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소설상 수상작"도망쳐야 한다. 그놈보다 더 빨리"
제3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소설상 수상작
"도망쳐야 한다. 그놈보다 더 빨리"
소설Y클럽 작품으로는 5번째이고 책권수로는 여섯번째 책인 <폭풍이 쫓아오는 밤> 가제본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작품이 좋았고 이번 작품도 역시 좋았다. 더구나 이번 작품은 '창비X카카오페이지'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제 소설Y클럽 시리즈는 영어덜트 소설 분야에서 믿고볼 수 있는 브랜드가 된 것 같다.
개 짖는 소리,라고 부를 만한 소리일까 저것이. 이서에게는 정신없이 내지르는 그런 비명. 뒷덜미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유독 차서 몸서리가 쳐졌다. 역시 이 여행은 오는 게 아니었다. (p. 34)
신이서.
고1여학생의 발랄함은 1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없는 얼굴에 짧고 차가운 말투 그리고 손등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진 화상흉터를 가진, 한마디로 사연많아 보이는 소녀. 이서는 나이터울이 많이 지는 유치원생 동생인 이지와 아빠 이렇게 셋이서 처음으로 여행을 왔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자연적인 산속의 펜션에. 하지만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던 이 여행은 시작부터 찜찜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넷이었던 가족이 셋이 된 그날 이후로, 이서 가족은 내내 이런 식이었다. 아빠는 이서를 건드리면 터지는 비눗방울 대하듯 했다. 이서는 오히려 바윗돌 흉태를 냈다. 겉으로 보기엔 다정한 아빠와 예의바른 딸이었지만 그들 사이의 거리는 다섯 걸음 이하로 좁혀진 적이 없었다. 둘 사이를 마음껏 오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지뿐이었다. (p. 35)
이지만이 오직 이지만이 이서의 삶의 이유였다. 엄마를 잃은 이후, 그날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하는 후회속에 이서는 오직 이지만을 위해 지금을 버티고 있었다. 이지에게서 엄마를 뺏은 것이 자신인것 같아서.
두 팔을 활짝 벌린 너비의 두 배 그키였던 창문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를 가득 채운 채로 그것은 손발로 바닥을 기느라 엎드린 이서의 바로 코앞을 지나고 있었다. 철사처런 억센 섬유가 통나무 벽에 비벼지며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마찰음을 만들어 냈다. 털가죽이다. (p. 44)
성수기도 아니었고 유명휴양지도 아니었기에 방문객은 많지 않았다. 이서네 가족과 바로 옆 펜션의 등산복 일행과 좀 떨어진 단체숙소에 머무는 손님이 전부였다. 그런데 갑작스런 폭풍우 속에 통신이 두절되고 상황을 알아보러 아빠가 나간 사이 옆 동이 습격을 받았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거대하고 시커먼 그것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찢어 삼켰다. 다른 곳들도 차례차례...
"거기 누구 있소?" (p. 109)"여긴 다 살았네!"남자는 묘하게 뒤틀린 입꼬리를 위로 끌어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p. 110)
"거기 누구 있소?" (p. 109)
"여긴 다 살았네!"
남자는 묘하게 뒤틀린 입꼬리를 위로 끌어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p. 110)
남수하.
축구를 좋아하지만 얼마전 그만두고 엄마의 부탁에 의해 교회캠프를 따라온 수하는 관리동 매점에서 이서를 마주쳤을때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습격을 피해 이지를 업고 온 이서를 다시 만났을때 수하는 이서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이서 자매와 함께 캠프 숙소로 간 수하 일행은 '그것'의 습격을 받지만 사냥총을 든 낯선 사내에 의해 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내에겐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그들은 아직 폭풍 가운데 있었다. (p. 128)
일행들을 봉고차에 태워 산 밖으로 내보내고 이서는 홀로 그 자리에 남기를 선택한다. 아빠를 찾아야 했다. 이지를 위해. 이지에겐 아빠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수하가 덩달아 봉고차 밖으로 뛰어내렸을때 이서는 의아했다.
수하는 이서를 혼자 둘 수 없었다. 그 표정을 그 표정 속에 숨은 것을 그 표정이 남긴 것을 지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했기에.
그런 수하 덕분에 이서는 폭풍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일단 사냥총을 들고 있는 낯선 아저씨부터.
"아저씨네 개죠?""아니야!"박사장이 펄쩍 뛰었다. (p. 159)"내 개가 아니라고! 나는 맡아서 관리만 하고 있었을 뿐이야!" "아니, 내 말은... 됐다. 그러니까, 어. 상관없어. 일단 빨리 잡아야 해. 그러면 돼" (p. 160)
"아저씨네 개죠?"
"아니야!"
박사장이 펄쩍 뛰었다. (p. 159)
"내 개가 아니라고! 나는 맡아서 관리만 하고 있었을 뿐이야!"
"아니, 내 말은... 됐다. 그러니까, 어. 상관없어. 일단 빨리 잡아야 해. 그러면 돼" (p. 160)
펜션이자 단체 캠핑장으로 이용되던 수련원에 손님이 줄어든 이유는 단순히 가까운 근처에 리조트가 새로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관리동 아저씨는 종종 들려오는 이상한 짖음을 근처의 개농장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했지만 그 농장은 평범한 농장이 아니었다. 대체 무엇이 농장에 살고 있는 것일까, 누가 왜 그런 것을 사육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을 그처럼 참혹하게 습격했던 것일까, 그런 현장을 보고서도 왜 신고하기보다 일단 잡아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서와 수하의 상처는 이 사건과 맞물려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는.그 허세를 들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아니까. 우리는 너덜너덜하게 해진 허수아비다. 잔뜩 기울어져서, 한 번만 바람이 훅 불면 뒤로 넘어가고 말겠지. 하지만 저기 새 떼가 밀어닥치고 있으니 지금은 서 있을 수 있어야 했다. (p. 207)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는.
그 허세를 들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아니까. 우리는 너덜너덜하게 해진 허수아비다. 잔뜩 기울어져서, 한 번만 바람이 훅 불면 뒤로 넘어가고 말겠지. 하지만 저기 새 떼가 밀어닥치고 있으니 지금은 서 있을 수 있어야 했다. (p. 207)
'지루할 틈 없는 사건들, 맞서 싸우며 성장하는 주인공' 이라는 'YA심사단'의 평가처럼, 단숨에 읽히는 소설이었다. 폭풍같은 하룻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이 개인 아침으로 끝나는 소설이었다. 웃을 수 없던 아이들이 이제야 미소를 되찾은 것을 보며 안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역시 소설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