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다투다가 하나 되는 무대 클래식 아고라 2
일연 지음, 서철원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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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다투다가 하나 되는 무대

<삼국유사>라는 제목에서 '유사'는 빠뜨린 일, 남겨둔 일 혹은 버려진 일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빠뜨린 일들을 애써 모은 것일까? 바로 나라에서 펴낸 역사책인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나름대로 의식한 표현이다. 이 때문에 <삼국유사>는 여러모로 <삼국사기>와 비교되곤 하였다. 이를테면 <삼국사기>가 왕권의 강약과 귀족 세력의 부침에 따른 정치사를 바탕으로 서술되었다면, <삼국유사>는 불교와 고유 신앙의 대립과 화해, 향가를 비롯한 문학과 미술작품 건축물의 조성 등 종교를 중ㅅ미으로 한 문화사의 영역을 해명하고 있다. (p. 11) <삼국유사>자체가 그런 혁신적인 생각의 산물이라 할 수는 없어도, 공식적인 사관의 평만이 유일한 역사의 눈이 되는 것을 경계하기에는 충분하다. <삼국유사>는 역사 이해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성을 마련해 주려고도 한다. (p. 12) 우리가 미래에 이루려 하는 다문화, 다양성과 다원성을 지닌 새로운 한국은 이미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가 한 차례 이미 이루었던 것이다. (p. 16) 이 책은 다른 번역서들처럼 정확한 번역을 앞세우기보다, 일단 잘 읽히는 번역을 추구하였다. (p. 17)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역자는 <삼국유사>의 가치와 이 책의 특장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일단 잘 읽히는 번역을 추구하였다' 에 감사한 마음이다. 한자를 그대로 옮기기만했다면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을 엄두나 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난해함이나 거부감없이 술술 읽힌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교과서에서 제목만 보던 역사책을 이렇게 쉽게 읽을 있는 시대가 오다니! 내가 그 <삼국유사>를 읽다니!! 와우, 정말 세상 참 좋아졌다. ㅎㅎㅎ

이 책은 총9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 이야기에 해당하는 1편과 2편이 절반 나머지 불교관련 이야기가 절반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삼국의 역사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대체로 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주 맥락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고려의 시초이야기랄까 고려의 용비어천가랄까 싶은 역사이야기였다.

또한 역사이야기이긴 하지만 대체로 신화적 이야기 였다. <삼국사기>와 대조되는 가장 큰 부분도 바로 이 점일 것같다.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일종의 야사같은 이야기들. 그래서 삼국의 역사라 할 수 있는 1편과 2편의 큰 제목은 '기이, 정치 현실과 신성한 환상' 이다. 기이하고 환상같지만 오래도록 전해져오는 역사이야기 라고나 할까. 그래서 출발은 언제? 고조선 이야기다!

나라를 다스린 지, 1500년 만에 주나라 무왕이 기묘년에 즉위하여 기자를 조선 땅의 제후로 삼았다. 그러자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훗날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령이 되었다. 그때 나이가 1,908세였다. (p. 23) 한 고조 유방때 연나라 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를 섬기게 되었다. 이때 연나라 사람 위만은 무리 1천여 명을 거느리고 요새를 나와 동쪽으로 달려 패수를 건너 망명했다. (p. 24) 왕검성은 함락되지 않았는데, 우거왕 대신 성기가 저항을 이어갔기 때문이었다. (중략) 마침내 한나라는 조선을 정벌하고 그 땅에 진번, 임둔, 낙랑, 현도 등 4군을 설치했다. [위지]에서 말한다. 위만이 조선ㅇ르 공격할 때, 조선왕 준은 궁궐의 여인들과 가까운 부하들만 거느리고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는 남쪽 한 땅에 나라를 세워 마한이라 했다. (p. 27) [통전]에서 조선의 유민이 70여 나라로 나뉘었는데, 각각 그 영토가 100리 씩이라 했다. (중략) 마한은 서쪽에 54소읍이 있어 모두 '나라'라 했고, 진한은 동쪽에 12소읍이 나라를 자칭했다. 변한도 남쪽으로 12소읍이 나라를 칭했다. (p. 30)

내가 중고등학생일땐 기자조선이라던가 위만조선에 대해 배운적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중고교생들의 교과서를 보면 이 내용이 나온다. 역사가 과거이야기로 그저 지난 일이라 고정불변일 것 같지만 사실 역사는 매 시대 새롭게 읽히는 과거로서 변화한다. 이 변화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각자의 역사관이 그만큼 중요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역사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데, 이 책은 <삼국유사>라는 본문과 적절한 보충설명이 쉽고도 객관적으로 쓰여 있는 것 같아 믿음직해 보였다.

위 내용에서 '삼한'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마한,진한,변한과 좀 다르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삼국유사>는 삼한 가운데 마한을 고구려, 변한을 백제, 진한을 신라라고 불렀던 최치원의 관점을 존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사의 순서 또한 '마한-고구려-변한 백제-진한'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마한을 백제의 모태로, 변한을 가야의 시초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역사적 지식과는 어긋난 것이다. 이는 삼한이 곧 삼국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따르고자 한 것이다. (p. 40)' 또한 '<삼국유사>의 모습은 일연의 역사관과 국제 관계의 이상을 반영한 것이다. (p. 34)' 라는 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알아두어야 할 것같다.

지금 풍속에 '경'을 서벌(서울)로 읽는 게 이 때문이었다. (p. 60)

이빨이 더 많아서 먼저 왕위에 올랐다. 여기에서 잇금(이사금, 임금)이라는 말이 유래하여, 유리왕부터 지금까지 '임금'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다. (p. 63)

미추왕릉의 서열도 박혁거세를 비롯한 박씨 왕족의 5릉보다 위에 두어 대묘라 하였다. (p. 71)

새로 알게 되는 깨알 역사 상식들이 재밌기도 했지만, 고조선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초대 왕들의 신화적 이야기를 읽으며 든 생각은 당시 한반도의 상황이 서양역사가 유래된 펠레폰네소스반도와 그닥 다를게 없었다라는 점이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땅에서 세습이 아닌 왕위계승이 이루어졌고 자잘한 도시국가들로 느슨한 연합체가 이합집산했다는 점이 말이다. 다만 한반도는 바다로 나가면 주변이 뻥 뚫린 광활한 태평양이었지만 펠레폰네소스 반도는 지중해라는 닫힌 바다여서 무수한 문화들이 서로 얼키고설켰다는 점이 이후 역사의 향방을 가른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저런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역사는 어디서든 참 비슷한 흐름을 보여주는 면이 있다.

의자왕은 백제가 멸망했던 해를 넘기지 못하고 병들어 죽었다. 황제는 벼슬을 추증하고 옛 백제 신하들의 조문을 허락했다. 사치 때문에 나라를 망친 것으로 유명한 임금들인 삼국시대 오나라 마지막 임금 손호, 남북조 시대 진나라 마지막 임금 진숙보 곁에 묻고 비석을 세웠다. (p. 100)

고려의 군대가 수십 일을 머무르다 떠났는데, 지휘에 따라 단정했고 규율을 조금도 어기지 않았다. 서라벌의 남녀들은 기뻐하며 말했다. "예전에 견훤이 왔을 때는 늑대와 호랑이 같았는데, 고려 태조 왕건 공께서 오시니 부모님을 뵌 것 같네요" (p. 150)

안종은 고려 8대 현종의 아버지로, 이후 고려 임금은 모두 현종의 자손이므로 결국 경순왕은 고려 임금들의 조상이기도 하다. (p. 153)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삼국을 생각했을때 고려 라고 하면 고구려 에서 맥을 이은 나라가 아닐까라고 막연히 생각해왔었나 보다. 이 책을 읽다보니 고구려와 백제의 이야기는 그 시작부터 멸망까지 짧게 다룬 반면 신라의 이야기는 굉장히 길고 자세했다. 사실 역사지도를 봐도 고려는 통일신라 땅으로 시작했다. 발해가 차지하고 있던 옛 고구려의 영역까지 넓혀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조선시대에 지금의 국경이 정해지기까지 결국 요동지역까지는 수복하지 못했다. 고려 시대의 역사가 신라의 역사를 자세히 남긴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신라의 역사를 고려와 연결시켜서는 잘 모르는 것 같지?

역사가는 평한다.

신라는 운수가 다하고 도리를 잃어 하늘이 더 돕지 않았고, 백성들은 의지할 데 없는 틈을 타 도적이 고슴도치 털처럼 일어났다. 가장 왕성한 이들은 궁예와 견훤 둘이었다. 궁예는 본디 신라 왕자인데도 자기 집안을 원수로 삼아, 선조의 그림을 칼로 베었으니 너무 심하게 사나웠다. 견훤은 신라 백성으로 신라의 녹을 먹으며 반역할 뜻을 품어, 나라의 위기를 기회로 생각하고 그 도읍을 침략하여 왕과 신하를 다 짐승처럼 죽이니 천하에 으뜸가는 악당이었다. 그러니까 궁예는 신하들에 버림받고 견훤은 아들에게 불행을 당한 일이, 다 자업자득이고 누구 탓할 자격이 없다. 향우나 이밀 같은 능력자들도 한나라, 당나라의 천하통일을 막을 수 없었거늘, 궁예와 견훤 따위가 우리 태조를 당할 수 있었을까? (p. 177)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일연의 평가가 지금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평가와 어떻게 얼마나 다른 건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역사가의 평가는 시대마다 달라지기 마련인데, 지금 우리가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의미를 크게 두고 있는 부분은 과연 어디일까?

여하튼, 삼국의 이야기 끝에 저자는 가야의 역사도 빼놓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가장 빈약하게 배우는 부분이 가야인 것 같은데 최근 유적발굴도 활발하다 하니 이 부분의 역사가 좀 보완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고조선부터 시작하여 삼국과 가야의 시작과 멸망을 다루고 나면 각 국에 불교가 언제 어떻게 전래됐는지를 시작으로 절이나 불상, 탑 등에 얽힌 이야기, 유명한 스님들의 일화 그리고 민간에 전해지던 이런저런 교훈적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대개가 설화적 이야기들이다 보니 약간은 전래동화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신선하게 읽혔던 부분은 (아무래도 불교 이야기라서 그런가) 인도등의 외국과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너희 신라 황룡사는 석가모니와 예전 세상 가섭 부처님들이 강연하던 땅이라, 연좌석이 아직도 있다. 그래서 인도 아소카왕이 황금을 좀 모아 바다에 띄워 보내, 1300년 후 신라에 다다라 황룡사에 모셔질 수 있었다. 다 공덕과 인연 덕분이니라" (p. 233)

이렇게 땅에서 돌로 된 뭐가 자꾸 나온다는 점은, 샤머니즘 거석 신앙이 불교에 수용된 결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p. 240)

물고기 상징은 우선 수로왕과 아내인 허황옥의 상징물이 쌍어, 물고기 두 마리였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에 기원을 두고, 불교의 상징으로서 물고기처럼 눈을 깜빡이지 않고 열심히 수행하는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한편 로마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도 물고기로, 예수의 시대를 황도12궁 물고기의 시대라 부르기도 했다. 물고기는 이렇듯 신과 생명의 기원에 관한 종교 신앙을 상징하는 보편적인 소재였으므로, 만어산과 같은 물고기 산의 이미지가 가능한 것이다. (p. 278)

인도에서는 신라를 '구구타예설라'라고 부른다. '구구타'는 닭, '예설라'는 귀하다는 뜻이다. 인도에 전해지기로는, 신라가 닭의 신을 공경하므로 닭의 깃을 머리에 꽂아 장식했다고 한다. (p. 323)

지금은 없지만 황룡사가 정말 중요한 절이었구나 싶어 더 궁금해지고, 거석신앙이 불교와 연결된 점도 아하 그랬구나 감탄했고, 인도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신선했다. <삼국유사>가 이렇게 재밌는 책인데 그동안 왜 고전으로서 읽을 생각을 못했나 싶을 정도다. 역자는 <삼국유사>가 여러 이야기의 모음집이므로,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겠지만 초심자의 경우 아무 곳이나 흥미로운 부분부터 띄엄띄엄 읽어나가는 방법도 권장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1편과 2편은 아무래도 연대기적 역사이야기이다 보니 순서대로 읽고, 3편 이후 불교관련 이야기들은 자유롭게 읽어도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우리의 역사고전으로서 이렇게 대중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해준 클래식아고라 시리즈 관련자분들께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이 시리즈의 1권인 <징비록>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2권인 <삼국유사>도 이처럼 즐겁게 읽고나니 앞으로 나올 다른 책들도 절로 기대가 된다. '고전 회복 운동'으로 시작했다는 클래식아고라 시리즈, 꾸준히 지속되길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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