만 (4장)애정 신화를 통해 다시 연결과 확장을 하고 (5장)생사 신화를 통해 삶이 영원일 수 있고 영원이 삶일 수 있는 '서사'를, 그렇게 한 개인의 서사 즉 '나의 서사'를 신화로 보여준다. 낯설어 보이는 이 접근이 막상 이 책을 읽다보면 생각보다 우리의 삶은 참 신화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ㅎㅎ

시끄러운 내적 갈등과 쉼 없는 피로의 시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오래 흘러운 원형적 신화들과 함께하는 명상과 치유의 여행이다. 한국 구전 신화를 포함한 세계의 모든 신화를 서사적으로 가로지르는 가운데 깊이 잠들어 있는 내적 실존을 깨워보고자 한다. 누군가를 위한 일임에 앞서, 나 자신을 향한 일이다. (p. 15) 신화는 무엇인가? 흔히들 신화를 '신의 이야기'라고 여기지만, 정확한 답은 아니다. (중략) 신화는 '신성의 이야기'다. '신성'과 '이야기'가 결합하면 신화가 된다. (p. 16)

신화가 신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글을 읽고 막상 꼼꼼이 생각해보니 신화에는 신들도 영웅들도 그냥 인간들도 두루 등장한다. 때론 동물까지. 따라서 신화는 신성한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가 맞다. 그러니 신화를 신화답게 하는 신성성에 대해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요소를 탐구하다 보면 나름 신령한 존재로서의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신화는 나의 삶으로 투영된다.

여러 신화에 그려진 태초 세계의 형상을 주요 단어로 표현하면 고요와 적막, 혼돈과 미분, 알, 물과 불, 어둠과 밝음, 흐름과 타오름 등을 들 수 있다. 구체적 형상이 없는 아득한 무정형의 세계이면서, 무엇이라고 특정하기 어려운 생명적 에너지와 창조적 역동이 내재한 세계다. (p. 18)

세계 곳곳에 다양한 인간들이 살아온 만큼 세상 곳곳에 다양한 신화가 존재하지만 막상 뜯어보면 신화들은 생각보다 무척 많이 비슷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화는 결국 인간들이 만든 이야기이고 그런 신화가 비슷하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하던 인간들이 비슷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다 랄까. 그러니 인간의 존재적 시원도, 달라 보이는 신화 속에서 결국은 비슷하게 발견하게 된달까. 가장 유사한 점은 '인간의 탄생이 신의 작용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p. 27)' 인간은 자신의 기원을 신화에서 찾도록 해놓았다. 인간에게 신성성이 있다는 것, 그러니 신화에서 인간에게 치유의 말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신화도 종국엔 인간의 이야기니까.

세계 여러 창세 신화는 태초에 수행된 창조의 불완전성을 말한다. 모순과 부조리로부터 부자유는 어쩌면 우리가 속한 세계의 본원적 속성일 수 있다. 대극을 이루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얽히는 가운데 쉼 없이 역동하는 천변만화의 세상, 하염없이 부딪치고 부대끼면서 나를 살릴 무언가를 찾아서 심신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운명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또는 죽어가는 것이 이승 속 인간의 길이다. (p. 49)

신성성을 지닌 인간은 태초의 이야기부터 서로 상극인 것들이 서로 모순적인 것들을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갈등과 쟁투는 필연적이었달까. 그러니 끊임없이 질서를 추구하게 되었달까. 그래서 좀 괜찮은 조화를 만들어냈다고 여겨졌을 때 선을 넘는 인간에게 다시금 자연의 신성성이 깨우쳐 주는 것이다. 신성성이 있다해도 인산이 신 인 것은 아니라고.

신의 피조물로 만들어졌든 신의 자식으로 태어났든, 이 세상 자연 만물은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진 혈족으로서 성격을 지닌다. 그들은 신의 기운을 간직한 채로 살아 있으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그 속에는 물론 인간도 포함된다. 신화에서 인간은 여타 자연물과 구별되는 특수한 창조물로 말해지기도 하지만, 별도의 딴 세상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p. 67)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자연이 인간의 일부가 아니라. '문명과 문화의 발달에 따른 인간과 자연, 또는 인간과 신 관계의 재구성이다. (p. 85)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태초의 거대한 창조신이나 거인 등이 사라져 없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p. 87)'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수메르 신화에 나왔건 그리스 신화에 나왔건 북유럽 신화에 나왔건 인도의 신화에 나왔건 그리고 한국의 신화에 나왔건 여하튼, 거인이라든가 모신들은 후세대의 신들에 의해 밀려나긴 했지만 사라지고 없어졌다는 말은 없었다. 여전히 자연속에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요컨대 문명의 역사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구성했다는 것은 단지 부분적인 진실일 따름이다. (p. 88)' 인간이 오만해질때 그 태초의 고대신들은 자연의 모습으로 다시 인간앞에 현현한다. 인간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

세계 신화에서 영웅의 위치는 크고도 특별하다. 영웅은 신화에 역동성을 부여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곤 한다. (p. 123) 하지만 신과 영웅은 정체성과 속성 면에서 차이가 있다. (중략) 신은 개념 범위가 넓고 가변성이 크지만, 그 본래적 속성을 자연성과 영원성에서 찾을 수 있다. (p. 124) 이에 비하면 영웅은 명백히 인간의 속성을 지닌다. 자연이라는 크나큰 신적 세계 앞에 선 인간, 인간에게 그 세계는 만만치 않다. (p. 125) 신화 속 영웅은 인류의 표상인 동시에 특정 집단이나 공동체의 표상이다. (p. 137)

어떤 신은 신이라기 보다 영웅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북유럽 신화 속 오딘과 토르는 '전지전능한 무소불위 능력자가 아니다. 오딘은 한쪽 눈을 잃은 존재이며, 토르는 거인의 주머니에 속절없이 갇혀 휘들리는 곤경을 치른 존재다. 인간이 그런 것처럼, 그들의 한계는 명확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끝없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p. 141)' 그래서 저자는 과거의 인기신화였던 그리스로마신화보다 최근엔 북유럽 신화에 젊은이들이 더 많이 호응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신 도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과업을 해내야 하는데 하물며 인간인 우리는 우리 인생에 주어진 과업을 해내는데 더 힘든게 당연한것 아니겠는가 하고.

세계 여러 창조 신화에서 말하는바 하늘과 땅, 또는 남과 여 사이의 결합은 이처럼 만유의 본원적 속성과 연결돼 있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운명적으로 반쪽이 되어버린 존재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내 온쪽이 되고자 하는 역동이다. (p. 181)

신이 가장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 이때일 거이다. 사랑하는 이의 예기치 않은 죽음이라는 신의 장난에 직면한 상태 (p. 247) 깨닫는 것은 그러한 살아냄이 제대로 된 죽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다시 나를 죽여야 할 때다. 일어서서 거듭나기 위하여. (p. 257)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경험할 다양한 '사랑'에 대해서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신화는 말한다. 신은 원래 그렇게 존재하는 법이라고. 천지간 세상을 나아가는 것은 너 자신의 몫이라고. 그 말은 신의 입을 통해서 발화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행위를 통해서 전해진다. 하나의 신령한 서사를 통해서. (p. 220)' 그 서사를 우리는 신화로 읽게 된다. 그렇게 신화는 우리의 삶 속에 계속 젖어들어 있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백년 해골이 무엇인가 하면 오래 흘러온 신령한 이야기로서의 신화가 그것이다. 보기에 따라 지난 시절의 허튼 이야기일 뿐이겠지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지만, 마음을 열고 그것을 품어서 서사적 연결을 이루어내면 삶에 질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p. 269) 그 서사들이 오롯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일 때, 그것을 온전한 나의 삶으로 살아낼 때, 존재는 모든 시공간적 경계를 너머서 영원성을 실현할 수 있다. (중략) 그 우주적 연결의 중심점이 어디인가 하면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다. 그 연결성을 오롯이 인지하고 구현해낼 때 우리의 삶은 하나의 신화가 될 수 있다. (p. 270)

신화관련 책이라고 해서 역사처럼 읽히는 책일 줄 알았더니 에세이에 가까웠다. 세계의 다양한 신화들을 두루 섭렵해서 이렇게 개인의 삶에 하나하나 투영시킬 수 있다니 놀랍고도 신선한 책이었다. 신화를 좀 안다면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이름들에 반가움이 더할 것이고 신화를 몰라도 그 신화적 에피소드의 개요를 저자가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신화를 한 권으로 압축해 경험하는 계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주 한국의 신화들로 풀어주는 내용들이 좋았다. 한국의 신화는 좀더 널리 잘 알려져야 한다. 우리네 신화도 세계 유명한 신화들과 그리 다를게 없다. 어찌되었든 신화로 풀어내는 개인의 서사가 잘 들어맞는 책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삶은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p. 270)' 이렇게 우리의 삶도 하나의 신화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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