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20세기 제약 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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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핀 개발부터 히틀러의 마약 중독까지

전쟁과 마약의 위험한 거래에 관한 역사

역사를 그저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역사는 늘 새롭게 읽히고 새롭게 밝혀지는 것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알고 있는 역사라 할지라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하는 책, 새로 밝혀진 사실들이 보완된 책, 새로운 가설들을 세운 책등 읽고 싶은 역사책들이 계속 생긴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때론 설레이기도 한다. 이번엔 최근의 역사라 할 수 있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 이야기다.

지금껏 국가 사회주의 실체는 낱낱이 밝혀졌다. 역사 수업은 그에 대해 어떤 공백도 허용하지 않았고, 미디어들도 여백이 남지 않을 정도로 샅샅이 파헤쳤다. 이 주제는 그야말로 구석구석까지 철저히 연구되었다. 나치의 독일 국방군 역시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연구된 군대였다. 우리는 이제 그 시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과 함께 제3제국은 낱낱이 해부된 채 땅속 깊이 묻힌 듯하다. 거기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굴해 내는 것은 헛되거나 이상한 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p. 8)

'나치 독일의 중심에는 마약이 있었다'

[의약품 첨부 문서로 서문을 대신하며] 라는 저자의 서문은 제목 그대로 의약품 설명서처럼 쓰여있다. 증상, 진단, 내용물의 효능, 이 책의 위험성, 부작용, 보관상 유의사항 으로 말이다. 위트어런 이런 서문에서 마지막 문장이 마냥 웃을 수 만은 없게 한다. '유통 기한은 미래의 연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p. 10)'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여겨지는, 연구될만큼 연구됐다고 여겨지는 그런 역사들도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곤 한다. 저자의 이 책이 그런 부분을 채워주었다고 해도 '미래의 연구 결과'에 따라 또 달라질 수 있다. 역사는 이렇게 미래형 학문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 지나간 역사에 대해서.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엄격한 반마약 정책을 시행했음에도, 히틀러 치하에서는 정말 강력하고 중독성이 강하고 악독한 물질이 인기 상품이 되었다. 이 물질은 1930년대에 <페르비틴>이라는 이름의 알약으로 제3제국 사회 곳곳에, 심지어 나중에는 독일이 점령한 유럽 국가들 내에서도 합법적으로 널리 퍼졌다. 약국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던 이 <국민 마약>은 1939년에야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하도록 바뀌었고, 1941년에는 마침내 제국 마약법으로 규제되었다. 페르비틴의 주성분 메스암페타민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불법이거나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p. 17) 이런 약물이 제3제국 시대에 날개를 달고 비상한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p. 18)

이 책은 독일에서의 제약 산업이 어떻게 마약산업이 되었는지,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수한 인간 깨끗한 피를 강조하던 히틀러가 어떻게 중독자가 되어갔는지 차근차근 근거를 하나하나 들이대며 상세히 풀어나간다. 읽다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렇게 되어갔던 상황이 이해가 가는 면도 있었다. 독일이 패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그들의 광기에 대해서 말이다.

1883년경 미국 약사 존 펨버턴은 코카인과 카페인을 섞어 코카콜라라는 이름의 청량음료를 만들어 팔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음료는 만병통치약으로 선전되었다. 1903년까지 오리지널 코카콜라에는 리터당 최대250밀리그램의 코카인이 들어 있었다. (p. 24)

19세기 초 아편의 핵심성분인 모르핀을 분리하는 데 성공하고 1850년경 주사기가 발명되자 이 진통제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모든 약국에서는 모르핀과 코카인이 처방전 없이 팔렸다고 한다. 무엇보다 코카콜라에도 들어있었다니;;; 사이다에 비해 중독적으로 콜라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건 다 이유가 었었던거다;;;

여튼, 다른 나라들처럼 식민지로 인해 부를 쌓지도 못하고 패전으로 나라의 존망까지 기울어진 독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번창한 사업이 화학산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약산업이었다. 게다가 '이 나라는 각성제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전쟁의 참사는 모든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양한 고통을 야기했다. 그러다보니 1920년대 우울과 낙담에 빠진 수많은 사람에게는 마약의 중요성이 꾸준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독일은 그것을 생산할 노하우가 있었다. (p. 26)' 화학 산업 분야에서 독일은 이미 '세계의 공장'이었고 특히 마약은 '메이드 인 저머니'가 품질보증서와 다름없게 된 때였다. 아편을 포함한 의약품은 독일의 특산품이었다.

페르비틴은 시대정신에 더할 나위 없이 딱 들어맞았다. 이 약물이 시장을 장악했을 때는 이제 세상의 모든 우울증이 정말 사라질 듯한 시기였다. 적어도 나치 강압 체제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본 독일인들은 그렇게 믿었는데, 독일에서는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p. 65) 분위기를 조장하려고 모든 수단이 강구되었고, 거기에는 화학 물질의 도움도 빠질 수 없었다. 이로써 페르비틴은 독일 민족을 거대한 집단적 도취와 <자기치유>의 선전에 쉽게 빠지게 할 길을 열어주었다. (p. 67) 메스암페타민은 국가 사회주의 이념의 균열을 메워 주었고, 약물에 도취된 정신은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페르비틴은 개인이 독제 체제의 부품처럼 기능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알약으로 돌아가는 국가 사회주의였다. (p. 68)

페르비틴은 각성효과가 뚜렷해서 피곤에 쩔던 군인들을 밤세워 날아가듯 행군하게 만들었고 겁없이 적진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부작용에 대한 연구를 할 시간도 없이 군인들에게 페르비틴이 뿌려졌고 복용 지침도 딱히 없었다. 전쟁초기 속도전에서 페르비틴의 효과를 본 군대는 점점 더 많은 페르비틴을 들여왔다. '독일 국방군은 화학 약품에 의존한 세계 최초의 군대 (p. 97)' 였다. 하지만 마약성 각성제가 부작용이 없을리 없었다.

연합군에 대한 이 찬란한 승리를 절대 오만한 군 장성들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 (중략) 그러려면 자신이 지휘하는 공군력에 결정적인 승리의 기회를 주어야 했다. (p. 122) 합리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됭케르크의 불길한 <정지 명령>이었다. (p. 123) 히틀러에게 제발 다시 돌진해서 작전을 끝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독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군데 자신의 힘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전쟁을 주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똑똑히 각인시키고 싶었다. (p. 124) 페르비틴의 도움을 받아 스당을 돌파한 이후 독일 특유의 속도전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히틀러만 이 속도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역행했다. (p. 125)

그 유명한 됭케르크 탈출작전에 이런 배경이 있었구나... 독일인들에게는 '잃어버린 승리'라고 불려지게 될 히틀러의 정지 명령 때문이었구나... 하지만 히틀러는 이 중대한 실책에도 자신의 무오류성을 확신했고 그의 측근들도 두려움과 감격으로 이 희극에 동참했다고 한다. 여느 독재자들이 늘 그러듯이 말이다. 하지만 페르비틴은 군대 뿐만 아니라 민간 사회에도 급격히 퍼지는 중이었고 독재자는 이러한 현실에도 무감하고 무지했다. 심지어 본인도 점차 마약류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을 저자가 찾아낸 것이다.

지금까지의 히틀러 문헌들에는 그 다양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혹시 놓치고 있던 맹점이 있는 건 아닐까?이 책의 목적은 역사적 사건을 실제 일어난 그대로 정확히 기술하는 것이 아니다. (중략) 이 책에서는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기보다 다른 식의 독법과 접근 방식을 제시할 것이다. 히틀러를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연갈색 개버딘 양복저고리를 입은 뚱뚱한 의사 모렐을 통해 우회해야 한다. 그는 최소한 1941년 가을 이후부터는 지금까지 역사학이 다루어 온 것처럼 그저 특이한 주변인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1941년 가을은 히틀러의 업무 능력이 눈에 띄게 꺾이고, 히틀러 연구자들이 그 원인을 찾ㅇ르 수 없어 하나같이 진공 상태라고 부르는 시점이었다. (p. 156) 달리 말해 모렐의 주사기 말고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히틀러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려면 그 약물의 순환을 살피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p. 157) 1941년 8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주치의는 거의 매일같이 환자A를 치료했다. 1,349일 가운데 총885일의 기록이 남아 있다. 약물은 1,100번 기재되어 있고, 거기다 800회가 조금 안 되는 주사가 추가된다. 그렇다면 기록된 날에 하루 한 번 꼴로 주사를 맞았다는 소리다. (p. 162)

유대인을 마약하는 민족으로 치부하며 반마약정책의 일환으로 유대인들에게 칼을 휘둘렀던 히틀러가, 육식을 금하고 채식으로 금욕주의자처럼 일상을 영위하는 것처럼 알려졌던 히틀러가, 주치의로부터 거의 매일 주사를 맞았다. 대체 어떤 성분이었을까? 처음엔 그저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없애거나 활력을 높이는 약물들이었다. 하지만 전속 주치의 모렐은 다양한 성분을 임의로 혼합하여 히틀러에게 주사했다. '주사액의 성분이 매일 조금씩 바뀐다는 사실은 독재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었다. 자신이 특정 물질에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는 모렐의 이 패키지 약물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독재자는 주치의 덕분에 자가 치료와 건강관리를 위한 완벽한 수단을 찾았고, 이후 점점 더 깊이 남용의 길로 빠져들었다. (p. 173)' 약하게 시작했더라도 적응된 신체에서 효과를 보려면 점점 세질 수밖에 없고 더이상 효과가 없는 성분은 다른 약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빠른 효과의 최적의 약품은 마약류였다.

모렐이 흰 종이에 검게 쓴 <오이코달>이라는 단어를 미국인들은 왜 몰랐을까? 이유는 해독하기 어려운 필체로 쓴 주치의의 기록을 영어로 번역한 공식문서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 문서에서 <미군 유럽 전역 군사 정보 서비스 센터>는 히틀러의 수많은 약물 가운데 오이코달을 <엔카돌>로 잘못 읽었다. (p. 207) <엔카돌>이라는 이름의 약품은 마약 목록에 없었기에 미 조사관들도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오이코달>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약이 없었다는 사실도 그게 오이코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읽기 어려운 주치의의 필체는 미국인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 오이코달은 C(코카인을 의미한다)와 모르핀의 혼합물과 비슷하다. (p. 208)

총통본부의 창문 하나 없는 음습한 벙커에서 히틀러는 주치의가 놔주는 오이코달을 탐닉했다. 총통의 생화학적 도취가 심해질수록 주변 사람들도 회의에 참석하거나 히틀러에게 불려간 시간을 무사히 버텨내기 위해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누구도 몰랐던 환자A의 상시적인 마약 섭취는 전염성이 있었다. 히틀러의 다중 독극물 중독상태는 주변 모든 이들의 현실감을 무너뜨렸다. (p. 215)' 히틀러의 전기 작가들은 이 명백한 마약 복용을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저자가 발로 뛰어 찾아낸 문서들에 그토록 많은 마약류들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히틀러가 마약을 탐닉했다고 해서 그의 죄가 마약때문인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분명히 구분한다.

아편 중독은 기존의 강경 노선과 타인에게 대리 위임한 잔혹한 폭력성을 더욱 공고히 했고, 전쟁과 유대인 학살의 마지막 국면에서는 결코 뜻을 굽히지 않게 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목표와 동기, 이념적 망상, 이 모든 것은 마약의 결과가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이미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히틀러는 혼미한 정신 상태에서 학살을 저지르지 않았고, 끝까지 제정신을 유지했다. 마약은 결코 결정의 자유에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항상 자기 의지의 주인이었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깨어 있는 정신으로 냉철하게 행동했다. 그는 처음부터 도취와 현실 도피에 기반한 체계 안에서 끝까지 일관되게 행동했고, 지독히 철저했으며, 결코 미치지 않았다. (중략)즉,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심적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그렇게 많은 마약을 스스로 복용한 것이다. 천하의 몹쓸 죄악이 경감될 수는 없다. (p. 273)

읽다 보면 히틀러는 마약체질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주치의에게 점점 더 세고 더 강하며 더 자주 주사를 놓아 달라고 했지만 그것이 마약중독이라고 여기진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대부분의 마약성 각성제들의 부작용이 히틀러에게는 신체적 징후 외에 정신적으로는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주사를 맞고 오히려 더 정신을 또렷히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그의 결정들은 마약으로 인한 오판이 아니었다. 그의 죄는 무엇으로도 경감될 수 없다. 저자가 이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 간 것은 이 책이 잘 쓰여진 책이라는 또하나의 반증이 아닐까 싶다.

독재자와 측근들 뿐만 아니라 병사들도 이젠 더 세고 더 강하며 더 자주 약물이 필요한 상태였다. 새로운 약이 필요했고 이젠 무작정 약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테스트를 하고 뿌려야 겠다는 생각들을 했다. 생체실험이 필요했다. 당연히 그 장소는 강제 수용소였다.

확실한 논거들로 나치 독일의 군대와 독재자가 어떻게 마약에 중독되어져 갔는가를 실증하는 이 책은 다시한번 강조한다. 그들이 마약에 중독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죄가 경감된다거나 그 원인을 마약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히틀러와 제3제국의 진면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1945년 봄 베를린 벙커에서의 마지막 몰락 단계가 아니라 1944년 7월29일의 암살 사건 이후 다중 독극물 중독에 빠진 몇 개월의 자멸 기간이다. (p. 331) 제3제국에서 마약이 느슨해지는 전의를 북돋우고 지도부의 전쟁 수행 능력을 유지하는 인위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논제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역사상 가장 어두운 그 시대가 중독성 물질을 너무 많이 복용했기 때문에 탈선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마약은 우리와 우리 시대에 이미 내재되어 있던 것을 강화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바람직한 현실과의 끈을 상실한 채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야기한 제3제국의 뒤틀린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p. 332)

이 책의 원제가 '한스 몸젠의 후기와 함께한 완전한 중독' 인 것처럼 책의 뒤에는 한스 몸젠의 후기가 실려 있는데, '이 책의 가장 큰 공로는 히틀러와 주치의 모렐의 공생 관계에 대한 묘사다. 이것은 가히 혁명적이다. (p. 337)' 라는 평가에 나또한 박수를 보탠다. 역사를 바꾼 개인들에겐 그것이 망상이든 야망이든 여하튼 남다른 본심이 있기 마련인데 중요한 것은 '현실감'인것 같다. 그 개인들이 얼마나 현실감 있게 생각을 실행하는 가에 따라 역사는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무언가를 상실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우리 문화에선 좀 생소할 수 있을 이 '중독'의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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