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2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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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례에 걸쳐 벌어지며 승자와 패자가 끊임없이 뒤바뀐 중동전쟁.

이스라엘은 어떻게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을까?

중동국가들은 왜 패배했을까?

그리고 이 전쟁은 무엇을 남겼을까?

임용한이 말하는 중동전쟁의 본질!

이런저런 세계사책을 읽으며 항상 느꼈던 건 우리가 알았던 세계사는 세계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사엔 다른 지역보다도 특히나 중동지역의 역사가 너무나 빈약했다. 현대사의 주인공은 서쪽인지 몰라도 문명의 태동은 동쪽에서 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동쪽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쪽보다는 동쪽의 역사에 제대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중동 전쟁'이라는 제목부터 '토크멘터리 전쟁사, 차이나는 클라스 출연' 이라는 홍보문구까지 이 책은 역사에 관심있는 나로서는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그런데 저자의 이력을 보니 한국사 전공이다. 음? 그래 뭐 역사로 이어져 이어져 중동사에 세계사까지 섭렵했을 수 있지... 그런데 중동전쟁이 알고보니 이스라엘이 일으킨 전쟁을 말하는 거였다. 음? 내가 생각한 중동이 그 중동이 아니었네;;; 그래 뭐 그래도 중동지역에서 여전히 가장 첨예한 분쟁지역이니 알아두면 좋을 전쟁사겠지...;;;

저자는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작가의 말'에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다. 기록을 남기는 자가 역사의 승자다. (p. 5)' 라고 말하며 자료수집 당시 이스라엘 쪽 자료 외에 다른 자료들은 그닥 많지 않아 본의아니게 분량을 양쪽 공정하게 할당하는 것은 불가능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이른바 중동전쟁의 시기는 1948~1973년 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가 봤을때, 어떤 전쟁사...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건국기에 가까웠다. 뭐.. 이스라엘이 그들이 일으킨 전쟁을 바탕으로 국가를 건설했으니 그게그거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룸멜의 시선을 따라 동쪽으로 500킬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한적한 이집트군 진지. 중위 가말 압델 나세르는 고요하고 황량한 사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나세르 중위는 마음 속으로 타는 분노를 삭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룸멜의 등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전투가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정작 그 땅의 주인인 이집트군은 할 일이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영국은 이집트 정예 사단의 무장을 해제하고 병력을 후방으로 돌렸다. (p. 13)

일면 소설처럼 시작되는 이 책은 전쟁사 책이지만 종종 이런 식의 서술을 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여주곤 한다. 하지만 문제는, 앞뒤 정황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본문 자체만으론 서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외국인 이름은 이름만으론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었고 세계대전의 양상이 어떤 상황이었던건지 설명이 없기에 소설 속 화자처럼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레이션을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첫 장이다. 생선을 먹었는데 머리도 꼬리도 없이 몸통 한가운데만 먹어서 무슨 생선인지 알 수 없는 상태의 시작이었달까.

팔레스타인, 성경에는 '가나안, 비옥한 초승달 지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언급된 이곳은 이집트와 시리아 사이에 지중해 연안을 따라 가늘게 뻗어 있는 지대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은 '농사가 신통치 않아 유목으로 살아가는 지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말처럼 비옥한 지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북부의 레바논과 시리아처럼 무역으로 부를 쌓는 도시도 없었다. (p. 21)

유대인을 유대인으로 만든 특별한 조항은 바로 '토지 소유 금지'였다. 이것이 유대인을 영원한 이방인으로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p. 23)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좋은 의미인줄 알았더니 저렇게 해석하면 또 꼭 그렇지만도 않아보여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유대인의 계율에 토지소유금지 조항이 있어서 디아스포라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그런데,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던 팔레스타인은 제국 지배령 중에서도 가장 낙후하고 가난한 곳이었다. 유대인들은 아랍인 지주들에게 토지를 매입하고 자그만한 정착촌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p. 28)

가난한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대부분 아랍인 지주의 소작인으로 살았다. 조상 대대로 땅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이 불쌍한 농부들은 자신들이 이 땅에 대해 법적 소유권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니, 굳이 인식하려 하지 않았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고, 등기상의 소유주가 누구든 땅을 갈고 소출을 먹는 사람들은 자신들이었다. 이거이 농부의 마음이고 농부식의 소유권이었다. (p. 49)

유목으로 살아가는 땅이라더니 토지소유를 할 수 없는 유대인이라더니,

농부로 살아온 팔레스타이인들이 아랍인들에게 땅을 사들인 유대인들에게 밀려났단다.

이 간극에 대한 부연 설명은 없다. 역사는 사실 자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객관적 사실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미 시작부터 이 책은 객관적역사를 사실 그대로 연대기적으로 제시하는 서술을 선택하지 않았다.

게다가 저자는 간혹 지나친 사견을 피력해서 읽는 이를 좀 거북하게 만들때가 있는데, 예를들어, 유대인들에게 국가건설이라는 로망을 심어주었던 헤르츨 가문의 비극을 다루면서 일찍 세상을 떠난 헤르츨의 아들을 보호하러 나선 프로이트에 대해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개척자이긴 하지만 허황된 이론을 내놓기 일쑤였다. 수제자인 융도 프로이트의 집요한 엉터리 해석에 질려 영원히 그를 떠났다. (p. 36)' 라는 표현은 특히나 거슬렸다. 개인적으로 프로이트를 존경하고 있고 융이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된 배경을 다른 책으로 이미 알고 있던 나로서는 저런 문장은 왜곡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 전쟁사를 서술함에 있어 좀더 자연스러운 맥락적 보충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아쉬움은 본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전쟁사를 훑어감에 있어서도 또한번 느껴졌는데, 연대기적 서술을 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스라엘쪽에서 다시 아랍쪽에서 서술하다보니 중복되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건 알지만 그 앞뒤 설명이나 연결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읽다보면 어?아까읽은것같은데? 하는 부분들이 자꾸 나와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여하튼, 전쟁은 펼쳐졌고 점차 강도도 세져간다.

팔레스타인은 태어나자마자 타향에 버려진 신생아나 다름이 없었다. 아랍 국가들이 신생아를 돕기 위해 모였지만, 순식간에 이해관계가 복잡해졌다. (p. 88)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아랍국가들이 역사는 오래됐지만 오스만제국이나 서구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는 얼마 되지 않는, 근대 국가로 따지면 신생 국가나 다름이 없다는 점이다. 국민의 교육, 기술, 문화 수준은 더욱 그랬다. 정치는 안정되지 않았고, 군대는 준비되지 않았다. (p. 89)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딱 한 가지 뿐이다. 1948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 질서는 아직 없었다. (p. 99)

총체적 난국이었고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가장 실속을 챙긴건 이스라엘 이었다. 그러니 나라까지 만들어냈겠지.

여기저기서 총탄이 날아다니고 전투기가 날아다니며 전쟁 전투 씬이 아무리 격화되어도 서사적 연결 맥락은 여전히 뚝뚝 끊겨서 흐름을 잡으며 읽기가 힘들었다. 예를들어,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감정선을 유지하는 나라가 있었다. 북쪽의 이웃 시리아다.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에는 마치 한국과 일본처럼 해묵은 적개심이 존재한다. (p. 250)' 이라고 시작하고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을 설명하면 나같은 사람은 대체 왜 그 두나라에 해묵은 적개심이 있는데? 라는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아서 전쟁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늘 부연 설명이 없다.

이스라엘의 계산된 폭력은 대책 없는 폭력보다 더욱 무서웠다. (p. 185)

이스라엘군의 대응은 항상 도가 지나쳤다. 단순히 '적이 1발을 쏘면 우린 10발로 갚아준다'라는 보복 심리가 아니라 모든 것이 계획적인 행동이었다. (p. 251)

저자는 '우리가 아는 사실은 이런 불완전한 평화마저도 먼 길을 돌아와야 했고,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의 변화와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깨달음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결합한 증오와 편견은 평화를 향한 의지보다 더 강하고 질기다는 것이다. (p. 534)' 라며 중동전쟁사를 마무리하지만 나는 사실 이렇게 1970년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대까지 이야기를 이어와야 하지 않았나 싶어 아쉬운 마무리였다. 이 책의 부제에서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라고 하지 않았나? 그 정치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은 아마 그 이후일텐데 싶어서 말이다...

여하튼, 이런저런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이 벌인 전쟁에 대해 시작과 전개를 거쳐 이스라엘 건국기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기에 그 유용성은 어느 정도 있다 할 것이다. 그래도 다음엔 좀더 자연스러운 연결과 배경설명이 세세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책이 전생사 시리지의 한 권이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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