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 아름다움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조주관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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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속, 미와 추, 생과 사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를 체화한 도스토옙스키의 통찰

'아름다움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러시아문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은 그림전문 책은 아니지만 한 페이지를 과감하게 그림에 할애함으로써 그림 보는 재미도 있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읽을 수 있으니 딱히 문학책이라고 할순 없지만 문학적으로 읽히는, 그러니까 미술과 문학이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에서 융합되어짐을 알게하는 그런 책이다.

지금부터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과 그의 삶 그리고 그가 사랑한 그림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책에 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그건 아마도 '도스토옙스키의 미술관'이 되리라.

여기서 '미술관'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회화·조각 따위의 미술품을 모아 전시하는 곳을 가리키는 미술관(美術館)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나 비평가가 미술을 보는 관점을 뜻하는 미술관(美術觀)이다. 세계적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미술애호가로도 유명했지만 그 스스로 뛰어난 미술평론가이자 시사평론가이기도 했다. (p. 10)

우리는 이 책에 '전시'된 미술작품들을 통해 도스토옙스키의 미술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다. 그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물들지 않은 자기 자신만의 시각으로 미술작품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으로 다시 한번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어본다면, 우리 역시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확장될 것이다. (p. 12)

-작가의 말 中-

저자에 따르면 러시아문학가들 중에서 도스토옙스키만큼 여행을 자주 다닌 작가가 없다고 한다. 또한 도스토옙스키는 여행가는 곳마다 미술관에 꼭 들렀고 어쩌면 미술관을 가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 듯도 보일 만큼 그림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이러한 미술경험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문학은 그런 영감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그 탄생의 순간을 초상화를 통해 조금 짐작해 볼 수도 있기도 한데,

'흥미롭게도 유럽 미술관들에는 왕과 귀족, 성직자의 초상화가 많은 반면 트레티야코프미술관과 러시아미술관에는 작가와 예술가의 초상화가 더 많다. (p. 85) 화가 바실리 페로프는 '예술적 사고에 몰입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창작의 순간'을 초상화에 담았다. 이 초상화의 진수는 작가의 영혼을 훌륭하게 포착하고 있다. (p. 86)' 작가는 그림을 사랑하고 그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도스토옙스키의 초상화를 남김으로써 우리에게 작가의 몰입어린 순간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사랑한 화가 역시 라파엘로다. 그는 라파엘로를 최고의 예술가로 꼽았고, 그의 작품 <시스티나의 마돈나>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격찬했다. 바로 이 성화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류의 이상을 찾았다. 그가 '라파엘로 그림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 121) '그림 읽기'는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음미하면서 감상함을 뜻한다. (p. 130)

나도 라파엘로의 그 부드러운 그림들을 좋아하는데 도스토옙스키는 굉장히 종교적 찬미감으로 라파엘로의 그림들을 극찬했던 것 같다. <시스티나의 마돈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부분이 있으니 '라파엘로 그림의 배경에는 수많은 아기 영혼의 얼굴들이 그려져 있다. (p. 145)' 라는 점이었다. <시스티나의 마논나> 머리 위 부분을 확대하여 책에 실어놓았는데 배경으로 희미하게 수많은 아기 영혼들이 보여서 새삼 놀라웠다. 어린이에 대한 종교적 순수성을 찬미했던 도스토옙스키였기에 이런 아기영혼 그림들을 심어놓은 라파엘로의 그림에 더욱 심취했던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에 대한 두 가지 기준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성(聖)과 속<俗)의 아름다움을 구분하고 있다. 그에게 최고의 아름다움은 '성스러움'이다.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저 너머'의 초월성을 상기시키는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발견한 도스토옙스키는 영성의 아름다움을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속<俗)의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략) 성(聖)과 속(俗)의 아름다움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것은 '어리석음의 미학(美學)'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아름다움은 어리석음을 내포한다. 그의 미적 세계관은 '어리석음의 미학'에서 나온다. (p. 149) '유로디비'란 중세 러시아 정교 전통의 '세상 속에서는 바보스러우나 영적으로는 가장 지혜로운 하느님의 사람'을 가리킨다. '유로디비'는 한마디로,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속된 세상의 물정을 따라잡지 못하지만, 그들은 세속적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삶의 신성함을 발견한다. 세상을 구원해줄 사람은 지식이나 힘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말한다. 그들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p. 150)

그래서 도스토옙스키는 순수한 어린이와 세상이치엔 어두워 백치처럼 보일지라도 영적으로 아름다운 캐릭터를 자신의 작품에 꼭 등장시켰다고 한다. 그가 좋아했던 그림들이 대부분 종교적이되 아름답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들인 것을 보면, 그가 자신의 문학세계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그림으로 표현했을때 그런 그림들이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크게는 '성과 속' '미와 추' '생과 사' 라는 3부로 구성된 책이었지만 대부분의 글에 등장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었다. 그러니까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 그림이 라파엘로의 작품이었다면 라파엘로의 그림을 글로 써 놓은 것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았달까. 따라서 이 책을 읽고나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꼭 읽어야겠구나 싶다.

도스토옙스키가 강조한 '눈'은 시각예술인 그림을 논하는 이야기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언급하는 화가들은 모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눈의 소유자이다. 그러한 화가들의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스토옙스키에게 창작과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눈'에 대한 예술적 접근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예술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창조해낸 시각예술은 현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p. 331)

-에필로그 中-

이 책을 읽으며, 도스토옙스키는 그림을 본다기 보다 읽었다고 느꼈기에 그런 그의 문학작품을 우리는 읽는다기 보다 '보는' 경험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들 속에서 유독 어리석이보이나 순수한 캐릭터들에 관심을 갖고 읽어야 겠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영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그런 면에서 읽는 내내 미켈란젤로가 떠올랐다. 천재예술가들은 종교에 대해서도 남다른 믿음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그러한 영감으로 그토록 천재적인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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