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의 세계사 - 한 장으로 압축된 인류의 역사 EBS CLASS ⓔ
김종근 지음 / EBS 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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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리학자 김종근이 읽어주는 인류 기술의 집약체,

고지도의 세계를 만나다

일명 길치라고 불리는 나에게 학창시절 지리과목은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분야였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와 접목시켜서 배웠더라면 흥미를 느꼈을 텐데, 역사에서 지도가 엄청나게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역사서에 관심을 갖게 된 최근 몇년전에서부터야 깨닫게 됐다. 역사서를 읽다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지도들은 그야말로 '한 장으로 압축된 인류의 역사' 라는 말 딱 그대로 들어맞는다. 지도 중에서도 특히 고지도에 대해 자꾸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고지도 10장에는 지도상에 묘사된 지리 정보와 함께 지도가 제작된 당시의 상황, 그리고 지도를 작성한 목적이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나아가 과거 사람들의 세계관까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지리와 역사가 만나는 지점이며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과 당시 사람들의 일상사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지도가 작성되던 시기의 학문 및 과학의 수준이 드러나며, 지도를 작성한 회화 및 인쇄술의 발달 정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p. 4) 세계에는 이 책에서 제가 안내하는 고지도들 외에도 수많은 중요한 고지도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제가 고지도 10장을 선택하여 설명하는 것은 이들 지도 10장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설명을 시작으로 궁극적으로 고지도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알리고자 함입니다. (p. 6) - 들어가며 中-

저자가 말하듯이 이 책에는 10장의 고지도와 그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생소할 수 있는 지도에 대해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려는 저자의 배려는 차례에서부터 빛이 난다. 차례를 보면 각 지도의 이름과 핵심 및 간략한 개요가 쓰여져 있다. 따라서 지도가 생소한 사람도 차례를 보면 대략의 내용이 예상이 가면서 궁금증이 절로 일어난다. 아하 그래서 어떻게? 아하 그래서 왜? 하는 식으로.


목차

1장 바빌로니아의 세계지도 : 신의 눈으로 천지를 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세상에 질서와 구조를 부여하고, 바빌론을 지도 가운데에 위치시켜 그들의 수도를 세상의 중심으로 바라보았다.

2장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 : 그리스인이 본 철학적 세계

‘지구는 편평하다’는 믿음을 최초로 깨트린 사람들은 그리스인이었다. 점차 ‘우주가 구형이라면 지구도 구형일 것’이라는 주장이 그리스 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3장 헤리퍼드 마파문디: 중세 기독교의 세계관을 담다

천지창조와 예수 재림,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과정, 신적 질서와 설계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성서의 내용이 지도에 고스란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4장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 그리스 철학과 이슬람 과학의 만남

중세 유럽의 지리학이 퇴보한 가운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문헌을 아랍어로 번역해 수용한다. 나아가 천문학, 지리학, 수학의 발전에 힘입어 고대에 작성된 지도를 계승·발전시킬 수 있었다.

5장 배수의 제도육체: 동양의 지도 원칙을 세우다

동양에서는 어떻게 지도를 그렸을까? 동아시아에서는 서구에서 개발한 지도 제작 기법이 들어오기 전부터 제도육체, 방격법, 평환법, 백리척 등 기하학을 바탕으로 한 거리계산법을 활용했다.

6장 메르카토르의 아틀라스: 지도학의 황금기

정치적,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뛰어난 항해술과 조선업 기술, 인쇄 산업의 중심지였던 네덜란드는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지도학은 황금기를 맞는다.

7장 카시니의 프랑스 지도: 지도는 어떻게 국가를 완성하는가

약 150년간 4대에 걸쳐 카시니 가문이 제작한 지도는 중앙집권적 방식의 지도이자 프랑스 시민이 국가라는 공간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든 대단한 발명품이었다.

8장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새 나라 조선의 기틀을 세우다

새로운 왕조를 연 조선은 역성혁명을 정당화하고자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막 움트기 시작한 왕조를 안정시키려는 일환으로 만들어진 지도에는 천문과 지리가 제왕의 학문임을 나타내고자 했다.

9장 김대건의 조선전도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서방에 한반도를 알린 지도들

19세기 격변의 시기, 조선 최초의 천주교 사제가 만든 조선의 지도. 김대건 신부는 무슨 목적으로 조선전도를 작성했을까? 또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는 무엇이 다를까?

10장 존 스노의 콜레라 지도: 전염병을 다스리다

마취과 의사 존 스노가 밝힌 콜레라의 진실. 모두가 콜레라의 원인을 독기라고 생각할 때 그는 오염된 물을 발병의 원인으로 꼽았다. 존 스노는 어떻게 지도를 활용해 콜레라를 막을 수 있었을까.


지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지구의 형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인식론인 까닭에 고대인들이 지구의 형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알아보는 일은 중요합니다. 특히 바빌로니아의 세계지도에는 고대인들의 지구평면설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p. 16)

첫번째 지도는 문명의 시발점이기도 한 지역 바빌로니아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다. 이 오래된 고대시대에 세계지도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한데, 인간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거듭해 온 것이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바빌로니아의 세계지도의 존재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고대 문명 발상지 네곳, 즉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모두에서 지구편평설은 지구의 형태에 대한 최초의 모델이었습니다. (p. 23)' 눈에 보이는 세상만 지도로 그리던 때 세상은 당연히 편평해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바빌로니아 세계지도에서 바빌론을 세상의 중심으로 묘사한 것처럼 자신이 사는 지역이 곧 세상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 고대그리스에서 지구가 구형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 파르메니데스는 지구를 원반 형태가 아닌 구체라고 생각한 최초의 인물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p. 50)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의 모양과 크기를 이전의 철학자들에 비해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예를들어 (중략)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습니다. (p. 51)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학자 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문학과 지리학서를 집필했는데 그가 사용한 도법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릴 수 있었기에 당시에는 혁신적인 지도 제작법 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과학지식들은 중세 유럽에선 종교에 밀려 사실상 퇴보를 하게 된다.

헤리퍼드 마파문디가 세계기록유산에 선정된 이유는 중세에 만들어진 세계지도 가운데 유일하게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지리뿐만 아니라 역사학, 인류학, 민족학, 종교학, 신학과 관련해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시각적인 백과사전 역할을 함으로써 중세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p. 69)

'마파'는 식탁보, 테이블 냅킨 등을 뜻하고, '문디'는 세계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용어는 8세기경부터 서유럽의 라틴어권 국가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중략) 르네상스 시기가 오기까지 600년 가까이 기독교 세계에서 세계를 설명하는 그림과 지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습니다. (p. 70)' 마파문디 라는 단어가 라틴어였는지 몰랐다. 어감상 느낌이 왠지 이슬람 명칭인가 했더니 라틴어 지도 였구나;;; 여하튼, 지도는 당시의 세계관을 담아낸다. 로마 시기에 만들어진 지도를 바탕으로 한 헤리퍼드 마파문디는 기독교 신앙의 교리와 믿음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지리적 지도의 역할을 강조한 지도다운 지도는 이제 유럽이 아닌 이슬람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가 우리에게 더 의미깊은 이유는 이 지도에 '신라'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계지도에 '신라'가 등장한 김에 이제 저자는 동양의 지도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동양의 지도 라고 표현해봤자 결국은 고대중국의 지도인 셈인데, '육체론'이라는 지도 제작 원리는 놀라웠다. 서양보다 빨랐고 정확했다. 무엇보다 현실적이었다. 한반도의 지도를 포함하여 동양의 지도는 땅의 거리나 모양이나 방향등 실측자료에 최대한 가깝게 그려내고 있어 관념론적 서양지도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왠지 뿌듯했는데 유럽에서도 차츰 이런 지도가 등장한다. 대표적으로는 메르카토르의 아틀라스라고 할 수 있겠다.

메르카토르가 살았던 16세기에 작성된 일반적인 지도들은 방향, 거리, 육지의 형태, 경위도 등이 모두 부정확하다는 문제점이 있었어요. (p. 159)

메르카토르가 살았던 16세기는 바야흐로 유럽의 항해시대다. 망망대해 바다에서 도착지를 정확히 찾아가기 위해서는 해도가 절실히 필요했기에 메르카토르의 지도는 개선된 해도라고 할 수 있었다. 항해사들에겐 이 지도가 무척 유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법으로 만들어진 지도에는 거리나 육지의 면적이 왜곡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p. 161)' 지도는 사실 실용적인 측면이 강하다. 필요가 결과물을 유도하기 마련이니 유럽의 지도는 해도중심이었기에 더더욱 동양의 육지중심 지도와는 달랐던 것 같다. 여하튼 이 당시의 지도에서 COREA를 발견하니 반가웠다.

유럽의 육지지도가 빈약하다는 게 너무 강조되서일까? 다음 등장하는 지도는 본격 육지 지도다. 비록 프랑스에 국한된 지도이기는 해도, '카시니의 프랑스 지도'는 지도를 통해 국가의 영역을 확인한다는 것이 어떻게 국가를 완성하는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세계최초의 국가 기본도를 150여 년만에 완성한 사람은 나폴레옹 이었다. 국가지도 하면 우리에게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도가 있지 않은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바로 조선의 지도 말이다. 1395년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와 1402년에 완성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모두 혼란스런 조선초기 나라의 안정과 왕권강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반도의 지도를 떠올려보라고 했을때 조선의 지도 보다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동시대 인물인 김대건 신부도 조선전도를 제작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 신기했다. 김대건 신부의 지도에서 서울이 Seoul 이라는 로마자로 처음 표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김정호의 지도는 여전히 볼수록 놀랍다. 그리고 김정호에 대해 알아야 할 정보는 널리 알려진 '지도' 보다도 그에 얽힌 신화아닌 신화이야기 이다.

어떤 기록물에도 김정호가 죄인으로 투옥되었다거나, 김정호를 도와준 이들이 관련 죄목으로 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여러가지 설은 실제가 아니라 '신화'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즉 김정호가 전국 답사 과정을 거쳐 지도를 제작했다기보다는 신헌이라는 고위 관료의 도움으로 정부의 문서고에 보관된 많은 지도와 서적을 열람하여 지리 정보를 확보했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지도와 지리적 서적을 작성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요. 그리고 조선 정부로부터 어떠한 핍박도 받지 않고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일제강점이 동안 조선 정부의 무능함을 부각하고 그들의 지배를 합리화하고자 식민 정부에서 이와 같은 '신화'를 만들었다고 여겨집니다. (p. 264)

김정호 신화는 일제가 조선을 폄하하기 위해 퍼트린 낭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정호 신화는 역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오랫동안 왜곡되어 온 정보를 수정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철썩같이 믿고 있을 때 아무리 정확한 정보를 들이대도 사람들은 여간해선 자신의 믿음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는 이 책의 마지막 지도인 존 스노의 콜레라 지도 이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취전문의 였던 의사 존 스노는 당시 공기의 오염으로 전염된다고 알려진 콜레라가 사실 물이 원인이라는 것을 여러차례 주장하고 증명했지만 그가 죽을때까지 그의 이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록 사후에 인정되긴 했지만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려서야 기존의 왜곡된 정보가 수정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도 한장한장 읽을 때마다 그 시대를 잠시 엿보고 온 기분이었다. 지도 한 장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많은 역사들을 배울 수 있다니 역사 역사 읽기에서 지도읽기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저자가 쉽게 설명해주는 지도이야기가 재미있다보니 다른 지도들에 대해서도 술술 풀어준 또다른 책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책에선 기왕 양 페이지를 할애해 크게 인쇄한 지도가 가운데를 씹힌 모양이 아닌 (적절한 간격을 둔 인쇄로) 완전체 지도를 세세히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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