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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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미국에서 1997년에 나온 이 책이 2012년에 15주년판으로 다시 나오고 2022년에 한국에 번역본까지 나오면서 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리아의 나라>가 문화 간의 소통을 다룬 책인데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는 것보다 더 나은 본보기가 있을까 싶어서 (p. 13)] 무척 기쁘고도 놀랍다고 인삿말을 전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제가 이 책을 취재하고 쓰는 여러 해 동안 제 책을 볼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주제가 워낙 막연했으니까요! 실제로 제 친구들은 이런 말로 절 놀리곤 했답니다. "뇌전증 앓는 몽족 아이에 대한 책을 쓰느라 9년 ㅅ체월이라... 근데 말이야, 앤. 책이 나올 무렵에 뇌전증 앓는 몽족 아이 분야라는 틉새시장이 남아 있을까?" (p. 13)

저자가 말하듯이 이 책의 주제는 막연하다. 저자가 어쩌다 뇌전증을 앓는 몽족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지 알수 없고 이 조사를 통해 무엇을 알아내고자 했던건지 알수 없다. 저자는 의사도 아니고 인류학자도 아니며 어떤 특정 분야의 연구자도 아니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그저 '전업 작가' 이다. 작가로서 첫 책의 인터뷰 대상자를 왜 뇌전증을 앓는 몽족 아이의 가족으로 정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이 책은 출간된 해에 전미비평가협회상을 받았으니 저자 개인적으로는 첫 책부터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수 있겠다.

the spirit catches you and you fall down : a hmong child, her american doctors, and the collision of two cultures 라는 원제를 번역기에 넣어보면 '정신이 당신을 붙잡고 당신은 넘어집니다 : 몽족 아이, 그녀의 미국 의사, 그리고 두 문화의 충돌' 이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몽족아이의 이름이 '리아' 이다. 리아는 어려서 뇌전증이 발병했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미국의 병원에서 리아의 부모와 의사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럴수록 리아의 병증은 심해져만 갔다.

나는 언제나 가장 볼만한 것은 중심에서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무엇과 만나는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중략) 9년전 머세드에 처음 갈 때 나는 내가 조금은 아는 미국의 의료 문화와 내가 전혀 모르는 몽족 문화 사이에서 양측의 십자포화에 피격당하지 않는다면 그 둘을 서로 어떤 식으로든 비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그저 내 생각일 뿐이었다. (중략) 나는 상황을 너무 직선적으로 분석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달리 말해 나도 모르게 조금 덜 미국인처럼 생각하고, 조금 더 몽족처럼 생각하던 사고방식을 그만두게 되었다. (p. 18 - 서문 '충돌의 경계에서' 中-)

리아의 부모인 나오 카오 리와 푸아 양은 라오스 북서부 고지대에서 살던 몽족 이다. 몽족은 외떨어진 고산지대 부족으로 자신들의 삶의 정체성과 문화가 굉장히 자립적인 부족이었다. 다양한 약초를 사용한 자연 치유 요법과 샤먼에 의한 의식 등 부족 자체적인 치료법을 신뢰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라오스에서의 전쟁으로 인해 리아의 부모는 태국의 난민캠프를 거쳐 미국에 왔고 그 초창기에 태어난 아이가 리아였다.

몽족 사람들은 다양한 원인 때문에 병이 난다고 생각한다. (중략) 하지만 그들이 꼽는 병의 가장 큰 원인은 혼을 잃어버려서이다. 몽족은 사람에게 혼이 정확히 몇 개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혼이 몇이건 건강과 행복을 위해 꼭 있어야 할 생명의 혼을 잃기 쉽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한다. (p. 32)

리아의 부모는 리아가 태어났을 때 리아의 혼을 리아의 몸에 단단히 붙들어두기 위해 그들의 아파트에서 '혼을 부르는 의식'을 행했다. 가난했지만 그들이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초대하여 리아의 건강을 빌었다.

저자는 리아의 가족 이야기와 몽족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이야기를 챕터별로 번갈아가며 서술한다. 첫 챕터에서 리아의 탄생을 다루고 다음 챕터에서는 몽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식이다. 역사적으로 몽족은 그 어느 나라에도 흡수되지 않으려 투쟁하거나 이주를 거듭해왔기에 중국에서 살던 부족이 라오스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중국인들은 몽족을 묘족, 먀오족, 메오족 이라고 부른다는데 '묘족' 출신 연예인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 신기했다. 여하튼 몽족은 조국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노예가 되어 본 적도 없는 독립적인 부족으로 오랜 세월 살아왔다.

리아가 3개월 되던 때 (중략) 리아는 눈이 위로 말려 올라가고 팔이 머리 위로 홱 젖혀지더니 결국엔 기절하고 말았다. 리 부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후 플리 의례를 통해 리아의 혼을 조심히 맞이했건만 (중략) 혼이 리아의 몸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부부는 그로 인한 증상을 '코 다 페이'로 보았다. 이는 '영혼에게 붙들리면 쓰러진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 영혼이란 혼을 훔치는 '다'를 말하며 '페이'는 붙들거나 친다는 뜻이고 '코'는 벼가 비바람에 눕듯이 땅에 뿌리를 막은 채 쓰러진다는 뜼이다. 몽영사전을 보면 코 다 페이는 뇌전증이라 번역되어 있다. 이 병은 몽족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이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한편에서는 이 병을 심각하고 위험한 질환으로 받아들인다. (p. 49) 그런가하면 몽족은 코 다 페이를 영예로운 병으로 여기기도 했다. (중략) 몽족의 뇌전증 환자는 흔히 샤먼이 된다. (중략) 치 넹이 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소명이다. 이 소명은 그 사람이 갑자기 아플 때 드러난다. 이것은 코 다 페이를 통해서도, 비슷하게 떨리고 고통스러운 증상이 나타나는 다른 병을 통해서도 찾아온다. 치 넹은 증상을 보고 그 사람이 치유의 영혼인 '넹'을 받아들일 자로 선택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다. (중략) 몽족이면서 이런 소명을 거부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p. 50) 리아의 발작을 바라보는 리 부부의 태도엔 이런 걱정과 자부심이 뒤섞여 있었다. (p. 51)

이 책의 원제 the spirit catches you and you fall down 는 그러니까 코 다 페이 를 영어로 풀어 쓴 것으로 보여진다. '다'라는 악령이 리아의 '혼'을 잡아가서 '리아'는 쓰러지고 만 것이다. '몽족은 아이들에게 자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p. 51)' 샤먼을 숭상하는 몽족으로서는 리아의 뇌전증 초기 증상에 대해 부모는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자녀들보다 리아에게 더 정성을 다하고 사랑을 주었다. 리아의 발작이 심해져 응급실에 갔을 때 리아의 부모는 '딸의 증세를 '영혼에게 붙들려 쓰러진 병'으로 (p. 61)' 진단하고 있었지만 미국 병원에서 미국 의사는 '뇌의 돌발적인 기능 부전' 인 뇌전증으로 진단했고 서로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난민캠프에서부터 이미 몽족에게 서양의사들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그들이 주민들과의 관계를 일방적인 것으로 여겼으며 지식은 서구인에게만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p. 73)'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지키려 중국과도 싸우고 프랑스와도 싸워서 결국 몽족은 그대로 내버려둬야 하는 민족이다라는 결론만 내리게 했던 그 몽족을 서양의료진은 원시인이나 미개인 혹은 동물 취급했다.

리아가 협조적이라 해도 푸아와 나오 카오는 딸에게 정확히 무얼 주면 되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리아가 먹어야 할 약들은 너무 복잡해지고 자주 바뀌어서 영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일지라도 처방대로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리 부부의 경우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p. 88) 훌륭한 통역자가 없다는 건 의사소통 문제의 일부에 불과했다. 닐은 나오 카오가 '돌담'을 쳐두었으며 때로는 일부러 속인다고 느꼈다. 페기는 푸아가 '아주 어리석거나 완전 바보'인 줄 알았다. 통역을 정확히 해줄 경우에도 그녀의 대답은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두 의사는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 중 어느 정도가 의사소통이나 부모의 인격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느 정도가 문화적인 장벽 탓인지 알 길이 없었다. (p. 91)

리아의 발작은 점점 더 심해져갔고 리아의 부모는 병원 약을 믿지 못했던 데다 복용법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리아의 투약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리아의 부모는 몽족의 전통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리아에게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들이 봤을땐 '제발 이해를 좀 하라며 부모를 마구 흔들고 싶던 기억이 나요 (p. 105)' 라고 회상할 정도였다. 결국 의료진은 리아의 부모를 아동보호국에 신고했고 법원은 부모의 양육권을 박탈했다.

1980년대 초, 라오스 출신 난민들이 머세드에 정착하기 시작할 무렵 MCMC병원의 의사 중 '몽'이라는 말을 들어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환자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전혀 몰랐다. (p. 116) 의사 댄 머피는 전공의 시절 이 자국(=부항 자국)때문에 프레즈노의 한 몽족 아빠가 감옥에 간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초등학생 아들의 가슴에 있는 부항 자국을 본 학교 선생이 신고를 한 것이었다. 아빠는 감방에서 목을 맸다. (p. 117)

1980년대 말 머세드에서 전공의 생활을 한 데이브 슈나이더는 이런 말을 했다. "언어장벽은 가장 분명한 문제이긴 해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어요. 제일 큰 문제는 문화장벽이었으니까요. 몽족을 대하는 것과 이외의 환자를 대하는 데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무한한' 차이라고 할까요" (p. 123)

의료진은 의료진 나름대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몽족은 자신들의 치료행위를 불신하고 치료약을 거부하면서도 아프면 병원에 왔고 의료진의 질문에 답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통역이 없을 때가 더 많았지만 통역이 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 하고 있었다.

리아는 위탁가정으로 넘겨졌다. 리아의 부모는 이해할 수 없었고 미치기 직전의 상태까지 내몰렸다. '푸아와 나오 카오는 워낙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었고 그 아이를 너무 사랑했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그들은 위탁 가정 프로그램의 대상이 돼선 절대 안 되는 가족이었어요 (p. 152)' 라고 위탁모가 말할 정도로 리아의 부모는 리아에게 헌신적이었지만 미국의료진은 리아에게 투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리아의 부모를 신뢰할 수 없었다.

1961년 임기 마지막 날,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당선자인 케네디에게 라오스가 공산 세력에 넘어가면 남베트남과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까지 따라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케네디는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1961년과 이듬해 제네바 회의에서 미국, 소련, 남북 베트남, 그 밖의 10개국이 라오스의 중립을 재확인하고 라오스에는 '어떠한 외국 군대나 군 관계자도 파견하지 않는다'라는 새로운 협약에 동의했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몽족이 등장한다. 미국은 어떻게든 라오스의 반공 정권을 지원하고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으로 뚫은 보급로인 '호치민 트레일'을 차단하고 싶었다. '호치민 루트'라고도 하는 이 보급로는 라오스 남동부이자 베트남 국경 인근의 복잡한 산길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겉으로는 합법성을 유지하며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협약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미국은 베트남엔 갈 수 있어도 라오스엔 갈 수 없었다. 답은 대리전쟁을 치르게 하는 것이었다. (p. 212)

미국 CIA 요원들은 라오스에 비밀잠입하여 몽족 게릴라군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켰다. [ 라오스에 투하된 폭탄은 200만 톤이 넘었는데 대부분 미국 비행기가 몽족 거주지에 있는 인민군 부대를 공격하면서 퍼부은 것이었다. 9년 동안 8분에 한 번꼴로 폭격을 위한 출격이 있었을 정도다. 1968년부터 1972년 사이 단지평원 한 곳에 투하된 폭탄의 톤수가 제2차세계대전 동안 미군이 유럽과 태평양에 퍼부은 양보다 많았다. (p. 221) 라오스 몽족은 1970년까지 인구의 3분의 1이상이 자국 내 난민이 됐다. (p. 225) ] 몽족 뿐만 아니라 라오스 내전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았다. 몽족은 미국을 대신해 전쟁을 치룬 자신들이 미국땅에서 받는 난민혜택에 대해 일면 당연한 것이라고 여길수도 있었지만 일반 미국인들은 몽족 난민들이 자신들의 몫을 앗아간다고 여길 수 있었다.

전쟁이 일으킨 가장 극심한 변화는 몽족이 가장 귀하게 여기던 자산, 즉 자급자족의 능력을 잃게 만든 것이었다. (p. 229)

리 부부가 전후 체험을 얘기해주던 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라고 했다. 그러자 푸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래요, 많이 슬펐지. 하지만 라오스를 떠나올 때만 해도 사는 게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어요. 리아가 프레즈노에 가서 더 심해진 때처럼 슬프진 않았지" 처음에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3년 동안 푸아와 나오 카오는 라오스에서 아이 셋을 잃었다. 또 총탄과 지뢰와 불의 장벽을 헤쳐나왔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살던 마을과 나라를 떠나기까지 했다. 제일 아끼는 아이가 치명적인 병을 앓는다 한들 어찌 그때보다 더 나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니었다. 폭력도, 기아도, 결핍도, 망명도 죽음도 아무리 끔찍하다 해도, 적어도 그들이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비극의 영영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리아에게 일어난 일은 그 영역 바깥의 것이었다. (p. 285)

우여곡절 끝에 리아는 부모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고 늘 그랬듯 다정한 보살핌과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지만 발작은 더 심해졌고 결국 뇌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리 부부는 늘 의료진이 리아에게 약을 너무 많이 먹게 하고 강압적 치료행위를 한다고 여겼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따르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젠 리아가 곧 죽을 거라고 의료진은 말하고 있었다. 부부는 리아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몽족이 정말 불가사의한 존재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몽'이란 말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쟁에서 몽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심지어 그게 어떤 전쟁이었는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미국 정부가 '조용한 전쟁'을 입단속 하는 작업을 완벽하게 했던 것이다. 몽족에게 화려한 역사와 복잡한 문화,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 부러워할 만한 가족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때문에 몽족은 미국인들의 외국인 혐오증이라는 망상을 투사하기 딱 좋은 빈 스크린이었다. (p. 314)

몽족은 거짓 소문의 주인공이 되기 일쑤였고 독립적인 문화는 유지될 수 없었으며 가족의 위계또한 무너졌다. 하지만 몽족은 다시 뭉치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적응법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곧 죽을거라던 리아를 그 부모는 보란듯이 살려냈다. 비록 식물인간 상태이긴 했지만 말이다. 리아는 일곱살이 되었고 나름 건강했다. 리아는 죽지도 낫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리아를 사랑했다.

"리아의 부모는 약을 너무 많이 써서 문제가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p. 420)

"MCMC사람들 모두에게 이야기하세요. 리아 문제는 가족 탓이 아니라고요, 우리 잘못 이라고요"

(중략) 나는 쇼크 상태였다. 나는 리아게게 패혈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는 언제나 발작 장애라고만 생각했다. '리 부부가 결국 옳았구나. 리아가 정말 약 때문에 저 지경이 됐구나!' (p. 421)

리 부부가 라오스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리아는 계속되는 대발작으로 영아기나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미국 의학은 리아의 목숨을 지키기도 하고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어느 쪽이 리아의 가족에게 더 상처가 되는지 알 수 없었다. (p. 425)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인 아서 클라인먼이 개발한 질문이 다수의 이문화간 의료에 관해 논의한 자료에서 인용된다는 것을 보고 아서 클라인먼에게 리아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리아의 소아과 의사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바로 답했다.

이 케이스에선 몽족 환자와 그 가족의 문화가 대단히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그에 못지않게 의학이라는 문화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문화가 나름의 취미나 정서나 편향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문화를 제대로 다룰 수 있겠습니까? (p. 431)

저자는 리아의 삶을 추적하면서 리아의 불행이 '타문화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p. 435)' 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확신을 9년간의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통해 얻었다는 것이 나는 더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이 책은 1997년에 나왔다. 책 속의 이야기는 1980년대 있었던 일들이다. 그러니까 40여년 전의 결론인 것이다. 지금 당연하게 느껴지는 생각이 당연해지기까지 그토록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어느 의과대학이나 전공의 과정에서도 이문화간 수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략) 1996년 미국 가정의학회에서 '문화적으로 민감하고 만족스러운 의료를 위한 핵심 이수 과정 권고 지침'을 마련했다. (중략) 이제는 대부분의 의하도가 이문화간 문제에 대해 적어도 인식은 할 정도가 되었고 때로는 얼핏 아는 체를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p. 447)

'어떤 사람이 무슨 병을 앓는지 묻기보다는 어떤 병을 누가 앓느냐고 물어보라' (p. 454)

이후 의료계에서 어느 정도까지 인식의 개선이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5살 즈음에 병원에서 사망예정 선고를 받았던 리아는 서른 살 까지 살았고 몽족의 바람은 '미국을 떠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이제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덜 무지했으면 한다는 것 (p. 490)' 이다. 그리고 저자는 '<리아의 나라>가 몽족에 관한 책이 아니라 문화 간의 소통과 불통을 다룬 책으로 제자리르 잡아가길 바란다. (p. 496)' 며 오랜만에 리 가족을 다시 만났을 때 '15년 전 이 책의 서문을 쓸 때 상상했던 것을 들었다. 바로 공통의 언어였다. (p. 499)' 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공통의 언어가 미국의료계 현장에서도 들리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하튼 이제야 이 책을 통해 읽게된 이 공통의 언어가 한국의료문화에서는 이미 낯설지 않은 것이기를 바란다.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때에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중요하지만 타문화와 우리 문화가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지도 이제는 생각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소통하지 않으면 갈등만 격화될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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